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맞이해서 뭘 할까
어디다가 돈을 펑펑 낭비할까
고민하던 차에, 문득 해외여행이 생각났다.
신분상 10년짜리 여권이 아직 안 나오는 시점이라,
10년짜리랑 얼마 차이 안나는 금액을 주고
겨우 5년짜리 여권을 발급받기 아까워서
해외 출국은 나중에 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신 여권이 출시하면서 구 여권 떨이를 한단다.
그것도 단 돈 1만 5천원에.
안 할 이유가 없지 그러면.
커피 두 잔 안 마시면 남는 금액인데
이래놓고 커피는 그대로 계속 마심
생각난 김에 바로 여권 갱신하러 시청 방문.
여권도 갱신했고, 이제 어디로 도망갈지 정해야겠지.
사실 도쿄에 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일본행 비행기표의 가격이 최근 미쳐날뛰는 탓에
일정을 조정하다 보니 11월로 밀려버렸다.
생일이라고 해외로 나가려던 최초의 계획과는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원래 인생이 계획대로 안 되지 암.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9월에도 나가고 11월에도 나가기.
저렴한 곳 찾아 이번달엔 싸게 잘 다녀오자!
다들 알겠지만 나랑 '저렴하게'라는 단어는 완전 상극이라
안 될걸 알았지만 일단 비행기표가 싼 곳을 찾아 나섰는데
베트남과 홍콩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다.
언젠가 베트남에 가서 중고 오토바이를 타고
남북횡단을 하겠노란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혹하긴 했지만, 뭔가 안 내켜서 탈락.
그래서 남은 것이 바로 홍콩.
그럼 뭐다? 일단 비행기표 결제하고 생각해야지.
지금까지 외국 나가면서 단 한번도
뒷 일부터 우선 생각하고 계획한 적 없고,
항상 비행기표 결제부터 저지르는
정말 나다운 의사결정법에 의해
홍콩으로 여행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홍콩행과 일본행 비행기표 두 장
동시에 끊어버림.
난 허가를 받아야 나갈 수 있는 입장인데
어차피 두 번 해외 나갈 거 확정되었으니
한 번에 일 처리해버리는게 좋지 않나
싶어서 9월과 11월에 출국할거라고
동시에 제출했는데 전화가 왔다.
혹시 두 번째 서류 잘못 넣은거냐고,
출국 허가요청서는 한 번에 하나만 된다고.
하기사 누가 이걸 두 장을 동시에 넣겠어.
병무청 직원도 당황했으리라 생각한다.
?? : 아니요 두 번 다 출국하는거 맞는데요
암튼 둘 다 나갈거라고 했더니만
11월에 나갈 서류는 홍콩에 다녀와서 내야한다네.
처음에 잘못 넣은거냐 전화온 걸 보니
이렇게 한 방에 두 장 넣은 사례가 지금까진 없었나보다.
나는야 무엇을 하든 최초.
! 미필 여러분들께 드리는 꿀팁 !
해외여행 허가서류는 한 번에 하나만 가능합니다.
이걸 8월 초에 다 결정했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흘러
금방 출국을 코앞에 두게 되었고
나는 귀찮았던 나머지 웬일로
여행 계획이란걸 전혀 짜지 않고 버텼다.
사실 너무너무 귀찮았다.
맨날 출근하는 삶이란...
하와이 여행기 보면 알겠지만
원래같았으면 아주 철두철미하게
파워 J스러운 여행 플랜이 이미 있어야 되는 상황인데.
(P입니다)
결국 개학 하루 앞두고
밀린 방학숙제를 해치우듯
간신히 계획도 짜고 짐도 챙기고
가까스로 출국 준비 끝.
출국 당일.
하필 비가 왔다.
그렇다고 홍콩 현지는 쨍쨍하다는데
우산을 들고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다버리자니 요즘 짠돌이가 되어
싸구려 3천원짜리 우산이어도 버리긴 좀 아까웠다.
가까스로 비를 피해 비 안 맞고 공항 도착.
그동안 늘 기내면세점에서만 쇼핑했었어서
사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공항에서 픽업하는건
처음 해봐서 그런지 얼탔었는데
덕분에 라스트 콜 할때 간신히 비행기에 탔다.
중국 항공사라 맘 속으로는 안 내켰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저가항공사 치고 좌석도 그리 좁지 않았고
난 비행기 타서 자면 그만인 사람이라
돈 덜 들이고 어디 나가기 양호한 수준이었다.
생수를 한 병 주던데
수원지가 티베트인가보다.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이 동네는 물맛이 이상하다는걸...
사먹는 생수나 식당에서 주는 물이나
물맛이 영 시원찮고 씁쓸한 맛이 났다.
? 물 맛이 왜 이러지 ? 하고
반만 먹고 버렸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물맛이 이상한것도 이상한건데
물이 잘 없다. 죄다 차를 마시다보니.
난 시원한 삼다수가 먹고싶은데...
이상한 맛의 물 혹은 음료수
중에 골라야하는 입장이라 참 난감했다.
물이 잘 없단 거 사전에 미리 알고 갔지만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줄 거라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지.
난 그동안 로밍만 해왔어서
현지 e심을 등록해서 듀얼심으로 쓰는건 처음.
이게 현지심이 처음이어서인지
중화권이 처음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홍콩 도착하자마자 바로 데이터가 활성화될 줄 알았는데
LTE 주파수는 잡힘에도 인터넷 연결이 계속 안 됐다.
알고보니 차이나모바일 측에 사전 등록이 필요했던 것.
공항 와이파이에 접속하고 난리를 쳤었는데
e심 판매처에서 보내준 설명서에 다 적혀있었다.
메뉴얼 정독의 중요성.
가까스로 입국장을 나서고,
홍콩 내에서 현금만 받는 곳을 제외하면
사실상 만능에 가까운 옥토퍼스 카드를 발급받으러.
공항 직원한테 어디서 발급받느냐 물어봤는데
그.. 생각보다 공항 직원이 영어를 잘 못하더라.
그리고 발음도 동남아 국가에서나 볼법한 그런 류.
이것도 이때 알았어야 했다.
홍콩이 생각보다 영어가 잘 안 통하는 곳이란걸.
홍콩을 다니는 3박 4일동안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미안 나 중국말 못해"
단연 이거였지 싶다.
난 홍콩이어서 당연히 영어가 어느정도
될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단 걸 이번에 깨달음.
젊은 사람들이나 부유층은 영어를 꽤 하는데,
나이 든 사람들이나 '로컬 맛집' 이란 델 가면
얄짤 없이 영어가 전혀 안 먹혔다.
난 중국말은 못하니까. 심지어 여긴 표준어도 아니고 광둥어.
예전에 오키나와 갔을때 느꼈던 답답함을
또 느낄줄은 전혀 몰랐었는데.. 그랬다.
특이하게 공항철도는 마치 공짜인 양
게이트 같은게 없는데, 공항에서 탑승하는건 자유.
내릴 때 돈을 내게 되어있다.
나는 사전에 바우처를 구입해서
왕복 티켓이 있으니 그걸로 찍고 내렸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세다. 사전 구매 필수.
우리나라같으면 공항 급행철도라고 해서
일반 지하철 요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여긴 하차역별로 금액이 다르고
난 내 숙소 위치상 첫 번째 역(칭이역)에서 내려
그나마 좀 저렴했던 편. 왕복에 15200원 냈네.
맨 끝인 홍콩역까지의 왕복 티켓은 무려 4만원이다.
한국사람인 나로서는 기절할만한 액수.
옥토퍼스 카드는 교통카드 뿐만 아니라
일반 소매점에서도 신용카드 대신 쓸 수 있어
공항철도 탑승장에서 바로 발급받았다.
첫 구매 시에는 200HKD가 필요하고,
그 중 50HKD는 보증금. 귀국 시 반납하면
보증금은 반환해주게 되어있으나....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200HKD면 대충 3만4천원 정도.
이후에도 100HKD 단위로 충전 가능한데
생각보다 금액이 빨리 소진되는 기분이다.
이걸로 오만 걸 다 사먹고 써먹을 수 있어서 그런가.
난 이게 애플페이에 등록된단 이야기를 듣고
발급받자마자 등록했는데,
카드 위에 아이폰을 올려놓기만 하면
좀 기다리면 등록이 된다.
워.. 세상 좋아졌네.
이제 결제할때마다 아이폰을 옥토퍼스 결제위치에
갖다대기만 하면 칼같이 순식간에 결제된다.
내 돈이 사라지는 속도도 순식간.
칭이역에서 내려 일반 지하철 노선으로 갈아타야
숙소로 갈 수 있어서 내렸다.
지하철의 모습은 대한민국하고 그냥 똑같다.
환승 통로에 가게들이 있고,
퇴근 시간대(현지시간 6시)되니 미어 터진다.
앞서 말했듯이 물이 별로 없는데
목이 말라서 지나가다 보이는 버블티 집에
무지성으로 일단 들어가고 봤다.
이땐 가격을 생각 안 하고 그냥 긁었는데
돌아와서 계산해보니 이 동네의 물가는.. 미쳤다.
평소에 내가 버블티를 사먹지 않기 때문에
공차 이런 곳의 가격은 잘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버블티가
9천원씩 하지는 않지 않나?
금가루를 뿌린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버블티다.
국내에서는 지하철에 음료수를 들고 타도
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방금 산 버블티를 들고 지하철에 탔다.
근데 지하철 내부에서 음료 마시는거 금지란다.
사복경찰도 많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받고
바로 입에서 음료수 뗐음.
나중에 보니까 전광판에 수시로
유료 구역(아마 카드 찍고 게이트 들어온 후를 말하는 듯)에선
음식이나 음료수 먹는거 금지라는 안내를 하더라.
공항철도 -> 텅 청 선 -> 쓰엔 완 선으로
두 번 갈아타서 숙소 앞에 내렸다.
얘네들은 우리나라처럼 노선별로 숫자를 붙이는 게 아니라
각자 이름이 붙어있는데, 3일차쯤 되니 다 외워지더라.
노선이 별로 많지 않지만 처음엔 좀 헷갈림.
내 숙소는 라이치 콕 역에서 좀 걸어가야 있는데,
사실 홍콩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자주 묵는 동네는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번 여행의 핵심은 비용 쳐내기.
홍콩의 경우 땅덩이가 워낙 좁아 땅값이 비싸서
호텔 숙박비들이 다들 상당히 세다.
제일 큰 지출들인 비행기, 숙소, 이동수단
이 셋 중 비행기는 싸게 처치했고
이동수단은 이 동네에서 운전이 불가하기 때문에
저렴한 대중교통만 타고(다닐 계획이었으나....),
남은 건 숙소. 숙박비 절감을 위해 약간 위쪽 동네에 잡았다.
동네 자체는 그냥저냥 무난한 곳이었는데,
자정즈음 돼서 모든 가게가 문을 닫으니
호텔로 걸어서 들어갈 때 너무 조용해서 조금 무섭더라.
자취하면서 꼭두새벽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젊은 날의 나는 어디로 가고 이제 겁만 많아짐.
숙소로 걸어들어가는데
건물들이 많이들 낡아서 1차로 놀라고
생각보다 고가의 차량들이 많이 다녀서 2차로 놀람.
난 이 동네가 (마찬가지로 땅이 좁아서) 자동차에
부과하는 세금이 높다보니 다들 저렴하고 작은 차 위주로
다들 타고다닐 줄 알았더니 웬걸. 국내보다 더하다.
숙소에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 먹으러 나섰다.
돈 절약이 테마인 여행인지라
지하철을 냅두고 걸어가보려고.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나는
어지간해선 걸어다니고,
걸어서 못가는 곳은 차로 다녀서
대중교통과는 전혀 친하지 않은 인물.
걸어다니면서 새로운 동네 둘러보기도 하고자
정해놓은 식당까지 1.8km을 걸어갔는데
난 9월 말이라 아무리 더운 동네여도
더위가 한 풀 꺾여있을 줄 알았으나...
여긴 밤에도 27도 막 이렇더라.
바닷가 동네라 습도도 매우 높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한여름 날씨.
1.8km면 대충 15분이면 걸어가는데,
그 시간동안 완전 땀 범벅이 됐다.
워낙 내가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긴 하지만
진짜 이 동네의 더위는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아니 9월 말에 이러면 7월말 8월초에는
도대체 어떻다는 거야?
이 동네는 횡단보도가 없는 건널목마다
차 오는 방향을 보라고
아주 친절하게 바닥에 적혀 있다.
홍콩은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 차량들이 우핸들 / 좌측 통행.
처음에 갔더니 헷갈렸는데
바닥에 매번 적혀있어서 좋았다.
사전에 계획한 대로
홍콩에서의 첫 끼는 스테이크.
전혀 홍콩스럽지 않은 메뉴.
생각해보니 해외 나갈때마다 첫날밤엔 꼭 스테이크 먹었네?
하와이 갔을때도, 오키나와 갔을때도, 그리고 이번에도.
돈 아낀다면서 스테이크;
무슨 식당 갈까 사전에 찾아볼 때
내가 필터링한 조건은 구글맵 평점 4점 이상.
그리고 식당에 딸린 리뷰들을 많이 참고했다.
먼저 선발대 역할 해주신 한국 분들의 후기랑
영어로 남아있는 후기 위주로 찾아보았고
이 집은 동네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고기 먹으러 오는 곳이라는 후기를 믿고 방문했다.
실제로 고기 퀄리티는 좋은 편이었는데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특히 이 동네 물가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
300g짜리 고깃덩이 썰고 음료수 하나 시켰더니
163HKD(약 2만7천원).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 가성비 스테이크집은
아직까지 본 바가 없다.
스테이크집 한 번 갔다 하면 20만원 안팎이 나오던
종전과는 다르게 정말 싸고 괜찮은 고기 잘 먹은 듯.
국내에서는 내가 백종원 씨 레시피 참고도 많이 하고
그분이 다녀가며 좋은 평 나온 집들이 믿고 먹을 만 하지만
의외로 백종원 씨가 홍콩 맛집이라며 추천해놓은 집들,
특히 유튜브에 많이 남아있는 그런 영상들에
출연한 집들은 의아하게 구글맵 평점이 다 안 좋았다.
나중에 나올 싱 흥 유엔 이라는 토마토라면 집 이외엔
그래서 과감하게 백종원 씨 픽인 음식점은 다 쳐냈다.
그 집 이외엔 평점이 4점을 넘기는 집이 없었다.
계산하는데 사장님이 나보고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라.
외국에서조차 감출 수 없는 조선사람 포스
맞다고 했더니 '감사합니다' 하시더라.
한국 사람들 꽤 오는 가게인가
어디서 배우셨는지 모르겠지만
'안녕하세요'랑 '감사합니다' 꽤 잘 하심.
사장님 귀여웠음 ㅋㅋ
저녁 먹고서는 침사추이까지
6km 가량 걸어가보는게 정해진 일정이었는데
그나마 밤이어서 할만했지 낮이었으면
더워서 기절했지 않을까 싶다.
걸어가는 중간에 몽콕 야시장도 방문하고.
난 막 시끌벅적하고 활력 넘치는 그런 시장을 생각했는데
우한폐렴이 지나간 이후로 다 죽은 명동 상권 생각나게
그냥 평범한 동네 노점들이 모인 곳이었다.
홍콩 다녀왔다는 기념품 좀 사두려고 했는데
딱히 살만한 것도 없고 그냥 그랬다.
확실히 홍콩 섬이 아닌 위쪽은 쇼핑하는 동네라더니
그렇게 막 볼거리나 먹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사방에서 그리고 중국어가 들리고
간판도 전부 중국어라
괜히 조금 무서운 거 있지.
사실은 홍콩에 머무르는 기간 내내
만나고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 뿐이었는데,
이때는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낯선 곳이라 조금 걱정했던 것 같다.
엄마 나 집에 가고싶어
6km 걸어가는데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필요하다보니까
길을 가는데 뭔가 단 게 땡겼다.
사실 낯선 동네에 적응하느라 기가 빨려서 그런 듯.
이 동네는 맥도날드가 엄청나게 많던데,
거의 서울에 스타벅스 보이는 것 처럼
한 블럭마다 다른 맥도날드가 있었다.
역시 안전빵은 맥도날드지
하면서 딸기맛 맥플러리를 샀는데
"와.... 이 동네는 맥도날드마저 맛이 없냐"
말로 내뱉을만큼 맛이 희한했다.
분명 딸기맛은 맞는데 굉장히 신 딸기맛.
상한 딸기만 골라서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었나
물 맛도 이상한데 아이스크림 맛도 희한했다.
결국 이것도 반만 먹고 버림.
킷캣도 우리나라꺼보다 덜 단 느낌.
난 단게 땡겨서 이거 산건데?
이 동네는 이상하게
길을 걸어가는데 자꾸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더라.
난 처음에 비가 오려고 하나? 일기예보는 맑음인데
습한 동네라 소나기가 내리는건가?
도대체 이 물의 정체가 뭐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건물들이 에어컨 실외기 물을
그냥 공중으로 내다버리는 것 이었다. 문화충격.
(또!)땅이 좁은데 건물을 지어올리다보니
이걸 처리할만한 시설과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그냥 길바닥에 내다버리기로 했나보다.
고층에서도 바깥에 장착된 에어컨 실외기가
그대로 공중으로 물을 흘려보내고
그게 길 가는데 떨어지는 거였다.
할 말을 잃음.
처음에는 계속 맞고 다녔는데
며칠 다녀보니 길을 가면서
유독 젖어있는 곳이 있더라. 그런 곳만
피해서 다니니까 안 맞고 다닐 만 했다.
그거 맞고 실명된 사람도 있다 해서
겁을 좀 먹었었는데, 몇 번 눈에 맞았는데도
아직 내 시력이 멀쩡한 걸 보니
다행이라고 해야 될 지.
침사추이에 다다르니
명품 매장들이 줄을 이었고
더 고가인 차량들이 많이 다니는 걸 보니
부자동네에 온 게 실감이 났다.
구룡 공원에도 원래 가볼 예정이었는데
마약쟁이들이 밤시간 되면 많고
여러모로 위험한 곳이라 가지 말래서
근처만 구경하고 스타의 거리까지 쭉 왔다.
홍콩 하면 생각나는 야경이 보이는 곳.
내 머릿 속의 홍콩은
육각형 모양의 중국 중앙은행타워가 빛나는 곳이었는데
이 건물 외벽의 조명은 영업시간 내에만 점등된단다.
나는 자정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 가서
조명이 꺼진 상태를 봐서 약간 아쉬웠는데
어차피 또 보면 되니까.
스타의 거리 끝단에는 시계탑도 있는데
내가 하와이 가서 본 알로하 타워랑
미심쩍을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이 글의 첫 번째 사진이 바로
침사추이에서 홍콩 섬을 쭉 바라보는 야경.
아마 홍콩 야경이라고 하면 제일 익숙한
바로 그 모습일 거다.
웃기게도 동네가 좁아서 그런지
눈에 보이는 특이한 차들이 돌아다니는게
계속 반복적으로 눈에 보이더라.
길을 걸어다니다 본 새 차 같은 컨디션의
SLK 55 AMG(R171)가 멋져서 한 장 남겼는데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길가에 대더니
만두 가게에 만두 사러 가더라.
쭉 걸어서 내려왔는데 어딘가로 가던 이 차가 또 보임.
아 나도 R171 SLK 55 갖고싶은데. 부럽다.
호텔로 돌아와서 커튼을 걷어보니
난 처음에 저게 병원 건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학교였다.
홍콩 치고 말도 안 되게 싼 값에 예약한 숙소인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아서 놀랐고
학교 뷰는.. 뭐 이 정도면 양반이지.
9시에 일어나보니 애들이 수업듣는게 보이던데
걔들도 내가 커튼 열어놓고 자는게 보였을라나.
난 홍콩 와서 생각보다 한 게 없어서
글 하나로 다 써질 줄 알았더니
사진이 많아서 그런건지
생각보다 한 게 아주 없진 않아서 그런지
도착한 첫날까지만 적었는데 이 정도네.
그 뒤의 일정은 2편에서 다뤄야겠다.
생각 없이 무지성으로 해외도피한
홍콩여행의 첫날밤은 이렇게 끝.
혼자서 해외 나와본건 이번이 처음인데
역시 사람은... 생각이란걸 하고 살아야
인생이 원활하게 흘러가는 듯.
생각 없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결정하고 실행하면
재밌긴 하지만 후회합니다.
다음 날은 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