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빈자의'라는 접두어를 보면
원판보다 크게 저렴한 가격에
비교적 비슷한 느낌이나 감각을 주는
그런 차들이 쉽게 떠오른다.
'빈자의 포르쉐'라는 골프 GTI나
'빈자의(?) 슈퍼카'라는 R8 정도?
빈자의 스포츠카 86도 있다.
수리비는 포르쉐 게 섯거라
골이 빈 자의 차 테슬라도 있긴 한데
암튼 이런 표현이 나타내는 것은 명확하다.
적게 내면서 크게 뒤떨어지지 않게 돌려받는 것.
바로 윗급 준중형 SUV인 스포티지가
중형 SUV인 쏘렌토만큼 커지는 바람에
소형 SUV인 디 올 뉴 니로 역시
더 커져야 하지만 형님들만큼은 아니다.
디 올 뉴 니로는 소형 SUV 수준에 그냥 머물렀다.
마찬가지로 바로 윗급인 스포티지는
차급을 파괴하는, K8과 동일한 12.3인치 클러스터와
12.3인치 내비게이션을 갖춘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를
자랑하지만 디 올 뉴 니로는 그냥 차급에 맞는 수준.
디 올 뉴 스포티지는 가히 월드 베스트셀러답게
가공할만한 상품성을 들고나와 인기몰이 중인데,
디 올 뉴 니로는 그럼 가진 게 뭔가?
이 때문에 기아차에서 신형 디 올 뉴 니로를 내면서
어정쩡한 차의 포지셔닝을 타파하고자
아주 명확한 타겟팅을 선보였는데,
바로 극강의 친환경차 이미지.
디 올 뉴 니로는 국산 SUV 중 최고인
20.8km/l*를 자랑한다.
*16인치 휠&타이어, 빌트인 캠 X
요즘 세상엔 배기 가스도 전혀 안 내뿜고
유지비도 아직까지는 매우 저렴한
순수 전기차도 있지만
보조금 없이는 너무 비싸고
보조금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보조금을 받아도 배터리 가격 탓에
높은 가격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 이 디 올 뉴 니로가 과연
순수 전기차와 순수 내연기관 사이에 껴서
전기차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안으로
북극곰의 보금자리 사수에 목숨을 건
오늘날의 세상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외부 디자인을 딱 봤을때
정말 근래 나온 국산차 중에
역대급으로 못생겼다 싶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 없다.
생긴게 너무 싫고
애시당초 관심도 없던 차종이라
그냥 건너뛰려고 했는데
건너뛰는게 맞았나보다
괜찮다는 평이 돌아서 일단 알긴 알아야지
하는 심정으로 차를 받았다.
니로처럼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셀토스도 처음 나왔을때
중국향이 듬뿍 첨가된 외부 디자인과
모닝 수준의 내장재애 경악하며
아주 신나게 욕을 했었는데
디 올 뉴 니로의 외관은 한 술 더 뜬다.
1세대 니로는 그냥 수수하고 평범했을 뿐
기괴하단 느낌을 주진 않았는데,
디 올 뉴 니로는 일본에 가서 방사능을
중국에 가서 미세먼지를 원샷하고 온 느낌.
특히나 시승차는 풀 옵션이라
프로젝션 LED 헤드램프가 포함인데
깡통 차량의 전구 헤드램프보다 이게 더 못생겼다.
후면 디자인은 마치 레조가 부활한 것 같아
배나온 아저씨들이 배 긁으며 탈만한 차 같다.
니로 중에 제일 유명한 로버트 드 니로씨는
젊었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멋지기만 한데
대한민국의 니로는 왜 이렇게
멋 부릴줄도 모르고 못생겼는지.
키를 받아 운전석에 앉으니
운전석 시트가 전기차마냥 매우 높다.
최저로 내려도 상당히 높은데
크로스오버 수준에는 과하고,
정통 SUV 중에서도 차급이 좀 되는
등빨이 좀 있는 차량 수준인데
신형 플랫폼을 쓴 걸 생각하면 노답이다.
역시나 이 덕분에 원하는 시트포지션이 안 나오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일단 출발.
니로는 소형 SUV이고,
그래서 아반떼와 동일하게 10.25인치 패널이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에 각각 쓰였다.
그런데 아반떼는 두 화면이 쭉 이어져있어서
윗급 차종보다 좀 작긴 해도 볼만한데,
디 올 뉴 니로는 둘이 높낮이가 달라
멍청해보이고 더 작아보인다.
억울하면 스포티지 사라는 무언의 압박.
그 밖의 내용물은 익숙한 기아차다.
시동 거는 버튼 주위에 장식을 덧대놨는데
나름 신경 쓴 척 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차급에 맞는 수준에 그친다.
스포티지는 차급을 뛰어넘는데.
출발하자마자 5분만에
디 올 뉴 니로는 절대 타면 안 된다고
펄펄 뛰었는데, 승차감이 극악이다.
디 올 뉴 니로는 전생에 통통배였나
차가 사방 천지로 튀고 난리를 피운다.
타이어는 네 짝 전부 37psi.
체감상으로는 한 50psi 채운 것 같다.
최근 탄 차 중에 이렇게 통통거렸던 차는
기억을 더듬어봐도 하나도 없는데
유투버 및 기레기들의 찬양이 머릿속을 스친다.
차가 통통거리는만큼 주행질감도 영 꽝이다.
우당탕 쾅 하며 승차감이 나쁜 차는
그간 여럿 탔지만 이렇게 고무공같은 차는
근래에 정말 찾아보기 어려운데 놀라웠다.
두루 적당했던 스포티지 가솔린과 달리
깔끔하지 못한 스포티지 하이브리드의 승차감에
아쉬움을 표했던 바 있는데,
이건 다른 차원으로 나쁘다.
마치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대비
차급이 한 3단계는 내려온 것 같다.
실질적으로는 단 한 단계 내려왔을 뿐이지만.
승차감이 나쁜 것도 꼭 전기차를 닮았다.
다만 아이오닉 5는 후륜이 좀 통통거리는데
디 올 뉴 니로는 차 전체가 가만히 있질 못한다.
승차감 탓에 열을 한껏 받은 상태로
조금 달려보려 밖으로 나왔는데,
크로스오버인 것 치고는 재빠르지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우수한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나 같은 파워트레인의 아반떼 하이브리드가
빠르게 달리는 연습하기엔 정말 좋은 차인데
굳이 염가형 크로스오버에 이런 잣대를
마구 들이대기도 좀 그렇고
높아진 차고에 손해를 실제로 보기도 본다.
신나게 달리려면 뛰어난 완성도의 아반떼 사면 그만.
첫 출발 당시 정신없이 튀던 금쪽이 같던 차가
템포를 올려서 달리니까 조금 차분해졌다.
다가가려 하면 무작정 성질부터 부리던 금쪽이가
오 박사님의 치료를 받고 한결 너그러워진 것 처럼
요철을 아무렇게나 받아치고 접지력도 엉망이던 차가
초반과 달리 쫀득하고 여유있게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는데,
디 올 뉴 니로의 특징임을 후에 깨달았다.
타이어가 시그니처 트림에서는 기본이고
하위 트림에선 스타일 패키지 고르면 들어오는
컨티넨탈의 프로컨택트 RX인데,
이건 차 성격 치고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특히나 스포티지 하이브리드의
컨티넨탈 크로스컨택트 LX 스포츠는
차 사이즈를 감당을 못했는데 이건 좀 낫다.
핸들 무게감은 모드별로 전부 적당한 수준.
직결감은 글쎄다.
G1.6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1580cc 자연흡기 직분사 엔진과
하이브리드 전용 6단 DCT가 짝지어진다.
니로의 경우 내연기관 단독 모델이 없지만,
아반떼 하이브리드와 동일한 파워트레인이고
아반떼 G1.6은 하이브리드와 달리 직분사가 아니다.
그래서 준중형급이라 방음이 부족해도
아주 시끄럽단 생각은 안 드는데,
하이브리드는 직분사 엔진이라 소음이 더 있고
소형 SUV 차급답게 방음도 허술하다.
특히나 하부 방음이 부족한 기아차라
NVH는 평범하거나 평균 이하.
배터리 잔량을 다 쓰더라도
변속기가 DCT이기에
105마력의 처절한 엔진 단독 출력에도
그럭저럭 못 탈 수준까지로 가진 않는다.
다만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승용차에
무게가 더 가벼워서 이 파워트레인과
궁합이 상당히 좋게 느껴졌는데,
디 올 뉴 니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정말 안 나간다.
내가 '안 나간다'고 표현하는 마지노선이
굉장히 낮다는걸 생각하면
모터의 보조를 받는 환경에서도
풀 악셀 시 꽤나 답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꽤나 오랫동안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계기판에 이제서야 106km/h가 찍힌 걸 보고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돈 낸 만큼만 정확히 돌려주는 기아차답게
전기차 대비 돈을 덜 낸만큼 무언가가 빠졌는데
뺏긴 것이 바로 가속력.
디 올 뉴 니로의 새로운 특징 중 하나는
그린 존 드라이빙 모드가 2세대로 진화한 것.
그린 존 드라이빙 모드란
배기 가스 배출을 줄여야하는 곳 진입 시
최대한 EV모드 가동에 집중하는,
친환경 차량에 걸맞는 모드.
시내로 진입하자마자 계기판에
그린 존 드라이빙 모드 활성화 표시가 뜬 걸 보고
이전보다 훨씬 꼼꼼하게 설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거 왜 만드나
있으나 마나 한 기능일텐데 하고 넘겼다면
이젠 꽤 똑똑해졌다고 바로 느낄 정도.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전기차를 닮았다.
또 디 올 뉴 니로는 특이하게
전기차가 아닌데도 회생 제동 조절 기능이 포함이다.
전기차 만큼 강하게 작동되진 않지만,
그래도 3단계에서 순간 패들을 당겨
최대(MAX)로 활용하면 꽤나 강하다.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전기차 타는 기분을
누리고자 한다면 확실히 디 올 뉴 니로가 맞다만
굳이 전기차 타는 기분을 왜 느끼고 싶은지는 잘.
그런 인간들이 실제로 있어서 하는 소리다.
자칭 얼리어답터라고 자부하는 멍청이들이지만.
디 올 뉴 니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미친듯이 오른 가격이다.
난 이 차의 시승기를 자세히 쓸 맘이 없고
지금도 이미 필요 이상으로 길게 쓰는 것 같은데,
타 차종들은 가격표 분석을 하고 쓰던지
이미 머릿속에 가격표와 트림 구성이 있는 반면
디 올 뉴 니로는 그냥 만사가 다 귀찮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스포티지 하이브리드와
별반 차이나지 않는 정신나간 가격이라는 것.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는 노블레스에
12.3인치 내비게이션 패키지만 넣어도 탈만하고
그럼 3363만원이다. 미친 가성비다.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시그니처가 3593만원인데
디 올 뉴 니로 시그니처가 3306만원.
제 정신으로 매겼다고 보기 어렵다.
스포티지 대비 모든 것이 부족한 이 차를
왜 이만큼씩이나 주고 사야할까?
스포티지에 없는 HUD가 옵션으로 있지만
HUD 없다고 운전이 안 되나.
사실상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전반적인 차량 가격 상승의 신호탄이라
디 올 뉴 니로가 유독 비싸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다른 차종의 가격 인상은 나중의 이야기지.
지금 현재 기준으로 보면 미친 가격이다.
아반떼 하이브리드 풀옵션은 2900만원이 안 된다.
앞 자리가 2냐 3이냐는 큰 차이이다.
경제성을 따지자면 아반떼 하이브리드.
전기차 대비 비교적 싼 거지
디 올 뉴 니로는 엄청나게 비싼 차다.
특히나 돌려주는 것에 비하면.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는데,
좀 달린 후 돌아오는 길에 느낀 승차감은
처음과 다르게 훨씬 탈만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좋다고 하긴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저 통통대기만 했던 초반과 다르게
그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갑자기 조금 성숙해졌다.
좀 빡빡하게 달렸기에 타이어 온도도 오르고
온도 상승으로 공기압도 오르는 걸 감안하면
있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희한했다.
내가 차에 그새 적응해서
통통거림에 익숙해진 탓인건지
정말 기분 탓인건지 고민했는데,
디 올 뉴 니로는 서스펜션이 주는 감상이
운전자와 누적 주행거리에 따라
급격히 달라지는 것이 맞다.
내가 자주 참고하고
식견에 늘 배우는 나 칼럼리스트께서도
유사한 언급을 하신 걸 보면
마냥 잘못 느낀 건 아닌 것 같다.
시승차는 이제 1천km 가량 달린 차.
누적 마일리지가 한결 늘어난 가까운 미래에
시간이 되면 다시 들러보던가 해야겠다.
별 관심 없는 차라 다시 타볼 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디 올 뉴 니로는
'빈자의 전기차' 타이틀을 거머쥘
요건들을 빠짐없이 다 갖추었다.
정신나간 가격이지만 전기차보다는 저렴하며
전기차와 비슷하게 승차감이 나쁘고
회생제동 조절같은 전기차의 특징을
두루 갖추었으며 유지비도 저렴하다.
내 테스트 패턴대로 주행한 뒤
트립에 최종 10.2km/l가 찍혔는데
이렇다면 사실상 한 자릿수 연비 찍기
거의 불가능한 차종이라는 뜻이 된다.
자동차세가 전기차(고정 13만원)보다
소폭 비싸고 요즘 고유가라 유지비도 좀 더 들지만
일반적인 차량들보다는 전기차 쪽에
좀 더 가깝게 운용 비용이 저렴하다.
심지어 실내에는 친환경 차량답게
재활용 소재가 헤드라이닝과 시트에 쓰였다.
그만큼 싼티 나는 건 차 수준 대비 비싼 값을 지불했음에도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견뎌내야 하는 모순.
그런데, 빈 자의 전기차 니로는
싼 만큼 이렇게 어설픈 구석이 많다만
기아의 역작 EV6는 정말 완성도가 뛰어나다.
기왕 친환경 차량으로 방향을 틀었으면
아예 전기차를 그냥 사는게 낫지 싶다.
EV6는 모든 면에서 다 탁월하니까.
굳이 비슷한 금액으로
SUV를 사야겠다면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돈을 아끼고 싶으면 아반떼 하이브리드.
디 올 뉴 니로가 설 자리는
안타깝게도,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못생기기까지 한데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