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블로그에 지금껏 올라간 차량 중
제일 나이 든 차 시승기.
해외 나갔다 온 김에 하나 또 타봤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바로 포르쉐 박스터.
987.2이니, 벌써 14년 전에 출고된 차량이다.
안 그래도 요즘 박스터(981) 2.7에 눈독들이고 있었는데
그보다도 한 세대 전 차량은 어떨지 많이 궁금했어서
원래는 일본 간 김에 일본 내수용 차량 타려 했다만
첫 의도에서 변질되어 987을 가져왔다.
987은 이제 중고가가 정말 싸더라고.
2천만원 전후 정도면 구입 가능하니,
천만원 좀 넘는 예방정비비까지 포함해서
대략 3500만원 정도 준비하면 구입 가능.
나 그럼 3천만원대로 포르쉐 탈 수 있는 건가.
이 차를 길에서 평소와 같이 타고다니면 어떤지
도쿄 시내와 외곽을 다니면서 느껴보기로.
가져온 박스터는 후기형 987.2에
S나 R이 아닌 기본형 박스터.
스포츠 크로노와 스포츠 배기 둘 다 미장착.
완전 기본형 중의 기본형.
후기형이기 때문에 2893cc 플랫식스로
배기량이 전기형보다 소폭 상승했다.
오히려 다음 세대 981의 기본형 박스터는
2706cc로 배기량이 줄었음. 다만 직분사가 적용되어
최고 출력 자체는 261마력으로 6마력 더 높다.
987.2 박스터는 최고 출력 255마력,
최대 토크는 29.5kg·m을 내뿜는다.
일단 기본형 박스터/카이맨이 출력이 모자라다고
자꾸 일부는 주장하는데, 난 전혀 동의 못 하겠음.
굳이 박스터 S로 가지 않아도
이 정도 힘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다.
특히나 이 MA1.20 엔진은 기본형 모델임에도
배기량 여유가 있기 때문에 저회전 토크가
스포츠카답지 않게 생각보다 넉넉하다.
오히려 다음 세대 박스터 기본형보다
4000rpm 아래에선 토크가 더 많이 나옴.
처음에 타면서 예상 밖으로 쭉 밀어주는 힘이
일찍부터 나와서 놀란 바 있는데,
확실히 배기량 여유가 있고 포트분사식이라 그런 듯.
배기량이 작고 직분사를 도입한 981 2.7은
엔진을 잡아돌릴 회전 여유가 있어서
스포츠카 본분에 더 잘 어울린다.
저회전 토크가 세면 악셀을 조금만 밟아도
힘이 쑥 나오니 거친 악셀링은 적어도 공도에선 힘들거든.
반면 생각만큼 고회전을 쥐어짜는 맛은 없다.
987.2에는 포르쉐 VarioCam(VVT)이 적용돼있는데
요즘같이 밸브의 리프트나 심지어 듀레이션까지
가변 조절하는 복합 기구가 달린 게 아니라서
저회전과 고회전 전부 다 가질 순 없는 노릇.
최대토크 발생 범위인 6000rpm을 지나
회전 한계인 7500rpm까지
토크 곡선이 가파르게 떨어짐.
7500rpm에선 2000rpm일 때보다
토크가 덜 나오니, 일찍 변속하는게 좋다.
물론 플랫 식스가 들려주는 음악 때문에
자꾸 엔진을 더 잡아돌리게 되는데,
빠르게 가고싶으면 적당한 선에서 변속 필요.
특히나 과급기 장착 차량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회전수에서나 엔진 리스폰스가 즉각적이어서
굳이 레드라인까지 돌려할 이유가 솔직히 없다.
생각보다 엔진 회전질감이 매끄럽다.
직분사 도입 이전의 엔진들이 확실히
거친 맛이 덜하고 회전질감이 부드러운데
오히려 토크가 매우 든든하고 부드럽게 돌아가서
이게 승용차용 직렬 6기통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음.
난 911보다 박스터가 엔진의 위치가
운전자로부터 더 가까우니,
엔진의 회전 및 진동이 더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반대다.
엔진이 뒤쪽 끝단에 달린 911이 수평대향 구조 특유의
좌우로 차가 흔들리는 진동이 있고, 박스터는
엔진이 차량 중앙에 있어서 덜 느껴진다.
차량의 누적 마일리지가 5만 6천km밖에 안돼서
엔진 컨디션이 좋은 탓도 있겠지만,
다소 의외였다.
이때부터 포르쉐가 그 유명한
PDK를 선택 옵션으로 만들어줬는데,
PDK는 첫 등장부터 센세이션했다.
전기형(987.1)까지는 팁트로닉 S가 달려서
일반 자동변속기가 장착되었는데,
초창기 PDK조차 지금 몰아도 상당하다.
나는 그동안 M DCT도 PDK에 견줄 만큼
엄청난 퍼포먼스를 낸다고 열심히 말해왔는데
M DCT와 PDK의 결정적인 차이는
딱 하나, 바로 일상 주행이다.
PDK는 스포츠성과 편안한 운행
둘 다 잡은 미친 물건인데,
M DCT는 평소에 타긴 상당히 불편함.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변속감 및 속도와
평상시 부드러운 체결 및 변속을
한 차량에 구현했는지 대단하다.
지금의 PDK는 더더욱 좋다만,
이때 물건조차도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댔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이 탁월하다.
엔진 특성도 특성인데
사실 제일 의외였던 건 승차감.
예상했던 것 보다 승차감이 훨씬 좋다.
차량 자체의 무게가 가벼워서
서스펜션을 대단히 단단하게 만들지 않아도
이런 놀라운 주행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 것.
987.2 박스터의 공차중량은 1364kg.
특히나 스프링의 강도는 어지간한 승용차보다,
내가 타본 결과 쏘나타 디 엣지보다도 부드럽다.
강한 스프링이 주는 노면 잔진동 및 노면을 타는 느낌이
두꺼운 타이어가 일부 가려주고 있긴 하지만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스프링은 부드럽다.
댐퍼가 기본 상태에서는 딱 적절한 만큼 단단함.
특히나 댐퍼는 컴프레션 강성이 리바운드 강성보다 높은데
부드러운 리바운드와 부드러운 스프링이 만나서
방지턱 같은 큰 충격을 밟아도 매끄럽다.
PASM을 스포츠에 놓게 되면
사실 일반 도로에서 타긴 너무 단단하다.
서킷 주행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
MR 포맷 특유의 예민함이 있는 차량이라,
댐퍼를 이렇게 단단하게 놓게 되면
좋지 못한 공도의 노면 상태에서는
차가 매우 예민한 상태가 된다.
이런 차량 상태로 초과속을 하게 되면
조그만한 요철만 밟아도 차가 날아갈 확률 매우 높음.
이 차량은 일본 내수용이라 180km/h에 제한되는데
실제로 987.2 박스터의 최고 속도는 261km/h.
아, 그런데 PASM 스포츠 상태에서도
EV6 GT의 GT 모드보단 덜 단단하더라.
EV6 GT는 훨씬 무거운 차량이긴 하지만,
170km/h 정도에선 차가 나쁜 공도 노면에
제대로 붙어있질 못할 정도로 단단함.
좋은 승차감의 또 다른 이유는 작은 휠/타이어.
더 큰 휠 옵션이 선택되지 않은 제일 기본 사이즈가
앞 205/55ZR17, 뒤 235/50ZR17로
요즘 기준으로는 아반떼가 쓸 정도의 크기.
17인치인건 좋은데, 개인적으론 차가 너무 예민해서
좀 두툼한 타이어의 도움을 받는 게 좋아보인다.
앞 225mm, 뒤 255mm 정도가 어떤지.
어차피 더 큰 브레이크 없이도 공도 주행은
이 브레이크 시스템이 충분히 커버하기 때문에
휠 인치 수를 굳이 늘릴 필요는 없다만
순정 18인치 및 19인치 사양은 타이어가 훨 두툼하다.
18인치가 앞 235/40ZR18, 뒤 255/40ZR18이니
내가 방금 말한 사이즈와 대충 맞아 제일 좋은 듯.
19인치는 뒷 타이어가 265mm라 출력 대비 너무 광폭.
이 차량엔 대만산 난강 NS-20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성능이 평범한 승용차용 타이어인지라, 영 별로였다.
렌터카라 이 정도는 감안해야겠지.
난강타이어 노블 스포츠 NS-20은 수치상으론
한국타이어 벤투스 S1 evo3보다도 한참 떨어짐.
난 벤투스 S1 evo3도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내 입맛대로면 피렐리 P Zero PZ4를 18인치로 맞추면 딱.
포르쉐라는 회사가 그렇다.
다들 비싼 상위 옵션을 추천하는데
생각보다 기본 장착된 물건들도 상당한 성능을 냄.
물론 옵션 달면 더 좋다만,
그 더 좋은만큼을 느낄 운전들을 과연 할까?
카이엔이나 타이칸같은 무겁고 높은 차량들이야
PDCC 장착여부가 승차감에도 차이를 내지만
박스터나 911같은 순수 스포츠카 라인업에서는 글쎄.
하드코어한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면 오케이.
이 차량은 스포츠 크로노가 없어서
스포츠 플러스 모드가 없는데,
솔직히 난 그동안 포르쉐에 크로노 없으면 안 된다고
여느 한국인처럼 스포츠 크로노를 국민 옵션 취급해왔는데
타고다니면서 느꼈지만 크로노 굳이 필요 없다.
단지 운전석에 앉아서 대시보드를 봤을 때
뭔가 좀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뿐이지
어차피 박스터는 가속 성능을 위해 타는 차도 아니고
매번 가속 때마다 초시계를 재가며 타지도 않을 것.
오토 에어컨도 없지만 이것도 딱히 필요 없다.
어차피 나는 송풍 단계 늘 수동 조작하거니와
수동 조작 단계가 워낙 세밀해서 이걸로 충분.
세보진 않았는데 대략 20단계쯤 되는 것 같다.
시트도 제일 기본인 스포츠 시트(2way)인데,
14way 전동이면 더 좋겠다 싶긴 했다만 이것도 충분하다.
스포츠 시트 플러스는 난 어떤 포르쉐를 타더라도
일상용으로는 너무 옥죄고 답답하더라고.
이게 딱 알맞고 좋다.
어차피 난 포르쉐를 구입한들
서킷에 잘 가지 않을 것이라
공도에서 즐겁게 노는 정도로는
스포츠 시트도 잘 잡아주는 편.
역시 기본기의 포르쉐.
기본 장착 옵션도 탁월하다.
생각보다 시트의 최저 포지션이 그리 낮지 않다.
도요타 86같은 경우 끝까지 내리면
운전자가 완전히 잠기는 수준까지 내려가는데
이 차는 전방시야 확보에 불편함이 없는 정도까지만
딱 내려가서 은근 높게 느껴졌다.
불편하게 높거나 막 '높다!'는 아닌데
차량 성격치고는 예상 밖.
PSM(Porsche Stability Management)은
해제하면 정말 각오 좀 하고 타야하는데,
이게 켜진 상태에서도 생각보다 바퀴의 슬립은
살짝씩 허용되는 편이라 켜진 상태에서도
스릴이 생각보단 꽤 느껴진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잡아줄게.
끄면 이제 니가 죽던가 말던가 알아서 해.
박스터는 차량의 한계점 자체가 워낙 높고
MR 포맷이 주는 사뿐함, 끝없이 차가 받아줄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코너링 성능이 있기 때문에
겁을 상실하고 계속 밀어붙이게 되는데
박스터는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한다.
물리 법칙은 포르쉐 할애비가 와도 못 이기기 때문.
그래서 처음 접하는 경우 어지간해선
PSM 스위치는 건드리지 않는 게 어떤지.
이 차를 타면서 시내와 고속도로도
상당한 거리를 주행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박스터를 타면서
왜 그동안 911이 박스터의 상위 차종으로
잘 팔려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박스터(혹은 카이맨)는 데일리카로는 불편하다.
누구나 알법한 내용인 2인승이라는 이유는
너무 뻔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불편함.
2+2 구조인 911은 뒤에 어린 자녀를 태우거나
두 명이 타면 뒤에 가방을 던져놓을 수 있는데,
이 차는 두 명이 타면 가방은 무조건 프렁크에.
뒷 트렁크는 엔진과 가까워 열이 꽤 전달되기에
가급적 안 쓰는게 좋다. 공간도 프렁크보다 좁고.
난 혼자 타고다녀서 조수석에 가방이랑 외투를
대충 던져놓고 다녔어서 안 불편했다만,
두 명이 타게 되면 매우 불편하다.
전면부의 프렁크는 공간이 꽤 되지만
그마저도 22인치 이상 캐리어는 어렵다.
여기 와서 이 차 타고 마지막날에도 다녀야해서
별 수 없이 20인치 캐리어를 새로 샀는데
22인치 사서 들어가나 모험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기내용 20인치로 했었는데 잘 한 결정이었다.
캐리어 하나 넣고 위에 여러가지 짐을 실을 공간은 나왔는데
이게 바닥이 제일 좁은 역사다리꼴 형태의 트렁크라
큰 캐리어는 적재 불가능하다.
돈이 많다면 포르쉐 적재용으로 따로 나오는
포르쉐 리모와를 사면 해결됨.
다시 왜 불편한가로 돌아와서,
박스터는 차량이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스포츠 주행이 아닌 일상 주행 시 직진 상태에서도
계속 미세한 보정을 필요로 한다.
일반 공공 도로의 작은 요철에도 차가 반응하기 때문에
살짝씩 이를 보정하면서 달려야 하는데
이게 장시간 누적되면 피곤할 것이 분명하다.
난 아직 젊으니까 탈만했는데, 30대 중반만 가도 피곤함.
동시대의 911(997.2)도 타봤지만
911은 이런 문제 전혀 없거든.
미드쉽 후륜구동이라는 포맷 자체도
고속 직진성과는 거리가 좀 있다.
오히려 911이 RR 포맷이라
후방배치된 엔진 덕분에 특유의
쭉 밀어주는 직진성이 있고
박스터는 그런 건 달리 체감되는 게 없음.
그리고 987의 경우 연식이 된 차량이라
이때 당시만 해도 컨버터블은 차대 강성이 약해서
이 노면의 잔충격에 차대가
지속적으로 자잘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있다.
이 느낌과 MR 포맷이 합쳐져서
박스터를 고속 크루저와는 거리가 있게 만든다.
시원하게 쏘고 싶으면 이 당시 기준으로는
두말 할 것 없이 M3(E92).
약한 차대 강성과 더불어서
차량 차체가 취급주의! 같은 느낌.
911은 방지턱을 만나더라도 꾹 눌러버리고
차가 당당하게 요철을 짓밟는 느낌이 있는데
박스터는 요철을 만나면 차가
고스란히 그에 따라서 움직인다.
데일리가 가능한 스포츠카지,
결코 데일리카가 아니란 건 여기서 느껴짐.
911의 탱크같은 안정감이 이럴 땐 그리워.
다음 세대 981과 최신 982(718 시리즈)는
이런 문제에서 훨씬 자유롭지만,
MR 특유의 예민함은 동일하기에
평소에 타고다니긴 911이 월등하게 좋다.
그리고 포르쉐를 살 정도의 경제력을 가졌으면
나이가 인생의 중반 정도에는 이미 왔을텐데,
그래서 더더욱 911이 더 비싼 값을 받을 만 하다.
그 나이 먹고 이렇게 민감한 차 타기 힘들거든.
최신 911(992)는 이제 너무 부드러워져서
돈 좀 만진 아저씨들의 패션카처럼 되어버려서 열받음
모든 환경을 아우를 수 있는 911과
코너링 하나에 목숨 거는 박스터.
젊을 땐 박스터인데, 나이 좀만 먹어도
여러가지로 911이 편하다.
심지어 911은 사륜 구동 선택권도 있지.
이 차 타고 와서 한동안 그간 잊고 살았던
991.1 카레라 S가 막 갖고싶더라고.
987 세대의 박스터는
파워 스티어링이 유압식이다.
역시나 포르쉐 아니랄까봐 조향감은 탁월하다.
이게 마지막 유압식 파워스티어링이고
다음 세대 박스터 및 911은 전자식으로 바꼈는데,
종전보다 계속 약간씩 가벼워진 마지막임에도
운전대를 돌릴 때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난 무거운 운전대를 좋아하기 때문에 좋았음.
그런데 그 무게감이 과하지는 않다.
오히려 한동안 미친듯이 무거워지던
BMW의 운전대(F82 M4 등)가 이보다 훨 무겁고,
이건 그냥 유압식이니까 딱 그럴만한 무게감.
M2(F87) 및 M4(F82)는 나조차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무게감은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단순히 무겁기만 했었는데
박스터는 무거우면서 피드백도 훌륭하고,
속도 상승에 따른 무게감 변화도 딱 알맞게 적절하다.
차선 폭 좁은 일본에서조차
차량을 내가 원하는 정확한 위치에 위치시키기
부족함 없이 탁월했어서 이 부분은 역시 최고.
이 글의 제목인 '박스터를 데일리로 탈 수 있을까'
에 987의 유압식 파워스티어링은 조금 부적절함.
앞 바퀴에 대한 피드백이 늘 계속 많이 오는건
난 정말 좋지만, 시내 주행시엔 사실 별로 필요 없거든.
전자식은 이 부분을 어느정도 차단할 수 있기에
조향감 및 피드백에서는 약간 손해를 보지만
데일리카로서는 더 낫다.
바꿔 말해 다음 세대 981은
엔진과 변속기는 더욱 스포츠카답고,
데일리카로서의 활용성도 올라갔다.
987은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의 감각,
운전대를 통해 차량과 내가 연결되어 있단 감각에선
훨씬 앞서지만, 일상 운행은 좀 타협한 편.
코너를 돌아나가는 모양새는
달리 할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
오래 됐어도 포르쉐는 포르쉐.
오히려 스포츠카인데 코너링에 관해서
제일 할 말이 없다. 그냥 최고.
펀카로서 많이들 질문하는
박스터 기본형 vs. M2는 뭐 게임이 안 된다.
무조건 포르쉐. 무조건 포르쉐. 무조건 포르쉐.
개인적으론 M2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
그렇게 재밌는 차까진 아니라고 느껴졌음.
자세한 건 M2 CS 시승기 참조.
911 대 박스터는 이미 설명했으니
또 다른 자주 보는 질문인
카이맨 대 박스터는 과연 뭘까.
사실 987 세대는 컨버터블인 박스터는
차대 강성이 약한 게 체감이 되기 때문에
카이맨으로 눈길이 갈 수도 있다.
이후 세대들은 사실 카이맨과 박스터를
동시에 놓고 맨날 비교시승하는게 아닌 이상
박스터의 살짝 약한 차대강성을 체감할 일 없음.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럼에도 무조건 박스터.
꼭 박스터 사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톱이 열림. 끝없는 하늘을 누릴 수 있음.
박스터는 톱을 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반면
카이맨은 고정식 루프가 끝이잖아.
이런 고성능차는 빠르게 달리기 위해 태어났지만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천천히 달려도 스포티하고 즐겁다.
그 말인 즉슨 천천히 달릴 때 뚜껑까지 열면
그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것.
심야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간선 도로를 달리며
도시의 야경 감상하기에도 좋거니와
자연 속으로 들어오면 자연과 한결 더 가까운 게 컨버터블.
또 이런 스포츠카는 주변 시야가 제한적인데
포르쉐는 그나마 양반인 편이긴 하다만,
아무튼 톱이 열리는 박스터는 톱을 열어버리면
후방 시야가 시원하게 뚫리기 때문에
주차하기도, 운전하기도 더 편하다.
비 오는 날만 아니면 무조건 가능.
겨울이어도 전혀 상관 없다.
컨버터블을 타보지 않은 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착각이
컨버터블은 맑고 따뜻한 날에만 톱을 열고 타고,
겨울같이 추울 땐 그렇게 못 탄다고 생각하는데
목도리만 하고 타면 추워도 별 상관 없다.
캐빈룸에 바람이 그렇게 들이치는게 아니기 때문에
히터 틀어놓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포르쉐 하면 또 중고가 방어를 생각 안 할 수 없는데,
987은 카이맨이 박스터보다 신차 출고가가 더 비쌌다.
그런데 오늘날 가격은 박스터가 더 비싸다.
현행 982(718 시리즈) 와서야 카이맨 출고가가
박스터보다 더 싸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격 방어는 박스터가 더 좋다.
박스터 GTS에 인기 색상이면
감가가 아니라 할증이 붙는 수준.
그래서 결론은 박스터. 카이맨도 좋긴 하지만
지금처럼 718 GTS 4.0이 박스터는
앞으로 들어올 물량분보다 계약자가 더 많아
구입 불가능한 것과 달리 카이맨은 출고 가능한,
특이 케이스 아닌 이상은 무조건 박스터.
스포츠카에서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늘 오디오 이야기도 해왔으니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BOSE가 아닌 기본형 오디오인데
음량을 중간 정도까지 사용하면 들을 만 하다.
중저음 / 중고음이 약하긴 하지만
저음 - 중음 - 고음 간의 차이 및 표현은 충분했고
생각보다 저음 표현이 충실했다.
다만 볼륨을 올리면 베이스에 나머지 음역대가 잡아먹힘.
사실 이 차량의 오디오는 실내가 아니라
수평대항 6기통이 오디오고 악기지.
나는 가능한 한 작은 엔진을 늘 선호하기에
4기통 박스터의 스바루스러운 소리조차도
크게 개의치 않았었는데,
그냥 박스터는 6기통 해야겠더라.
그리고 최신 차량들은 환경 및 소음 규제에 맞춘다고
엔진음이 점점 조용해져 자꾸 쓸데없이
배기음을 키우고 강조하는데,
이건 옛날 차량이라 순수 엔진 사운드를 감상하기
너무 좋아서 운전하는 내내 귀가 즐거웠다.
천박하게 팝콘 팡팡거리는 요즘 차들, 저리 비키거라.
987이 벌써 옛날 차 소리 들을 수준의
세월이 흐른 2023년인데, 지금 와서 보면
이 당시의 내장재 및 스위치의 작동 품질이 훨씬 좋다.
창문 스위치 딸깍거리는거나 도어 경첩의 철컥거림은
언제나 느껴도 감동적이고, 이래서 포르쉐 타는거지 싶다.
그리고 PDK 레버가 크고 우람해서 좋다.
요즘 911이나 최신 포르쉐들은 무슨
면도기같이 생긴 쪼만한 레버를 딸깍거리게 되어있는데
진짜 이건 아니다. 다른 회사면 몰라도 너넨 포르쉐잖아.
이 시절 컨버터블들은 대부분 톱이 전동식이어도
윈드실드 위에 최종 결박하는 건 손으로 직접 해야 함.
그리 불편하진 않았는데, 편의점 들어갔다 나오려고
계속 톱 닫고 시동 끄는 건 좀 귀찮았다.
그리고 나도 아시아인 아니랄까봐
톱이 열리거나 닫히는 내내
개폐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하는 것도 귀찮았음.
아시아인은 역시 원터치지.
생각보다 연비가 되게 좋다.
아무래도 차량 연식도 있고 포트분사식이라
연비가 놀랄 정도인 981 2.7 박스터만큼은 아닌데,
987 2.9 박스터도 연비 꽤 탈만한 수준이다.
내가 운전하면서 평균연비 8.08km/l를 기록함.
이건 시내 70%, 와인딩 10%, 고속도로 20% 정도.
가다서다 하는 환경을 많이 만났고
와인딩에선 상당히 빡세게 운전했었는데
총 연비가 8km/l를 넘다니 스포츠카가 맞나?
고속 항속주행만 하면 13km/l 이상 기록할 듯.
국내의 경우 고급휘발유 취급 주유소를
찾아야하는 귀찮음이 있지만, 일본은
어지간해선 모든 주유소가 하이오크 취급하더라.
PDK의 기어비가 7개인지라 생각보다 촘촘해서
고속 정속 주행 시 1800rpm 정도에서 머물렀다.
연비의 비결이 여기서 나오네.
가다서다 하는 환경에서 PDK는 매우 부드러웠고.
그래서 박스터를 데일리로 탈 수 있을까
3천만원대로 포르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네.
하지만 일정 부분 타협은 필요하다.
돈 좀만 더 보태서 5천만원으로
이 차량의 다음 세대인 981 2.7 박스터 사자.
하지만 987도 그 자체로 훌륭하다.
한 번 쯤 꼭 경험해볼 만 함.
타고다니면서 행복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