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판매되는 3.5세대 (2차)LCI 미니는
부활 직후 당시의 미니와는 조금 다르다.
이름이 '미니'인데 차는 이제 4명이 타도
그냥 탈만한 수준까지 커졌고
한정판 성격이 강했던 JCW가
3세대 들면서 일반 모델로 편입되었으며
바야흐로 SUV 시대를 맞이하여
쿠퍼 3도어가 아닌 컨트리맨이
브랜드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자랑중이다.
미니라는 브랜드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입장에선 이런 변화마저도 사랑하지만
가슴 한 켠에는 10여년 전의 미니,
야구 모자를 뒤집어 쓴 그 악동같던 이미지와
천진난만한 고-카트 필링의 주행질감이
한 번씩 그리워질 때가 이따금 있다.
3세대 차량은 사이즈가 전작보다 커지고
전반적인 차량의 성격과 분위기가 성숙해져
폭 넓은 고객들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2세대의 경우 쿠퍼 S가 가장 상위 모델.
JCW 모델도 지금처럼 존재했지만,
별개의 모델이 아닌 쿠퍼 S의
성능 강화 디럭스 패키지 정도로 보면
얼추 맞으니 지금과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그런 미니 쿠퍼가 3세대로 오면서
JCW는 231마력의 별도 모델로 분리되고
쿠퍼 S는 이제 왕관을 머리 위에서 내려놓았다.
'S'라는 빨간색 레터링은 미니 라인업에서
스테로이드 같은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이제는 덜 매워진 풋고추 수준이 됐다.
아리따운 금발의 라푼젤 공주님이
마녀에게 납치당해 탑에 갇힌 셈.
미니는 그래도 미니인데,
표현이 너무 과격한가?
영화 속의 라푼젤은 결국
탑에서도 탈출하고 왕자님도 살렸으며
왕과 왕비 곁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렇다면 이 3세대 미니 쿠퍼 S는
영화같은, 지극히 동화다운 결말일까.
유니언 잭 모양 테일램프가 적용된
3.5세대(1차 LCI)를 넘어서
2차 LCI까지 온 만큼
현행 미니는 성숙할 만큼 성숙했다.
영화 속 라푼젤은 성인이 되는
18세 생일을 지나면서
우리가 아는대로의 좋은 결말로 향하는데
미니도 성숙해질 대로 성숙해진 만큼
마무리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미니 쿠퍼 S의 제원부터 간단히 보고 가자.
미니 쿠퍼 S는 BMW의 1998cc B48 엔진을 쓰며
최고 출력 192마력, 최대 토크 28.55kg·m.
최대 토크를 소수점 두 자리까지 표기하는건
아우디만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엔진 자체는 쿠퍼 JCW와 동일하나
출력과 토크가 디튠되어있는 유닛.
3기통 B38 엔진의 쿠퍼보다는
출력과 토크가 꽤 높지만
요즘 세상에 192마력이라니
크게 눈에 띄는 수치는 아니다.
무식한 머저리들이 자꾸 JCW보고
벨로스터 N보다 출력이 낮다고 짖어대는데
S의 경우는 나도 할 말이 조금 없어진다.
신형 골프 GTD가 국내에 출시될 지 모르겠지만
골프(8세대) GTD는 2.0L 디젤인데 200마력.
차세대에서는 조금 분발해야겠다.
아무리 미니는 출력으로 타는 차가 아니라지만
명색이 쿠퍼 S인데 너무 순하면 안 되잖아.
BMW의 B48은 늘 느끼지만
터보 엔진 치고 리스폰스나 효율성은 좋은데
너무 무색무취라 특색이 안 보인다.
꽤 부드럽게 회전하는 EA888(폭스바겐-아우디)나
살짝 거친 맛의 M264(메르세데스-벤츠)대비
눈에 띄는 무언가가 하나도 없어서 난 별로.
근데 그 엔진으로 고유의 캐릭터를 부여한 JCW는
벨로스터 N 따위를 가뿐하게 즈려밟는
상당히 듣기 좋은 사운드를 구현해서
BMW 그룹 내에서 B48 탑재 차종은
유일하게 JCW만 그동안 사고 싶었었다.
정말 아쉽게도 쿠퍼 S는 그런 자극적인,
고막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나름 굵은
그런 소리가 하나도 없고 너무 심심했다.
배기 시스템도 당연히 JCW와 다르고
가상 사운드 시스템도 JCW에는 있는데
S의 경우는 다 빠져서 아무런 생각이 안 들 정도.
여러모로 2인자로 밀려난 'S'의 포지션이
운전하는 내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시승 차량은 5도어라
3도어 차량보다 약간의 주행질감을 손해보지만
패션카로서 구입하는 게 아니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5도어가 편해 보인다.
일단 뒤로 드나들기가 압도적으로 쉽고,
차 사이즈가 이제 '미니'가 아닌 탓에
뒤에 성인 남자가 타도 못 탈 정돈 아니다.
일전에 쿠퍼 5도어도 타본 바 있는데,
쿠퍼 5도어와 쿠퍼 S 5도어 간의
주행성 차이는 생각만큼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쿠퍼 5도어가 3기통 엔진 덕에
앞이 가벼워서 주행감 자체가 활기차고
시시하고 회색빛의 시내만 돌아다녀도
무지개빛 롤러코스터를 타고다니는 것 같은,
동화 속 뛰어다니는 토끼 같은 느낌이었는데
쿠퍼 S 5도어는 JCW와 동일하게 4기통이라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아 그저 그랬다.
고-카트 필링을 극대화한 JCW로 가던지
(JCW는 5도어 모델이 없다)
발랄하고 활기찬 쿠퍼 모델로 가던지
둘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쿠퍼 S의 어중간한 느낌은
3도어의 날쌘 느낌을 손해봤다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게 한다.
이번 2차 LCI를 진행하면서
내/외관의 스타일링을 약간씩 손봤는데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미니를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자꾸 이마저도 보듬어줘야 한다고
스스로가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데
사실 아쉬운 구석이 너무 많아.
1차 LCI 모델만 해도 외모는 귀엽기 그지없었고
이제 좀 컸다고 주장하는 10대 후반 같았는데
웅이아부지라고 놀림받는 것 만큼이나
갑자기 젊은 감각이나 생동감이 확 줄어들었다.
뒷 범퍼도 투박해져서 의아함을 자아낸다.
디자인에 죽고 사는 미니이고
특유의 레트로한 느낌이 중요한 차량인데
실내에 아날로그 계기판이 디지털로 바뀐 것도
영 심기가 불편하다. 생긴것도 이상하고.
용서가 안 되는 수준은 아니다만
계기판 주변부가 너무 휑하게 느껴지고
비주얼 부스트를 동그랗게 감싸는 앰비언트 라이트는
이상한 디지털 아트스러운 패턴이 삽입되었다.
이전의 그냥 깔끔한 조명이 더 나은 듯.
BMW 그룹 차들이 다 그렇듯이
하만카돈(혹은 최소한의 브랜드)오디오가 빠진 차량은
사운드 품질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 반도체 부족으로 이제
2022년식은 JCW마저 하만카돈과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기능이 빠진단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그만큼 가격도 인하된다고는 하는데
오디오는 출고 후 사제로 시공하면
출고 당시의 옵션가보다 몇 배는 더 들어서,
반도체 수급이 얼른 원활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2022년식부터 트림명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깡통 모델이 쿠퍼 클래식으로,
하이트림 모델이 쿠퍼 클래식 플러스로
예외 없이 전 모델 변경되었다.
심지어 컨트리맨과 클럽맨은
클래식 플러스 라이트도 있다.
날이 갈 수록 괴상해지는 트림명들.
좋은 소식은, 드디어!! 드디어!!
쿠퍼 S에도 열선핸들이 적용되었다.
참 오래도 걸렸고
나같은 수족냉증 환자는 그동안
출고 후 사제 시공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드디어 쿠퍼 S 이상부터 기본.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시트는 수동 조절 방식이지만
미니답게 시트 포지션은 금방 나온다.
미니는 전기차 버전인 미니 SE조차도
하부에 배터리를 깔았지만
타사와 달리 충분히 낮은 시트포지션을 제공하는데
역시 달리기라는 본분을 생각하는 브랜드답다.
변속기는 7단 DCT로 처음 나왔을땐
결함으로 욕을 진탕 퍼먹었지만
지금은 꽤 안정화가 돼서 쓸만하다.
미니는 아이신에서 자동변속기를 가져다 써도
꽤나 쓸만하게 튜닝을 잘 하는 편이라
DCT를 장착했으니 직결감은 훌륭하다.
약간의 울컥임이 간혹 나타날 순 있으나
미니가 또 너무 매끄러우면
그것대로 이상하니 넘어갈 만 하다.
승차감은 의외로 그럭저럭 탈 만 해서 놀랐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는 모델은 JCW라 그런지
옛날에는 쿠퍼 S라고 하면 돌같은 승차감에
이쁜 외모 보고 구입한 여성분들이
많이들 되파는 사태가 벌어졌었는데,
아직도 막 편안하다 할 정도는 전혀 아니지만
이정도면 패션카로 타고다니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운행을 마치고 나니 트립에 찍힌 연비는
8.8L/100km(=11.36km/l)이었다.
테스트하면서 비교적 좀 밟고다녀서
공인연비를 살짝 밑도는 수치가 나왔지만
히터 풀로틀고 이 추운 날씨에
이런 주행으로 이 정도 연비면 선방했다.
그래서 미니 쿠퍼 S는 사실상
JCW까지 올라가도록 유인하는 상품이라고,
어중간한 상품성의 서열 2위 차량이라고
타고 나서도 쭉 생각이 들었다.
세대를 거듭하며 성장하는 미니는
어느새 성인으로 변신하는 문턱에 와 있고
2차 LCI까지 오면서 디자인만 제외,
나머지는 다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마녀가 납치하는 바람에
고립된 탑 안에서 성년의 코앞까지 간 라푼젤은
영화 속에서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고
자신의 마법같은 능력으로 왕자님도 살려냈지만,
미니 쿠퍼 S는 잃어버린 채로 영영 사라졌다.
미니 쿠퍼 S라는 이름이 주는 마법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고
알맹이가 쏙 빠진 채
패션카로서의 역할만 다 할 뿐이다.
드디어 열선 핸들도 기본 장착되고
쿠퍼 클래식 플러스에서
옵션의 갈증을 느끼는 이들을
위로 올려보내기 위한 미끼 상품.
'미니다움'이나 '쿠퍼 S'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JCW도 물론 너무나 좋지만,
COOPER S라는 뱃지에
빨간색으로 강조된 'S'글자에
아직도 눈이 가는 나에게는
진한 아쉬움을 주는 차였다.
어차피 나는 미니를 구입한다면
주저없이 JCW 해치로 가겠지만
전통이나 네임 밸류, 헤리티지에
다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나한테는
약간 슬픈 날이었다.
쿠퍼 클래식 플러스를 구입하고
애플 카플레이 / 열선 핸들을 사제 시공하거나
한방에 JCW로 올라가기를 권한다.
다만 JCW는 반도체 수급 문제가 해소되고
하만 카돈 오디오가 다시 탑재된 뒤에.
A필러에 장착된 트위터가 꽤나 멋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