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랙 테스트 시승기.
근래 나온 차 중에서
Z4 M40i만큼 운이 없는 차가 있나 싶다.
파워트레인과 섀시를 공유하는
도요타 수프라에 비해선
수프라 쪽이 더 퓨어 스포츠카라며 주목받고
위로는 포르쉐 박스터가 누르고 있으며
아래엔 병행수입된 마쯔다 미아타나
장르가 완전히 다르지만 '펀카'로선
더 뛰어난 아반떼 N이 포진하고 있다.
그럼 Z4 M40i는 의미가 없는 차량인가?
가격도, 성능도, 즐거움도
다 가운데 어딘가에 낀 애매한 차량인가?
정말로 Z4 M40i가 운이 나빠서
품고 있는 실력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 건지
아니면 Z4 M40i의 능력이 거기까지라
그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건지
트랙에서 테스트를 통해 알아보자.
트랙에서 하는 테스트지만 비를 좀 곁들임.
장마철이잖아.
로드스터의 본고장 영국은
365일 중에 364.9일 정도 비가 온다지
이 차량은 이미 LCI(Life Cycle Impulse),
그러니까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3세대 Z4(G29).
LCI를 했다는데 어디가 바뀐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안 바뀌었다.
헤드램프의 베젤 색상이 블랙으로 바뀌고
그릴 내부의 디자인이 약간 변경되었고
음... 그게 다이지 않나?
숨은 그림 찾기도 이 정도 난이도면 극악.
국내에 수입되는 Z4는
sDrive20i건 M40i건 둘 다
M 스포츠 외장이 적용되기 때문에
외관상의 차이가 그렇게까지 나진 않는데
M40i라서 다른 점은 새틴 크롬 뱃지와
더 큰 휠 정도로 내 눈엔 보여진다.
M 스포츠 외장이 적용되지 않은
독일의 깡통 Z4는 혀 내민 라따뚜이처럼
다소 얼빠져보이고 멍청해보이는데,
Z4 M40i는 못생겼을지언정 바보같진 않다.
실내는 LCI 전과 후에
차이가 없다시피한 것 같다.
혹시나 차이점을 다 아는 사람은 좀 말해주길.
2019년 서울모터쇼에서 봤던
그 실내 모습과 달라진게 없다시피하니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
그 5년동안 다른 차종들은
인테리어 디자인에 파격적인 변화를 맞이했는데
Z4는 여전히 6-7년 전 데뷔한
인테리어 테마가 그대로인지라
지금 시점에서는 상당히 오래돼보인다.
그러나 BMW의 최근 인테리어 디자인과
인포테인먼트인 iDrive의 UX 설계가
종합적으로 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기에
구식이어서 오히려 좋아.
iDrive 8은 완전 난잡하니 난리도 아닌데,
Z4 M40i의 iDrive 7은
비교가 불가하게 직관적이고 편리하다.
운전석에 올라타니
엄청나게 낮은 시트 포지션이 날 반겨준다.
최근 출시된 5시리즈(G60), 7시리즈(G70)는
무슨 현대기아차나 SUV가 연상될만큼
최저 시트포지션이 너무 높아서
이전까지 지켜오던 본분을 잃어버렸다 싶었는데
아직 풀 체인지가 되지 않고 LCI로 생명연장 중인
3시리즈(G20)와 Z4는 다행히 예외.
시트는 그렇게 크지 않은 내 덩치에도
볼스터가 열심히 잡아주는 편인데,
덩치가 큰 사람들은 다소 작다 느껴질 듯.
M 스포츠시트는 만족스러운 품질이나
이전 박스터(987) 시승기에서 밝혔듯이
난 포르쉐를 타더라도 일반 스포츠시트를
옥죄는 스포츠 시트 플러스 대신 고를 사람이라
약간 힘을 빼도 충분하지 않나 싶음.
이렇게 운전 자세와 시트 형상이 본격적이라면
로드스터 본분에 맞는 달리기 실력을 갖춰야겠지.
제원부터 간단히 짚고 넘어가자면,
Z4 M40i에는 많이들 알고 있는
직렬 6기통 2998cc 터보 B58 엔진이 올라가고
ZF 8HP 자동변속기가 그와 맞물린다.
최고 출력은 387마력, 최대 토크는 50.99kg·m.
51도 아니고, 정확하게 50.99라고
자사 홈페이지에 기재해놓은 BMW가 대단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 짚자면,
대부분 Z4 sDrive20i보다
이 Z4 M40i가 더 잘 돌고 잘 달리겠다
싶겠지만, 사실은 글쎄요다.
Z4 M40i는 '직렬' 6기통이기 때문에
엔진이 세로로 너무 길어서
제아무리 엔진을 열심히 안쪽으로 집어넣으려 드는
BMW라 한들, 넣을 수 있는 최대 상한선이 존재한다.
엔진이 앞으로 튀어나갈수록 코너링에 불리하고
직렬 4기통 터보인 Z4 sDrive20i보다
엔진에 실린더 두 개가 더 붙어있으므로
앞머리에 무게가 더 실려있고,
그 추가된 무게가 앞에 나가있다는 점.
그래서 이런 엔진은 사실
직진성이 중요한 대형 세단에 더 어울림.
심지어 이 B58 엔진은
보어 x 스트로크가 82 x 94.6(mm)로
롱스트로크형 엔진이다.
저회전에서의 토크 분출 및
부드러운 토크 전개에 유리한 방식.
앗, 이미 파워트레인에 대한 평을
방금 이야기들로 힌트를 줘버렸네.
난 개인적으로 Z4 M40i는
'M40i'이기 때문에 최악이다.
일단 방금 언급한 롱스트로크형 엔진은
엔진 회전수를 쥐어짜며 신나게 달릴
스포츠카와는 궁합이 영 상극이다.
여기에 터보차저까지 가세해
너무 일찍부터 토크가 뻥뻥 나오려 들지만
또 엔진 리스폰스 자체는 터보엔진 답게
약간의 딜레이, 즉 터보 랙이 존재한다.
제로백이 빠른 것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평을 줄법한 엔진이지만,
난 스포츠카는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해서.
그런 측면에선 영 꽝이다.
Z4 M40i의 B58을 가지고
M 전용 엔진으로 튜닝한 S58은
M3에서 경험해보았을때
터보 랙도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B58 대비 현저하게 적고,
7200rpm까지 돌아가서
S58 자체도 좀 더 높게 회전했으면 싶다만
B58은 7000rpm이 최고 엔진 회전수.
고회전의 짜릿함을 누리기엔
너무 일찍 퓨얼컷에 걸리게 된다.
여기에 자동 8단 변속기까지 싫다.
인터넷의 뚜벅이들이나 상당수의 동호회인들이나
'ZF 8단'인데 뭐가 문제야??
하겠지만, ZF라고 능사인 게 절대 아님.
그리고 그 ZF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도 만들거든.
스포츠카에 필수라고 생각하는
딱 딱 절도감있게 변속하는 스릴이 없다.
내가 너무 포르쉐의 PDK나
BMW M의 M DCT에 길들여져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일수도 있겠다만,
짜릿함을 주기에는 그저 그런
너무 평범한 자동변속기다.
이게 승용차에 얹힌다면 꽤나
스포티한 축에 속할수도 있겠다만,
DCT의 꽉꽉 물리는 직결감을 사랑하는 나로선
(DCT 대비해서)출력이 새는 이 공허한 느낌과
가짜로 만들어내는 변속 충격이
'진실되지 못하다'라고 느낀다.
하기사 M3에 자동 8단이 적용된 것에도
자동변속기로 바뀌면서 M DCT를 버린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던 나 이니,
당연히 이 정도론 전혀 만족 안 됨.
그래서 내가 봤을 때 M3(E92)를
중고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지금 사야 함.
자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완전 정 반대의 관점으로 보자.
솔직하게 고백해서,
컨버터블은 탑이 열리는 것이 9할인데
뚜껑을 열고 유유자적 크루징하기에
방금 볼멘소리를 곁들여 소개한 Z4 M40i의 특징들이
여러모로 잘 맞을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나?
정말 애석하게도, 이 역시도 아니다.
평소에 편안하게 타기에 서스펜션이 너무 단단하고
무거운 차체를 지니고도 트랙에서의 조종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기 위해 노면을
지나치게 읽는다는 느낌이 강해서
트랙 밖으로 나가면 허리가 아팠다.
스포츠 서스펜션 설정값으로 놓게 되면
바퀴에서 타이어를 벗겨버리고
네 모서리에 굴렁쇠를 달아놓은 것 같은
그런 도로 표면을 제 멋대로 긁으며 다니는듯한
불편한 느낌이 연속적으로 이어졌고
이는 장거리 주행 시 피로감으로 직결된다.
스포츠카로서 노면과의 교감 및 피드백 전달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도 어느 정도껏이지.
무게 이야기를 다루면서 코너링 이야기를 같이 하려고
파워트레인 이야기에 묶어서 하지 않고 끊었다.
Z4 M40i의 공차중량은 1610kg.
요즘 탱크같이 무거워지는 중인 BMW들에 비하면
정말 가벼운 축에 속하는 몸무게이긴 하지만,
스포츠카 세계로 범위를 한정지어버리면
Z4 M40i는 V8 이상의 대형 엔진도 아니면서
경량과도 거리가 먼 이도저도 아닌 차량이다.
그 이유는 딱 하나.
Z4는 독자 개발 전용 섀시의 스포츠카가 아니라
BMW의 다른 차종들과 공유하는
CLAR 플랫폼을 가지고 만들어서다.
마쯔다 MX-5나 포르쉐 박스터,
로터스 엘리스, 알핀 A110
이 차종들은 Z4 M40i보다 몇 백 kg씩 가볍다.
그런 둔중한 몸무게로 날렵한 '척'을 하려니
서스펜션이 너무 단단해질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컴포트 모드에서조차 난 불편했다.
이 엄청난 무게 차이는 코너링 시에도
언제나 군더더기가 되어서 나타나는데,
병행수입 차량임에도 Z4 M40i보다
크게 저렴한 마쯔다 MX-5에 비하면
거의 뭐 돌지 않으려 드는 느낌이 든다.
포르쉐 박스터는 무게 차이도 있는데
포맷 자체가 MR이니 말 할 것도 없지.
하드탑에서 소프트탑으로 왔음에도
근본부터 위에 언급한 순수 스포츠카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무게 차이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B58 엔진보고 '실키 식스'라
칭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
한 마디만 딱 하자면
"BMW 엔진이 정말 실키 식스이던 시절의
그 엔진들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래"
난 B58 엔진의 이 뭉툭하고
중역대가 물먹은듯한 소리가 싫다.
앞서 언급했듯이 엔진 최고 회전수가
7000rp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쭉쭉 뻗는듯한 고음도 전무하고.
사운드를 즐기는 측면에서도 영 꽝.
물론 엔진음과 배기음은 취향이니까
본인 마음에 들면 그냥 만족하시길.
사운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디오 및 기타 잡다한 이야기 잠시.
Z4 M40i는 12-스피커 하만 카돈 오디오가
Z4 sDrive20i와 달리 기본으로 장착된다.
근데 그래봤자 하만 카돈이고,
BMW의 하만 카돈 중에서도 별로인 축.
소리에 대한 평을 한 줄로 할 수 있을 듯 한데
씨앗이 없고 가운데가 텅 빈 코코넛.
딱 그런 소리가 나서 소리가 빈약하다.
그럼 Z4 sDrive20i의 하이파이 라우드 스피커는
도대체 얼마나 못 들어줄 소리가 난다는 건지..
마쯔다 MX-5의 BOSE는 로드스터 치고 훌륭하고
박스터는 BOSE와 부메스터 옵션이 구비되어 있으니
소리 측면에선 차 밖에서 나는 소리나
차 안에서 나는 소리나 수준이 비슷하다.
안 좋은 쪽으로.
최근 완전 신형이 출시되었거나
LCI를 거친 BMW 차량들은
죄다 기어레버를 없애고
흔적기관 비스무리한 딸깍이로 바꾸는 중인데
멀쩡한 기어봉이 달렸단 점에 감사하다.
Z4의 컵홀더는 내 운전 자세 기준
너무 뒤로 가 있어서 위치가 매우 불편하다.
차라리 대시보드 패널을 눌러서
팝업식으로 튀어나오는 박스터의 방식이
운전하면서 도로에서 시선을
길게 떼지 않고도 음료를 집어 마실 수 있어 낫다.
참고로 내 운전 자세는 6년 전에
이 곳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맞춰준 것.
그럼 이건 어때?
실용적인 컨버터블.
드디어 찾았다 Z4 M40i의 장점.
아니, Z4 자체의 장점이라 봐야겠지.
3세대 Z4(G29)로 진화하며
하드탑을 버리고 소프트탑이 된 덕에
트렁크 공간이 넉넉해졌고,
탑을 여닫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트렁크의 공간이 일정해서 좋다.
Z4의 트렁크는 T자형으로 생겼는데,
사진에 보이듯이 28인치 캐리어를
깊숙히 밀어넣으니 딱 들어가고
앞쪽 일자형 공간이 남는다.
좀도둑 소굴인 유럽에선
짐의 존재여부, 트렁크 내부 상황을
외부로 노출하면 차량털이범의 표적이 되는데
컨버터블을 타면서도 평소에 차량에
짐을 좀 싣고 다니고 싶거나
큰 캐리어를 싣고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그런 수요에 맞춰서 개발했나보다.
그런데 왜 승차감은 그 모양이지
Z4의 소프트탑은 11초 정도에
완전 개폐가 끝나는데,
정말 세상 좋아졌다. 정말 빠름.
이 정도면 갑자기 부슬비가 쏟아지는
로드스터의 본고장 영국을 비롯한
유럽 다수 국가에서도 끄떡 없을 듯.
Z4 M40i는 실용성 하나에 몰빵한 차량이었네.
그래서 Z4 M40i는
정말로 운이 없는 차종이었을까?
이렇게 알아본 결과 답은 '아니오.'
마지막 실용성 깡패 언급은 그냥 우스갯소리고,
Z4 M40i는 스포티한 달리기로서도 부적격.
부드러운 오픈 탑 크루저로서도 부적격.
심지어 가격은 최근 할인을 감안해도
9천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스포티한 달리기는 앞서 언급한
마쯔다 MX-5나 포르쉐 박스터가,
오픈 탑 크루저로는 최근 새로 출시한
메르세데스-벤츠 CLE 450 카브리올레가
훨씬 제격인 듯 하다.
이런 개성이 강한 차종은
분명한 용도를 가지고 구입하기 때문에
목적이 확실해야 하는데,
Z4 M40i가 보여준 면모들은
전부 어중이떠중이에 그쳤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에 속아
운명을 탓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Z4 M40i가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Z4 M40i 자체의 기세가 턱 없이 부족해서다.
Z4 M40i는 운삼기칠(運三技七).
BMW 태생이라 독자 스포츠카가 될 수 없고
BMW의 엔진을 돌려 쓸 수 밖에 없는
3할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나머지 7할을 만족하지 못해 어려움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