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전기차가 어느정도 보급된
현 상황에서 맞이하는 첫 경형 전기차
레이 EV가 출시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차가 싫다.
사사로운 감정은 늘 빼고
차량을 열린 마음으로 운전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항상 애쓰지만
난 레이가 정말 싫고, 이건 더 싫다.
하지만 리뷰는 최대한 내 감정은 빼고
솔직하게 느낀 대로 적을 거다.
부정적인 말이 많아도
그건 이 차가 레이인 탓임.
레이 EV는 얼마 전에 출시된
완전 최신 차량이다.
그동안 전기차라고 하면 일정 수준 이상
차 사이즈가 되는 차량들 위주로 출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전기차는 배터리 용량이 중요해
차량의 사이즈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배터리를 탑재할만한 공간 역시
마찬가지로 크게 줄어들기 때문.
오늘날 쓸만한 전기차의 지표로 알려진
'주행거리 400km'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전기차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의외로 이와 상관없이 혼자 노는 차량들이
하나 둘 씩 등장하고 있다.
미니 일렉트릭이 첫 번째로 그런 차량으로서
대한민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었는데
미니 쿠퍼라는 차량 특성상
여성 오너들이 많고, 승차감이나 조향감 등
차량의 주행 관련 특성들이 단단하고 묵직해
장거리 주행이 잘 없기 때문에
상식을 깨고 아예 처음부터
작디 작은 배터리 용량을 탑재해 출시했다.
인터넷에서는 많은 욕을 먹었지만,
큰 프로모션 덕분에 판매량은 꽤나 순항하는 듯.
스텔란티스 그룹 내의 차량들이
비슷한 컨셉으로 차량을 출시하고 있지만
사실 푸조나 이들은 국내에서 존재감이
너무나도 미미하므로, 그냥 넘어가겠다.
레이 EV는 이런 시장의 두 번째 본격적인 모델.
국산차면서, 경차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사실 경차 혜택과 전기차 혜택은 얼추 비슷해서
톨게이트비 반값이나 공영주차장 주차비 반값,
저렴한 자동차세 등 혜택들이 겹치는게 많아
생각만큼의 메리트가 안 와닿을수도 있는데,
레이 EV는 전기차로서의 장점이
부각되는 차량이기보다는
레이가 가졌던 단점을 없애버리는,
그러면서 레이의 강점은 유지한 차량으로 봐야 한다.
그럼 이 '대놓고 도심형 전기차'는 과연
도시에서 타고다닐 만 한가?
우선은 제원부터.
레이 EV는 최고출력 87마력,
최대토크 15kg·m.
지금은 레이 터보가 단종된 지 오래라
자연흡기 레이밖에 없는데, 예전에 아주 잠깐 몰아보니
정말 숨막히게 느리고 답답하더라.
나 어지간해선 차 가속력 답답하다 잘 안 하는데
이런 차를 도대체 어떻게 끌고다니나 싶을 정도였음.
레이 EV는 출력은 12마력만 추가됐지만,
최대 토크가 50% 이상 늘었고
전기차인지라 그 최대토크가 거의 상시 발현된다.
레이의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숨 넘어가기 직전인 가속력이 해결됐다.
엔진이 없어진 전기차는
다양한 엔진들이 주던 개성넘치는 회전 질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모터도 회전체이니만큼 회전 질감이 있다.
현대차그룹 내에선 제네시스 차종들이 확실히
모터 회전질감이 화사하고, 테슬라는 찐득한 맛이 있으며
메르세데스-벤츠는 캐시미어같이 부드럽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진짜임.
레이 EV의 모터 회전질감은 그냥 양호한 수준.
어쨌든 배터리나 모터 사양이 상위 차종보다
낮기 때문에 그들만큼 회전질감이 좋진 않다.
전기차를 끌면서 이런 걸 얼마나 신경쓰겠냐마는
다들 신경 안 쓰니까 내 시승기엔 짚고 넘어가는 것.
가속력은 이제 부족함이 전혀 없다.
레이 EV의 토크는 단종된 레이 터보(14kg·m)보다도
약간 더 높은 수준이라 이만하면 훌륭함.
레이 터보는 변속기가 CVT라
자동 4단인 자연흡기 모델보단 훨 낫지만
문제는 걔는 터보 엔진으로 이런 힘을 내는데
998cc라는 배기량은 터보에 제 때
충분한 배기가스를 밀어넣기 너무 작다.
1600cc급 차량들도 못해도 3000rpm 이상 올려야
터보에 어느 정도 배기가스가 넉넉히 들어가
비교적 적은 딜레이로 최대 토크를 뿜어냄.
1리터도 안 되는 배기량의 경차들은 어떻겠어.
레이 터보도 엔진 회전수를 마찬가지로 높여 써야
충분히 터보를 돌릴 수 있기에,
레이 EV가 실 주행 시 가속력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월등하다.
이게 레이 EV의 최대출력이 레이 터보보다
낮다고 아쉬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
레이 EV는 1rpm부터 최대 토크 뻥뻥.
실제로 타고다니면서 125km/h 선까지는
별 무리없이 무난하게 가속되어서
타고다니면서 답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음.
전기차의 특징 중 하나는
회생 제동을 통해 주행 중 다시 전력을
어느 정도 회수하면서 다닐 수 있다는 점.
레이 EV 역시 여느 현대차그룹 내 전기차들처럼
총 4단계로 회생제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난 회생제동을 주로 끄고 다니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제동 걸 때만
회생제동이 걸리는 걸 선호하는데
레이 EV도 딱 이렇게 타고다니는게 좋다.
왜냐면 레이 EV는 회생 제동이 최대한 세게 해도
우리가 익숙한 여느 전기차들보다 약하거든.
난 처음엔 그 이유가 배터리 사양이
삼원계가 아닌 인산철이고
저렴한 물건이어서 그렇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맞긴 하다만 타고다녀 보니
회생제동이 지금보다 더 세게 걸리면
차가 앞이나 옆으로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레이 EV는 전륜 구동 차량이기 때문에
앞 바퀴에 회생 제동이 걸리게 되는데
이렇게 작으면서 높기만 한 차가
달리고 있는 와중에 앞바퀴만 세게 붙잡는다 생각해보라.
애기가 집어던진 장난감마냥
앞으로 고꾸라질듯한 불안감이 들게 된다.
이건 구조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 사실
해결책이 없긴 한데, 불안한 것도 사실임.
아! 해결책이 있다. 이런 차를 사지 않는 것이다.
도심에서 주로 쓰는 속도 영역에서조차
회생 제동으로만 차를 세우려고 하면
뒤가 흔들리려고 해서 불쾌했는데,
이게 80-90km/h 정도로 주행하는 간선도로에서
잘 다니다 갑자기 전방 정체를 만나
회생제동으로 세우는 과정에서
차량의 뒷꽁무니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이런 지극히 평범한 주행 상황에서
VDC가 너무 많이 개입한다는 것이었다.
80km/h로 직진주행하다가 서는데
자세제어장치가 막 개입하는 차
요즘세상에 있었던가? 난 처음 타본다.
레이 EV는 생김새 때문에 이럴 수 밖에 없지만,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사실 정말 싫다.
도심형 전기차인데 속도를 별로 안 내는
도시에서조차 차량의 안정성이 꽤 떨어진다.
섀시의 문제라기보단 차량의 원전적인 구조와
전기차라는 점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불편함.
전기차여서 이제 맘대로 밟고다녀도 되는데,
맘대로 다니는 동안 더 불안해졌다.
다만 하부에 배터리가 위치해있기 때문에
차량 전체가 휘청대는 느낌은 많이 억제됨.
불안감을 없애려면 초저속으로 기어다녀야 함.
아 그래서 길거리의 레이들이.......
실내는 짚고 굳이 넘어가야 할 이유가
별로 없는 그냥 레이 그 자체이다.
내 선호에는 눈곱만큼도 들어맞지 않는 물건.
난 실내에 가죽을 도배하고, 고급 소재와
첨단 기술을 발라놓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시트 포지션만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이거 SUV도 아닌데 SUV보다도
최저 시트포지션이 너무나도 높다.
트럭이나 다름 없이 올라타는 느낌인데,
키가 작은 여성분들도 많이 타는 차량이라 그런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트가 높음.
이럴거면 그냥 SUV로 만들어라.
아, 경차 규격에 전고도 제한이 있어서
SUV화하면 이만큼의 실내공간이 안 나오겠네.
나온다고 소문이 무성한
캐스퍼 EV가 출시한다면 확실히 괜찮겠다.
전기차답게 오디오도 들어줄만 하다.
레이의 오디오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전기차다운 출력감 덕분에
캐스퍼보다는 훨씬 들어줄만한 소리 남.
다만 각 음역대의 분리 및 해상력은 부족함.
승차감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
레이는 기반이 구형 플랫폼에
아주 사골처럼 우리고 우린,
이제 뼈도 안 남았겠다 싶을 정도의 고물인데
주행 성능 같은거에 별 관심이 없는 차량이라
서스펜션 자체는 부드럽게 설정되어 있는데
생각보다는 댐핑 스트로크가 짧더라고.
다만 경차라 휠하우스가 작아서
휠도 작고, 결과적으로 바퀴 외경이 작아서
큰 요철을 만나면 차가 다소 허둥댄다.
타이어는 무려 175/60R14.
14인치 휠 낀 차 나 몇 년만에 타보는건지.
순정 타이어는 금호 솔루스 TA51이라
경차 차급치고는 나쁘지 않은 물건인데
사이즈가 사이즈인지라 빈약하다.
배터리 용량이 작은 와중에 최대한
주행가능거리를 일단 뽑아야 하니
이렇게 타이어 사이즈를 정했겠지.
TA51이면 더 뉴 셀토스의 TA31보다도 나은 것.
어쨌든 대부분 이 차가 도심에서 다닐 것이니
부드럽게 노면 위를 굴러다니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순하게 부드럽다.
서스펜션이 정교하다거나
짜임새있게 개발했단 느낌은 아님.
이만하면 됐다 하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은 되니까
이만하면 됐다.
배터리 용량이 작은 전기차가 출시되면
모두들 일단 주행가능거리부터 걱정한다.
레이 EV의 배터리 용량은 35.2kWh.
환경부 인증 주행가능거리는 205km이다.
난 박스형 경차라 생김새 때문에
공기저항을 많이 받아 내가 운전해도
평균 전비 대충 6km/kWh 정도 기록할 줄 알았다.
그런데 타고다녀보니 내 예상보다 전비가
훨씬 잘 나와서 다소 놀랄정도였음.
와인딩도 좀 돌고 왔는데 전체 평균전비
8km/kWh를 기록했다.
시내 비중 그리 높지 않고, 간선도로와 고속도로
그리고 시골길과 와인딩이 복합적으로
섞인 코스였음에도 이 정도였으니
전비운전만 줄창 했으면 9km/kWh도 넘겼을 듯.
대충 실 사용용량이 32kWh,
여기서 10~90% 사이를 쓴다 치면
8km/kWh 기준 주행가능거리 204.8km.
환경부 인증과 정확하게 딱 맞아 떨어진다.
물론 레이 타는 인간들이 나만큼
악셀링을 세밀하게 조절할 리가 없어서
이걸 타고다니는 실 오너들은
주행가능거리가 100km대로 떨어질건데
전력효율은 일단 기대이상.
다만 배터리가 인산철(LFP)이기때문에
겨울철에는 꽤나 혹독할 것으로 보인다.
도시 바깥으로 나가지 말자.
충전 속도는 최대 35kW 정도.
200kW급을 꽂건, 350kW급을 꽂건
이 정도 이상으로 밀어넣지 않는다.
배터리 용량이 작으니 당연한 것이겠지.
일반적으로 보게되는 수치는 26~27kW.
일단 충전 시 전압부터가 27kW를 먹을 때
277V고 전류도 100A를 넘기지 않기 때문에
50kW짜리 충전기(500V x 100A)를 쓰건
350kW짜리를 쓰건 충전속도는 거의 똑같다.
35kW 상태에서도 277V x 126A.
50kW급 충전기를 제외한
모든 충전기가 200A 출력이 가능하기에
35kW 출력조차도 어지간해선 다 가능.
요즘에 50kW짜리 충전기 잘 없고
새로 깔면 대부분 최소 100kW급이거든.
그런데 35kW 먹는 구간이 짧기때문에
실질적으로 모든 충전기가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양심없는 현대차그룹은
'150kW급 급속충전기 기준 80% 충전에 40분'이라며
마치 150kW 충전기 정도는 풀 파워를
받아먹는 것 같이 보도자료를 써놨더라고.
이런 충전 느린 차로 그런 고속 급속충전기
장기 점유하는건 민폐인데, 충전속도가 느려서
어느정도 이동할만큼 충전하는 데 한참 걸림.
전기 포터에 이은 전기 레이가 이제
민폐 차량 쌍두마차를 이끌겠네.
이 문제때문에 사실 난 이 차가
제발 출시되지 않길 빌었건만... 깊은 빡침.
전기 포터 타는 놈들 초급속충전기 물리고
세월아 네월아 점유하고 앉아있으면서
충전기 바로 옆에서 담배나 뻑뻑 빨던데
정말 한 대 치고싶음.
타인에 대한 배려란게 실종된 잡것들임.
이 차로 사실 와인딩 테스트
굳이 해야 할까 차량 수령 전에 생각했었는데
정말 웃기게도 와인딩 타러 오니까
차가 생각보다 재밌어서 놀람.
바퀴가 작고 경차라 브레이크 시스템이
저렴하고 작은 물건일 수 밖에 없는데,
i-페달 모드(회생제동 4단계)로 놓고
신나게 달리니까 의외로 탈만하다.
배터리가 낮게 깔려있다는 점이 메리트.
차가 넘어질 듯 안 넘어지는 게
스릴의 요소라고 해야될 것 같다.
VDC / TCS 해제하고 달림에도
전장이 짧으면서 높은 차답게 개입을 많이 하는데,
거슬리게 확 개입하지 않아서
레이라는 차종답지 않아 놀라웠다.
오히려 K8이 훨씬 전자장비 개입이
대놓고 심하게 이루어져서 불편하다.
K8이 훨씬 낮고 넓은 차량인데 말이지.
차가 매우 작고 앞/뒤 오버행이 짧으니
코너를 돌아나간다기보다는
그냥 철길을 따라가듯이 쉭쉭 움직임.
이게 앞서 말했듯이 회생 제동을 사용해서
차량을 정차시킬땐 차체의 움직임이 불안정한데
차가 너무 작아서 코너를 도는 내내
제동하기보단 악셀을 유지하면서
쭉 돌아나갈 수 있어 오히려 이런 중고속 와인딩에선
차체가 주는 불안정함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게중심도 휠베이스 내부이자
차량 하부에 위치해 있고.
i-페달로 전기를 열심히 다시 빨아먹으니
생각보다 배터리 사용량도 심하지 않고
전기차라 순간적인 가속력이 좋아
악셀을 밟는대로 차가 나가기에
정말 예상치 못한 의외의 재미를 선사함.
시트가 차량 특성상 벤치형이라
몸을 잘 잡아주질 않아서
너무 과격하게 타긴 좀 어려웠다만
캐주얼한 산길 와인딩 정돈 즐기기 충분함.
타이어 접지력이 평소엔 모자란데
오히려 와인딩을 돌 땐 크게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이 차의 결론.
본인이 산골짜기 주택에 살고
집에 충전기가 있으면 사기 딱 좋다.
산길 주파하는 능력이 상당하며,
이런 데 살면 짐을 옮길 일도 많은데
레이의 슬라이딩 도어와 실내 공간은
차량 부피 대비 엄청난 실용성을 제공해서
시내에서 집으로 짐 나르기도 유용함.
어차피 이런 동네에선 200km 이상
멀리 갈 일도 없을테니,
주행가능거리 역시 충분하다.
집에 충전기가 있으면 충전도 별 문제가 안 되고.
주택 살면 충전기 설치하면 되니까.
반면 다들 생각하는 레이 EV의 본분
'도심형 전기차'는 나는 정말 아니올시다.
도시에서 타고다니는 정도의 저속에서도
상당히 불안정하고 충전하기도 속 터진다.
아파트 살면 충전환경도 불안정한 경우가 많고
외부 충전기 사용하면 민폐이면서 충전 단가도 비싸.
충전기가 넉넉히 확보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면
레이 EV 굳이 안 살 것 같다.
그냥 기름먹는 차로 세컨카를 굴리겠지.
도심과 외곽을 다니는 데 여러모로 불편한 차다.
아이 등하원용 세컨카로도 많이들 고려하던데
너무 작다. 애들이 타기에 좁아서가 아니고
사고가 났을 때 위험하다.
경차라는 것은 길거리 절대다수의 차들이
전부 이 차보다 크다는 건데,
물리법칙은 그 누가 와도 못이김.
한 마디로,
레이 EV 살거면 맨날 와인딩 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