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올 뉴 G80(RG3)의 부분변경 모델이
새롭게 얼마 전 국내에 출시되었다.
새 모델이 나왔으니 역시나 이번에도
G80 전문가의 G80 진단 시간이 돌아왔음.
이 블로그를 만들고 얼마 되지 않아
디 올 뉴 G80 3.5T 시승기를 남겼었는데
그때 내가 뭐라고 했었냐면
경쟁 상대로 삼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나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보다
딱 한 뼘 모자랄 만큼 올라왔다.
근데 그 작은 차이가 되게 크다.
이렇게 평하며 마무리했던 바 있다.
제네시스가 단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루면서 제네시스의 시초였던 G80도
어느새 라이벌들과 유사한 수준을
제공하는 정도까지 온 것이다.
디 올 뉴 G80(RG3)이 출시되던
2020년만 해도 그 정도에 그쳤었는데
이번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포부는
그들을 완전히 따라잡는 것.
과연 2024년의 G80은 지난 4년 동안
얼마나 칼을 갈았는지, 또 좋아졌는지
한번 낱낱이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이런 측면에서는
같은 가격대에 포진된 경쟁 모델들이
다 4기통 라인업이기도 하고,
G80 판매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2.5 터보 모델을 다루는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2.5 터보 모델은 가격이 엄청 올랐고
그에 비하면 3.5 터보 모델은 인상폭이 적다.
오히려 지금이 3.5 터보 모델을
선택하기에 적기가 아닌가 해서 첫 타자는 3.5T.
어쨌든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조차도
독일 브랜드 대비해서 확실한 강세를
뱃지값에서 주지 못하고 있기에
남들보다 뭔갈 더 줘야하지 않을까.
그게 바로 실린더 두 개와 터보 한 개.
엔진 얘길 꺼냈으니
엔진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정말 이젠 지겹다 못해 신물이 나올거같은
현대차그룹의 람다 III 3470cc 트윈 터보 V6.
거기에 8단 자동변속기를 물렸다.
예전에는 이게 코드네임이 어떻고
뭐가 어쩌고 저쩌고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이젠 설명할 의지조차 안 생기게 익숙함.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메르세데스-벤츠의 M256, BMW의 B58
그리고 폭스바겐그룹(아우디/포르쉐)의 EA839
심지어 재규어랜드로버의 인제니움 I6 가솔린
이 모든 엔진들보다 기술적으로나
운전자인 내게 느껴지는 감성으로나 부족하다.
현대자동차가 4기통 엔진은
CVVD(가변 밸브 듀레이션) 기술까지 적용하면서
남들보다 상당히 앞서나가고 있는데,
왜 6기통은 부족한걸 스스로들 알면서
이렇게 큰 변화 없이 계속 가는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현대차그룹의 스마트스트림G 1.6 터보 엔진은
디젤 걷어차는 두툼한 저중역회전대 토크감이 경이로움.
A7 55 TFSI 콰트로에 적용된 EA839를 제외하면
경쟁사들은 전부 직렬 형식으로 돌아왔는데,
지속 사용중인 엔진이라 여긴 여전히 V형.
남들보다 배기량도 500cc 가량 크게 쓰고 있고
터보도 두 개나 달려있어서 연비 확보에도 불리.
이걸 부분적으로 극복할 방법은
자사 차량인 G90에 있는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가 적용된 버전을
G80에도 시급히 기본화해서 얹는 것.
남들은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진작부터
기본화했는데 제네시스는 왜 이걸 계속
돈 더 받는 옵션 취급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엔진 자체가 기술력이 부족하면
남들보다 뭔가 더 해주는게 당연한건데
오히려 남들은 이게 기본. 제네시스는 옵션.
48V 아키텍쳐를 별도 유료 옵션으로 취급하는 건
벤틀리 급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디자인 뿐만 아니라 이런 것 까지 베끼나.
터보차저가 두 개나 달렸기에
이 두 터보에 배기가스가 넉넉히 들어가면,
그러니까 대략 2500rpm 부근으로 올라가면
두둑히 밀어주는 힘은 싱글 터보인 경쟁자들보다
강해서 이 큰 차가 순식간에 속도를 올린다.
다만 540i(G30)의 B58은 뭔가 앞에서 힘꾼 다섯이
아주 죽어라 힘을 내서 차를 끄는 느낌이라면
G80의 3.5 터보 엔진은 뒤에서
역도 선수 열명이 들이미는 느낌.
BMW는 체급과 페이퍼 스펙을 뛰어넘는 펀치력,
제네시스는 제원다운 든든함과 넉넉함이라 보면 된다.
방금 언급한 두 회사는 터보 엔진인 느낌이 많이 나고
메르세데스-벤츠의 M256은 터보 엔진임에도
4리터급 자연흡기같은 자연스러운 넉넉함이 강점.
엔진 리스폰스는 이전과 비슷하게 답답한데,
오히려 디 올 뉴 G80(RG3) 전기형의
3.5 터보 모델보다 더 답답한 건 불만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변속기.
변속기 자체는 이전과 동일한 물건인데
이제 제네시스는 완전 부드러움과 편안함만을 지향하고자
내부적으로 무슨 합의 같은걸 본건지
최근 출시한 GV80 페이스리프트도 그렇고
변속기의 반응이 이전보다 한참 느려졌다.
패들 자체의 입력 반응도 느리거니와
빠르게 여러 단을 내리고자 하면
차가 순간적으로 멍때리는 경향이 짙다.
오히려 이때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가 있으면
그 간극을 즉각적인 토크로 잡아버릴 수 있었을텐데
무슨 깡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G80엔 없다.
스포츠 모드를 놓더라도 변속 속도는 세월아 네월아.
스포츠 모드에는 미약한, 고의적 변속충격을
역동성과 즐거움을 주려고 추가해뒀던데
이게 고의 변속충격이 희한하게 일관되지 않고
어떨 땐 없다가 여러 단 수 한 번에 내리면
몰아서 쾅 하고 생기기도 해서 불쾌하기만 했다.
또 정상 작동 시에도 사실 변속감을 체감시키기엔
너무 약하고 밋밋한 수준이라 없느니만 못함.
부드럽고 무른 변속감을 내는 건 아무나 하는데
경쟁사들은 스포츠 모드에서 극적인 변속감과
빠른 변속 속도까지 한 방에 잡고 있다만
제네시스는 왜 이걸 탁 놔버린건지.
전엔 독일차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았었는데.
기어비도 저단이 너무 늘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8단이나 되면 좀 더 촘촘하게 2단과 3단을 꾸려서
훨씬 짜릿하고 강한 가속감을 주기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이런 지 이해불가.
파워트레인이 언제나처럼
E-클래스와 5시리즈 대비해서 가장 큰 약점.
A7 55 TFSI 콰트로와 비교해서는 음.. 잘 모르겠다.
EA839도 느린 엔진 리스폰스와
ZF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8단 팁트로닉이
아우디라 국산차 대비 정비 부담을 안는 상황에서
굳이 나은지 잘 모르겠음.
G80 페이스리프트의 2.5T 모델은
아직 타보기 전이지만, 이전의 2.5T와
엔진 자체는 동일하니 엔진 가지고만 비교하자면
솔직히 위에서 3.5 터보 엔진 아무리 깠어도
2.5 터보 직렬 4기통 엔진보단 훨 낫다.
페이퍼 스펙이 304마력인 건 그다지 중요치 않음.
제원 상 최고 출력 차이는 76마력이지만,
어느 정도 밟기 시작한 3000rpm 부근에서
밀어주는 힘은 당연하게도 3.5 터보가 훨씬 세다.
둘 다 터보랙에 시달리는 1500rpm 정도의
회전수에서 순간적으로 악셀을 밟더라도
가속력 차이는 현격한데, 연비 차이는 미미하다.
2.5 터보 엔진의 힘이 차량 덩치와 무게 대비해서
저회전에서 그리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회전수를 끌어다 쓰면 과급기가 달린 엔진이라
기름을 퍼먹는건 3.5 터보와 다를 바 없다.
시내연비도 1km/l 정도 더 낫고
고속연비는 2~3km/l 정도.
개인적으로 G80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이 차로
연간 마일리지를 얼마나 찍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 20,000km 정도 선이라 치면
유류대 차이 그렇게까지 심하게 안 난다.
둘 다 일반유 주유한다는 점도 그렇고.
자동차세 차이와 연비 차이를 감안했을때
연간 유지비용 차이는 백만원 정도.
아 이렇게 쓰고보니까 차이 크네?;;;
2.5T - 3.5T간의 차값 차이는 이전보다 줄었으니
이전보다 합리적으로 3.5 터보 모델을
손에 넣을 기회가 열린 것.
사실 나도 작은 엔진 파인데,
G80은 3.5 터보의 손을 들어줘야겠다.
G80 3.5T AWD의 가격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E200이나 530i는 둘 다 4기통.
M254와 B48은 분명 좋은 엔진들이지만
이 3.5 터보 엔진과 비교하면
"배기량이 깡패다."
정속주행 시 그 흐름을 깨고
좀 더 속도를 붙이려 악셀을 밟더라도
기어를 내리지 않고 1100~1200rpm만으로
거의 충분한 가능하니 배기량이 큰게 좋긴 좋다.
실질적으로 한 7년 전 출시되었던
G70 2.0T HTRAC과 연비가 유사하니까
덩치도 훨씬 크고 배기량도 훨씬 큰 이 차가
그만한 연비를 뽑아주니
또 아주 부담이라고 하긴 뭐하다.
파워트레인에 이어
단점으로 꼽을만 한 건 디자인.
외관과 실내 둘 다 내 눈엔 문제다.
전면부의 디자인은... 모르겠다.
첫 공개 당시엔 이 일반형은 정말 별로고
그나마 스포츠가 봐줄만하다 느꼈는데
오히려 시간이 약간 흐른 뒤인 지금에선
스포츠는 너무 메르세데스-AMG 느낌이고
일반형이 은근히 깔끔하니 괜찮다.
또 나중엔 마음이 바뀔 것 같음.
뒷 범퍼는 정말 일반형은 바보같아졌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G80 디젤이
배기구를 감춰서 범퍼가 하단의 오각 장식 없이
밋밋하니 만들다 만 것 같이 생겼었는데
그 디젤의 뒷범퍼에다 크롬장식을 씌워버렸네?
뭐든 절제미가 있어야 보기 좋은데
크롬을 온 사방에 도배해놓으니 보기 싫다.
휠 디자인도 이전 대비 개성이 없어졌고
특히나 테스트카의 20인치 휠은
거의 뭐 쏘나타에서나 볼 것 같이 생겼다.
미국 취향에 더 맞추면서
외관은 전반적으로 싸구려같아졌음.
실내 디자인도 마찬가지.
대시보드는 거의 뭐 이제 평범함의 극치다.
독일 회사들하고 차별화되는, 고급스런 분위기가
제네시스의 강점이었는데 스스로 걷어찼음.
이렇게 평범하게 만들거면
스스로 프리미엄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실내 이야기는 뒤에서 더 할거니까
일단 여기선 이정도까지만.
하지만 이렇게 까기만 할거면
시승기의 제목을 이렇게 뽑지 않았겠지.
단점만 수두룩해서 욕하는 데 정신이 팔렸던
GV80 페이스리프트 및 GV80 쿠페와 달리
G80 페이스리프트는 뚜렷한 발전이 보인다.
그럼 그 개선점을 느끼러 슬 출발해볼까.
첫 출발부터 일단 느낌이 좋다.
2022년에 출시됐던 디 올 뉴 그랜저도
이전 세대 대비 큰 발전을 이루었는데
2023년부터 출시된 현대차그룹의 전차종들이
한결 정교해지고 꼼꼼해진 서스펜션 느낌을
거의 일관되게 다 전달해서 놀라울 정도.
G80 페이스리프트 또한 예외가 아니다.
GV80 페이스리프트도 이런 느낌은 줬지만
차체의 전후좌우 움직임을 통제하는 역량은
오히려 이전보다 못해져서 악평을 많이 남겼었는데
G80은 그 정교해진 느낌과 요철 및 굴곡을 통과할 때
전에 없이 매끄러워진 감각 덕에 지하주차장에서
나가기만 해도 이미 엄청나게 발전했음이 실감났다.
사실 이 차만 타볼 당시에는
좋아진 것은 분명히 알았지만,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G80보단
얼마나 좋아졌는지 구형을 타본 지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이 차 타본 직후에
이전 차량을 타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전 차량은 여전히 제네시스보단
현대차다운 색깔이 승차감과 주행성 곳곳에
떼어내고 싶은 암세포처럼 녹아있었는데
신형의 경우는 비로소 프리미엄 차량답게
현대차와의 깔끔한 작별을 고했다.
참 사람이라는 것이 이전에 뭘 탔는지가
현재 감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몇 년 만에 이전 G80(RG3)을 타보니
이건 차가 왕창 커지고 부드러워진
i30(PD)같은 느낌이 많이 들더라.
특히나 타이어를 똑같이
피렐리 P Zero 올 시즌으로 맞추게 되니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좋게 느껴졌던
G80 스포츠(RG3)조차도
프리미엄스러운 주행성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현대차가 그래도 자동차를 반 세기 정도 만들었는데,
'현대차스럽다'는 것이 아주 나쁘다기보단
제네시스가 경쟁상대로 지목한 회사들이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도로
받아들여주면 좋을 것 같다.
근데 G80 페이스리프트는 완전 대박.
피렐리 타이어들이 주는 특유의
단단한 느낌조차 말랑말랑하게 풀어내니
승차감으로서는 거의 뭐
S-클래스를 제외한 차량들 중에서는
종착역에 다 왔다고 느껴진다.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G80 3.5T는
20인치 휠을 장착할 시 그 사이즈가
노면 굴곡을 읽어들이는 느낌이
운전석으로 꽤 들어왔었는데,
이 신형은 같은 20인치 사이즈에
같은 P Zero 올 시즌을 장착했음에도
그런 느낌이 말끔히 사라졌다.
잔진동 같은 노면의 불완전함 역시
거의 에어 스프링에 준하는 수준으로
넉넉하게 덮어버리고 지나간다.
경쟁 차량들과 비교해보면,
얼마 전에 내가 시승기를 남긴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W214)나
신형 BMW 5시리즈 정도랑 비교 가능하다.
독일산 정통파들은 둘 다 이번에
풀 체인지를 거쳐 완전 신형 모델이 나왔는데,
제네시스는 부분 변경을 통해
이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
제일 놀라운 부분부터 말하자면,
이 세 차종은 이제 뱃지를 가려놓고 운전할 시
어느 게 어느 차량인지 전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세 차종의 주행특성과 안정감 수준이
아주 가깝게 서로 붙었다.
G80 페이스리프트의 놀라운 약진이다.
불과 3-4년 정도 전만 해도
E-클래스 특유의 나긋하면서도 부드러운 안정감과
5시리즈만의 가볍게 팍팍 나가는 시원함을
G80(RG3)이 어느 방향으로든 못 따라갔었는데
이제 이 세 차종이 아주 비슷해졌다.
주행 완성도나 주행감각 둘 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따라잡아보겠다고
제네시스 브랜드를 독립시키며
처음 낸 모델이 G80인데, 그 G80이
한 세대만에 유수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만나버림.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를 런칭한 목적을
제네시스의 시초가 2024년에 벌써 달성.
첫 G80은 엄밀히 말하면 현대 제네시스(DH)의
부분 변경 모델이었으니, 디 올 뉴 G80(RG3)을 거쳐
현재 G80 페이스리프트는 딱 한 세대만인 게 맞다.
메르세데스-벤츠, BMW에 견줄만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확립하고 싶어하는 건
비단 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리와 베트남의 빈패스트 등
(비교적) 신흥 자동차회사들의 공통적인 열망.
하지만 독일 회사들도 가만있는게 아니니
새로 브랜드를 만들어서 이들을 금방 따라잡는건
사실은 꿈같은 이야기나 다름없고,
이들을 추격하는 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드는 긴 마라톤.
21세기에 들어서 새로 브랜드를 런칭한 곳 중
이 마라톤을 완주한 건 제네시스와
G80 페이스리프트 뿐이다. 자랑스럽다.
하지만 마라톤은 어쨌거나 경쟁이고,
우승이나 포디엄 피니시가 아닌
완주라고 한 이유도 분명하다.
부분 변경된 G80이 잘한 것도 있지만
나머지 독일차들이 예전보다 못해져서.
일단 내가 시승기에서 지적했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W214)는
'왜 메르세데스를 사는가'란 이유를
압도적인 주행 안정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꾸 보여주려고 해서 난 큰 실망을 했었다.
BMW 5시리즈(G60)은 난 아직까지
후륜 구동 모델만 타봐서 xDrive는 아직.
하지만 520i가 보여줬던 모습과 비교하면
최소한 '국산차보다 비용을 더 지불하고
독일차를 구입해야 하는 이유'를
미약하게나마 E-클래스(W214)보다
더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이 역시 이전 세대 5시리즈(G30)보단
전반적으로 가볍게 치고나가던 초동이 무뎌졌고
차량 전장이 확 길어지면서 가뿐한 몸놀림과
휙휙 돌던 움직임들이 많이 없어졌다.
여러모로 경쟁 차종들이 전작들보다 못한 상태라
G80 페이스리프트는 더욱 따라잡기 좋은 상황.
그래서 결국 이들과 같은 라인에 도달해버렸다.
운과 타이밍은 성공을 일구어 내는 데
개인의 역량으로는 사실 잘 취급 안 하는 편이지만
제목에 적었듯이 운도 실력이다.
이 적절한 시기에 G80은 큰 발전을 이뤄서
이제 정말로 그간 부러워했던 독일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음.
GV80을 이렇게 잘 만들었어야 했는데
제일 중요한 SUV는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인기 다 죽은 세단을 이렇게나 잘 만들다니.
그럼 최소한 우승은 아니더라도
포디엄 피니시라고 해야 하지 않나?
E-클래스와 5시리즈, G80이
3위권 안에서 엎치락뒤치락 중이니까.
사실은 초고속에서의 안정감이나 편안함,
바퀴가 굴러가는 매끄러움 및 탄력,
부드러운 듯 노면을 완전 차단하지 않는
그 적절함 면에선 G80 페이스리프트가 1등이다.
정말이지 G80 페이스리프트가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보다
월등히 편안하고 일상 주행 시 감각이 고급스럽다.
그동안 내가 메르세데스-벤츠를 사랑한단 걸
여러 군데에서 표시했던 걸 봤던 이들이라면
내가 이렇게 적었단 게 놀라울 것.
G80 페이스리프트의 고속 안정감은
거인이 지붕을 손으로 누르듯 노면에
아주 착 붙었던 G90(RS4) 2022년식과 달리
스르륵 매끈하고 부드럽게 나아가면서
속도감이 실제 속도보다 현저하게 낮게 느껴지고,
쫙 깔리는 느낌을 주려 애쓰지 않지만
편안하게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느낌.
이거 완전 메르세데스-벤츠인데?
신형 E-클래스(W214)에서 집나간 벤츠다움이
먼 길 돌아 여기 있었네.
현대차그룹이 매일 욕먹던
운전대 조향감 설정 또한
종전보다 무게감이나 앞바퀴의 상태에 대한
정보가 크게 늘어난 건 아니지만
중심부 유격이 현저히 줄어들고
돌리기 시작했을때의 기름칠한 듯한 매끄러움이
락-투-락 사이 전방위적으로 이어지는게 좋다.
오히려 무게감 자체는 페이스리프트 이전보다
스포츠 모드를 놓더라도 줄어들었는데
이 역시도 전반적인 차량 성격의 변화를 알려줌.
E-클래스(W214)와 5시리즈(G60) 모두
전작 대비 조향감이 너무 가벼워지고
차량 자체와의 직결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그래서 이 부분에서도 G80 페이스리프트가 앞선다.
정말 놀랄 노자다.
그럼에도 마라톤 '완주'라 표현한 이유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갖춰야 할
1번 자질을 여전히 갖추지 못해서.
끊임없는 도전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혁신,
그리고 이를 고객에게 관철시키려는 그들의 노력.
이 과정이 누적, 반복되어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프리미엄'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건데
개인적으로 난 G80 페이스리프트는
고리타분함의 끝, 남들이 한 성공 공식대로
전철을 그대로 밟은 차라고 생각해서
도전정신과 혁신은 어디 갔는가 의심하게 된다.
물론, E-클래스 및 5시리즈에 꿇리지 않는
주행 품질을 선보인 게 혁신이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은 경쟁자들은 이미 하고 있던 거니
제네시스는 제네시스만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데
G80 페이스리프트는 그게 어디 있는 거지.
이 차를 타는 동안 난 하나도 만나지 못했음.
세단이란 게 워낙 구식의 물건 느낌이긴 하지만
E-클래스(W214)는 MBUX 슈퍼스크린을 탑재해
Zoom으로 화상 회의 기능을 넣어 출시했고,
5시리즈(G60)도 차량 실내에서의
콘솔 게임 기능 및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등
기존의 차량에 없었거나 흔치 않던걸 들고나오는데
G80 페이스리프트는 아직 그들 앞을 치고나가거나
비슷하게 뛸만큼의 새로움은 부재인 상태.
제네시스측의 대응은
기존의 12.3" 3D 클러스터와
14.5인치 인포테인먼트 화면을 하나로 합친
27인치 OLED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것.
하나의 모니터가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게 전부다.
일단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의 캘리브레이션이
엉망이고 그린 틴트가 씌워진 느낌에
오래 전의 갤럭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같은
눈이 아픈 색감이라 마음에 안 드는데
한 장의 넓은 디스플레이로 뭘 할 수 있을 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위에서 말했듯이 경쟁 차종들은 벌써
차에서 그간 보지 못했던 기능을 소개했는데
제네시스는 고리타분하게
'두 개의 디스플레이 달린 것 하나로 합쳐'가 끝.
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라 사실
이런 건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라
우리나라 회사들의 특징인 것 같은데
남들보다 앞선 무언갈 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치중할 뿐
그 무언가가 고객에게 어떻게 느껴질 것인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회사 입장에서만 푸쉬하는 느낌.
그러니까 안 되는 것인데
심지어 제네시스는 자칭 럭셔리에
체급 구분으로도 프리미엄 브랜드 아닌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성공 못함. 내 장담하지.
12.3" 디스플레이 두 장을 이어붙이는
유행을 메르세데스-벤츠가 도입했을 때
사람들은 추후에 이게 하나로 이어질거라 예상했고
대중 브랜드 차량까지 이 유행이 내려왔을때 쯤
오히려 메르세데스-벤츠는 MBUX 하이퍼스크린을 거쳐
더 쓰기 편하게 다듬은 MBUX 슈퍼스크린까지 왔다.
화면을 아예 세 개를 달아버려
온 대시보드를 뒤덮어버리는 선택을 한 것.
실용성은 둘째치고, 파격적이지 않나.
프리미엄 브랜드의 핵심 가치란 이런 것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 예상했던
그런 루트만 곧이곧대로 편하게 따라가선
진정한 프리미엄과는 점점 멀어질 뿐이다.
거기에 27인치 OLED 디스플레이 내부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기존에서 변한 게
거의 없다시피하니 이건 뭐
일체형 디스플레이 채택은 사실상
'변화를 위한 변화'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영 럭셔리라면서 영함은 도대체 어디로?
나이든 임원진들이 머리싸매고 부하 직원들에게
'야 벤츠랑 테슬라 혁신한다는데 신박한 거 없냐?'
주문하고 지들 맘대로 결정한 것 같아 보이는
이런 실수 이제 그만할 때가 된 듯 하다.
적어도 제네시스가 진정한 프리미엄이라면.
럭셔리는 고사하고, 이럴 땐
프리미엄조차 자격미달같이 느껴진다.
실내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이 차 뿐만 아니라 제네시스 전반이
미국을 지향해서 그런가,
대시보드 디자인이 미국차를 연상케 한다.
공개 당시 사진을 봤을 때
이게 링컨인지 제네시스인지 구분이 안 됐음.
제네시스는 지속적으로 '여백의 미'라는 타령을 하는데
여백인게 디자이너의 뇌인지 기획자의 뇌인지
마케팅 담당자의 뇌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감.
쓸데없는 장식들을 배제했다기엔
크리스탈 기어노브에 이제 각을 줬고,
우드트림에는 줄무늬가 들어갔으며
터치식 공조 패널은 작은 디스플레이 안에
조잡한 터치버튼들이 많이 들어가있는데
여백은 어디에 갔으며, 미도 어딨는지 모르겠다.
이쁘게라도 했으면 욕을 하지 않았을 테고,
여백 인테리어의 대명사 테슬라처럼 텅텅 비웠으면
어찌됐건 여백은 맞다고 했을 건데
G80의 인테리어는 뭘 지향한건지 모르겠다.
G80 페이스리프트는 다른 제네시스 차종들처럼
옵션형 오디오가 뱅 앤 올룹슨 시스템으로 바꼈는데
처참하기 그지없던 GV80 페이스리프트와 GV80 쿠페의
뱅 앤 올룹슨보다는 나았지만, 음색 자체가 귀가 피로함.
기분 좋게 베이스가 둥둥 여운과 따뜻함을 주는 게 아니고
답답하면서 또 부담을 주는 베이스와
하나같이 잘려서 표현이 안 되는 초고음역대.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G80(RG3)에 들어갔던
렉시콘도 그 전 세대 G80(DH)보다 많이 못했는데
어째서 세대를 거듭할 수록 옵션으로 나와있는
오디오 시스템의 품질이 급락하는 중인지.
이따위의 품질이면 돈 받지 말아라.
신형 E-클래스(W214)의 부메스터 4D 서라운드가
어마무시하게 좋아졌기 때문에, 오디오로는 뭐
E-클래스에게 상대가 안 되는 수준으로 처참하다.
5시리즈의 하만카돈보다는 그나마 낫지만,
5시리즈에 Bowers & Wilkins를 달게 되면 다시 역전패.
A6는 대부분 사람들이 구입하는 트림은
아우디 사운드 시스템이라고,
아주 형편없는 게 들어가는데
G80 페이스리프트의 뱅 앤 올룹슨보단 훨씬 못하다.
다만 A7 55 TFSI 콰트로나 A6 50 TDI 콰트로
이 정도 가격대까지 올라오게 되면
같은 뱅 앤 올룹슨 딱지가 붙게 되는데,
전반적인 소리의 균형감은 아우디 쪽이 나으나
서라운드 효과 밑 소리를 들이붓는듯한 꽉 찬 느낌은
G80 페이스리프트의 뱅 앤 올룹슨이 낫다.
이전 세대 E-클래스(W213)의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은
고음이 좀 쏘는 경향이 있어서 이퀄라이저 조절 없인
고음이 귀를 피곤하게 만드는 감이 있었는데
G80 페이스리프트의 뱅 앤 올룹슨은
저음이 귀를 피곤하게 만드는 차이점이 있달까.
제네시스 G80은 페이스리프트를 하고도
제원상 사이즈가 큰 변동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이미 G80이 남들보다
반 체급 정도 큰 차였기 때문이다.
큰 덩치가 주는 특유의 안정감과 깔림을
위에서 말한 고속주행 시의 안정감에
잘 녹였다는 건 극찬을 아끼지 않을 부분.
다만 이게 코너를 돌기 시작하면
너무 부드러운 댐퍼 탓에 부담이 되는데,
매끄럽게 앞이 코너를 돌아나가려는 와중
뒤에 뭔가 계속 끝없이 따라오는 느낌이랄까.
깔끔하게 통과한다는 인상이 아니라
차가 긴 만큼 통과가 오래걸리는 그런 느낌.
차가 기울어진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그런 듯.
BMW의 신형 5시리즈(G60)이 이제
전장으로는 G80을 뛰어넘을만큼 커졌는데
(G80 5005mm, 5시리즈 5060mm)
코너를 돌 때 차가 크단 느낌은 5시리즈가 현저히 적다.
BMW 옛날만 못하네, 망했네 해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게 이런데서 드러남.
E-클래스(W214)는 여전히 G80보다 짧은만큼
전작보다 커졌음에도 몸놀림은 가뿐하다.
직진성은 남들을 압도하는데,
코너를 돌 때의 감각은 여전히 둘보다 못함.
페이스리프트 이전 모델이 존재하던 세상엔
경쟁 차종들이 자신보다 작아서
'난 덩치가 크니까'란 면죄부가 주어졌었지만
지금은 5시리즈가 G80보다 훨씬 긴 시대이니
이 부분은 다소 분발이 필요하다.
댐퍼의 스트로크는 고급 세단으로서
딱 적당한 길이라 생각되니
컴프레션 강성 조금 올리는게 좋지 않을까.
리바운드를 올리면 부드러움 DNA가 훼손될 듯.
이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장비의 방해로부터 완전 탈출시켜주는 건 좋다.
GV80과 GV80 쿠페는 SUV인데도
스포츠 모드에서 자세제어장치를 해제하면
개입을 일절 안해서 놀라웠는데
사실 형편없는 주행성에 이런 특징은 가증스러웠음
G80도 비슷한 성향을 띄긴 하나
네 바퀴 전반의 접지력이 GV80 라인업보다 높아서
위험 보다는 딱 필요한만큼만 풀어준다 생각됨.
또 껐다고 해서 아주 개입을 완벽히 안하는 게 아니라서.
이런 차를 극한까지 누가 몰아붙이겠어.
5시리즈의 경우는 DSC 해제 시 완전히 꺼지고
E-클래스는 아예 완전 해제 자체가 불가능한데
G80은 딱 중도의 길을 걷고있다만, 좋다.
여기에 맞춰서 AWD 시스템도 이럴 땐
후륜에 동력을 순간적으로 몰아주는데,
의외로 이런 디테일은 흡족.
단발성 브레이크 성능도 모자라진 않았는데,
그보다는 타이어의 개선이 시급하다.
아니 남들도 올 시즌 타이어 쓰지만
경쟁 모델들은 올 시즌이어도 성능이 괜찮은 신발을
늘 신겨서 출고시키는데 제네시스는 반대.
피렐리 P Zero 올 시즌 재고를 얼마나 쌓아둔건지
이 고집 정말 징그럽게 오래가고 있는데
제발 순정 타이어 바꿔주면 좋겠다.
서스펜션 그렇게 신경쓰고 성의있게 만들었음
타이어 좋은거 끼면 더 좋아질 거 아냐.
난 솔직히 미쉐린의 프라이머시 투어 A/S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차라리 이거라도.
타면서 받은 서스펜션이 주는 느낌으론
이 차도 피렐리보단 미쉐린과 더 잘 맞으니.
개인적인 욕심으론 미쉐린의 Pilot Sport A/S 4.
차값도 많이 올렸는데 이런 것 하나 못 끼워줄만큼
당신네들 마진율 박하지 않잖아.
그리고 타이어 폭도 앞뒤 255mm로
통일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현재는 앞 245/40R20, 뒤 275/35R20인데
앞은 좀 더 끈덕지게 물고들어갔으면 좋겠고
뒤는 약간 더 활동적이게 풀어줬으면
하는 게 내 소망이니 전/후륜 모두 255mm 원함.
해야 할 이야기 다 적었나?
하도 여러가지를 적어서
쓰는 와중에 앞부분 다시 읽어도
내가 모든 걸 다 놓치지 않고 썼나 긴가민가함.
어쨌든 제네시스 G80 페이스리프트는
GV80 페이스리프트와 GV80 쿠페가
한껏 낮춰놓은 기대치를 한참 상회하는,
놀라운 승차감과 편안함을 갖췄다.
그래서 난 이 차가, 제네시스가 독일차를 이겨먹는
그 길고 힘든 싸움에서
상당부분 승리를 거뒀다고 본다.
그리고 여담으로,
GV80 페이스리프트 대비
G80 페이스리프트의 평가가 박하지 않은 건
GV80이 나쁜 방향으로 놀라웠던 점 몇 개가
여기엔 없단 것인데, 첫 번째가 문 경첩.
GV80 페이스리프트는 문이 헐거워서
딱 문을 열고 차에 오르는 순간 기분이 나빴다.
도저히 '프리미엄'스럽지 않은 모습에 당황했는데
G80 페이스리프트는 다행히 문은 멀쩡하다.
그리고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G80(RG3)은
시트에 자꾸 이상한 무늬를 넣어대서
편안한 착좌감 구현에 방해가 됐었는데
전반적으로 시트 착좌감이 개선됐다.
지능형 헤드램프(IFS)는 경쟁 브랜드,
특히나 메르세데스-벤츠보단 많이 못하니
단가 세게 불러서 좋은 부품 사오길.
그래도 G80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태초를 알린 모델이라 그런지
허투루 만들지는 않은 느낌이다.
전세계적으로 세단 인기 다 죽었는데 말이다
전장으로 뛰어든 현 상황 리포트 :
현대 제네시스에서 제네시스 G80(DH)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하며 참전한 이 전쟁에서
현대차가 우선 첫 전투는 10년에 다다라서
판세를 뒤집으며 이겼는데, 운이 좋았다.
이 승기를 연속적으로 이어가려면
글에서 다룬 '프리미엄 브랜드의 자격 요건'을
속히 갖추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거.
전쟁은 한 방에 끝나기도 하지만,
여러 전투의 집합체이기도 하니까
다음 전투에서 이길 준비를 해야지.
그리고 북미와 유럽에서의 판매량으로도
경쟁 모델에 견줄만큼 성장할 각오를 다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