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도로에선 잘 보기 힘든 오딧세이.
국내에서 현재로선 정식 수입된 물량은
이미 다 판매되어 살래야 살 수도 없는 차.
그런데 미국으로 가면 도요타 시에나와 함께
미니밴 판매량의 쌍두마차격인 모델이다.
'풍부한 옵션과 경부 1차선'의 기아 카니발,
'실용성, 하이브리드'의 도요타 시에나
그리고 '미니밴계의 스포츠카' 혼다 오딧세이.
국내(뿐만 아니라 북미에도)에 판매중인
미니밴 3대장은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그랜드 보이저
큰 덩치 탓에 얻은 둔한 인상 탓도 있겠지만
실질 주행성 역시 역동적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게 미니밴인데
미니밴계의 스포츠카라니
강제로 미니밴을 사야만 하는 가장들에게
엄청난 희소식이 아닌가?
그동안 계속 궁금했었는데,
국내 판매 물량이 전부 소진되었음에도
운 좋게 잠시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럼 정말 미니밴계의 스포츠카라는
도시전설같은 소문이 사실인지
한 번 직접 타보며 느껴봐야지.
미니밴을 타보는 거지만,
사실 난 이 차가 제공하는 실용성이나
실내 공간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내/외장에 대한 긴 설명 및 평가나
2열, 3열을 위한 각종 편의장비
이런 건 이번엔 안 다룰 생각이다.
그런 게 궁금하면 다른 시승기 찾아봐야 함.
단도직입적으로, 파워트레인부터.
오딧세이는 미니밴계의 스포츠카답게
디젤이나 하이브리드따윈 없다.
유일하게 올라가는 엔진은
3471cc V6 자연흡기(코드네임 'J35Y6').
최고 출력 284마력을 내는 물건이라
카니발 G3.5 가솔린(294마력)보다
출력은 10마력 낮지만, 최대 토크는
36.2kg·m으로 둘이 동일하다.
하지만 오딧세이는 36.2kg·m @ 4700rpm이고
카니발은 5200rpm에서 나오기 때문에
토크 밴드 자체가 약간 더 앞으로 당겨져 있다.
미니밴에는 어울리는 셋팅이지만
미니밴계의 스포츠카에는 과연?
이 엔진은 특이한 것이, SOHC이다.
요즘 세상에 SOHC를 쓰는 엔진이
여전히 남아있다니 참 경이롭다.
이외에 SOHC 엔진이 올라가는
근래의 양산차는 피아트 500 아바스와
124 스파이더(1.4 멀티에어 터보).
피아트는 스텔란티스 그룹 소속이니까
SOHC를 아직도 쓰고있다는 게
어느정도 납득이 된다만(?)
혼다는 나름 '기술의 혼다'로 유명한데
DOHC가 데뷔한지가 몇 십 년 됐음에도
이런 구닥다리 기술을 쓰고있다니 의외다.
하지만 혼다에게는 VTEC이 있지.
이 엔진 역시 i-VTEC이 적용되어 있으며
VTEC는 5350rpm부터 작동한다.
VTEC이 있어서 단일 캠샤프트로도
저회전 영역과 고회전 영역을
한 방에 다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인건가.
실제로 SOHC는 저회전 토크가
DOHC보다 강하고, 고회전 상태에선
VTEC이 터지니 나름 괜찮은 조합일지도.
그리고 SOHC라 단일 캠샤프트인데도 그걸로
4개의 흡/배기 기통당 밸브를 여닫는 신박한 방식.
이 J35Y6 엔진은 24밸브다.
혼다 엔지니어들은 당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엔진을 만든 건지
운전해보면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엔진의 압축비는 11.5:1로
요즘 기준으로는 그리 높지 않고
보어 x 스트로크도 89 x 93(mm)라
람다 III의 12.3:1, 87 x 92(mm)보다
압축비가 낮고 롱스트로크형이다.
그 말인 즉슨 엔진 회전질감이
으레 VTEC 차량에 기대하듯 짜릿하거나
시원스레 힘이 나오는 느낌이 없다는 뜻.
엔진 회전질감은 평범하기 그지없고
SOHC라 출력감이 강하단 인상도 없다.
난 고 압축비 엔진의 시원함을 좋아하는데
오딧세이는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출발하자 든 생각은
'차량의 부피감은 느껴지되
차량의 중량감은 억제되어있다'였다.
차량의 부피감이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정말로 차가 커서.
오딧세이는 전장이 5235mm로
5155mm인 더 뉴 카니발보다 길다.
그러면서 휠베이스는 딱 3000mm로
3090mm인 카니발보단 90mm나 짧다.
현대기아차가 휠베이스 및 실내공간 뽑는 데엔
세계 1위인건 원래부터 알았지만 새삼 놀랍다.
80mm 짧은 차로 90mm 더 긴 휠베이스라니.
폭은 1995mm로 둘이 동일해서
2m가 되기 딱 직전에 멈췄다.
그 탓인지 주행을 시작하면 오딧세이가
확실히 뒷 꽁무니에 뭔가 더 달린 느낌.
전륜 구동이면서 차량 길이가 매우 길기때문에
뒤에 더 뭔가 붙은 덩어리감은
운전석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
카니발은 차량 자체의 길이는 더 짧으면서
긴 휠베이스 덕에 뒷쪽 오버행이 더더욱 짧아서
이에 비하면 방지턱 등을 통과할때
기분나쁜 피칭이 덜하고 깔끔하달까.
두 번째는 차가 전반적으로 굼뜨다.
물론 이렇게 큰 차가 정말로 스포츠카같이
팍팍 튀어나가면 그게 더 문제겠지만,
굼뜬 원인이 너무나도 명확히 보여서 문제.
그 이유는 바로 3.5리터 V6와 맞물린
혼다가 자체 개발한 10단 자동변속기.
기어가 10개씩이나 되면
각 단을 짧게, 짜임새 있게 설정해서
저단에서는 시원함을 챙기고
여러 개의 항속기어를 통해
속도 영역대를 다양하게 나눠
최적의 연비를 뽑으면 되지 않나?
근데 렉서스도 이러는데, 일본 애들은
10단씩이나 됨에도 저단을 굉장히 길게 가져간다.
물론 미니밴의 특성과는 아주 어긋난 건 아니지만
이건 '미니밴계의 스포츠카'인데
적어도 내가 운전했을 땐 카니발이 훨씬 잘 나감.
카니발의 람다 III + 8단 자동변속기 조합이
내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따분하게 느껴졌는데
오딧세이에 비하면 훨씬 무난하고 반응성도 좋다.
기어비도 문제인데,
변속기 자체가 종합적으로 매우 늘어진다.
변속 속도도 아주 느긋하고
ECON 모드(연비지향)를 놓으면
초반 가속이 아주 답답해질 정도이니.
3471cc라는 배기량이 미국 기준으론
그렇게 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봤을땐 그리 작은 엔진 크기가 아닌데
이럴거면 저배기량 터보를 사용하는게 낫다.
물론 8명이 다 타고(오딧세이는 8인승)
짐까지 실은 상태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등
부하가 많이 걸리면 이 V6 자연흡기가 낫겠지만
8명 다 태워 다니는 경우는 사실 잘 없잖아.
난 사실 이 차의 제원을 모른 상태로 갔는데
운전하면서는 '이거 변속기 CVT인가' 싶었다.
CVT라 생각될정도로 나무늘보마냥 늘어진다.
일반 토크컨버터식 자동변속기인데.
이럼에도 차량의 중량감이 적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첫 번째, 차량이 가벼워서.
오딧세이는 위에 언급했듯 카니발보다 큰 차량인데
공차중량은 2090kg로 카니발(2115kg)보다 가볍다.
부피는 더 큰데 무게는 더 가벼우면
체감되는 무게감은 더더욱 줄어들겠지.
그리고 두 번째는 휠베이스가 더 짧으면서
앞머리의 반응성이 카니발보다 좋고, 빠르다.
그래서 이렇게 긴 차량임에도 카니발보다
쉭쉭 일찍이 코너에 들어가려 드는데
이런 부분은 미니밴 치곤 제법 스포티하지만
정말 코너에 들어가서 안정감있게,
그리고 신속하게 탈출해낼 수 있는가 하면
카니발 대비해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카니발이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하며
더 뉴 카니발이 되면서 주행성능을 약간 내려놓고
승차감을 그보다 훨씬 많이 챙겼었는데,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카니발(KA4)이
놀랄 정도로 더 자신감있게 코너에 들어가며
훨씬 더 적극적으로 코너를 탈출한다.
'미니밴계의 스포츠카' 명색이 말이 아니다.
비가 와서도 있지만,
브레이크 페달의 감각도 카니발 대비해서
썩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운전대의 무게감 및 조향감도
오히려 더 뉴 카니발쪽이
최근 현대기아차의 비약적인
MDPS 완성도 발전으로 인해 낫다.
직선 주행과 곡선 주행 모두 카니발 승.
승차감도 난 더 뉴 카니발이
이번에 승차감에 신경을 쓴 만큼의 값을
여실히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오딧세이는 부드럽지만 댐퍼의 균형감은
상시 일관된단 느낌이 별로 없다.
동글동글하게 충격을 받을땐 받아내지만
속도가 올라가면 다소 힘겨워하는 편.
오딧세이는 운전석에 앉으면
카니발 및 여타 SUV들보다도
위치도 낮고, 무게중심도 낮단 느낌이 드는데
그 자체로는 분명 긍정적이나,
오히려 낮게 앉아있어서 차량 길이로 인해
피칭이 계속 생기는게 더 불쾌하게 느껴짐.
2열의 승차감은 단순히 나긋한걸 선호하면
오딧세이가 카니발보다 낫다 하겠으나
(차량의 중심에 가깝게 위치해서 피칭 이슈가 덜함)
종합적인 균형감과 무난함 속의 안정감은
난 카니발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통상적으로 다인승 위주의 미니밴은
승용차보다 불리하다 여겨지는 SUV보다도
승차감이나 주행성, 실내 고급감이 부족하다 여겨지는데
더 뉴 카니발은 내 시승기에 이미 적어놨듯이
미니밴의 틀을 탈피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덕에
SUV에 훨씬 가까워진 상태이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감각이나
대시보드 및 주변의 느낌 및 사용성 둘 다.
근데 오딧세이는 아직도 너무 대놓고 미니밴.
애가 여러 명이거나 대가족이어서
억지로 사는 듯한 기분을
카니발에서는 이제 비교적 덜 느낄 수 있는데
오딧세이는 구입하려고 서명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리에서 떨쳐지지 않을 듯 하다.
운전석에서 느껴지는 전방위 사각지대 차이가
이런 감각의 주요 원인인 듯 함.
더 뉴 카니발은 미니밴 치고 운전하기 정말 편함.
카니발이 '미니밴계의 SUV'였네.
그래서 혼다 오딧세이는
'미니밴계의 스포츠카'가 아닌걸로.
사실 미니밴이라는 장르에서
스포티함을 따지는게 뭔 의미인가 싶지만
워낙 평가가 좋아서 난 오딧세이가
걸출한 능력이라도 숨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타보니 그런 건 전혀 아니었음.
호박에 줄 그어봤자 수박이 되긴 불가능.
이런 오딧세이는 6050만원.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구비하며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욕을 엄청 먹은
아무리 옵션을 빵빵하게 때려넣어도
그 정도 금액까지 올라가진 않거니와
종합 차량의 완성도 역시
카니발이 내 생각이 훨씬 좋은 듯 하다.
'미니밴계의 스포츠카'라더니
'미니밴계의 스포츠 루킹 카'가 된 오딧세이는
국산이며, 화려한 옵션 및 실내,
저렴한 가격, 더 나은 승차감 및 주행성,
경부 1차선 주행가능여부 등의
막강한 강점들을 두루 품은 카니발과
컵홀더 18개의 실용성을 자랑하는
시에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느낌.
북미에선 잘 나갈지 몰라도,
국내에서는 영 꽝.
여긴 현대기아차 본진이다.
어차피 우리나라에
이미 들어온 오딧세이들은 다 팔렸고
앞으로 입항 예정이 없다니 뭐
오딧세이가 이런 차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이 오딧세이는 5세대 오딧세이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인데,
이 글을 쓰는 7월 24일보다 이틀 전에
북미에는 2차 페이스리프트 버전이 공개됨.
그런데 내가 보기엔 현행과 큰 차이 없다.
고로 2차 페이스리프트 버전이 수입된들
카니발 말고 오딧세이를 굳이 고를
이유가 전무하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