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이란 무엇일까.
독보적 존재라는걸 남들이 인정케 하는 능력?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만큼의 차이점?
아니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분위기?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특별함'은 명확하다.
돈을 더 낼 이유를 만들어주는 가치.
자동차에 있어서 '특별함'은
내가 내린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천만 원짜리 귀여운 경차부터
수십억 원에 이르는 하이퍼카까지.
높은 가격을 부르는 자동차는
정말 100배 더 빠르고
100배 더 편안하며, 100배 더 고급스러워서
이런 엄청난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사람들이 사는 것일까.
'가성비'가 어느때보다 주목받는
코로나19로 인한 불경기의 한복판에서
혜성같이 한 차량이 등장했다.
바로 제네시스 GV80.
제네시스 GV80은
만드는 입장에서는 특별한 차다.
제네시스의 첫 본격 SUV.
'특별함'을 주고자 탄생한 브랜드 제네시스와
그 제네시스의 특별한 처음 GV80.
사람들은 첫 번째 경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처음 가본 곳, 첫 사랑, 그리고 첫 차.
제네시스측에서도 밝히듯이 GV80은
THE FIRST SUV BY GENESIS.
제네시스라는 브랜드 이름 자체도
'창세기'를 뜻하니 이 얼마나 처음에 집착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GV80이 구입하는 입장에서도,
구입 후 타고다니는 시간 속에서도
특별함을 오너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GV80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지
GV80과 하루를 보내며 지켜보기로 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첫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독자 모델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GENESIS OF GENESIS 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로
나온 지 시간이 약간 흘렀음에도
GV80을 선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준대형 고급 SUV를 위한 레시피는
제네시스와 제네시스의 고객,
이 둘에게 모든 것이 처음이다.
첫 술은 성공적으로 떴는지,
출시 이후 2년 가량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제네시스 GV80은 어떤 위치에 와 있는지
찬찬히 한번 음미해보도록 하자.
제네시스가 가장 공들이는 부분이라면
단연 디자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제네시스는 목표로 삼는 경쟁사 대비
치명적인, 극복 불가능한 약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신생 브랜드라 헤리티지가 없다는 것이다.
뒤늦게 럭셔리 브랜드라는 전쟁터에 참전한
렉서스마저도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반면
제네시스는 별도의 브랜드로 분리한 지
십 년이 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생 브랜드.
업계를 막론하고 '고급', '명품' 브랜드로 오면
그 어떤 곳보다도 역사와 전통이 중요해진다.
에르메스가 어제 탄생한 브랜드라면
버킨 백에 몇천만 원이라는 가격은 붙일 수 없을 터.
블로그의 글을 쭉 둘러보다 보면
내가 특정 브랜드를 상당히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여기도 헤리티지 하면 원 탑이다.
그럼 이런 약점을 가진 제네시스는 어찌 해야 할까.
세상이 창조되는 창세기 단계인 만큼
제네시스만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제네시스'가 브랜드명이 아닌 모델명이던 시절
출시되었던 G80(DH)의 디자인은
자타공인 다시 나오기 힘든 역대급 명작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네시스가 어떤 브랜드인지
전혀 나타내고 있지 않은데,
아직 현대자동차 산하 모델이던 시절 차량 답다.
"제네시스는 이제 두 줄입니다"
제네시스의 새로운 패밀리룩이 발표되던 날
나는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있다.
오늘날까지 살아있거나 유명한 디자인 큐는
'나는 이렇게 할 거예요'라고
대놓고 밝혀서 유명해진 게 아니라
모터스포츠에 참전하며 유명세를 모았거나
차량 자체의 인기가 오르면서 같이 유명해진 경우,
혹은 브랜드의 오랜 역사 속 디자인을 재해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기에 제네시스는 신선했다.
제네시스가 가진 약점을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두 줄이 뭐 어쨌다고?"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두 줄로
디자인을 구성한 제네시스의 모델 라인업을
쭉 훑어보면 단연 GV80이 대장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산하의 자동차답게
권위적인, 그리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겨야 하면서
'영 럭셔리'라는 제네시스 디자인의 컨셉 답게
너무 나이들어보이면 안 되는 그 경계선 위에
굳건히 잘 서 있는 듯 하다.
일부 브랜드들이 관심을 받기 위해
극단적인 스타일링에 나서는 것을 생각하면
제네시스의 디자인은 눈길을 끄면서도 적당하다.
특히나 GV80은 전면 마스크의 비례감이
유사한 디자인 큐의 G80보다 우수해서
날렵한 헤드램프와 웅장한 그릴,
수평으로 넓게 벌어진 범퍼의 장식들까지
자칫 뭉쳐 보이기 쉬운 준대형 SUV임에도
비대해보이는 느낌 없이 깔끔하다.
시승 차량의 외장 색상은 '우유니 화이트.'
디자인이 잘못되면 뚱뚱해보이기 쉬운 색상인데
GV80의 고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컬러라니
GV80의 디자인이 정갈하면서도 대담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이루어졌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비크 블랙'파지만,
GV80은 그 중후한 스탠스에도
대부분의 컬러를 손쉽게 소화해낸다.
매력적인 디자인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제공받은 차량은
오각형 배기구 팁이 제대로 장착되어 있다.
가솔린 모델 중 가장 강력한 3.5 터보 모델인데
G80 3.5터보와 동일한 3470cc 트윈터보 V6.
현대트랜시스의 8단 자동변속기와 짝지어진다.
GV80은 3.0 디젤 모델이 가장 강세이고
나 역시도 디젤 엔진이 차량과 궁합이 가장 좋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번에 가솔린 모델을 가져온 이유.
눈물나는 기름값을 뒤로하고서는
고급 SUV에 걸맞는 품격엔 역시 3.5 터보 모델이 제격이기에
차량에서 특별함을 파헤쳐보고자 하는 이번 시승에서는
가솔린 3.5 터보 엔진이 최선이라고 보았기 때문.
그리고 디젤 GV80은 이미 3번이나 만났었기도 하고.
GV80이 처음 등장하던 당시
에어 서스펜션의 부재로 인해
타보지 않은 이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는데
결론은 단순하다. 필요 없으니 없는 것.
해당 차량에는 22인치 휠이 장착되어 있는데,
요철을 밟을 시 무지막지하게 큰 휠로부터 오는
쾅 하는 충격이 놀랄만큼 잘 가려져있다.
G80에 20인치 휠을 장착하는 것 보다도
GV80에 22인치 휠을 장착하는 것이
큰 휠에 대한 부담이 훨씬 적다. 타이어값 빼고.
20인치 휠을 끼운 GV80 역시 타보았지만
승차감 저하에 대한 우려로
22인치를 건너뛸만한 이유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GV80 3.5 터보 모델은 3.0 디젤 모델보다
스프링과 댐퍼 모두 살짝 더 단단한데
유럽에 판매되는 GV80이 내수용보다 더 단단하다니
유럽으로 나가는 모델은 전 모델이 이 셋업인가보다.
디젤 모델은 푹신한 댐퍼가 너그럽게 충격을 지워낸다면
가솔린 3.5 터보 모델은 한결 탄탄해진 감각으로
SUV의 약점인 롤과 차체의 움직임을 억제한다.
이런 적정 수준에서의 승차감 억제와 주행성능은
굳이 차량 운용 중 부담이 증가하는
에어 서스펜션이 필요한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승용차로서 G80은 경쟁 모델 대비 아쉬움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긴 어려웠는데
SUV로서 GV80은 이정도면 에어 서스펜션의 부재가
타는 내내 딱히 생각이 나지 않으면서
전방위적으로 아쉬움 역시 별로 없다.
차량 가격과 구매층을 생각했을 때 적절한 타협점이다.
'고급'이라는 수식어와 '타협'은
한 줄에 나란히 붙을 수 없는 단어이긴 하나
차량 가격을 생각하고 양심에 손을 얹자.
시승 차량은 2021년식으로,
2022년식 GV80은 승차감이 더욱 개선되었다 하니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GV80 3.5 터보 모델의 경쟁 차종이라면
메르세데스-벤츠의 GLE 450과 BMW의 X5 40i,
아우디의 Q7 50 TFSI 정도가 될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GLE 450은 큰 충격을 받을 시
에어 서스펜션이 부드럽게 소화해내는 것이 강점이다만
GV80 3.5 터보가 이외의 환경에서는
GLE 450과 승차감 보존량이 유사하며
BMW X5 40i는 인터넷 슈퍼카로서 명성이 공고하지만
조금 높은 속도(^^)로 올라가면 안정감은 GV80이 앞선다.
최근 BMW들이 고속안정감 면에서 처참한 모습을 보이는데
어느새 국산 SUV에 추월당하는 세상이 왔다.
작정하고 역동적인 주행을 하고자 하면
X5가 앞서지만 이런 큰 차로 그런 짓을 누가 한다고.
X5를 타본 적 없는 인터넷 불차 마니아들만
뇌내망상으로 신명나게 떠받들 뿐이다.
속도를 조금 붙였을때는 GLE 450과 GV80 3.5 터보가
확실히 안정감 확보 면에서는 우세한 편.
아우디 Q7 50 TFSI는 주행감각을 따지면
GV80 3.5 터보가 훨씬 우세하다고 본다.
승차감과 주행 성능,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감각에서
GV80은 어느 하나 떨어지는 지점 없이 고득점이다.
하나만 잘 하는 차(를 비롯한 공산품)를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모든 면에서 빠지지 않기가 어려운 것이지.
한 과목만 죽어라 파면 그건 100점 맞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전 과목에 대해 90점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 공부 시간을 요구하는 것처럼.
프리미엄 브랜드로 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그런 면에서 GV80 3.5 터보는
제네시스의 첫 번째 SUV로서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3.0 디젤 모델의 주행 성능은 이보다 소폭 낮지만
차량이 주로 사용될 용도를 고려하면 역시 충분하다.
GV80 3.5 터보의 변속기는
현대트랜시스제 8단 자동변속기인데,
SUV에 올라가는 것으로는 충분히 빠른 변속 속도와
탄탄한 변속감을 스포츠 모드에서는 구현해놓았다.
메르세데스-벤츠가 GLE 450에 사용하는 9G-트로닉보다
변속 충격 억제 등의 안정감은 소폭 낫고 성능은 유사하다.
BMW X5의 ZF 8HP는 자타공인 우수한 성능을 선보이나
GV80 3.5 터보가 그리 멀리 있지는 않다고 본다.
국산 부품을 사용하여 이 정도의 성능을 낸다면
구태여 수입 부품을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동일한 ZF 8HP를 사용하는 아우디 Q7 50 TFSI는
애석하게도 위에 언급된 3개 차종보다 한참 뒤처진다.
결국 변속기가 어느 회사 제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차량 제조사에서 이를 받아와 셋팅하는 역량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인데,
이는 수직 계열화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국산 부품 채용하여 국내 연구소의 결실로
그렇게 따라잡고싶었던 외국 기업들과
이제 어깨 높이를 비슷하게 맞출 수준까지 왔다.
브레이크 또한 (2021년식 기준) 3.5터보 전용
4개 피스톤의 강화된 브레이크가 적용되어 있는데
제동 파워는 이 큰 덩치를 세우는 데 모자람이 없고
이제는 이 브레이크가 전 라인업에
20인치 휠 이상을 선택하면 포함된다.
3.5 터보는 기존의 흰색 G E N E S I S 레터링 캘리퍼가
코퍼 색상으로 변경되는데,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나는 빨간색 캘리퍼를 아주 좋아하지만
특색은 확실히 있어 괜찮은 선택이다.
넉넉한 파워의 고급 준대형 SUV로
만끽할 수 있는 것은 단연 '여유'일 것이다.
시승 당일은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단풍이 멋지게 지던,
이런 차를 타고 가벼운 나들이를 떠나기 좋은 날.
빠르지만 굳이 빠르게 달릴 필요가 없는 차.
고급차의 핵심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롤스로이스가 RPM 게이지 대신
파워 리저브 게이지를 계기판에 다는 이유도 동일하다.
내가 얼만큼 악셀을 밟건 힘이 흘러넘친다는 느낌이 강해야
이만큼 기름을 태우는 보람도 있고,
국산차에 9천만원을 태우는 보람도 있을 것 아닌가.
G80 3.5 터보는 트윈 터보와 큰 배기량을 동원한 것 치고
380마력과 54kg·m의 토크가 아쉬웠는데,
태생이 가족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SUV인 GV80은
정말 알맞고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된다.
기름값을 지불할 만큼의 금전적 여유만 된다면.
시내에서는 여지없이 4~5km/l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트윈 터보임에도 터보랙의 존재는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지만
부스트가 금세 차면 이 큰 덩치가 쏜살같이 내달린다.
내달리고자 하면 GV80 3.5 터보 역시 밀리지 않는다.
올해는 유독 날씨가 변덕을 심하게 부려
10월인데도 한여름같이 더운 날이 찾아오기도 하고
11월인데 예년보다 추운 날이 이어지기도 했다.
시승 당일은 날씨까지 받쳐주는,
찹찹한 공기가 단풍잎을 조금 더 붉게 물들였던
파란 하늘의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북한강변을 따라 차분히 단풍을 즐기니
어느새 커피 한 잔을 위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일 오후에 즐기는 차분함은
연차 하루하루가 아까운 직장인들에게
1년 중에 며칠 갖기 힘든 특별한 느낌이다.
나를 포함하여 늘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나 가슴 한 켠에 웅크리고 있지 않은가.
GV80은 이런 날과 여정을 위한 완벽한 차다.
혼자 훌쩍 나서도 좋고 누굴 더 태워도 좋다.
쉬러 나왔는데 운전하는 동안 힘들면 안될 것 아닌가.
탑승객 모두에게 잔잔한 편안함을 선사하는 GV80은
주차장에서 이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너무나도 손쉽게 나를 이 곳에 데리고 왔다.
차량 곳곳에 넉넉하게 발라진 방/흡음재와
V6 가솔린 엔진다운 바리톤 사운드,
액티브 로드 노이즈 컨트롤(RANC)의 협공은
어떤 것도 틀어놓지 않은 채
창문을 열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감상하도록 돕고
부드러운 엔진의 회전질감과 더불어
기분 좋은 우아함이 운전하는 시간을 지배한다.
3.5 터보 모델 뿐만 아니라
스마트스트림 I6D 엔진 역시 직렬 형식 답게
워낙 부드러워 3.0 디젤 모델을 선택하더라도
이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된다.
날이 더 많이 추워지고 마일리지가 더 쌓이면 모르겠지만.
고급차의 필수 덕목이라면 오디오가 빠질 수 없지.
GV80의 18스피커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은,
악기 위주의 교향곡이나 차분한 클래식 감상에는
어울리는 웅장한 소리를 들려주지만
필자의 나이가 23살인걸 감안하여
신나는 아이돌 노래나 보컬이 강조되는 곡을 틀면
아쉬움이 조금 남게 된다.
GV60부터 시작해서 이제 제네시스는
뱅앤올룹슨 사운드 시스템을 채택할 것으로 보이는데,
GV80도 페이스리프트 때 채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은 따가운 가을볕에 그늘로 피신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GV80을 바라보며 커피 한 모금.
더 이상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그 위상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신인 모델들에게 꿈의 무대로 여겨지는
프라다 패션쇼 런웨이에 선 신인 같다.
더욱 비싸고 스스로 호화롭다고 외치는
더 긴 역사의 프리미엄 SUV가 판치는 이 무대에
신인이 위풍당당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다.
이미 GV80은 주 무대인 북미에서
수출되는 즉시 인도되는 높은 인기에
경쟁사의 경쟁모델들과 달리 딜러쉽에서
MSRP 대비 할증을 붙여 팔 정도이다.
위에 언급한 메르세데스-벤츠 GLE와 BMW X5는
둘 다 MSRP만큼 다 받고 팔지 않는데 매우 이례적이다.
새로 등장한 스타가 단숨에 노장들을 떨게 하다니
GV80의 존재감은 차량의 디자인만큼이나
이미 증명된 셈이다.
커피를 사랑하고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는 내겐
이만큼 커피와 함께하기 좋은 차가 있나 싶다.
외장 디자인과 차량의 주행질감,
탑승객을 감싸안는 실내의 분위기까지.
나는 산미가 조금 있는 커피를 선호하는데
GV80 3.5 터보가 비슷한 느낌을 선사한다.
부드럽다고만 하기에는 신 맛이 혀를 두드리고
쾌활하다고만 하기에는 적당히 점잖다.
산미가 살아있지만 바디감 역시 놓치지 않는
그 적절함까지 GV80이 모두 다 가졌다.
나는 케멕스 드리퍼로 내려 마시는걸 좋아하는데
차에서 맛을 음미할 수 있다면 딱 그 느낌이다.
묵직함이 과하지는 않지만 풍미는 충분히 느껴지는.
셰프의 자존심과도 같은 시그니처 디쉬는
남들과 다른 독창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대표 요리이자
본인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GV80은 틀림없이 제네시스이자
그 어떤 차의 노선을 똑같이 따라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맛까지 제대로 챙겼다.
GV80은 명실상부 제네시스의 시그니처 디쉬답다.
문을 열고 실내로 자리를 옮겨도
GV80이 선사하는 기분 좋은 감각은 그대로다.
나는 이 옵시디언 블랙 / 바닐라 베이지 투톤 인테리어가
단연 GV80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G80은 이런 색상 조합이 없다.
고급차일수록 나는 투톤 내장에서 선명한 대비를 원한다만
G80은 옵시디언 블랙이 아닌 안트라사이트 그레이가
바닐라 베이지와 조합되어 감동이 덜하다.
그리고 시그니처 셀렉션 II 인테리어는
제네시스답게 소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나파 가죽의 질이 우수한 건 물론이고,
실내 전방위적으로 인조가죽 장식을 덧댄데다
천장까지 스웨이드로 마무리해 호화롭기 그지없다.
천연 오픈포어 우드트림의 적용도 눈에 띄나
만졌을때의 질감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좋겠다.
트림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시그니처 디자인 셀렉션 I에 기본 포함된
G-매트릭스 알루미늄 트림은 조금 그렇다.
돈을 아끼려면 아예 기본 인테리어를,
GV80을 본격적으로 구입한다면
꼭 시그니처 디자인 셀렉션 II는 선택하시라.
11월이 되니 생각보다 해가 빨리 눕기 시작한다.
화사하고 밝은 실내에서 지켜보고 있는 해도
낮에 보았던 붉은 빛으로 점점 물들어가는데
보통 밝은 물체를 제대로 감상하는 법은
암실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밝은 계열의 바닐라 베이지 실내가
강렬하게 빛나며 내려가는 해를 감상하기에
방해가 될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적청색으로 바뀌어가는 하늘과
하늘하늘하면서도 밝은 바닐라 베이지색 실내가
금세 하나로 만나 특별한 하루의 마무리를 알린다.
'마무리'에 대한 사자성어가 굉장히 많을 정도로
사람들은 마지막 매듭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완벽한 경험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좋은 느낌을 유지해야만 한다.
돌아오는 길에도 GV80 3.5 터보는
갈때만큼이나 편안했으며,
창 밖 풍경을 잠시 감상하기도 하고
어느새 퇴근 시간을 맞이해
정체가 시작된 서울 시내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했다.
기분 좋은 퇴근길.
오늘의 경우는 쉬다 오는 것이었지만,
만약 직장에서 막 나오는 길이었어도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퇴근은 원래 기분좋은 것이지만
조금 더 들뜨게 만들어주는 존재.
진정한 고급은 절대 티내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
스스로 고급이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저급한 것이다.
GV80의 시동 버튼을 누를 때의 느낌,
G-매트릭스 패턴의 다이얼을 만져가며
선곡할 때의 감촉과 속삭이듯 움직이는 오토 윈도우까지.
탑승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GV80은 꼼꼼히 설계되었음을 타고다니며 느낀다.
거기에 더해 특별한 날에도 특별함을 부각시켜주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시간들에도
약간의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은
이런 차를 왜 타는지에 대한 이유를 선물해준다.
드디어 제네시스가 '고급차 만드는 법'을 깨우쳤다.
또한 GV80에 적용된 HDA II 역시 이를 돕는다.
나는 안 쓰지만, 정체 구간에서 유용한 옵션임은 분명하다.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패키지 II를 선택하면
차량 전반적으로 센서의 갯수가 증가하니
발이 쉬는 퇴근길을 원하면 고려해볼 만 하다.
다만 정신줄까지 쉬게 되면
그 뒤는 예상하기 힘들다.
허나 그렇더라도 최종 결과는 이미 우리가 보았기에
적어도 이승에서의 삶이 유지될 것이란건 알 수 있다.
다시 글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정말 GV80은 존재가치가 충분한가?
그리고 오너들로 하여금 특별함을 선사하는가?
하루를 함께 보낸 결과,
나는 질문을 듣는 즉시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여러 번 시도해서 겨우 입성해도
박수를 받을 만큼 험난하고 뚫기 어려운 곳이
바로 이 프리미엄 브랜드의 준대형 SUV 세그먼트인데
어째서인지 제네시스는 자사의 첫 SUV GV80으로
한방에 존재감을 과시하며 링 위에 올라섰다.
마치 파5홀에서 초보 골퍼가 홀인원을 기록한 셈.
확률상 아주 불가능은 아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치는
그런 대단한 업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지금 이렇게 좋게 평가하는 나 조차도
출시 당시에는 이렇게 잘 나왔을거라 예상 못했다.
GV80과는 이번이 벌써 네 번째 만남인데,
만나면 만날수록 그 가치가 눈 앞에 선명해진다.
평가를 위한 잣대를 모든 곳에 들이대도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두루 허들을 뛰어넘으며
고유의 독창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과시하는
그 어려운 작업을 GV80이 해냈다.
벤테이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외관에서 받는 사람들이 꽤 되지만
운전석에 앉아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GV80은 또 동급에서 유일하게 2열 좌석에
전동조절 및 열선, 통풍이 전부 지원되는 차.
SUV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려면
적어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이 와야 한다.
심지어 2022년식부터 옵션으로 새롭게 추가된
전동식 사이드스텝 역시 마찬가지.
마이바흐 게 섯거라.
프리미엄 브랜드란 모름지기 돈을 더 받아
'소유하면서 가지는 남다른 경험'을 패키지로 제공한다고,
단순히 가죽과 금속 좀 더 발라서 파는 게 아니라고
나는 누누이 주장해왔었고 GV80은 정말 다행히도
단순히 비싼 차 수준에서 멈추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돈을 더 지불할만한 '특별함'이 뒤에 숨어있다.
그래서 제네시스의 첫 SUV임에도
인기가 이렇게 높은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실질적으로 7천만원 이상인 이 차를,
처음 보는 제네시스란 브랜드를 뭘 믿고
그런 큰 금액을 지불하며 가지려고 하겠는가?
자동차라는 것은 다른 공산품과 다르게
수준미달의 제품들은 구입 시의 돈 낭비 뿐만 아니라
소유하는 시간 내내 스트레스를 줘서 열받게 만든다.
이런 큰 금액을 내며 무언가를 구입할 때는
사람들은 굉장히 신중해지고 똑똑해진다.
그에 걸맞는 특별한 차량이 나왔기에
지금 계약하면 차를 1년 뒤에 받는 상황이 펼쳐진 것 아닐까.
특별한 날 뿐만 아니라 매일을 장식해줄 특별한 차.
제네시스 GV80은 탄생 과정부터
생산되어 출고 고객에게 인도되고,
그들이 타고 다니며 보내는 시간들까지
특별함의 연속이고,
그래서 제네시스 GV80이라는 책은
작가가 집필한 그 순간부터
독자가 그것을 읽고 일상이 달라지는
선순환의 과정을 구매자들에게 선사한다.
처음, 그 가슴뛰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다시 오지 않을, 처음.
처음이라는 특별함에 걸맞는 탁월함.
그리고 탁월함과 어우러지는 우아함.
우아함과 멋드러지게 손잡은 특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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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80,
THE FIRST SUV BY GENE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