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 중
모든 능력치가 출중한 선수를
파이브 툴 플레이어라고 한다.
운동 선수처럼 자동차 역시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 순 있으나, 다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라는 게 확실히 일장일단이 있는 경우가
절대다수이다 보니, 모든 방면으로 뛰어난 차는
지금까지 내가 봤을때 몇 대 없다.
기아차의 EV6와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W213),
BMW iX 정도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차가 없는데
놀랍게도 새로운 후보가 하나 나타났다.
바로 JCW 컨트리맨.
사실 컨트리맨 JCW가 더 입에 익으나
정식 명칭은 JCW가 앞에 온다.
JCW는 John Cooper Works의 약자로
미니 내에서 고성능 서브브랜드의 역할을
꽤나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데,
미니의 SUV인 컨트리맨 역시
JCW가 매만진 모델이 절찬리에 판매 중.
사실 미니는 미니 해치백(미니 쿠퍼)가
너무 아이코닉하고 독창적이기 때문에
JCW 해치백 이외의 다른 JCW 모델들은
간절한, 가슴이 시키는 끌림이 없다 해야하나?
굳이 미니를 구입하면서 SUV라는 타협을 하고
이런 큰(6550만원) 금액까지 올라가야 하나?
많은 의문이 들어 그동안 피했었고,
그래서 이 차가 이렇게 좋다는 걸
이제서야 나도 알게 됐다.
아, 그리고 또
기본형 컨트리맨을 타봤을 때
크게 실망했던 적이 있었기도 해서
JCW 컨트리맨은 모델의 수명이
거의 끝에 달한 지금에서야 만나보게 되었다.
마침 요즘 6천만원대에 살만한 차가
눈에 영 안 보이고 있기도 해서
약간의 기대와 함께 차에 탑승했다.
미니 코리아 측에서 준비한 행사인데,
사실 미니 일렉트릭을 위한 행사이다만
난 이미 미니 일렉트릭이 어떤 차인지 알고
별로 관심이 없어 다른 모델을 요청했다.
행사 참여는 여름에 했는데
시승기는 올해의 끝자락인 12월. 엄청 추움.
외관 디자인은 말 그대로
고성능 버전 컨트리맨 그 자체.
우리가 아는 그 컨트리맨을
좀 더 스포티하게 꾸민 모델이다.
출시된 지 벌써 4년차이기에,
특별히 설명할만한 건 없다고 본다.
다만 미니 브랜드 특유의 펑키함과
통통 튀는듯한 활력을 SUV에도 녹여놔
오래 봤는데도 늘 참신하고 눈이 즐겁다.
보면 내 기분도 같이 들뜨는 듯한 디자인.
주차된 차를 가지러 가는 내 눈에
JCW 컨트리맨이 들어오면, 뭔가
사고 한번 쳐 볼까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경쟁상대인 메르세데스-AMG GLB 35보다는
여러모로 귀엽기도 하고, 사납기도 하고
좋은 디자인 특장점을 더 많이 가졌다.
같은 그룹사 내의 BMW X1 M135i는
소름돋게 못생겼는데, JCW 컨트리맨은
우월한 유전자를 바탕에 깔아서 비교 불가.
실내 역시 그냥 '미니'다.
좋게 말하면 독특하고,
나쁘게 생각하면 차값이 얼만데
뭐가 많이 빠진 듯한 느낌.
실내의 화려함은 메르세데스가 압도적인데
난 미니라는 브랜드를 사랑하기 때문에
특별한 결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JCW 컨트리맨은 미니 브랜드 내에서
제일 비싼 모델이기 때문에, 옵션도
미니치고는 제법 풍부하게 들어갔다.
운전대 열선, 전동/열선 시트,
하만 카돈 오디오, 전/후방 주차 센서,
킥 모션 오픈이 지원되는 전동 트렁크,
컴포트 액세스, 스마트 크루즈, HUD까지.
차값이 6천 중반인데 이 정도에
감사해야 하는게 언짢을 수도 있겠지만
미니는 그렇게 타야지. 별 수 있나.
옵션이 그렇게 당기면 같은 돈으로
제네시스 GV70 사면 되잖아.
물론 GV70 2.5T의 주행성, 승차감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형편없음.
다 필요없고,
JCW 컨트리맨은 달리는 맛
그걸 누리기 위해 구입하는 차니
바로 운전석에 앉아 출발해야지.
기본형 컨트리맨은 미니다운 경쾌함도
BMW그룹의 일원다운 순수 주행성능도
전혀 챙기지 못한 이상한 차였는데,
JCW의 손길이 더해진 얘는 어떨까.
출발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파워트레인부터 짚자면
JCW 컨트리맨은 B48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스텝트로닉 자동변속기가 조합된다.
B48은 2리터 4기통 터보 엔진인데,
여러 가지 변종 중 제일 높은 출력의 B48.
B48은 정말 모든 면에서 훌륭한데
딱 하나, 엔진 고유의 개성이나 카리스마가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운 엔진.
이게 320i나 530i에 얹히게 되면
직렬 4기통 치고 매우 부드럽고 편안한,
무색무취의 연비깡패 엔진이 된다.
난 그래서 이 엔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게 JCW 차량들에 얹히게 되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엔진의 회전질감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없지만
어쨌든 엔진이 주는 경험 중 상당수는
청각에 의존하게 되는데, JCW 컨트리맨은
이 부분을 훌륭하게 다듬었다.
JCW 해치백과 동일하게 꼬마 악동같으면서
기분 좋게 부풀려진 엔진음을 스피커로 들려주고
배기음과 딱 적절한 만큼의 팝콘이
여기저기서 조화롭게 터진다.
최근의 차량들은 환경 및 소음규제 때문에
날이 갈 수록 엔진음이 조용해져
이런 고성능 차량은 자꾸 배기음을 키우고
벨로스터 N의 광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팝콘에만 집착하는데
험악하거나 한심해보이지 않는 수준에서
딱 균형을 맞췄다는 점이 좋다.
스피커로 가상사운드를 들려준다는 게
순수주의자들에겐 거슬릴 수 있겠지만
엔진 순수 소리도 별론데 아무 조미료도 없는
벨로스터 N의 세타 II 엔진보단 백 배 낫다.
최고 출력의 경우 306마력,
최대 토크는 45.9kg·m이다.
JCW 해치백은 여전히 231마력에 32.6 kg·m에
머무르고 있어 출력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데
JCW 해치백 차가 워낙 작아 이 정도 출력으로도
차체를 신명나게 요리하기에 차고 넘친다.
컨트리맨은 훨씬 높고 큰 차라
출력이 부족하단 민원을 받아들여
이렇게 최고 출력을 크게 끌어올렸는데,
그래서 펀치력은 전혀 모자람이 없다.
제원상 제로백은 5.1초인데
BMW의 엔진들이 워낙 모든 회전 영역대에서
끊임없이 토크를 왕창 쏟아내기 때문에
JCW 컨트리맨은 매 순간 늘 강력하다.
터보차저 특성상 이런 저배기량 엔진과 붙게 되면
터보의 회전수가 즉각적으로 늘 오르지 않기에
최소한 3000rpm 정도론 엔진이 돌고 있어야
터보차저가 제 힘을 열심히 뿜어내는데
BMW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이런 작은 배기량으로 터보차저를 돌리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전 구간에서 토크가 뻥뻥.
이게 8기통쯤으로 가면 이런 BMW 엔진들의 성향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공도에서는 지나치게
출력이 강해서 되려 운전하기 불편한데,
4기통 엔진이 이런 특성을 보이는 건
체급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기술력의 산물.
정리하면, B48 엔진의 모든 장점은
당연히 같은 엔진이니 동일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JCW만의 캐릭터를 그 위에 끼얹어놓아서
유일하게 가졌던 단점마저 덮어버렸다.
스텝트로닉 8단 자동변속기는
여느 전륜 구동 기반의 BMW 차량들처럼
일본의 아이신이 만드는 물건인데,
내가 평소에 DCT가 아닌 일반 자동변속기에는
꽤나 가혹한 평을 주로 남겨왔음에도
JCW 차량의 이 스텝트로닉 8단은
충분한 만큼의 빠른 변속 속도와
DCT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한 변속 박진감을
두루 모든 주행 상황에서 제공한다.
사실 내 욕심대로라면 DCT가 얹히는게
JCW라는 타이틀에는 더 걸맞겠는데,
특별히 불만을 가질만한 변속기는 아니어서
이 정도로도 충분히 좋다 생각이 든다.
또 일반 토크컨버터식 자동변속기라
견인 등 SUV 본분에도 충실할 수 있어
JCW 컨트리맨이 작은 SUV지만
생각보다 험로 주파도 잘 한다던데
SUV로서의 기본 역할 또한 놓치지 않는다는 점.
사실 차가 마음에 들어서 약간
쉴드를 치는 것 같기도
쓰면서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괜찮음.
JCW 해치백 모델과의 큰 차이 중 하나는
JCW 컨트리맨은 All 4 사륜 구동계가 기본이라는 것.
전륜 구동 기반의 사륜 구동이다.
일단 첫 번째로, 전륜 구동과 전륜 기반의 사륜은
이 정도 최대 토크까지 올라오게 되면
주행 성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뒷바퀴를 비록 최대 토크의 50%밖에 못 보낼지언정
구동력을 보내서 직접 돌릴 수 있다는 게
코너 선회 및 탈출에 큰 도움이 된다.
전륜 기반 사륜이 대중적인 차량 내에서는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륜 구동계를 밑바탕에 깐 고성능 차량,
핫 해치 및 핫 컴팩트 SUV에게는
있으면 거의 무조건 플러스다.
JCW 해치백은 최대 토크가 32.6 kg·m라
굳이 꼭 사륜 구동일 필요는 없지만
JCW 컨트리맨은 무려 45.9kg·m라서
사륜 구동이 있어 다행인 높은 수치.
두 번째로, JCW 컨트리맨의
All 4 사륜구동 시스템은 똑똑하다.
미니라는 브랜드 산하에 있다는 점,
그리고 JCW 브랜드 산하에 있다는 점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난 미니라는 차가 좋은 이유가
전륜 구동 기반이라는 점을
아주 열심히 활용한다는 것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앞에 엔진이 얹히고
구동력이 앞으로 가니 무거운 게
앞에 전부 몰려있다는 점을 착안해
뒷 바퀴가 더 빠르게 돌도록 만들어
휠베이스가 안 그래도 짧은 차를
더 짧은 차처럼 선회 시 체감되도록 차를 설정했다.
그것이 바로 미니가 줄창 주장하는
고-카트 필링이라는 미니 고유의 주행성.
JCW 컨트리맨은 차체가 커지고 또 높아져서
불리한 조건을 JCW 해치 대비 많이 가졌는데,
그것을 사륜 구동계로 타파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실제로 운전해보면
이들의 제작 의도는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자칫 차가 커져 뒷 바퀴가 따라오는 속도가
종전보다 느려질 우려는 뒷 바퀴에
힘을 보내 돌리는 것으로 해결했고,
그래서 굽이치는 길을 신명나게 휙휙 쏘다니기
너무나도 좋은 차가 되었다.
차체 무게가 그렇게까지 가볍진 않은데
1.7톤의 무게 중 상당수가 없어진 것 같은,
마법을 부린 것 같은 느낌.
아이오닉 5 N과 비슷한 종류의 기분을 주는데
아이오닉 5 N은 후륜 구동 기반 차량이라
당연하게도 JCW 컨트리맨과 비교하면
후륜에 힘이 더 많이 가는,
낮고 넓게 앉은 WRC 랠리카같고
JCW 컨트리맨은 좀 캐주얼하게,
전륜이 힘차게 차량을 코너 밖으로
끌어낸다는 느낌이 강하다.
운전 실력이 낮으면 JCW 컨트리맨이
운전하기 훨씬 쉽고 수월하게 느껴질 것.
아이오닉 5 N은 차가 전부 다 해주는,
코너 진입/통과/탈출을 다 해주는 차량이 아니라
전자장비를 다 끄고 신나게 타려면
차와 완전히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그에 비하면 JCW 컨트리맨은
많은 공을 들이지 않고서도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신감을
드라이버에게 전천후 환경에서 늘 심어준다.
높은 차량인건 분명 맞는데,
차량의 실제 차고 치고는 확연히 낮게 느껴지고
노면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으며 사뿐하게
모든 도로를 돌파할 수 있어서 즐겁다.
승차감은 오히려 웃기게도
기본형 컨트리맨보다 더 좋은데,
기본형 미니 컨트리맨은 어디까지나
이쁘장한 소형 프리미엄 SUV가 사고싶은
패션카에 가까운 본분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션 - 특히 스프링이 너무 단단했다.
뒷좌석 승차감은 용납이 안 되는 수준이었고
운전석조차 너무 불편했어서
더 이상 이 차에 타고있고 싶지 않은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JCW 컨트리맨이 오히려 낫다.
일반형 컨트리맨이 아무렇게나 탑승객에게
노면의 충격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면,
JCW 컨트리맨은 전달하는 충격의 양도 줄었거니와
충격의 형태가 날카롭거나 둔탁하지 않고
둥글어져서 훨씬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 정도면 와이프나 아이들을 태워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다.
오히려 난 메르세데스-벤츠 GLB 250이나
아우디 Q3보다도 승차감이 나았다.
이 차는 분명 JCW라 고성능 버전인데도.
같은 C-SUV 중에선 승차감으로 거의 최강.
XC40 이런 건 아예 비교도 안 된다.
이보크가 좀 더 탱탱하고 탄력이 있으면서
댐핑은 좀 더 납작한데, 잔충격 필터링은 얘가 더 잘 하나
JCW 컨트리맨 특유의 탄력있는 승차감이
노면의 잔요철을 더 전달함에도 내 입맛엔 더 낫다.
아이오닉 5 N보다 노면을 훨씬 덜 타고
확실히 프리미엄 브랜드의 일원이라
매끄럽고 탄력이 하체로부터 느껴진다.
물론 주행 성능과 스릴은 아이오닉 5 N의 압승이지만
올라운더로서는 JCW 컨트리맨이 한 수 위.
그래서 JCW 컨트리맨은
앞서 떠올렸던 5-툴-플레이어로 불리기에
손색이 전혀 없는 전방위적인 훌륭함을 갖췄다.
승차감이면 승차감,
주행 성능이면 주행 성능,
미니라는 브랜드가 주는 시각적 감성과
운전할 때의 기분은 완벽하게 보존했음에도
컨트리맨인지라 넓은 실내공간과
준수한 험로 주파 능력, 실용성을 갖췄다.
난 사실 전방위적으로 밸런스가 좋은 차보다는
한 가지에 충실한 차량을 더 선호하는데,
이렇게 모든 기준점을 매우 높은 점수로
만족시키는 차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요즘엔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모든 체크포인트를 통과하는
압도적인 완성도의 차량들도 있다만,
그들은 흔치 않으니 보통은 타협을 하게 된다.
스포츠카 같은 기분을 누리게 되면
실용성과 편의성을 희생하게 되고,
편안함에 집중한 차량들은 그의 반대.
반면 JCW 컨트리맨은 타협할 필요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팀의 최강 간판 스타.
5-툴-플레이어인 JCW 컨트리맨은
6550만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조차
아깝지 않은 훌륭한 가치를 선보인다.
문제는 딱 하나,
이제 이 차는 단종되고
완전 신형 JCW 컨트리맨이 나올 건데
너무 너무 못 생겼다.
심지어 무거워지는 바람에
지금 현행보다 더 느리다고.
팔고 있을 때 빨리 사자.
또 단종 직전이면
막판 재고떨이 할때 할인 시원하게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