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은 그 어느 때 보다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다.
말라죽는 북극곰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환경 운동가들이 매연 내뿜는 차들을 없애라고
당장이라도 자동차 회사들 본사에
쳐들어갈 기세로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며
나날이 강해지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 회사들은
다운사이징 및 전동화를 도입하고
대배기량 엔진은 사라져가고 있다.
터보를 얹는 것 부터가 이미 엔진음을 망치는 지름길인데,
심지어 유로6d 대응을 위해 미립자 필터까지 달아놓으니
사운드가 아주 엉망이다.
출력도 떨어지고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페라리 로마 및 포르토피노M.
이렇게 호흡기 떼기 직전 상태에 놓여있는
다기통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들은
이제 슈퍼카 및 하이퍼카에서나
간신히 찾아볼 수 있고,
고성능 스포츠 세단이나 비즈니스 세단에서는
점차 자취를 감추는 중.
몇시간 뒤 공개될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W206)조차도
이제 C 63 AMG에 4기통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가 짝지어진단다.
이미 A45 AMG, CLA45s AMG에서 본
그 M139 1991cc 엔진 맞다.
최신 G80 M3 역시 직렬 6기통 터보,
B9 RS4도 V6 터보가 얹힌다.
이제 어디에도 자연흡기 8기통 엔진이 올라간
컴팩트 스포츠세단은 찾을 수가 없을거라고,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 운명이라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어제까지는.
갑자기 렉서스가 이런 정신나간 물건을 들고
등장했다. 이름하여 렉서스 IS 500.
500이라는 숫자를 보는 것이 굉장히 오래간만이지 않나.
특히나 이런 D세그먼트 차량에 붙는 것은 처음 본다.
그리고 설령 500이라는 뱃지가 붙더라도,
요즘의 아주 악질적인 행태를 보면
'5000cc급 출력'을 내는
다운사이징 엔진을 얹는 경우가 9할인데
렉서스는 정직하게 5.0L급 엔진을 얹고
IS의 뒷면에다 500 뱃지를 붙였다.
심지어 자연흡기다. 터보 같은 것은 안 키움.
우리가 독일산 스포츠세단에 자연흡기 V8이
얹히는걸 본 게 도대체 언제적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히 오래 된 오늘날,
홀연듯이 렉서스가 이 무시무시한 엔진을
작은 IS에 얹고 나타난 것이다.
렉서스조차도 자사의 플래그쉽 세단
LS 중 LS 500 모델에는
이제 3.5L V6 트윈터보 엔진을 얹고
LS 500이라고 하는데,
IS 500은 정직하게 5.0L V8 엔진을 얹고
IS 500 뱃지를 부여받았으니
눈물이 앞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제일 중요한 제원부터. 렉서스 IS 500은
도요타의 2UR-GSE 4969cc 엔진을 얹는다.
이것은 현재 렉서스의 LC 500과 RC F만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초대 IS F가 쓰던 것과 동일하지만
출력을 비롯한 여러가지 부분이 개선된 유닛이다.
야마하가 설계를 부분적으로 담당했으며
D-4S 직/포트분사 시스템도 얹혀있다.
IS 500은 이것을 얹고
472마력 @ 7100rpm의 최고 출력을 자랑하며
54.6kgㆍm @ 4800rpm의 넉넉한 최대 토크를 선보인다.
스펙을 보건대 상당한 고회전형이다.
7300rpm이 레드라인인데 최대토크가 그 직전에서 나오니.
최고출력은 LC 500과, 최대토크는 RC F와 동일하다.
렉서스가 발표한 0-60mph(0-96km/h) 가속은 4.5초이며
RC F와 동일하게 아이신 제조 8단 자동변속기가
유일한 옵션으로 제공된다.
벌써 가속력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요즘의 과급기 장착 차량들이
너무나 빠르기 때문이지
IS 500의 가속력이 출력 대비 처진다고는
보기 어려울 듯 하다.
웃기게도 이 차량은 IS F가 아니고 IS 500이다.
정확히는 F Sport라고 요즘의 많은 제조사들이
자사 고성능 브랜드 이미지 끼워서 팔아먹으려고 런칭한
세미-고성능 서브브랜드와 유사한 것인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같은 세그먼트
RC F는 정식 F 모델로 출시를 했고 IS는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IS 500의 포지션상 경쟁상대는
메르세데스-AMG C 43, BMW M340i, 아우디 S4 등이 된다.
그러나 출력만 보아도 IS 500는 사실
이들과 맞붙을 수준이 아니라는걸
스펙표 좀 읽을 줄 안다면 진작 눈치챘을 것.
여기서 렉서스의 영리한 계산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어차피 렉서스는 동급 독일차들과 견주어서
대단히 다이나믹하다거나 스포티한 주행을
염두한 브랜드가 아니며
스포츠 세단의 정점들인 메르세데스-AMG C 63s나
BMW M3과 겨루기에는
자연흡기 엔진을 얹고서는
소폭 부족한 출력과 종합 성능이다.
세미-퍼포먼스 차량보다는 훨씬 넉넉한 힘을 갖추면서도
일상적인 사용을 두루 감안해
F Sport 모델로 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렉서스의 F 브랜드 자체가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카를 표방하기에
그보다도 한결 편안하게 탈 수 있는 데일리카이면서
큰 배기량의 여유넘치는 파워를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층을 겨냥한 것이다.
일종의 틈새 시장을 제대로 공략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이 차는 기본이 후륜구동이다.
국내의 경우는 BMW M340i 세단이 특이하게 사륜구동을 빼고 들어왔지만
(M340i 투어링과 M440i의 경우는 그대로 xDrive를 달고 출시)
메르세데스-AMG의 C 43, 차세대 C 63 및 신형 G80 M3 등
이제 거의 다 사륜구동으로 넘어가는 추세이다.
아무리 구동배분을 열심히 앞뒤로 차가 알아서 넘겨대고
요즘의 사륜구동은 탄력적이며 안정감도 향상시켜 준다지만
완전한 후륜구동과는 당연하게도 주행 감각에서 차이를 많이 보인다.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IS 300이나 IS 350처럼
RWD 및 AWD 두 가지 모델로 출시될 듯 하다.
렉서스가 주장하기로 신형 4세대 IS는
역대 가장 다이내믹한 렉서스라는데, 타봐야 알 듯.
그밖에 고성능 모델로써 필히 갖추어야 할 사항들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우선적으로 브레이크 시스템이 강회되었는데
전륜 355mm, 후륜 325mm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되었다.
이는 IS350 F Sport보다 강력해진 시스템이지만,
RC F의 브렘보 브레이크보다는 약간 처지는 수준이다.
국내에는 제네시스 쿠페가 채용한 것으로 많이 알려진
토르센 방식의 LSD(Limited Slip Differential) 역시 장착되었으며
19인치 경량 휠은 애프터마켓 휠로 유명한 Enkei에서 제공한다.
IS 500의 공차중량은 IS 350 F Sport보다 겨우 65kg 무거운 1765kg지만
4세대 IS 자체가 가벼운 차가 아닌지라 무게가 적진 않다.
V8을 얹은 것 치고 무게 증가 억제는 상당히 잘 했지만
기반이 되는 차량 자체는 경량화가 잘 안 되어 있는 탓이다.
강산이 한번 변하기 이전인 딱 10년 전만 해도
후륜구동과 V8 자연흡기의 만남은 마치
고성능차의 성공공식과도 같은 존재였었다.
그 당시엔 C 63 AMG 및 M3 (E92)와 RS4 (B7) 역시 다 그랬으니까.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에선 미국산 머슬카에서나
간신히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마침 차세대 메르세데스-AMG C 63이 4기통 터보로 바뀐대서
절망하고 있던 찰나,
이런 한 줄기 구원의 빛 같은 차량이 등장하다니
우리의 요즘 상식과 방향을 뒤집어 엎는 차량이라서
더더욱 반가운 것 같다.
어쩌면 역사적인 순간일 지도 모른다.
이제 세상에 이 IS 500을 이후로 두 번 다시
이런 대배기량 자연흡기 D세그먼트 스포츠세단이
등장하는 일이 없을 지도 모르며
사실 그럴 것이 굉장히 유력하다.
5년 후에는 더더욱 환경 규제가 강력해질 테니까.
운명을 다해가는 매니아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의
꺼져가는 불씨를 이 IS 500가
마지막으로 한번 되살리려고 하고 있다.
이번이 정말 끝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아쉽지만,
2021년에 이런 차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나 큰 행운 아닌가.
있을 때 잘 누리자.
신형 렉서스 IS 500은 올 가을 북미에 출시될 예정이며,
국내에 도입될 지는 미지수이다.
북미에 파는데다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거의 팔리지 않는 모델들 역시 국내에 정식 발매 된 상황이라
출시의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으나
국내에는 IS의 고배기량 트림이 들어온 적이
지금껏 없어서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
(초대는 IS200만, 그 뒤로는 IS250 및 IS200t/300만
국내에 들어왔다. IS350 판 적 없음)
중고가 6천만원대로 떨어져 개나소나 타고
공도에서 설치는 F80 M3와
한 판 붙기에 IS 500으로 충분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