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마지막편.
3박 4일인데, 4일차 오전에 귀국이라
3.5일에 가까운 일정이라 이번이 마지막.
3일차는 어제보다 더 일찍 일어나기로
계획이 짜여져 있건만.. 눈 뜨니까 어제랑 똑같음.
7시반에 일어나려 했는데 9시반에 일어남.
꼭 맞춰서 다 둘러봐야 한단 강박이 좀 있는 편인데
그냥 편하게 그런 거 신경 끄고 되는 대로
오늘 하루 보내보기로 결정해서 열시 쯤 호텔을 나섰다.
어제 워낙 더위에 시달렸었어서
오늘은 주구장창 우버만 타고다닐 예정.
나 옛날에 '세 발자국 이상은 무조건 택시' 콜하던
어릴때가 생각날만큼 수시로 우버 불렀음.
오늘도 더운 날씨는 그대로더라.
우버 불렀는데 이번엔 C-클래스가 온단다.
E-클래스라던 우버에 어제 뒤통수맞은 전적이 있어서
걱정하면서 호텔 로비에서 기다렸는데
진짜 C-클래스가 왔고, 범상치 않은 차였다.
타자마자 눈 앞에 AMG 퍼포먼스 시트가 보임.
아... 이 아저씨 보통 환자가 아닌데?
멀리서 오는 거 보고 C63 AMG인줄 알았는데
정말로 와이드바디킷을 풀로 두른 차였다.
잠시 차 얘기 좀 하자면(여기 자동차 블로그임)
이렇게 사제로 바디킷을 다는 경우
휀더까지 바꾸진 않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안 그럼 쿼터패널까지 다 바꿔야해서 돈이 꽤 드니까.
일반적인 C클래스와 달리 C63 AMG는
더 넓은 윤거와 더 넓은 타이어를 감당하기 위해
휀더가 튀어나와 있는데, 그것까지 맞춰서 장착한 것.
나 같은 사람 아니고서야 사실 잘 알아보기 힘든 부분이라
추가적인 지출을 감수해가면서까진
굳이 잘 하지 않는 건데 상당하다.
그 외 기사님이 빌스테인 댐퍼도 장착했다 하시고
차에 추가적으로 들어간 비용만 2천만원 돈 되어 보임.
이전에는 5GT 35i 타다 휘발유 기름값 압박에
C220d로 바꾸셨다는데, 곧 마칸 GTS로 갈 거라고.
기사님 왈 : 이 동네 맨날 테슬라랑 택시랑 사고남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환자분을 만나 식당까지 가는 한 시간
즐겁게 이야기나누면서 오늘의 첫 끼 먹으러.
기분 좋은 여정이었어서 유일하게 팁도 드림.
앞서 언급한 대로 백종원씨가 다녀갔다는 음식점 중
유일하게 한 번 와보려고 한 Sing Heung Yuen.
저렴한 가격에 토마토 라면을 파는 곳인데
호불호가 은근 갈리는 집이라서 약간 걱정.
노점 수준까진 아닌데, 시장바닥에 앉아서
밥먹는 것 같은 분위기의 식당이다.
도착해서 식당 주인 할머니께 자리 안내받으려고
앞 선 사람 다음으로 말 꺼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젊은 홍콩 여자분이 나보고 이 쪽에 앉으면 된다고,
이 집은 이런게 맛있다고. 현금으로만 지불 가능하다고.
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되게 열정적으로 설명해줘서
식당 사장님인가? 여긴 사장이 에어팟을 끼고 있나?
희한한 동네일세.. 생각하고 있는데
지켜 보니 그냥 시켜놓은 음식 기다리고 있던 분이었음.
본인 거 받아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나보고
더 궁금한거 없냐고 물어보더니 튀김빵 추천해주고 감.
얼떨떨했지만 친절하게 알려줘서 아무튼 감사했음.
토마토 라면이 생각보다 담백해서
대한민국 라면같은 자극은 생각하면 안 된다.
호불호 갈리는 평의 주 원인인듯.
토마토 특유의 신맛... 아 또 신맛.. 도 좀 있는데
나쁘지 않은 정도였고 무난하게 먹을 만 하다.
사실 어젯밤에 원 일정대로 바에 갔더라면
아침 해장용으로 되게 괜찮았을 텐데 싶더라.
동윤영이라고 밀크티와 커피를 섞은 음료(백종원씨 픽)도
주문했는데, 이것도 부드럽고 괜찮았다.
난 원래 커피에 다른 거 타는 거 싫어하거든.
먹던 와중에 추천받은 튀김 빵도 시켰는데
연유가 부어져서 나온다.
실패할 수 없는 조합.
어제 먹은 그 우유푸딩 디저트집보다 훨 낫네.
이 집은 재방문 의사 있음.
근데 홍콩에 재방문할 의사가...
오늘은 9/22라
아이폰15시리즈 정식 출시일.
나이 먹었더니 전자제품에 흥미가 떨어져
평소 같았으면 굳이 이 날 애플스토어에
가는 수고를 행하진 않았을건데,
올해는 나도 새 폰을 구입할 예정이라
아이폰15프로맥스 실물 보러 행차했다.
아이폰14프로맥스를 들고있는 입장에서
무게 감량은 확실하게 체감돼서 좋은데,
일반 아이폰15 라인도 이제 뒷판이 무광이면
프로 라인은 차별화 차원에서 유광으로
돌아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무광 미끄러움.
그리고 아이폰15프로맥스의 경우 아이폰15프로와 달리
3배 광학줌이 아니라 5배 광학줌인데,
3배는 디지털줌 처리해서 오히려 더 많이 쓰는
3배줌이 아이폰14프로맥스보다 화질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작은 폰 살 수도 없고 참 난감.
색은 화이트 티타늄이 제일 이쁜데,
지난 5년간 실버 써서 어쩔 수 없이 탈락.
블랙 티타늄 vs. 블루 티타늄 막판 고민중.
내추럴 티타늄은 시멘트색같아서 싫다.
개인적으로 극혐하는 포르쉐 Crayon 색상같음.
애플 스토어까지 걸어갔던 건
아마 오늘 일정 중 유일하게 도보로 이동한 것인듯.
그간 미친듯이 쨍쨍하더니 오늘은 좀 흐리다.
흐려도 습하고 더운건 변함 없음.
애플 스토어 갔다가 근처에서 점심 먹으러.
오늘은 Brass Spoon이라는 쌀국수집.
이 집은 구글맵에 달린 리뷰들이 꽤 좋던데
그래서 기대를 좀 하고 갔음.
점심먹을 시간이라 웨이팅은 좀 있었고.
센트럴에서 밥 먹으려면 웨이팅 30분은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각오하는게 좋은 듯.
어제와 마찬가지로 1인이냐고 묻더니만
1인석 바로 내줘서 난 웨이팅 거의 없이
바로 먹었는데, 이 집이 이렇게 리뷰가 괜찮다고?
이 집은 내 입에는 그냥 평범하기 그지없는 맛.
묻지도 않고 기본으로 고수를 넣어서 주는것도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이건 옵션화 해야지.
고수가 향이 비교적 약해서 그냥 먹을만 했는데
안 그랬으면 클레임 걸었을 것.
여긴 우리나라에서 쌀국수집이라고 하면
어디에서든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맛이다.
이 동네에서 먹는 쌀국수집 중에 제일 낫다는데
그럼 다른 집들은 얼마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거지.
내 입맛엔 우리나라 명동의 리틀하노이란 집이
아직도 베트남 현지 맛 나는 최고의 쌀국수로 랭크되어있음.
내가 까다롭다는건 인정하지만, 받는 금액 치고
너무 평범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먹는 내내 들었고
같이 시킨 코코넛밀크 음료도 단맛이 하나도 없었음.
도슐랭가이드 별점 5점 만점에 2개.
옥토퍼스 결제기록이 날아가서
얼마 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내 기억에 이 집도 겨우 이렇게 시키고
3만5천원 넘었던걸로 기억.
충격과 공포의 홍콩 물가.
가격 감안하면 별점 하나 더 까야됨 솔직히.
점심 먹고는 Choi Hung Estate라고
포토스팟으로 유명한 곳 가볼 예정이었음.
우버 부르려다 MTR이 더 빠를 것 같아 지하철.
이번엔 처음 타보는 쓰엔 마 노선을 타게 되었는데
여긴 방문할만한 곳 중 유일하게 북동쪽에 위치해서 그럼.
이쪽 동네는 여기 말고는 딱히 가볼만한 곳이 없는듯.
그동안 스타 페리 계속 탔으니, 이번엔
센트럴역에서 지하철 타고 직통으로 침사추이역에 가서
쓰엔 마 선으로 갈아탔다 크웬 통 선으로 환승.
이름이 뭔지 모르겠는 보라색 노선 빼고는
모든 지하철 노선을 이렇게 해서 다 타보게 됨.
쓰엔 마 선은 만든지 얼마 안 됐는지
지하철 열차가 더 크고 최신식이더라.
부산 지하철에서 준 서울 지하철 정도로 승격.
Choi Hung Estate는 이름 그대로 Choi Hung 역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에
땀나기 전에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난 여기가 주차장 옥상에 위치한 농구장이란 걸 몰랐음.
이 포토스팟이 어딘지 정확하게 몰라서
애먼 아파트단지만 뺑뺑 돌았던 것.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길래
청소하던 할머니께 물어봤더니 영어 안 통함.
근데 할머니께서 손짓발짓으로 열심히 설명해주셔서
덕분에 이게 학교 코앞에 있는 곳이란걸 알았음.
벤치 위에 매고 다니던 가방을 놓고
그 위에 폰을 올려놓아서 타이머 맞추고
나 나온 사진을 찍는 쇼를 하고 있으니
지켜보던 아이가 힘들어 보였나보다.
바로 앞 학교에 다니는걸로 보이는
고등학생 정도로 추정되는 아이가
농구하다 말고 와서 사진찍어주겠다고.
근데 처음에 중국말로 물어봐서
미안 나 중국말 못해 했더니만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하기 시작함.
그 애 덕분에 사진 여러장 잘 남겼음.
여행 내내 만난 홍콩 사람들은
정말 좋은 기억 밖에 안 남았다.
모두들 친절하고 기꺼이 도와주고 좋았음.
여긴 홍콩에서 보이는 모든 색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장소라고 해야될까?
아파트는 파스텔 팔레트처럼 연한 색상의 모임이고
농구장은 진하고 깊은 색들이 집합되어 있다.
야자수까지 더해서 이국적인 분위기가 상당함.
홍콩 왔다는 분위기 내려면 여기가 최적.
Choi Hung Estate에서 여러 도움 받고
마음이 따뜻해져서는
쇼핑의 성지 홍콩의 최고 백화점
K11 뮤지아에 와봤다.
여기서 뭘 살건 아니고, 그냥 구경.
난 돈이 없기 때문에 면세점에서 사야 함.
쓰엔 마 노선이 동침사추이역을 지나서
그 곳에서 쉽게 올 수 있기 때문에 다음 목적지로.
백화점 전경이 보이는 라운지에서
브런치 먹을까 했는데,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돼
도저히 더 안 들어갈 것 같아서 스킵.
사실 가격 보고 너무 비싸서 스킵했음
침사추이역하고 연결되어있고,
브라운 위주의 인테리어를 보건대
마치 삼성역과 연결된 코엑스-인터컨티넨탈 느낌.
여의도에서 이번엔 좀 동쪽으로 와봤다.
가게 배치는 좀 정신사나웠는데
매출 확보를 위한 가게 위치, 고객 동선도
공부하는 입장이라 전공병 도짐
특이하게 디저트 집들이 2층에 위치함.
국내 백화점들은 먹을 게 2층에 있는 경우는 없지 않나?
대부분 지하에 있지.
장식이나 화려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은
역시 중화권 답다 느꼈다.
이번 편은 차 얘기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주구장창 우버를 불러대서
부를때마다 다른 차가 오기 때문에
어땠나 간략하게라도 남겨야겠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긴 근본이 자동차 블로그.
A3 스포트백 35 TDI가 왔는데
MQB를 쓴 차량은 나도 친숙하지만
A3의 뒷자리는 처음이다.
승차감은 전형적인 아우디.
아우디 특유의 납작한 충격처리가 선명함.
어제 탔던 EQA가 바닥 높이 이슈로
뒷좌석 거주성이 너무 안 좋았었는데
A3가 확실히 훨씬 편했다.
MMI 모니터 안 쓰고 스마트폰만 보는 건 의외.
이제 사진 보니 기사님이 에어팟을 끼고 있네?
이때 알았더라면 뭐라 했을건데.
마지막 날은 얼마 못 자고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해서
비용 절감 차원에서 숙소를 옮겼는데
새 숙소 앞에 또 빵집 발견.
여긴 에그타르트가 6HKD.
믿고 먹을 게 빵 밖에 없는 이 동네.
이 집이 계란 흰자맛이 좀 셌는데
나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먹을 만 했음.
사실상 에그타르트로 모자란 끼니
다 보충했지 않나 싶을 정도다.
먹고는 센트럴에서 오른쪽으로 좀 빠진 동네에
위치한 빅토리아 파크에 와 봤는데
여긴 그냥 관광객이 올 곳이 아닌 듯.
홍콩 현지 사람들 마실 나와서
여유를 즐기고 산책이나 하는 곳.
문제는 여기 왔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 떨어짐.
그럼 뭐다? 우버 불러야지.
손에 우산 없잖아.
우버 불렀더니 이번엔
이전 세대 GLA 200이 왔음.
인피니티 Q30 뱃지갈이한 차.
아까 온 아우디 말곤 계속 메르세데스-벤츠가 오는데
우버 얘네들 내가 메르세데스 좋아하는거 어찌 알고
이렇게 계속 각기 다른 메르세데스를 보낼까.
빅 브라더의 힘은 실로 무섭다.
아 여기 중국이지?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갑자기 비가 떨어짐.
센트럴로 와서는 그 실외기 물(1편 참조)
공중에다 내다버리는거 거의 안 떨어지더니
여긴 그냥 갑자기 비가 와버리네.
근데 소나기처럼 막 쏟아지진 않고
티끌만큼 좀 오다 말았음.
일기 예보도 비 온다는 언급 없고.
이번 우버 기사님은 블랙핑크를 좋아하시는 듯.
폰으로 블랙핑크 노래 모음 플레이리스트
틀어놓았는지 계속 블랙핑크 노래 나옴.
난 트와이스가 좋다고 말하려다 말았음.
목적지는 Repulse Bay.
홍콩에서 가볼만한 곳으로
많이 꼽히는 만큼 비추천도 많은 곳인데
어쨌든 가봐야 아는 거니까 출발.
우버 탑승비용으로 이번에 93HKD를 냈는데
중간에 톨게이트비가 50HKD. 엥?
그럼 난 단 돈 43HKD(7500원)에
한 30분 우버 타고 움직인거네.
우리나라 택시들 망해간다더니
반성 좀 해야될듯. 여긴 차도 메르세데스다.
Repulse Bay에 도착.
해변가 바로 앞의 아라비카 % 카페는
나 말곤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의외였다.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금요일 저녁인데?
커피 한 잔 샀는데 55HKD(9500원).
이제 이 동네의 물가라면 치가 떨린다.
손에 방금 산 커피를 들고 해변가로 나갔는데
생각보다 경치가 볼 만 했다.
막 속이 뻥 뚫리는 바닷가 이런 건 아니지만
잔잔한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기 좋은 곳.
해질녘에 일부러 맞춰서 왔는데, 잘 한 것 같다.
낮에 왔다면 아무 감흥이 없었을 것 같음.
저 멀리 섬들을 보는데 묘하게 베트남 하롱베이같은 느낌이.
근데 반대편을 보면 산 깎아서 만든 호텔들이 많다.
해운대에 호텔들 모여있는 라인인줄.
베트남과 해운대의 만남.. 이거 귀하거든요.
홍콩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
해가 완전히 수평선 뒤로 숨을때까지
차분하게 노을을 지켜보다 철수.
어제 안 갔던 바에 가서 한 잔 하려고.
Repulse Bay는 센트럴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들어와야 한다고 구글맵이 그러는데,
버스 타려고 했더니 사람이 별로 없는 와중에
땅거미가 져서 찝찝하길래
또 우버 불렀음. 에라 모르겠다
신한카드가 해결해 주겠지.
이번엔 혼다 피트가 옴. 아니 피트는 좀 너무한데.
원래 생일날(어제)을 맞이해서
한 잔 하려고 찾아놓은 곳이었는데
어제는 더위에 시달리느라 몰골이 엉망진창이라
마지막 밤인 오늘에서야 방문한 곳.
Foxglove라는 영국풍의 바.
더울 걸 일기예보를 통해
홍콩 방문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난 오로지 반바지만 들고왔는데
입장하니까 데스크의 직원들이
반바지로는 입장이 불가하단다.
격식을 좀 차리는 곳이란건 사전에 알았는데,
그 얘길 들으니까 어째야 할까 싶더라.
그러더니 긴바지 없으면 바지를 주겠단다.
??
그렇게 긴바지로 갈아입고 바 입장.
어제 완전 땀에 쩔은 몰골로 왔으면 입구컷 당할 뻔.
들어갔더니 내 전담 바텐더를 붙여주더라.
정작 내 칵테일은 다른 바텐더 한 명이 대부분 타줌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 이 바에서만 네 번 들음.
한국에서 왔다 하니 좋아하는 이유는 뭐지.
난 마티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선 마티니부터 주문해야지.
근데 이 바, 메뉴판부터 내 맘에 쏙 듬.
칵테일마다 캐리커쳐를 그려놓고
들어가는 재료나 메뉴에 영감을 준 포인트들이
하나하나 적혀있는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창고 한 구석에 숨어 있던
몇 백년 된 비밀 설계도를 찾아낸 느낌.
Vesper Martini라고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더라고.
사실 내 마티니 선호는 007의 영향이 큰데,
하필 이름도 Vesper.
카지노 로얄을 500번쯤 돌려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지.
난 마티니는 목을 세게 긁고 내려가는
목넘김을 선호하는데, 이 곳은 되게 부드러웠다.
매끈하게 넘어가서 여러 잔 마셔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느낌.
그 다음은 클래식 네그로니.
집나간 내 전담 바텐더 대신 날 전담해준
다른 바텐더가 추천해준 칵테일인데,
신상이라는 버섯 네그로니는 좀 그래서
클래식 네그로니로 주문.
네그로니는 기원이 명확하지 않은 칵테일인데,
마치 자기 기원을 아는 것 처럼
끝맛도 씁쓸하게 바스라지며 사라진다.
신기루를 마시는 기분이라고 해야되나.
마지막으로는 올드 훼션드.
던킨에서도 같은 이름의 도너츠를 팜. 미친tmi
앞서 마신 것들에 비해서는 임팩트가 약했는데
오히려 가격은 이 아이가 제일 셈.
나이를 먹었더니 이제 술을 많이 못 먹겠다.
'난 숙취 없어'라고 자신있게 떠들던 지난날의 나
좀 많이 혼나야 할 듯.
홍콩 물가가 미쳤다고 그간 계속 뭐라 했는데
이 집은 여느 호텔바와 가격 차이가 별로 없다.
국내에서도 호텔바들 대개 잔당 3만원 안팎인데
여기도 비슷해서 부담없이 마실 수 있었음.
원래 딤섬이랑 같이 먹을 생각이었는데,
칵테일만 마시는게 깔끔할 것 같아서
안주 주문을 안 했더니
800HKD(14만원) 좀 넘는 금액으로
바 수준 치고는 저렴하게 잘 마심.
나가는 길에 긴바지를 반납하고 나서니
나보고 바 어땠냐고 집요하게 직원들이 묻더라.
사실 정말 좋은 인상을 받은 곳이라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을 더 풍성하게 치장해줬다.
했더니 칭찬 고맙다며 시간 나면 구글 리뷰도 해달라고.
그래서 해줬다.
마치 좋댓구알 요청받은 기분
마지막으로 스타 페리 타면서 야경 보려고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다시 왔다.
이제 하도 지나다녀서 침사추이는 친숙해짐.
홍콩에 한동안 다시 올거같지는 않으니
제일 핵심인 야경 실컷 눈에 담으려고
첫날밤 왔던 스타의 거리로 다시 걸어옴.
지난 시간동안 힘들고 안 맞다고 말한 게
막상 또 떠나려니까 너무 불평했나 싶더라.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처음 봤을때보다 이 야경이 더 멋져보임.
나이 먹어서 술에 약해진 내 몸이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대서 편의점행.
이 동네 편의점은 세븐일레븐 뿐이라
특별히 다른 매장을 찾을 필요가 없다.
킷캣 바 하나 집어들었는데 와,
여기 와서 먹은 것 중
에그타르트 다음으로 제일 맛있었다.
아이스크림 먹으니까 갑자기 입이 심심하네.
침사추이 선착장은 바로 앞에 맥도날드가 있다.
시내를 걸어다니며 그렇게 많이 본 맥도날드에
뭘 팔까 싶어서 한 번 들어가봤는데
여긴 샐러드 볼도 파네.
그 외의 메뉴는 닭다리 빼곤 국내와 대동소이했다.
하와이 맥도날드는 쌀밥에 스팸을 팔더니
나라 별 맥도날드 가보는 것도 은근 재밌음.
아니 근데 얘네들 주문번호표에 중국말만 써있어서
내가 뭘 주문했는지 맞게 시킨건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오리지널 닭다리랑 BBQ 닭다리
두 가지를 시켰는데 둘 다 그닥이었음.
오리지널은 튀긴거고 BBQ는 구운거였는데
구운거는 정말 그닥.
BBQ는 대한민국이 최고. 황금올리브 땡김.
다 먹고 나와서
침사추이 선착장 앞에 젊은이 셋이
버스킹처럼 기타치며 노래부르길래
분위기 좋다고, 잘 듣고있는데
뜬금없이 공안이 오더니
얘네들한테 가서 노래 부르는거 막더라.
시진핑 욕하는 노래라도 불렀나?
무슨 이유로 막는진 모르겠지만 아쉽.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듯
주변에 버스킹 보고 있던 사람들도
아쉽다는 분위기로 하나 둘 씩 흩어지더라.
이제 정말 숙소로 돌아갈 시간.
MTR 타고 올라가서 좀 걸어 들어가면 되는데
마치 곧 우버 VIP가 되려는 듯 또 우버 부름.
이번엔 렉서스 CT200h가 왔음.
평소에 궁금했던 차량이라 횡재함.
고급 프리우스라고 자주 까이는 차량인데
막상 타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더라.
프리우스는 타보질 않아서 비교는 안 되지만.
렉서스 뱃지값 할 정도의 차는 된다.
어차피 새벽 5시 정도엔 준비하고 나서야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시 우버 콜.
이번엔 마쯔다6가 왔다.
마쯔다 차량은 탈때마다 느끼지만
일본의 BMW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회사가 아님.
근데 대시보드에 아이언맨 피규어가
몇 개인지 모르게 왕창 붙어있었음.
나도 아이언맨 초창기엔 되게 좋아했어서 좋았다.
근데 이거 전면충돌 사고나면 큰일날텐데
우버를 타고 첫날 내렸던 칭이역으로 돌아왔다.
공항 급행철도 첫 차가 칭이역엔 6시 5분에 지나감.
홍콩역에서부터 출발해서 오기 때문에
여분 자리가 그리 많진 않다.
정신차리고 후다닥 앉아야 자리 사수 가능.
급행철도 타고 공항으로 가며 창 밖을 보는데
3박 4일간의 일정이 꿈같이 지나감.
공항에 도착하니 6시 40분쯤 됨.
8시 15분 비행기라 서둘러야 한다.
평소처럼 아시아나 탔으면
사전 체크인 해서 미리 좌석 배정 받아
바로 탑승장으로 들어갔을 텐데,
중국 항공사라 그냥 손 놓고 있다가
공항에서 체크인할 예정이었기에
후다닥 체크인하는 줄부터 찾아서 섬.
중국 항공사라 특별히 다른 건 없었으나
생각보다 체크인 줄이 길어서 시간이 꽤 걸림.
마지막으로 목이 타서 공항 세븐일레븐에서
사전에 계획한 대로 옥토퍼스 카드 잔액을 다 털었다.
커피랑 파인애플빵 사먹었는데
빵은 맛있었고 커피는 맛 없었음.
이 동네는 그냥 거대한 빵 공장이나 다름없는듯.
0.1HKD만 남은 채로
잔액 싹 털고 처음 구입 시 잡힌
보증금 50HKD를 돌려받으러
처음 옥토퍼스 카드를 발급받은 공항철도 안내소에 왔다.
줄 서서 기다린 끝에 환불해달라고 했더니
내가 애플페이에 이 카드를 등록했다고
온라인으로 환불 신청 해야한단다.
현장에서는 보증금 반환 불가.
우이씨.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냥 알았다 하고 왔는데 내 9천원..
홍콩여행 팁.
애플페이에 옥토퍼스 카드 등록하면
무진장 편하지만 추후에 보증금 반환 불가함.
탑승구 번호가 513번이라고 함.
513번이요?? 인천공항도 200번대가 끝인데?
공항 사이즈는 아담하더니
탑승 게이트 갯수는 무진장 많은건가?
하면서 출국장 걸어들어오니
뜬금없이 갑자기 500번대로 번호가 튄다.
희한한 공항일세.
뭐가 늦어졌는지 탑승이
10분 정도 밀렸는데, 기다림 끝에 탑승.
난 세 자리가 붙어있는 곳 중
복도쪽 자리에 앉아있는데,
가운데 자리는 비고
창가쪽 자리에 앉은 사람이
여권을 보니 한국 사람이다.
이야기해보니 울산 사람임 ㅋㅋ
피곤해서 비행기 타자마자 잘 줄 알았는데
이 사람과 이야기하느라 한참 이따 잠.
역시 타지에서 한국사람 만나면
한국인의 정 자연스럽게 발동.
이렇게 인생에 살면서
혼자로는 처음 나와본 해외여행
홍콩 여행 끝.
두번째 날엔 정말 힘들었는데
세번째 날엔 카드 팍팍 긁으니 한결 낫네.
가 있으면서 모든 순간이 순탄하진 않았지만
기억들을 되살려서 이렇게 글로 옮겨보니
생각보다 알차게 잘 놀았다.
이번 여행도 평생 가지고 갈 기억 속의 단편으로
내 마음 속에 앞으로 쭉 살아숨쉴 듯.
애플스토어 내 사진을 제외한
이 여행기의 모든 사진은
아이폰14프로맥스로 촬영됨.
컴퓨터로 옮겼는데도 사진 품질이
예상보다 훨씬 좋아서 깜짝 놀람.
#ShotOniPh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