정말 오랜만에 새 전화기를 샀다.
원래 쓰던 아이폰 XS 맥스에서 바꾼건데,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음에도 새로 산 이유는 딱 하나 :
블로그에 올리려고 분홍색이 이뻐서.
언제나 가장 크고 가장 등급이 높은 모델만
사던 나에게 처음 만나는 중급형 아이폰.
어느새 라인업이 문어발처럼 늘어나서
숫자만 붙는 모델인데 서열이 무려 3등이다.
이번 아이폰 13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799로 시작하여 국내 판매시작가는 109만원.
사람들은 아이폰 미니 시리즈가 안 팔린다고,
단종될 것 같다고들 하는데
안 팔려서 단종된다 한들 애플에겐 이득.
원래 아이폰 11은 $699였는데,
아이폰 12부터 미니가 그 가격을 꿰차고
6.1인치 모델은 $799로 인상되었다.
주력 모델을 100불씩 더 받는 정책을
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착륙시켰고
미니가 없어진다고 해서
내년 아이폰 14 가격이 인하되진 않을테니
팀 쿡 그는 정말 짜증나게 천재적이다.
평소 같았으면 무조건 아이폰 13 프로 맥스인데,
새로 출시된 시에라 블루가 이쁘긴 하지만
분홍색이 너무 이쁜 것 같아 한번 사봤다.
분홍색 만큼이나 폰 자체가 괜찮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우선 받았는데,
아이폰의 박스가 이렇게 작았던 적이 있었나?
처음에 스토어 직원이 건네주는 것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이거 리퍼폰 아니야?
환경을 너무 사랑하는 애플 답게
이것저것 자꾸 빼서
패키징이 이렇게나 작아졌다.
작은 패키징은 비행기로 한 번 실어나를 때
더 많은 아이폰을 운반할 수 있다며
유통 중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데
느그들이 유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단 거를
퍽이나 돌려서 이야기한다. 안 속아.
예전엔 새 아이폰을 구입하면
비닐로 싸여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고
친환경 라벨지같이 생긴걸 뜯으면
분홍색 아이폰 13이 모습을 드러낸다.
확실히 이쁘긴 정말 이쁘다.
아이폰 13 들어서 새로 추가된 색상이
핑크와 미드나이트, 스타라이트인데
이 3가지 모두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만
역시 분홍색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아이폰 프로 라인업이 몇 년째
제대로 된 새까만 블랙이 안 나오고
거지발싸개같은 그래파이트만 내고 있어서
본격적으로 좀 어두운 색상인 미드나이트와
흰색이 너무 베이직하고 심심한 이들에게
좀 더 따뜻한 톤의 스타라이트는
내 관심을 끌기 충분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은 핑크.
나는 아이폰 6s에 로즈골드가 나왔을때도
로즈골드로 구입했던 사람이라
남자의 컬러 핑크가 맘에 드나 보다.
요즘 출시되는 스마트폰에
스펙을 따지는게 굳이 의미가 있냐마는,
그래도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아이폰 13은 최신 A15 프로세서와
4기가 램, 6.1인치 슈퍼 레티나 XDR 디스플레이,
12+12MP 후면 카메라와 12MP 전면 카메라,
IP68 방수방진과 174g의 무게
그리고 3240mAh의 배터리를 갖추었다.
원래 쓰던 아이폰 XS 맥스와
메모리 용량은 동일하고
프로세서는 큰 폭으로 강화됐다.
그래서 당연히 훨씬 빠를 줄 알았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아이폰 13은 모든 애니메이션 처리가
내가 쓰던 폰보다 프레임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내가 아이폰 12를 써보질 않아 모르겠지만
프로 라인업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이번에 프로 라인업에만
프로모션 가변 주사율 디스플레이가 달려서
더 차이를 벌리려고 이렇게 해둔건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 초기 셋팅을 다 마치고 나갈 때
홈 화면으로 가면서부터 이게 너무 눈에 띄어서
쓰던 전화기 가져와서 옆에다 놓고 비교해보니
내 눈이 적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초기 설정 시에는 인덱싱 작업도 돌아가고
발열량도 늘고(=프로세서 구동량 많음) 하니
며칠 냅둬보고 좀 이따 다시 확인해볼까
해서 열흘 뒤에 봐도 똑같다.
벌써부터 분홍색에게 힘든 싸움이.
그래도 다행인 건,
GPU 성능이 올라서
한 5년 뒤 출시되는 거물급 게임 정도는
무난하게 돌릴 수 있다는 점.
어느 순간 부터는 스마트폰의 칩셋 성능이,
특히 아이폰의 경우는 더더욱,
너무 좋아져서 출시되는 앱들이
아이폰의 출시 시점에는
이를 다 활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미래를 위한 여유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데,
iOS(혹은 iPadOS)의 게이밍 성능은
이미 안드로이드 떨거지들이 5년 쯤 뒤에도
못 따라잡는 압도적인 수준에 와 있어서
새로 아이폰을 산다고 한들
몇년 전에 쓰던 아이폰에 비해서
극적인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다.
나는 사진 속에 나온
니드 포 스피드 : 노 리밋 정도밖에 안 하는데
원래 쓰던 폰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 밖에 내가 폰으로 하는 건
SNS랑 사진 편집 정도 뿐이라
사진 편집 시 미세하게 더 빨라진 것 외엔
그냥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다.
몇 년 뒤라면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전화기를 새로 살 이유가
사실상 없는 것 아닐까?
프로 라인업은 6기가 램이 탑재되어서
좀 더 쾌적한 멀티태스킹이 된다지만
나는 앱 하나 쓰면 바로 끄는 성격이라
멀티태스킹도 안 하고...
물론 이걸 쌓아놓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아이폰 13 프로나 13 프로 맥스는
업그레이드의 값어치가 있긴 하겠다만
그마저도 작년의 아이폰 12 프로 시리즈라면
교체의 이유가 딱히 없어 보인다.
최근 몇 년 간 새 스마트폰의 구매 사유는
대부분 카메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새로운 제품을 사면 사람들은 으레
기존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는데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야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스마트폰 성능이 두 배로 뛰고
금방 스마트폰을 갈아치울 이유가 사방에 천지였지만
오늘날은 앞서 말했듯이 단순한 성능으로는
새로운 제품을 그것도 이만큼씩이나 돈을 주고
살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나도 못 느끼니까.
그래서 오늘날 스마트폰의 최고 역할인
사진과 동영상 촬영에 모든 제조사들이
돈과 역량을 삽으로 퍼다 때려붓고 있다.
아이폰의 경우는 내가 원래 쓰던
아이폰 XS 시리즈부터 짜증나는 스마트 HDR을,
아이폰 11 시리즈부터 야간 모드를,
아이폰 12 프로 맥스부터 센서 시프트 손떨림 방지를,
그리고 이번 아이폰 13 시리즈 와서는
전 모델에 센서 시프트 손떨림 방지를 적용하고
사진 스타일 기능을 제공하며
더 커진 이미지 센서와 시네마틱 모드까지.
아이폰 13은 1200만 화소 메인 카메라와
1200만 화소 초광각 카메라가 뒤에 달리고
전면에도 개선된 1200만 화소 카메라가 달린다.
원래 쓰던 아이폰 XS 맥스와의 차이점이라면
초광각 카메라가 있고, 망원 카메라가 없다.
나는 그래서 이 조합 차이가
상당히 기대가 되었는데,
3년 사이에 스마트폰 카메라는
그야말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과연 3년 전 스마트폰의
제대로 된 망원(52mm) 카메라와
오늘날의 디지털 줌(2x 52mm)이
어떤 차이를 보일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직도
제대로 된 망원 카메라를 이기진 못한다.
최근 출시 아이폰들의 이미지 프로세싱이
워낙 발전해서 기대를 좀 해보았는데,
아이폰 XS 맥스 쪽이 노이즈는 더 있음에도
디테일 보존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이폰 13은 디지털 줌으로 처리한 사진이라
너무 심하게 디노이징(뭉개기)이 되던데
3년 차이로는 아직 부족하구나.
그래서 인물사진 모드에 들어가도
2배 디지털 줌 없이 1배(26mm) 상태로
배경 흐림 처리만 되게 촬영된다.
인물 사진은 어느정도 화각이 좁아야
그 맛이 사는데 이건 영 별로다.
메인 카메라는 압도적으로 좋아졌다.
야간 모드는 확실히 내 기존 폰에서는
털뭉치같이 뭉개지기만 하던 것들을
전부 선명하게 보여주며
음식 사진 등의 실내 샷 역시
압도적인 선예도를 자랑해서
3년 간의 프로세싱 성능 발전량을 과시했다.
아이폰 13의 경우는 작년 출시된
아이폰 12 프로 시리즈와
이미지 센서를 공유한다던데,
그래서 현재 국내에서는
이보다 좋은 카메라는 아이폰 13 프로 시리즈 뿐.
'사진 스타일'은 처음에는 신기해서 몇 번 써봤고
애플 말로는 이 기능은 필터와는 다르다던데
결국 이것 저것 써보고 돌고 돌아
기본값에 정착하게 되는 것 같다.
사진 스타일은 후보정이 불가능하고
촬영 시 적용했던 그대로 고정되게 되는데
에어드랍으로 구형 아이폰에 옮겨 손보는 것을
막기 위한 애플의 조치로 보인다. 아름다운 세상.
시네마틱 모드는 이따금 잘 되면 대박인데
빛이 부족하거나 이미지 센서가 작은
전면 카메라로 시도하면 영 꽝이다.
마치 인물사진 모드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
아이폰 7 플러스로 사진 찍었던 그 느낌?
그때 들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이것도 몇 년 지나면 완성도가 올라가겠지.
인물사진 모드가 나온지가 벌써 5년째인데
아직도 완벽해지지 못한 것을 보아
시네마틱 모드는 아이폰 십팔(욕 아님)쯤 가면
비로소 전천후 사용이 가능해진 것 같다.
전면 카메라는 확실히 더 선명해졌고
특히나 내가 쓰던 아이폰 XS 맥스와
비교하게 되면 화각이 훨씬 넓다.
전면 카메라는 아주 좋은 것 같다만
적절하게 피부 잡티를 가려주는 면에선
원래 쓰던 내 폰이 더 잘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전에는 망원과 초광각으로
밸런스 게임을 한다면
무조건 초광각 편에 섰었는데
아이폰 13을 쓰면서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
나는 망원이 필요하구나...
분홍색도 이기기 힘든 망원 카메라.
망원이 없으니 이 카메라 구성 자체가
영 맘에 들지 않게 돼서
사용하는 동안의 경험 자체가 타격을 입었다.
하기사 돈에 미친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천하의 애플이 급나누기를 초광각이 아닌
망원 카메라로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물론 망원 카메라의 제조 단가가
초광각보다 더 비싼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폰 13으로 오면서 좀 의외인 게
기존의 아이폰 스피커가 내던 음색과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서 놀랐다.
기존의 아이폰 스피커는
내가 쓰던 아이폰 XS 맥스부터 12 시리즈까지
쭉 비슷한 음색을 선보여왔기 때문에
아이폰 13에 와서 갑자기 바뀔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다르다.
아이폰 13의 스피커는
특유의 울리는 느낌이
기존보다 크게 줄고,
해상력 확보에 주력한 모습.
그래서 최대 볼륨으로 올리면
확실히 이전의 모델들보다는 음량이 높지만
아이폰의 강점인 작은 덩치 대비
놀랍도록 웅장한 스테레오 사운드는
많이 퇴색된 것 같아 아쉽다.
디스플레이의 경우는
아이폰 13 프로 시리즈에는 이번에
아이폰 최초로 프로모션(ProMotion)이
탑재되어 매끈한 스크롤을 자랑하는데
아이폰 13과 아이폰 13 니미에는 탑재되지 않았다.
아이폰 13의 디스플레이 스펙은
작년과 동일한 슈퍼 레티나 XDR OLED 패널에
6.1인치, 2532 x 1170 해상도에 460ppi.
이 역시도 이제 매 년 뭔가를 세세히 따진다기보단
그냥 좋다. 근데 나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잘 안 본다.
아이패드랑 맥북이 있어서
결국 체감되는 것은 프로모션 기능의 유뮤인데
아이폰 13에는 없다. 불만 있으면 프로 사라고.
옛날 같았으면 디스플레이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니 글 서두로 빼게 됐었는데
이제는 별 생각이 안 나 이렇게 구석 한 켠에.
올해 나온 스마트폰을 사면서
디스플레이가 신경쓰인다면 단연 아이폰 13 프로 맥스.
이거는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 하다.
아이폰은 어떤 방면에서든
신기술을 최대한 빨리 도입한다기보단
해당 기술이 안정기에 돌입했을때
돌연 적용하며 타사를 압도하는 사용성,
그리고 사용 경험에 영향을 줄 만큼의 차별화를 갖추고
비로소 적용해왔던 역사가 있다.
그런데 작년에 뜬금없이 갑자기
아이폰 12 시리즈 전 모델에
공통적으로 5G를 도입하면서
아직 mmWave 5G 정착도 안 된 지금
아이폰에 웬 5G냐 갸우뚱했었다.
1년이 지나 아이폰 13 시리즈가
굳이 5G를 서둘러 넣었어야 했나 하면
지금 와서도 아직 '아니오.'
다운로드 속도가 정말 빠르긴 하지만
굳이 5G의 속도까지 필요한가?
5G의 낮은 딜레이가 요구되는
클라우드 게임을 내가 안 해서 그럴지도.
그런데 쓰면서 찾아보니 SKT는
5G 보급에 초기부터 열심이었던지라
이제 5G를 놔두고 LTE를 유지할 이유는
딱히 없어진 것 같다.
SKT는 5G 게이밍 보급 차원에서
게임패스 첫달 100원 프로모션 진행 중.
또 1년의 시간 동안
내가 쓰는 SKT의 경우
5G 요금제가 현실적인 가격으로
조정을 거쳐서 이제 5G로 쭉 가도 괜찮을 듯.
타사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일단 LG U+는 아니라네.
이번 아이폰 13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역대 아이폰 시리즈 중 가장 긴 배터리 수명인데
확실히 배터리 용량 증가의 덕을
톡톡히 봤다. 용량이 깡패다.
아이폰 13은 3240mAh의 배터리로,
애플이 발표하기를
최대 19시간 동영상 재생이 가능하다는데
인덱싱 작업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후
완충에서 방전까지 써 본 결과
배터리 타임이 정말 길다.
하루 사용하며 화면켜짐 7시간,
대부분 SNS와 위에 나온 게임을 했으며
이따금 카메라를 쓰고 노래는 거의 계속 들었다.
그런 와중에 통화까지 3시간 50분.
이렇게 쓰고 방전되었는데
전화 통화가 배터리를 많이 소모하는 걸 감안했을때
정말 배터리 걱정은 이제 없을 것 같다.
밝기도 보통 60%에서 최대 100%까지
야외에 들락거라면서 수동으로 오갔다.
이것도 이렇게 무지막지한데
아이폰 13 프로 맥스는 상상이 안 간다.
분홍색과 더불어 아이폰 13의 최고 강점.
갑자기 이걸 왜 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내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이 "분홍색이 예뻐서."
그런데 나랑은 아주 안 맞는 물건이다.
처음으로 메인 폰의 화면 크기를 줄여봤는데
영상을 많이 보는 것이 아님에도 답답했고
곳곳에서 나타나는 원인불명의 프레임 드랍.
일부러 완성도를 낮춘 카메라 구성.
분홍색 하나 보고 산 물건이긴 한데
정말 분홍색 말고는 와닿는게 없었다.
처음 개통하고 며칠간 들고다니며
틈날 때 마다 색깔을 감상했는데
정말 예뻤고 다른 건 생각이 안 났었다.
최근 몇 년 간 새 전화기를 잘 안 사긴 했지만
그 옛날에 hTC One (M8) 샀던 시절 이후로
이렇게 스마트폰의 생김새에 빠져서
정신을 놓았던 적은 손가락에 꼽는다.
정말 분홍색 하나 보고 사는 폰인 만큼
분홍색은 최곤데, 점점 문제점들이 눈에 띈다.
나는 기존에 아이폰 XS '맥스'를 썼다 보니
습관대로 전화기를 잡게 되면
항상 새끼 손가락이 마이크를 막더라.
전화 하면서 왜 말을 안하냐고,
일주일간 니가 걸어놓고 왜 묵언수행이냐고
욕 좀 먹었더니 슬슬 정신이 들었다.
다행히도 카플레이 사용하는 비중이 많아서
운전 중에는 괜찮았었다만
에어팟이 있음에도 전화기를
손으로 직접 통화하는 일이 많아 불편했다.
큰 폰 쓰던 사람은 다시 내려오기가 어렵다.
그리고 내가 쓰던 아이폰 XS 맥스는
프레임이 둥글게 처리된 제품이라
사이즈가 꽤 큰데도 감촉과 잡을때의 느낌이
불편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아이폰 13은 알루미늄 프레임인데다가
디자인 상 프레임이 직각으로 떨어져
부피는 줄어들었는데 오히려 불편했다.
아이폰 4 시절 디자인의 부활이라고
환호했던 분들 여기 좀 와 보세요 진짜.
그거는 3.5인치니까 쓸만했지
요즘같이 전화기가 이렇게나 큰데
이런 디자인 채용하면 불편해서 어떻게 씁니까.
스테인리스에 비하면 알루미늄의 감촉은
어쩔 수 없지만 고급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13 프로 시리즈 안 사놓고 왜 징징대냐고 한다면
그래서 앞으로 이런 중급형(?)은 안 사려고.
쓰면서 확실히 돈을 덜 낸 티가 여기저기서 드러나는데
아무리 위에 프로 시리즈가 있다지만
이건 그래도 123만원짜리 전화기 아닌가(256GB).
123만원을 주고 스마트폰을 사는게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은
폰값이 미쳐 날뛰는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돈을 내고 이런 대접을 받는다니
쓰는 내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분홍색 보고 참은건데...
문제는 분홍색같이 튀는 색상은
오랫동안 질리지 않고 사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다.
나 이제 스마트폰 한 번 사면
막 3년씩 기본으로 쓰는데.
옛날처럼 한 달에 한번 바꾸면 몰라
순간의 선택이 몇 년을 좌우하는 오늘날에
이런 모험과도 같은 컬러 선택은
아무래도 쉽지 않고
그렇게 분홍색이 이뻐서 샀는데도
금세 애정도가 빠르게 떨어지는게
불과 며칠 만에 느껴졌다.
한 석 달 쓰면 질려서 바꾸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역시 무채색이 최고다.
그래서 과감히 환불을 결정했다.
아이폰 13은 그럼 어떤 사람에게 어울리느냐?
일단 나처럼 이것저것 다 따지지 않는 사람.
분홍색 폰과 몇 년 함께 살아도 지장 없는 사람.
아이폰의 세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사람.
학창 시절 공부하라고 부모님이 피쳐폰 사줘서
다른 친구들 아이폰 쓰는거 부러워 죽겠다가
수능 끝났다고 드디어 그렇게 노래를 불렀던
아이폰을 부모님 돈으로 사는 여자 아이들?
나중에 돈 벌어보면 백만원 넘는 전화기
손떨려서 쉽게 못 살 텐데
이런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전화기지
나와의 궁합은 써보니 영 별로였다.
솔직히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처음으로 플래그쉽이 아닌 전화기를,
그것도 그런 아이폰을 사는 것이었기에
출시된지 좀 지난 기함격 아이폰과
비교하면 이제는 쓸만할까가 주 된 질문.
써보니까 알겠다.
뭐가 되었건 공산품 세계에서
'급'을 내리는 건 할 짓이 못 된다.
스마트폰도 정말 체급이 깡패다.
아이폰을 입문하기에는 적당한 물건이지만
원래부터 아이폰 상위 제품을 써왔다면
당신은 이제 내려갈 수 없는 몸이니
순순히 항복하고 최소 135만원을 내며
아이폰 13 프로 이상을 구입하시오.
분홍색이 사실상 전부인데
분홍색 조차도 이기지 못한
체급 차이의 강력함.
그러니까 애플은 얼른
제대로 된 까만색 아이폰 프로 라인업을
하루빨리 출시해주기를 빈다.
그래파이트가 뭐냐 그래파이트가.
그래서,
다음 전화기는 아이폰 15 프로 맥스가
나올 때 쯤에나 사던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