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이 블로그에 쓴 시승기들은
글 하나에 늘 한 가지 모델만 다루었었다.
그런데 공산품의 대표주자인 자동차는
요즘 세상에 한 가지 영역에 단일 모델이 있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가지치기가
촘촘하게 이루어져 매번 새로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내가 많이 받는 질문은 '이 차 괜찮냐'도 있지만
'이거랑 저거 중에 뭐가 괜찮겠냐'도 많기 때문에
동급차종을 다 타본 경험을 푸는것도 괜찮을 것 같아
또 새로운 주제를 기획함.
쏘나타 대 K5 대 말리부 이런 건
제각각 강점을 알기 비교적 쉬운 차종들이고,
또 이런 모델들은 사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차종들을 엄선해서 써볼까 고민한 결과
나온 것이 바로 '대형 SUV 3파전.'
제목을 비 오는 날에 지어서 이렇게 됨
비가 오면 파전이 먹고 싶으니까
현대 팰리세이드와 쉐보레 트래버스,
포드 익스플로러까지 셋이서 경쟁 중이다.
팰리세이드는 국산 대표로서
대형 SUV의 본고장 미국에서 날아온
이 두 차종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티는지,
미국산 대형 SUV는 어떤 장점이 있어서
독일차나 일본차를 놔두고 선택하는지
세 모델 각각 장단점을 골고루 둘러보자.
현대 팰리세이드는 2022년 출시된 부분변경 모델,
포드 익스플로러는 2019년 출시된 6세대,
쉐보레 트래버스는 2022년 국내 출시된 페이스리프트 모델.
익스플로러는 북미 현지에선 페이스리프트가
이미 진행됐지만 아직 국내엔 출시되지 않아서
국내에 팔고있는 모델을 기준으로 할 예정.
현대 팰리세이드는 가솔린 3.8 2WD,
포드 익스플로러는 가솔린 2.3 에코부스트 4WD,
쉐보레 트래버스는 가솔린 3.6 4WD.
팰리세이드도 HTRAC 버전이 있지만
내가 사륜구동 버전을 타보질 않아서.
아무튼 비교 대상 중 팰리세이드는
유일하게 전륜 구동이며,
익스플로러는 배기량이 가장 작지만
자연흡기가 아닌 터보 엔진.
트래버스는 사륜 구동에 자연흡기 조합.
제 각각 파워트레인이 완벽히 매칭되지 않는다.
어떤 게 대형 SUV와 제일 잘 어울릴까.
지금부터 시작.
대형 SUV가 왜 사고 싶을까?
말 그대로 큰 차가 필요해서.
혹은 큰 존재감이 갖고싶어서가 아닐까.
대형 SUV는 이름값 하게 다들 크고,
큰 차체를 끌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힘이 중요하다.
그래서 첫 번째 비교는 바로 파워트레인.
가솔린 팰리세이드는 현대의
3778cc V6 자연흡기 람다 II 엔진과
현대트랜시스의 8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된다.
세 차종 중 배기량으로는 가장 큰 모델인데
운전해보면 제일 의외인 건
세 차종 중 가장 힘이 없다. 특히 실용구간에서.
람다 3.8과 타우 5.0은 오랫동안
너무 고회전에만 집중되어 있는 힘 탓에
실생활에서 운행하기 불편하단 지적이 있었는데
심지어 팰리세이드는 여기다가 엔진이
앳킨슨 사이클이라 더더욱 힘이 모자라다.
2500rpm 밑에선 거의 배기량이 2000cc급
수준으로 답답하게 느껴지니
큰 배기량과 그에 따른 큰 자동차세가
아주 낭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변속기는 세 모델 중에서 제일 무난하다.
셋 중 완성도가 제일 높다기보다는
나머지 둘이 완성도가 좀 떨어져서.
트래버스와 같이 V6 자연흡기 엔진인데,
팰리세이드는 위에 말한 앳킨슨 사이클이
엔진에 적용돼서 특유의 진동이 있다.
북미시장이 중요한 차량인 만큼
연비(MPG)때문에 큰 배기량을 채용하고도
이런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은 듯 한데
연비 역시 그래서 세 차종 중 제일 낫다만,
세간의 인식다운 부드러움이나
큰 배기량이 주는 힘찬 가속감은 전혀 없다.
반면 트래버스는 배기량이 3564cc로
팰리세이드 대비 214cc 작다.
그럼에도 제원상 최고출력은 트래버스가
314마력@6800rpm으로,
팰리세이드의 295마력@6000rpm보다 높다.
팰리세이드는 셋 중 최대출력이 가장 낮음.
출력도 출력인데 최대 토크 발현 시점이
트래버스가 현저히 빠르고, 실용구간에 몰려있다.
트래버스는 36.8kg·m의 최대 토크가 2800rpm에.
반면 팰리세이드는 36.2kg·m이 5200rpm에서
나오기 때문에 팰리세이드가 훨씬 고회전에 몰려 있다.
익스플로러 2.3 에코부스트의 최대 토크가
2500rpm부터 나오는데, 익스플로러는 터보.
바꿔 말하면 GM은 트래버스를 자연흡기로 만들었어도
낮은 회전수에서 큰 힘이 필요한 대형 SUV에
맞게 토크밴드를 저회전 영역대로 당겨놨다.
현대차는 이 부분에 크게 신경쓰지 않은 모양새고.
누가 이런 대형 SUV를 고회전까지 팍팍 써가면서
막무가내로 가속하고 다니겠......어라?
고속도로에서의 팰리잖아?
어쩌면 팰리의 고회전 몰빵은...
하지만 트래버스는 이 괜찮은 엔진을
변속기가 전부 다 까먹는데,
트래버스 시승기에서도 지적했었지만
9단 하이드라매틱 변속기는 정말 최악이다.
포드와 공동개발한 이 전륜구동용 9단은
변속 충격도 잦고, 힘도 많이 까먹으며
심지어 쿵 하는 미션 슬립도 남.
그리고 캐딜락 차량들과 콜로라도가 사용하는
최신형 LGX(LGZ)엔진이 아니고
한 세대 전 LFY 엔진이 올라감.
LGX 엔진은 시원하게 회전수 올라가는게
VQ를 연상케 하는 훌륭한 엔진인데
트래버스의 LFY 엔진은 그냥 평범한 V6.
물론 6기통의 정숙함과 적은 진동을 원하면
이 세 차종 중 단연 트래버스가 어울린다.
뒤떨어지는 변속기의 여파와
셋 중 가장 큰 차체가 맞물려서
기름은 트래버스가 세 차종 중 가장 많이 먹음.
한편 익스플로러 2.3 에코부스트는
유일하게 이 중에서 직렬 4기통이고, 유일한 과급기 차량.
터보차저가 뿜어내는 토크 덕분에 2261cc라는
제일 작은 배기량에도 최대 토크는 무려 42.9kg·m.
언급했듯이 익스플로러는 최대 토크가 2500rpm에서 나와
셋 중에서 제일 힘찬 가속을 보여주고,
최고 출력도 304마력@5500rpm이라
작은 엔진으로도 남들과 유사한 출력을 낸다.
나라에 세금 내는 게 싫으면 익스플로러 최고.
4기통이지만 회전질감이나 진동 측면에서
특별히 빠지지 않는 것도 익스플로러의 장점.
내가 운전한 차량의 개별 컨디션에 따른
편차가 있겠지만 진동은 팰리세이드가 제일 심했다.
앳킨슨 사이클을 쓰는게 확실히 불리하다.
익스플로러는 포드와 GM이 공동개발한
10단 자동변속기를 쓰는데, 위의 트래버스도
포드-GM 합작품을 쓰지만 다른 이유가
익스플로러는 후륜 구동 기반 사륜 구동이고,
트래버스는 전륜 구동 기반 사륜 구동이라.
이 10단 자동변속기는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좋다고 말하기도 뭐하다.
미국산 변속기 답게 힘을 꽤 까먹는 느낌.
변속기는 의외로 팰리세이드가 제일 낫다.
부드러운 변속감과 가장 적은 변속 충격.
익스플로러의 이 엔진은
2261cc라 배기량이 아주 작진 않아서
터보랙이 엄청 심하진 않지만,
어쨌든 순간적인 딜레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셋 중 유일하게 롱스트로크형이라
(팰리, 트래버스는 보어가 스트로크보다 더 긺)
회전질감이 무던한 느낌이 강하다.
연비는 4기통 터보여서 팰리세이드나
트래버스보다 좋을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진 않다.
트래버스보단 좀 덜 먹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했을때 익스플로러도
기름을 적지 않게 꽤 먹는 편.
익스플로러 운전자 평균 수준의 운행 패턴이면
두 자릿수 연비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파워트레인만으로는 솔직히
뭐가 대단히 낫다고 말을 못하겠는게
각자 장/단점이 명확하다.
어떤 부분이 내게 중요한지 신경써서
세 차종 다 타보고 결정해야 함.
그럼 주행성능과 승차감은?
아무리 세 차종 다 과격하게 코너를 돌아나갈
그런 차가 전혀 아니라지만 알긴 알아야지.
셋 중에서 제일 코너 돌기 싫어하는건
단연 팰리세이드다.
팰리세이드는 페이스리프트 이전에
승차감으로 민원을 하도 많이 받아서 그런지
페이스리프트되며 엄청난 물침대로 바꼈는데
그래서 직진 주행 할때도 사방으로 출렁댄다.
코너를 돌 땐 당연히 차체의 기울어짐이 심하고
제일 돌지 않고 멈칫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트래버스는 만만찮게 부드러움에도
물침대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푹신한 와중에도 그 큰 차체를 열심히 추스른다.
SUV라는걸 이 세상에 만들어낸 회사다운
노하우라고 봐야 될 것 같이 셋 중 가장 좋다.
트래버스는 타이어도 255/55R20이라
편평비도 나머지 두 차종보다 한 급 높아
푹신하단 느낌이 주행 전반을 아우른다.
덩치가 세 차종 중 가장 큰데
덩치가 부담된다는 느낌은 세 차종 중 제일 적음.
큰 덩치가 주는 안심이랄까. 그게 제일 강하고.
익스플로러는 세 차종 중 차체의 휘둘림을
제일 억제하려 들지만 그것도 세 차종 중에서다.
기본적으로 세 차 종은 전부 대형 SUV.
막 열심히 코너에 집어넣으려고 '시도'를 한다
가정을 했을땐 익스플로러가 제일 낫겠다만,
별로 기분 좋은 운전이 되진 않을 듯 하다.
차체가 방향을 바꾸고 덩치가 휘둘리는 게
제일 물 흐르듯 매끄러운 건 트래버스.
승차감도 비슷하게 주행성능에서의
코멘트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트래버스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가장 편안하고, 가장 부드러운 차량이었다.
또 트래버스는 쉐보레 차량이라
GM계열 차량들이 주는 특유의 튼튼하고
든든한 차대 강성이 주는 안정감이 있어서
가족 여럿 태워도 불안감이 현저히 낮다.
팰리세이드는 시도때도없이 출렁거려서
이게 물침대같은 승용차와
물침대같은 SUV는 또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제일 타기 싫은 차량이었다.
물론 팰리세이드 주 구매층에 맞춘 설정값이겠지만
궁극적으로 편안한 차량인가 하면
난 딱 잘라서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듯.
엔진도 회전수를 열심히 끌어다 써야
힘이 나오는데, 여러모로 팰리세이드는
타고 다니는 데 애가 많이 쓰이는 차량.
익스플로러는 무던하고 특별한 장점이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으나,
반대로 큰 단점도 그리 보이진 않는다.
다만 익스플로러는 후륜 구동 기반 차량인데
왜 전륜 구동 기반인 트래버스를
앞지르지 못하는지 그건 치명타.
그 외 언급하고 넘어갈만한 건
익스플로러는 운전석 시트가 그리 편하진 않았고,
운전석은 난 팰리세이드의 시트가 제일 나았던 기억이다.
전반적으로 트래버스와 익스플로러는
내가 차 위에 얹혀져있는 느낌인데,
팰리세이드는 내가 차량을 타고있단 느낌.
그 느낌의 핵심은 시트에 있다.
익스플로러의 운전석 시트는 내게 있어서
대시보드와 운전대 대비해서 시트 방석이 얇아
상체가 약간 올라가는 느낌이라 별로 좋지 않았음.
인테리어가 제일 화사하면서 옵션도 풍부하고
가격도 국산차인지라 저렴하다.
뒤에 타게 되면 트래버스가 제일 나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세 차종을 타본지 시간이 좀 흘렀어서..
오디오는 팰리세이드의 크렐은 엉망이고
트래버스의 BOSE는 너무 저음 중심.
크렐은 전반적으로 소리가 날이 서 있고
트래버스의 BOSE는 음 간의 분리 및 표현력이
많이 부족해서 둘 다 정말 별로였다.
익스플로러의 B&o Play는 그냥 평범한 편인데,
평범한 덕분에 트래버스와 팰리세이드를 앞질렀음.
익스플로러의 B&o Play는 뱅 앤 올룹슨의
저가브랜드인데 뱅 앤 올룹슨다운 음색이
약하게나마 남아있어서 나쁘진 않았음.
트렁크 공간은 트래버스의 압승.
왜냐면 트래버스가 차가 제일 크니까.
실내/외 디자인 이런건 개인 취향이니까
특별히 나쁘게 평가할 게 없어 보인다.
디자인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차량은
내가 강하게 지적해왔지만, 최소한 외관은
세 모델 모두 비슷한 언어를 기반으로
회사 고유의 색만 입힌 것 같은 느낌이라.
다만 익스플로러의 실내는 좀 각 요소들이
제각각 따로 노는 모습이라 낡다기보다는
조화로움이 다소 모자라게 느껴지고
트래버스의 실내는 오래된 느낌.
올해 페이스리프트될 익스플로러 및
이미 공개된 완전 신형 트래버스는
인테리어가 많이 좋아졌으니 기대해도 좋음.
차세대 팰리세이드(LX3)도 긴장해야 할 듯.
사실 방금 다룬 이 세 차종들이
신모델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어서
이걸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었는데
자동차라는건 신차로 판매중일때만
리뷰가 가치있는게 아니다보니까,
그리고 그래도 여전히 국내 시장에선
이 세 모델이 전부 현역이라서
한번 세 차종간의 비교글을 이번엔 써봤는데
남들에게 맨날 말로만 하던거를
직접 글로 옮긴다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
난 이거 금방 쓰고 치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결론은 사실
팰리세이드, 트래버스, 익스플로러
이 세 차종이 전부 각각 다른 방향으로
장점과 단점, 문제점이 분명하다.
세 줄 요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의 개성이 강해서 열심히 뜯어봐야 함.
다 비교해보고 입맛에 맞는 차 고르면 된다.
나라면 셋 중엔 트래버스인데...
아니다 난 이 세 차종 중에선 다 안 살래.
꼭 차가 커야 하면 카니발 하이브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