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살 길을
언제나처럼 찾아 나선다.
이제 틈만 나면 지구 어딘가에서
홍수가 났거나, 폭설이 내렸거나,
본 적 없는 천재지변이 줄을 잇는
기후 대재앙의 시대로 돌입했다.
그에 따라 자동차업계도
패러다임의 변곡점을 맞이하여
전기차 시대가 이제 다가오는 걸 넘어
현재진행형이라고 봐야 할 시점.
그런 2023년 끝자락에
BMW의 대표 차종 중 하나인,
비즈니스 세단의 대명사 5시리즈의
순수 전기차 모델인 i5가
신형 5시리즈(G60)와 나란히 함께 등장했다.
사실 BMW는 i3을 통해 순수 전기차 시장에
일찍이 출사표를 던졌던 회사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전기차 보급은
먼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만
지금은 코 앞에 닥친 현실이다.
기술이 그간 얼마나 발전했나 두고 볼 일.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갖는 의문점 중 하나는
'과연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어도
그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가'
이다. 특히나 이 질문은 자동차업계에서는
꽤나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일.
전통적인 의미의 '달리기 위해 태어난' 자동차와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자동차는
분명히 지향점과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거든.
이 둘을 한 번에 다 챙길 순 없는 노릇이라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
그럼,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이 확실한가?
BMW는 오랜 세월 기존의 자동차가 갖던 의미에
매우 충실하던 회사로서 슬로건조차
'The Ultimate Driving Machine'
'Sheer Driving Pleasure'
이렇게 내걸어왔고 사람들 인식 속에도
고스란히 이 모토가 자리잡고 있는데,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달라짐에 따라
단단히 굳어졌던 통상적 의미를
탈피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나고 있다.
BMW가 이에 어찌 대응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갈 생각인지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차가 바로 i5.
그래서 서둘렀다.
5시리즈(G60) 대신 i5를 우선 만난 것도
이미 대세는 i 브랜드로 왔다고 나는 판단하기 때문.
과연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i5가
BMW의 새로운 테마와 개념을 확립하고
더 나아가 기술력의 진보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제품으로 이어진다는 명제에
확신을 얹어줄 수 있을까.
테스트카는 i5 eDrive40 M Sport.
i5는 eDrive40과 M60 두 가지 모델로 나오고,
eDrive40은 기본형, M Sport, M Sport Pro
이렇게 세 가지 트림으로 나뉜다.
M Sport 라인업들은 외형이 다르고,
M Sport Pro는 여러 옵션이 다양하게 포함돼
사실상 보다보면 M Sport Pro까지 올라와야 함.
M Sport Pro에는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후륜 조향, Bowers & Wilkins 오디오,
파킹 어시스턴트 프로페셔널이 포함인데
M Sport와 M Sport Pro의 가격 차이는
꼴랑 480만원. 무조건 M Sport Pro.
기본형을 무시한 이유는
기본형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못생겼기 때문.
안구 보호를 위해 굳이 사진을 넣진 않겠다.
M 스포츠 바디 패키지가 적용된
M Sport 라인업도 너무 못생겼지만
기본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디자인한건지
디자인팀 수장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에게 묻고 싶다.
호이동크는 메르세데스-벤츠 수석 디자이너
고든 바그너와 함께 디자인팀 수장 치고 젊은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계속 말도 안 되는 파격을
적어도 내 생각에는 너무 자주 시도한다.
난 취향이 노땅이라 그런지 이안 칼럼(재규어/랜드로버),
발터 드 실바(폭스바겐그룹)처럼 연령대가 높은
수장이 이끄는 디자인팀의 결과물들이
대개 우아하고 품격있는 실루엣을 선봰다고 생각함.
신형 7시리즈(G70)의 디자인이
기존의 틀을 깨는 상상 이상의 못생김이었다고
그동안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뭔 충격요법도 아니고
어디서 자꾸 이런 디자인을 그려오는지
날이 갈 수록 더더욱 못생겨지는 중.
적어도 7시리즈는 전통적인 3박스 스타일의
기함다운 비례감은 갖추고 있었는데
새로나온 i5와 5시리즈(G60)은
FR 레이아웃의 고급 승용차임에도
마치 저가형 FF 차량같은 비례다.
프레스티지 디스턴스(전륜 휀더와 앞 도어간의 거리)도
그동안의 디자인은 어디다 팔아먹고
이렇게 짧뚱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음.
메르세데스-벤츠 EQE, EQS가
공기저항계수를 낮추기 위한
캡포워드 스타일링을 채택해서
메르세데스답지 않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는데
내 생각에 i5의 직접 경쟁 차종인 EQE가
i5보다는 압도적으로 디자인이 우월하다.
EQE는 기능에라도 충실한 디자인이지
i5는 그냥 싸구려 차 생김새 아닌가.
i5 eDrive40의 제원은
후륜에 313마력짜리 단일 모터 장착으로
후륜 구동이며, 최대 토크는 43.8 kg·m 이다.
스포츠 모드에선 340마력으로 부스트됨.
83.9kWh의 삼원계 배터리(81.2kWh 가용) 장착 및
타 BMW 차량과 동일하게 CLAR 플랫폼 기반.
400V 전장이기 때문에, 발표된 205kW 최대 충전속도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국내에 깔린 충전기 사양을 고려했을때
운행하면서 실제로 볼 수 있는 피크 충전출력은
대략 150kW 내외가 될 것. (400V x 400A 및 손실 포함)
경쟁 차량인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90.6kWh) 대비
배터리 용량이 상당히 작은데, EQE는 i5와 달리
전기차 전용 플랫폼(EVA2)를 사용했기 때문.
배터리가 작은 대신 i5(490L)는 트렁크가
EQE(430L)보다 크고, 모터의 출력도
EQE 350+(288마력)보다 높다.
아마 i5가 eDrive35로 나왔으면
둘이 출력이 엇비슷했지 싶다.
충전 및 주행가능거리 시험은 다음 기회에.
아직 모든 매체가 길게 테스트카를
받은 바 없는 걸로 알고 있음.
근데 이 엉망진창인 차를 다시 타봐야 할까?
이제 i5의 운전석에 올라볼 시간.
i5의 강점 중 하나는 전 트림 메리노 가죽시트.
메리노 가죽 정말 매끄럽고 좋다.
EQE 350+는 그에 반해 천연 가죽시트라
한 등급 낮은 수준의 가죽이 입혀짐.
5시리즈는 530i 라인업만 메리노 가죽인데
i5가 확실히 비싸다보니 전 트림 메리노.
근데 내 기억에 이전 세대(G30)는 M550i 이상만
메리노 가죽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젠 530i와 i5에 다 넣어주다니 흡족.
가격을 도대체 얼마를 올려받으려고...
i5 M60의 경우 BMW Individual 메리노 가죽이라
같은 메리노지만 한 등급 위라고 봐야 함.
운전석 시트의 착좌감은 양호한데,
몸을 그리 감싸는 편이 아니고
운전대 직경이 차 사이즈 대비 엄청나게 크다.
처음에 좀 놀란 부분. 체감상 거의 트럭인 줄.
내가 BMW M 스티어링 휠을 그간
그 두툼한 두께와 파지감에 늘 사랑해왔는데
이젠 좋은 소리 못해줄 물건이 달리네.
운전자와 직접 맞닿는 두 가지 요소가
대략적으로 이 차가 어디에 중점을 줬는지
이미 힌트를 줬다.
일단 달리기는 아니라는 거.
실내 디자인을 사진으로 감상하는 건
내장재의 품질 수준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실내의 고급감과 완성도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
i5의 인테리어는 사진으로만 봤을때는
그간 경쟁사에 뒤떨어지게 구식같던
BMW의 인테리어가 드디어?! 싶은 느낌.
실물로 보니 i7에서 느꼈던, 샤오미 폰처럼
지나치게 조명과 디스플레이에만 집중하며
나머지 요소들은 그대로 뒤떨어진단 느낌 그대로다.
특히 내장재는 지난 세대(G30)보다
큰 폭으로 품질이 떨어져서 놀랐다.
이게 3시리즈인지 5시리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
i5 eDrive40 M Sport Pro의 Bowers & Wilkins 오디오는
금속 스피커그릴과 장식을 보기 좋게 달아놨는데,
하위 트림들의 Harman/Kardon 오디오는
플라스틱 커버. 정말 싸구려틱하다.
기본형 일반 사운드 시스템(520i/523d)도 아니고
하만 카돈일지라도 나름 딱지가 붙은 오디오인데
최고급형 오디오 안 넣으면 이런 짓 하는 거
제네시스 G90에서 보고 배웠나?
사실 나는 i4 eDrive40과 i4 M50에서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i5가 최소한 BMW의 간판 모델 기반이라면
달리는 것 하나만큼은 제대로 할 줄 알았다.
특히나 i4 M50은 남들에게 구입 추천 많이 했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최악이다.
i4는 BMW의 아이콘 3시리즈를 바탕으로
멋진 디자인을 입힌 4시리즈 그란쿠페를
전동화 모델로 만든 차량. 한마디로 3시리즈.
반면 i5는 단지 축소판, 축약판 i7일 뿐이다.
방금 이 말의 의미가 안 와닿는다면,
i4는 태생부터 전통적 의미의 BMW.
i5는 전기차 시대에 잡아먹힌,
새로운 세상의 BMW가 밑바탕이다.
궁극의 드라이빙 머신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i5 eDrive40 M Sport는
기본형과 달리 M 스포츠 서스펜션.
다만 M Sport Pro와 달리
가변 댐퍼(전자제어식 서스펜션)는 미적용이다.
주행 모드를 바꾸는 것과 상관없이
차체가 움직이는 방식은 고정이라는 뜻.
그리고 그 한 가지 방식은 7시리즈, i7(G70)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며
내가 생각하는 BMW가 아니다.
3시리즈(G20), i4(G26 BEV)는
적극적으로 차가 나서서 돌려고 애쓰고,
코너링을 위해 태어난 차량이라는 느낌을
시시각각 운전자에게 상시 전달하는데,
i5는 아주 고상하기 짝이 없어서
차량이 그냥 가만히 버티면서
슥슥 수평으로만 움직이려 들고
배터리 무게가 선회 시 군더더기가 된다.
물론 물리적인 무게감은 누가 와도
사실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지만,
i4는 그런 인상이 현저히 적었단 말이지.
i4는 작은 차라 그렇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i4도 전기차라 2.1톤을 상회하는데...
7시리즈(G70) 테스트 직후
'마법의 양탄자를 탄 것 같다'는 평을
내가 했었는데, 이 차량도 동일하다.
양탄자가 평평한 상태로 쉭쉭 움직이지
이게 날아다니면서 자기 몸을 막 비틀진 않잖아.
근데 역동적인 코너링과 그에 딸린 주행감은
적극적인 차량의 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안그래도 i5는 차가 커진 와중에
이런 성향까지 가졌으니
내가 중요시하는 오랜 역사의
BMW 스타일과 매우 상반됨.
운전자는 돌고 싶은데, 차는 싫대.
차선 변경 시 사뿐하게 날아다니는 느낌은
타사에서 구현하지 못한 BMW 고유의 것이라
여러모로 칭찬해줄 만 하지만,
코너 도는 건 못하고이것만 하면 어떡해.
속도를 좀 붙였을 때의 직진성도 꽝.
근데 이건 이전 세대 5시리즈(G30) 뿐만 아니라
그냥 10년 넘은 물러진 BMW의 모습이라
이제 깔 기운 조차 들지 않음.
아무리 E-클래스보다 덜 성의있게 만들었어도
기본에 충실한, 메르세데스-벤츠다운 EQE보다
조종성이나 운전의 즐거움은 i5가 크게 못 미친다.
비즈니스 세단에서 제일 중요한
승차감 역시 i5 eDrive40 M Sport는
좋은 이야기를 해주기가 불가능한 수준.
어째서 신 모델이 구형보다 승차감이
크게 떨어질 수가 있는지 놀랍다.
아.. 하기사 BMW는 E바디 시절 이후로
20년간 계속 퇴행만을 반복했었지
난 이전 세대 5시리즈(G30)의 경우
제일 단단한 M550d부터 M5, 530i xDrive까지
다양한 모델들을 경험해본 바 있는데,
단단함의 수준이 제각각 다른 이 모델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특징이라면
단단함 속에서도 실내와 시트로
충격이 유입되어 느껴지는 시간과 간격 동안
숨 쉴 여유공간이 있고 탄력이 존재했다는 것.
고속에서만 좀 불안정하다 뿐이지,
가볍게 팍팍 치고나가고 편안했던
지난 5시리즈(G30)의 섀시 완성도는
비즈니스 세단의 대명사 차량답게 대단히 높았다.
i5(G60 BEV)는 그에 반해 뻣뻣하기 짝이 없고
충격을 신경질적으로 받아치는 경향이 심하다.
차량 전반이 경직된 느낌.
짜증나는 건 이걸 바꿀 수 없단 것이다.
그러니까 혹여나 정말 난 i5 아니면 죽을 것 같다
한다면 무조건 i5 eDrive40 M Sport Pro로.
이번 세대(G60)와 지난 세대(G30)간의 차이가
어떤 느낌인가 싶다면, 이렇게 비유하면 와닿을 듯.
지난 세대는 현행 쏘나타(DN8)
이번 세대는 구형 쏘나타(LF)라 놓고
둘의 성격 및 유연함 차이를 비교하면 딱 맞다.
이들의 느낌이 쏘나타 수준이란게 아니고
LF와 DN8 간의 선명한 차이가
이번 5시리즈/i5와 지난 5시리즈 사이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웃긴 건 현대차는 갈 수록 좋아지는데
BMW는 갈 수록 나빠짐.
이러면 신 모델을 발표하는 이유가 뭘까?
하기사 디자인도 지난 5시리즈(G30)가
E39 시절 5시리즈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멋진 디자인이라
비교불가하게 뛰어나지.
LCI 하면서 많이 못생겨졌었지만
운전대는 7시리즈와 i7에서 본 그것인데
운전대를 돌려보니 마치 장난감같다.
세상에, 어떻게 이게 BMW 스티어링인지.
중심부 유격이 일단 너무 심한데다
스포츠 모드까지 가더라도 가볍다.
종전의 BMW는 과할 정도로 무거웠었는데,
민원을 받았는지 가볍게 바꿨다.
근데 지나치게 가벼워서 이제 불안하다.
이놈들은 어째서 중간이란 게 없다.
가벼운 건 전체적인 주행감에도 해당된다.
노면에 착 붙질 못하고 찝찝한 채로 쭉 간다.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가 승차감과
직진성, 고속안정감 역시 압도적으로 앞선다.
EQE는 E-클래스의 절묘한 댐퍼/스프링간의 균형이
완성도가 살짝 낮은 형태로 얹혀 있어서
E-클래스에 익숙한 내게는 다소 아쉬웠지만
i5와 비교해보면 이건 뭐 게임 끝.
다만 조향감이 가벼운 건 i4 eDrive40도 마찬가지였고
i4 M50에 가야 조향감과 운전대로 전달되는
노면 피드백, 앞바퀴 상태 피드백이 만족스러웠어서
i5 M60을 타보지 않은 지금은
아직 i5 전체가 쓰레기라 할 순 없는 상태.
i4 M50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i4 M50은 사륜 구동 차량임에도
사륜 구동 모델에서 보기 쉬운
운전대 피드백 저하가 잘 없었다.
그냥 전기차라 무거워서 CLAR 플랫폼 특유의
날카로운 전륜의 선회력과 예리함이 떨어졌을 뿐이었지.
i5 eDrive40은 이 CLAR 플랫폼 고유의
면도칼같은 앞바퀴 그립이 완전히 실종되었다.
이 부분은 7시리즈/i7보다도 못하니
더 할 말이 없다. 엉망이다.
이전 세대 5시리즈(G30)은
이 포인트도 놓치지 않았었고,
경쟁사보다 가벼운 공차중량을 바탕으로
운전자가 가고자 하는 길과 방향을
삭삭 그려내서 좋았었는데
이제 그런 것도 없다.
이 테스트카의 문제인지,
실제로 BMW가 잘못 만든건지,
브레이크 길들이기가 잘못 된 건지
아직 파악할 순 없지만
이 차량은 희한하게 초반 브레이킹 답력이
극초반은 허당치고 그 뒤 갑자기 급격하게 밟혔다.
근데 브레이크의 페달 답력 문제라기보단
회생 제동 - 물리 브레이크 사용간의
전환이 똑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브레이크에서 잡소리까지 같이 났거든.
주행 모드를 바꿔도
생각보다 극적인 체감 변화가 없다.
가속감 역시 마찬가지다.
i4의 경우 BMW가 제일 잘 알려진
3시리즈라는 FR 스포츠세단의 DNA를
전기차에도 고스란히 잘 살려놨었는데,
i5는 FR 차량이라는 인상이
디자인은 물론이고 주행성에서도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
FF같다는 말이 아니고,
와 나 FR 잘 만들던 회사 차량이야 라고
차가 대놓고 소리지르진 않는다는 거.
BMW의 차량이라는 증거를
이제 고작 차량 내외부에 붙은
뱃지에서밖에 찾지 못하는 슬픈 현실.
최근 BMW는 남들이 시퀀셜 턴 시그널로
주목을 끄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마치 벌브 전구처럼 깜빡이가
빛이 퍼지는 느낌으로 화악 점등됐다 꺼지는데
볼때마다 정신사납고 저렴해 보인다.
남들과 다르게 독창적이려다 독이 된 느낌.
얼마 전 데뷔한 iDrive 8이 아주
난잡하기 짝이 없는 메뉴와
과하게 편중된 터치 조작 비중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이 주로 이뤘었는데,
i5는 개선형 iDrive 8.5가 올라간다.
근데 난 뭐가 개선됐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별의별 잡 아이콘들은 너무 많고
물리 버튼 삭제가 과할 정도여서
운전 중에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원래는 iDrive가 직관적인 인포테인먼트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의 COMMAND가 복잡한 물건이었는데
이제 완전 반대가 돼서 최신 NTG 7 MBUX는
터치 비중이 높음에도 직관적이고,
BMW의 iDrive 8/8.5는 혼잡하기 그지없다.
하만 카돈 오디오는 별 기대 안 돼서
들어보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들어보게 되면
업데이트 함. 근데 BMW의 하만 카돈은
원래 이름만 그렇고 형편없었는데,
전기차는 고전압 전장 기반이라
그나마 전기차에서는 약간 들을만해졌었다.
iX의 하만 카돈은 중상 정도였고
i4는 나쁘지 않고 양호하네 였었음.
다만 iX는 Bowers & Wilkins 오디오가
롤스로이스를 제외한 모든 차를
다 때려부수게 좋은 시스템이어서
하만 카돈 달고 출고하면 무조건 손해.
전기차 전용이 아닌,
내연기관 모델과 공유하는 CLAR 플랫폼 탓에
장착할 수 있는 배터리 용량이 제한적인데
그걸 소비자들이 이해해줄 이유는 없다.
특히나 CLAR 플랫폼의 강점이 다 실종된
i5같은 차에서라면 더더욱.
i4와 배터리 용량이 동일한데,
i5 eDrive40의 경우 환경부 인증
복합 주행가능거리가 384km.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는 복합 471km다.
이 정도 차이면 초격차.
특히나 EQE는 공기저항계수를 낮추는 데
특화된 디자인이라 장거리 주행 시
그 차이가 i5와 더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i5 eDrive40의 경우 21인치 휠을 장착한 차량 기준으로
주행가능거리 인증을 받았고, 정작 출시한 차량은
19인치와 20인치까지만 끼워진다.
내가 알기로 이게 환경부에서 차량을 일괄 수거해서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고, 제조사에서 적합한 방식으로
측정한 후 환경부에 보고하는 것이 절차로 알고 있는데
그럼 BMW코리아는 도대체 무슨 삽질을 한 것이지.
홈페이지에 당당하게 이 내용을 적어놨는데,
그럼 최소한 20인치 휠 장착 기준 주행가능거리를
자사 실험 결과로라도 기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 차는 종합해보면
전작보다 나아진 건 하나도 없으면서,
불편해지고 불쾌해졌다.
승차감은 투박하고 뻣뻣해졌으며,
주행성능은 이제 BMW 딱지 떼야 함.
가격은 가격대로 많이 올랐으면서
실제로 원가 투입이 많이 되는
고가의 내장재들은 전부 저렴해짐.
과시욕에 눈이 멀어 조명들만 도배했고.
대표적 경쟁사인 메르세데스-벤츠가
화려한 앰비언트 라이트를 자랑하며
상대적으로 초라하단 평을 오랫동안 들은 BMW가
악에 받친 듯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아무데나 전부 빼곡히 갖다바른 느낌인데
고급스럽거나 화려하지 않고 저렴해 보인다.
사실 전작인 G30 세대 5시리즈가
워낙 너무나도 뛰어난 차였어서,
이를 개선하기란 쉽지 않은 과제.
근데 현상유지는 최소한 해야 할 거 아니야.
전작보다 모든 면에서 나빠지면
이게 과연 신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까?
i5 eDrive40 M Sport는 애석하게도
내 기준에선 낙제점을 받았다.
제네시스 Electrified G80과 비교하는걸 깜빡했네.
Electrified G80은 방지턱같은 큰 요철을 넘을 때
쿵 하고 강한 충격을 때때로 넘기지만
i5처럼 불편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그나마 코너링 시엔 i5가 더 낫네.
간신히 턱걸이로 체면치레.
글 서두에서 던진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분명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실컷 욕했지만, BMW가 차를 허투루 만드는 회사는
지금까지는 최소한 아니었다. 차량 제작 및
설계 방식들을 들여다보면 말이지.
기술력은 날이 갈 수록 개선되는데,
도대체 BMW가 내놓은 차량들은 왜 전부
점점 퇴화하는 것일까? 매우 의문이다.
회사가 스파이한테 잠식당한 것일까?
발전한 기술력이 어디에 투입됐는지도
i5 eDrive40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결론.
BMW는 5시리즈/i5(G60)를 공개하며
i7의 시네마 스크린을 후석에 옵션으로 구비하고,
앞에선 iDrive 디스플레이로 스마트폰 내의 게임을
미러링하여 플레이할 수 있는 기능을 새롭게 소개했다.
그러니까, 그 어떤 회사보다도 '궁극의 달리기'를 추구하던
그 회사가 이제 차를 그냥 안방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행보는 사실 나오는 결과물만 다를 뿐이지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면서 모든 회사가 다 그렇다.
그런데 난 이런 모습이 BMW에서 유독 불쾌하고 실망스럽다.
기존의 BMW를 사랑하고, BMW가 주던 전율과 감동을 기억하는
이 사람들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늘 느껴져서다.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하고,
종전에 약하던 부분을 채우는 것은 좋다.
근데 원래 잘 하던 걸 놓치면 안 되지 않나.
새로운 시대의 BMW는,
알고보니 BMW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알던 BMW를 파괴하는
선봉장에 오늘날 i5 eDrive40이 서 있다.
유감이다.
결국 첨단 기술이 등장하고
기존엔 상상도 못했던 기능들이 생겨도
우리의 세상은 결코 곧이곧대로 좋아지지 않는다는걸
BMW가 i5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i5는 인텔이 아닌 BMW에선
사상 처음으로 출시된 모델인데
(BMW는 first-ever라는 표현 매우 좋아함)
완성도는 여지껏 본 BMW 중 단연 최악.
아 난 이래서 확실히 옛날이
더 좋았던 것 같아.
안그래도 요즘 M3(E92) 땡기더라.
그리고 옛날이 더 좋은 세상이었던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