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에서 자주 욕 먹는 카이엔.
얼마 전 르반떼 시승기에서도
르반떼 놔두고 카이엔 사면 바보라고
아주 열변을 토하기도 했거니와
포르쉐다운 느낌 주는 차는 카이엔이 아니라
그 차를 다뤘던 글에서 주장했었지.
카이엔이 본보기로 욕먹는 건
스포츠 SUV란 근본 없는 장르를
개척한 장본인이기도 해서지만
그만큼 인기가 높아 판매량도 많아서.
왕관을 쓰려면 그 무게를 견뎌야지.
무한도전에 그렇게 시어머니가
왕창 붙었던 것처럼 카이엔 또한
워낙 이 급을 대표하는 차종인지라
많이 팔리면 너무 팔려서
강남 싼타페라며 지겹다고 욕 먹고
쟁쟁한 경쟁자가 등장하면
카이엔은 뭐하냐고 또 욕 먹고.
세그먼트 리더의 자리란 그런 것.
그런 카이엔에게 정말
태생부터 지금까지 20여년간
주구장창 따라붙는 논란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이 차가
진짜 포르쉐인가 하는 질문.
현행 모델들을 기준으로 봐도
파나메라는 파나메라를 위해 개발한
MSB 플랫폼을 깔고 있는데
카이엔은 온갖 잡 차량들(?)과 돌려쓰는
MLB evo 플랫폼을 쓰고있으며
그간 써오던 3.0L V6 싱글터보 엔진이
엔진 리스폰스가 답답하단 불만이 많아
파나메라는 아우디 RS 4 / RS 5와
공유하는 2.9L V6 트윈터보로
페이스리프트때 엔진을 바꿔줬는데
카이엔은 주구장창 고수 중이다.
카이엔 구매자를 돈다발로 보고 있단 증거
이런 카이엔이 정말 포르쉐가 맞나
아예 '포르쉐'란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와 완전 상극인 차량에서
한 번 찾아보자. 구형 카이엔 디젤.
'가짜 포르쉐' 논란의 중심 카이엔에다
심지어 디젤 엔진까지 끼얹은 얘는
하.... 이게 정말 포르쉐? 진짜로?
현행 카이엔은 나 질리게 타봐서
구형은 그럼 어떤가 싶기도 했거니와
포르쉐의 차량 라인업에서
환경규제에 의해 단종된 디젤은
'디젤도 포르쉐가 만들면 다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서 가져옴.
'진짜 포르쉐' 감별사 출동.
포르쉐 하면 아이코닉한 디자인이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고
'포르쉐 디자인'이란 대명사도 있으니
디자인이 중심축 중 하나인 회사.
2세대에 해당하는 이 카이엔은
내가 보기엔 카이엔 역사를 통틀어서
제일 포르쉐다움이, 정확히는
911스러움이 묻어나는 디자인이다.
눈알에 각만 좀 줬다 뿐이지
당대의 911(991.1)과 거의 동일한
전반적인 마스크와 DRL의 위치 등
포르쉐다움이 아주 충만함.
거기다 얼굴 전반에 기교가 별로 없이
정갈하니 딱 독일차다운 냄새가 남.
원래 독일차는 이런 정갈하고 깔끔한,
세련된 맛을 즐기며 타는 차였는데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변해서
독일차가 화려함을 과시하는 시대가 됐는지.
BMW는 그릴 크기 넓히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 온 사방에다 조명을 넣질 않나
메르세데스-벤츠는 삼각별 뱃지를
루이비통처럼 외관에 도배하길 시작했음.
아우디는 현대차보다 못생긴 빻은 디자인.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10년 전으로만 시곗바늘을 앞으로 돌리면
이 카이엔을 비롯해서 6시리즈 그란쿠페(F06),
CLS 쿠페 (C218), A7 스포트백(4G8) 등
정말 이쁘고 멋진 차들이 독일로부터
쏟아져나왔었는데 2025년의 지금은..
시간이 지난다고 꼭 모든 방면에서
세상이 앞으로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
독일차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
옆으로 가면 전반적인 실루엣은
다분히 포르쉐인데, 다분히 SUV다.
요즘의 추세와 달리 이때만해도
SUV는 유리창도 큼직하게 만들고
날렵해보이기보단 SUV가 주는
듬직함과 부피감을 더 어필했었는데
요샌 너무 날렵하게 눈속임하려고
다들 디자인하는 분위기이다.
그래봤자 SUV 덩치가 어디 가나.
정직하게 올곧은 DLO 라인들이
직설적이고 기계적인 독일차 테마에
정말 잘 어울려서 꽤나 멋지다.
현행 카이엔이 확실히 한결
더 빠른 차 같은 느낌은 주지만
정통 SUV같은 감각은 이쪽이 더.
옆을 지나 뒷쪽으로 와도 그렇다.
이미 몇 년 째 지속중인 유행대로
현행은 좌/우 테일램프를 하나로 잇는,
대형 라이트 바 하나를 박는 스타일링인데
2세대 카이엔은 굉장히 굴곡지면서도
매끄러운 면 처리가 순수한 덩치감과
존재감을 과시해서 오히려 이게 더 섹시함.
차량 폭을 시각적으로 더 넓어보이게 하는
일체형 테일램프는 작은 차에는 좀
왜소함을 줄여줄 수 있지만
이렇게 물리적으로 큰 차엔 굳이..?
선과 면의 흐름으로 있는 그대로의
차량 사이즈를 어필해도 충분.
그래서 진솔한 독일차와 포르쉐의 이미지에
2세대 카이엔의 생김새는 딱 들어맞는다.
실내로 자리를 옮겨도 마찬가지.
이 당시 같이 팔던 파나메라는 정말
정신사납도록 센터콘솔에 각종 버튼을
도배해놔서 다소 불편한 반면
카이엔은 한결 정리를 해놓았기 때문에
딱 깔끔하면서도 모든 조작을
요즘 차량들처럼 터치스크린으로 하지 않고
직관적인 버튼으로 해야해서 좋다.
실내 디자인도 이게 포르쉐 디자인의 정수.
1세대 카이엔은 포르쉐도 스포츠카와
본질적으로 다른 (럭셔리카인) 고급 SUV를
처음 만들어놔서 실내 디자인이
다소 엉성한데 이때야말로 제대로 만듦.
현행은 처음에는 깔끔하니 괜찮았으나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최신형은
정말.. 이게 포드인지 포르쉐인지.
같은 포씨여서 디자인 DNA를 공유하나?
아무튼 디자인으론 2세대 카이엔은
일단 포르쉐가 맞는걸로.
진정한 포르쉐를 향한 길에
자리한 또 하나의 복병은 파워트레인.
포르쉐를 상징하는 스포츠카
911이 디젤 엔진을 얹는다 생각해보라.
911이 공랭식에서 수냉식으로 바뀔 때보다
더한 폭동이 슈투트가르트 본사 앞에서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한 사실인데
진짜 포르쉐라고 호소하는 카이엔은
디젤을 얹고도 포르쉐라 할 수 있나.
카이엔은 첫 등장 당시엔
SUV임에도 디젤 엔진을 얹지 않았었는데
1세대 페이스리프트(957)부터 올리더니
2세대에 와서는 디젤도 2가지로 나뉨.
카이엔 디젤과 카이엔 S 디젤이 있다만
이 차는 전자인 카이엔 디젤.
후자 카이엔 S 디젤은 무려
V8 4134cc 디젤이라 토크는 거의
911 카레라를 두 대 합친 수준.
다시 이 차로 돌아와서
이 차에 얹힌 물건은 코드네임 EA897,
2967cc V6 터보 디젤 엔진인데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지.
카이엔은 타 폭스바겐그룹 차량과
플랫폼 뿐만 아니라 엔진까지 공유하는데
폭스바겐그룹이 완전 신형 엔진을
거의 개발하지 않고 기존의 엔진 갖고
계속 개량하는 전법을 쓰고 있어서
오늘날 최신 차량에서도 볼 수 있는 이름.
이 블로그에 다뤄진 A6 45 TDI 콰트로랑
Q8 50 TDI 콰트로에 EA897 evo3가 올라감.
V6 디젤 뿐만 아니라 I4 가솔린도
EA888이란 엔진을 EA888 evo4까지
폭스바겐은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개량해가면서 최신 차량에도 쓰고 있으니
엔진을 휙휙 갈아치우는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하면 요지부동이나 다름없는 회사다.
한동안 BMW도 숨쉬듯이 엔진 바꿔제끼다
최근 전동화 추세에 전기차에 투자한다고
쓰던 엔진들을 개량하는걸로 태세전환 했는데
어떤게 특별히 좋다 나쁘다 하기 어렵다.
신기술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하기에.
그런 EA897을 얹은 카이엔 디젤의 제원은
최고 출력 245마력 @ 3800 - 4400rpm
최대 토크 56.1kg·m @ 1750 - 2750rpm.
후기형 958.2는 262마력으로 출력이 오르지만
이 차는 958.1 전기형이어서 이렇다.
출력은 모자람이 전혀 없고 넉넉함.
오히려 당대의 가솔린 카이엔은
3598cc V6 자연흡기이기 때문에
실제로 타고다니기엔 디젤이 훨씬 힘참.
가솔린이 배기량이 600cc 더 크지만
자연흡기라 초반 토크가 열세라.
카이엔 S는 가야 가솔린이 실용구간 역전.
얜 디젤임에도 엔진 레드라인이
무려 4600rpm까지 올라가지만
회전 질감은 그래봤자 V6 디젤이다.
늘 강조하지만 V6 디젤에 대단한
감성적 만족감을 기대하면 안 됨.
V6 디젤은 그냥 평범한 V6 디젤.
디젤 특유의 거슬림이 다소 줄어든,
넘치는 토크가 쭉 미는 그런 엔진이지
뭐 대단한 '6기통 감성' 그런거 찾기 힘들어.
제원상 제로백 7.6초라는데,
따로 재보진 않았지만 체감 가속이 엄청나다.
디젤은 저회전 토크가 엄청나서
그보다도 더 빠르게 느껴짐.
사실 디젤의 토크밴드 때문이 아니고
포르쉐라서 그런거지만 꽤 날쌔다.
요새 7.6초면 쏘렌토 하이브리드랑
비슷한 수준인데 이정도면 탈만하잖아.
실 수치가 나타내는 것보다
운전중에 느껴지는 가속력이 더 좋다.
아, 포르쉐는 거짓말쟁이지.
7.6초보다 빠를 게 분명한데
일부러 살살 낮춰서 발표한거지.
그래서 수치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거겠지?
엔진은 아우디에서 보던 거.
근데 왜 빠를까? 답은 바로 변속기.
생각해보니 팁트로닉 달린 포르쉐
카이엔 시리즈 외엔 안 타봤는데
ZF라며 BMW나 아우디에 감탄하는 이들
포르쉐나 마세라티로 한 번 와봐야 됨.
BMW가 일반적인(?) 레벨에선
변속기를 정말 잘 다루지만
그 위에 더 잘 다루는 회사들 많다니까.
단지 차값이 한참 더 비쌀 뿐이지...
정말 의외인 게
팁트로닉이 달린 카이엔이
PDK가 달린 박스터보다
변속 시 (고의)충격도 더 들어오고
빠릿함에서 엄청나게 밀리진 않는다.
PDK는 부드러우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그새 변속해버리는 번개라면
팁트로닉은 그보다는 살짝 느린,
하지만 쾅 하는 존재감은 더 큰
천둥이라고 하면 딱 맞을듯.
다만 PDK가 주는 꽉 물린 직결감은
당연하게도, 구조상 부득이하게
팁트로닉이 훨씬 부족하다.
오히려 그럼 카이엔의 SUV란
성향엔 PDK가 더 맞지 않냐 할 수 있는데
두 가지 이유로 팁트로닉이 달림.
첫 번째는 주력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선
SUV들은 견인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PDK(듀얼 클러치) 달면 견인 시
변속기 과열로 금방 고장남.
두 번째는 PDK의 부품 단가가
팁트로닉보다 배는 비싸서.
카이엔은 통상적으로 세단보다 비싼
SUV인데 승용차인 파나메라보다
꽤 싸게 파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내가 이 엔진을 만난 건
이 카이엔이 처음은 아님.
예전에 초기형 A7 45 TDI 콰트로,
아우디에 얹혀서 DSG랑 조합된 거
타봤었는데 일반 자동변속기랑 물린
포르쉐가 더 스포티하고 빠르며
체감 가속도 훨씬 시원시원하다.
디젤인데 디젤답지 않은,
디젤 특유의 답답함이 실종된
가솔린 V6 수준의 엔진 리스폰스가
굉장히 놀랍고 또 인상적임.
안 그래도 현행 카이엔 3.0L V6
엔진 리스폰스 느려서 문제인데
이 차는 나온지 15년이 다됐고
디젤임에도 그와 대단히 멀리 있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난
이제 디젤차 못타겠다,
심지어 S-클래스 디젤도 안된다.
답답하고 특유의 진동이 싫다
이렇게 말해온 사람인데
포르쉐가 손봐놓으니까 오케이.
소음과 진동이 없는 건 아니지만,
파워트레인이 꽤나 잘 쥐어짠
박진감이 그런 불쾌감을 잊게 만들어.
이런 면에선 정말 포르쉐다.
포르쉐란 회사가 잘 하는 건
있는 거 쥐어짜서 최고의 성능 뽑는 거.
폭스바겐하고 돌려쓰는 엔진에
심지어 디젤임에도 최대한 뽑아내
포르쉐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디젤 파워트레인을 완성했다.
의외로 파워트레인마저
카이엔 디젤은 포르쉐다운 포르쉐.
놀랍게도 이때까지만해도
카이엔조차 기본형 모델은
(유럽 한정)6단 수동변속기가 있었음.
이 차량은 꽤나 오래된 2011년식인데,
958.1을 팔던 2014년까지 선택 가능했었다.
페이스리프트된 958.2부터 수동 단종.
카이엔을 사면서 누가 수동을 산다고
그걸 굳이 개발까지 해서 팔았을까 경악.
이것이 유럽인들의 실용주의?!
개인적으로 이때의 카이엔은
V8이 올라간 모델들보다도
VR6 자연흡기가 올라간
카이엔 가솔린 기본형이 궁금하다.
뱅크각이 초 협각인 15도의 VR6가
그렇게 소리와 회전질감이 좋다는데
6기통 중 최강 사운드트랙 3대장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그 엔진
나도 경험해보고 싶네.
다만 궁금한거지 갖고싶은 건 아님.
그 다음으로 중요한 승차감.
포르쉐 하면 그 다음에 바로 연상되는
단어가 승차감은 결코 아니겠지만
카이엔은 SUV이기 때문에
승차감의 중요성은 그 어떤
포르쉐 뱃지를 붙인 차보다 높다.
오히려 파나메라보다도
더 높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듦.
파나메라는 스포츠 세단이라는
핑계 하에 포르쉐 뱃지를 보면서
부족한 승차감을 감내할 수 있는데
(승차감이 떨어진단 얘기가 아님)
카이엔은 승차감이 떨어지는 순간
폭스바겐 그룹 내의 수많은
형제 차량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또 다인 탑승을 상정한 럭셔리 SUV라
그 본분에서 너무 멀어지게 된다.
스포츠 SUV란 장르를 개척했어도
SUV란 딱지가 붙는 순간 승차감은 중요해짐.
동생인 마칸보단 형님이기도 하고.
아, 이 차 팔고있을 적인 2011년엔
마칸이란 차는 세상에 없었구나.
2025년인 오늘은 내연기관 마칸은
사골을 끓이다 못해 뼈가 녹아내린
아주 오래된 차량인데 그땐 그랬지.
이 차는 에어 스프링은 고사하고
PASM조차 달리지 않은,
서스펜션 설정값이 단 한 가지인 차량.
전자제어식 댐핑 없고
에어 스프링 및 각종 현란한
포르쉐의 기나긴 옵션 명단들
전부 해당사항 없습니다.
차고 조절 또한 불가능.
포르쉐가 이때부터 PDCC도
도입했는데 여기서 찾는다면
번지 수를 잘못 찾아온 것.
전반적인 느낌은 오히려
전형적인 포르쉐와 전형적인 카이엔.
PASM이 빠진 포르쉐 스포츠카들과
거의 동일한 느낌의 댐퍼를 갖췄는데
충격을 받아 서스펜션이 눌릴 땐
단순하고 빠른, 어떻게 보면
무식하게 느껴질정도로 확 처리하는데
리바운드 상황에서는 탄력을 보여주는
그런 모습들이 주행하며 계속 보인다.
포르쉐라는 브랜드가 원래
럭셔리카 브랜드가 아니고
스포츠카를 만들던 브랜드라 그런지
승차감이 탄탄한 축으로 가 있는건
솔직히 그다지 놀랍지 않은데,
댐퍼가 빠르게 처리하는 것에 비해
SUV인지라 스프링은 스트로크가
굉장히 길고 다소 늘어지는 편.
그래서 평소에 쭉 양호한 노면을 지나가면
거슬림이 없이 매끄럽게 잔 요철을 묻고
에어 스프링만큼 잔진동 차단은 못하지만
꽤나 깔끔하게 바퀴를 굴려나감.
하지만 포트홀이나 방지턱을 통과하면
탄탄한 댐퍼가 억 소리를 때론 만듦.
PASM 없는 718도 딱 이렇거든?
반면 통과하고 나서는 승차감을 저해하는
기분나쁜 여운이나 여진이 없음.
이 차가 벌써 15년이나 지난 차량이라
하체 부품 노후화로 인해
1차 충격이 더 세게 느껴지는 듯 한데
이만하면 코일 스프링 쓴 SUV 치곤
승차감은 중위권 혹은 그보다 아래.
이 당시에는 이 정도가 좋았는지
당대의 ML-클래스나 X5는
내가 아직 타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게 좋진 않다.
요즘 기준으로 차량이 유입시키는
충격의 사이즈나 빈도만 가지고 비교하면
싼타페나 쏘렌토보다도 부족함.
에어 스프링이 빠져서 그렇다고
항변할 수도 있는데, 미안하지만
PASM + 에어 스프링이 포함된
현행 카이엔조차 기본적인 느낌은 똑같아.
단지 최신 차량에 에어 스프링이 달리면
에어 스프링이 노면 요철을 묵살시키고
댐퍼도 화질이 720p에서 1080p로
올라간 것 처럼 충격 대책 및 형태를
이 구형 카이엔은 10단계로 나눈다면
신형(현행) 카이엔은 20단계 정도로 나눈 느낌.
좀 더 잘게 쪼개서 실내로 유입되는 충격이
탑승객으로 하여금 덜 느껴지게 분산시켜놓음.
이 정도 차이이지 구형은 신형과
동일한 장르의 승차감 테마를 보존 중.
포르쉐 DNA가 돌연변이를 낳진 않았어.
뭔가 이렇게 써놓으니 신형,
그러니까 현행 3세대 카이엔을
돌려 까는 것 같은데 사실 맞음.
근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포르쉐 SUV'를 느껴보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2세대 카이엔을 사면 현행과
대단히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거.
이게 어떤 이들에게는 장점이 되겠네.
지금까진 포르쉐 뱃지가
어색하지 않은 포르쉐였는데
대망의 주행 성능은?
진정한 포르쉐로 인정받기 위한
최종보스격 최대 관문.
난 포르쉐 스포츠카들에 대해선
각종 주행 관련 옵션들
포르쉐를 음미하기에 굳이 필요한가?
전혀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로도
넘치고 오히려 솔직해서 좋다.
이렇게 계속 꾸준히 적어왔었는데
카이엔은..... 아니다.
천하의 포르쉐도 물리법칙과
맞서는 일은 이길 수 없는 법.
일단 카이엔 디젤은 디젤 엔진을 얹어
동급 가솔린 차량보다 더 무겁고
심지어 그 무게가 앞머리에 실려있음.
그러면서 엔진도 좀 앞으로 나와있다.
2세대 카이엔은 현행의 MLB evo보다
한 세대 전인 PL72란 플랫폼을 깔고 있는데
이를 폭스바겐 투아렉과 공유함.
폭스바겐그룹은 전통적으로 엔진을
앞에 배치하면 아주 끝까지 집어넣어
FMR로 만들지 않는 편이기에
포르쉐 뱃지가 붙은들 달라지진 않는다.
V6라 세로로는 3기통이어서
V8이나 I6보다 엔진 길이도 짧은데
왜 안 집어넣어서 이 사단을 내는지.
폭스바겐 투아렉하고 플랫폼을
공유해서 그럴 확률이 높다만,
투아렉은 솔직히 판매량이 많지 않은
마이너한 차량인데 굳이 걔 때문에
애꿎은 카이엔까지 피해를 봐야하나.
코너에 진입할 때 일단 속도를
타 SUV 수준으로 굉장히 확 낮춰야 됨.
이 차는 앞과 뒤가 동일한 사이즈인
265/50R19를 신고있는 차량인데도
진입 언더스티어가 상당하다.
그리고 코너 탈출하며 악셀을 밟는 시점도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어서 놀랍다.
이게 PTV(포르쉐 토크 벡터링)가 없어
LSD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섀시 자체가 이 육중한 무게와 부피를
감추려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아서 그래.
1500kg를 전후하는 박스터나 911에선
솔직함이 정말 차량의 움직임을
몸으로 느끼면서 신나게 탈 수 있어
포르쉐만의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2295kg짜리 카이엔에선
솔직했더니 바로 폭망.
그래서 오늘날 강남에선 국민차인
현행 카이엔의 국민 옵션인
PASM + 에어 서스펜션을 고르면
댐퍼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가장 단단한 PASM 3단계로 놓으면
생각보다 굉장히 댐퍼가 단단해지고
공도에서는 부담스러울 정도던데
포르쉐도 아는거지. 이정도로 단단해야
카이엔의 무게와 덩치를 수습할 수 있다고.
반면 PASM조차 없는 이 차는
하나로 다 해결해야 하는데....
승차감을 완전 배제할 순 없기 때문에
결국 스포츠카 만드는 회사로서의
포르쉐가 줄법한 운동성은 포기.
정작 PDCC를 넣지 않은
PASM + 에어 서스펜션만 고른
현행 카이엔도 서스펜션을
완전히 조인 상태조차 무겁고
그 덩치와 무게가 늘 부담이 됨.
PDCC가 이걸 잡아줄건데
난 48V 안티롤바가 코너 진입시에만
안티롤바 강도를 확 올리는 게 싫음.
꼼수를 쓰는 느낌이면서
차량의 주행 패턴이 일관되지 못한
어색함이 있어서 난 불쾌하더라고.
그럼 스포티한 주행을 생각하면
결국 카이엔은 어떻게 해도 안 되는거네.
카이엔 터보 GT 이런걸로나 가야될까?
그런건 SUV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하드코어 차량 행세를 하는거라 더 별로.
내가 그래서 르반떼가 최고라고 했지.
이를 종합해보면
포르쉐다움이 '포르쉐' SUV에서
가장 중요한 코너링 및 핸들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실종됐다만
포르쉐 'SUV'에서는 꽤나 보이는 편.
다른 세세한 곳에서도
포르쉐다운 만듦새와 조작계가
어느정도 보이지만 또 일부는 깬다.
운전대의 조향감은 포르쉐가
전자식 파워스티어링을 쓴 이래로
잘 만든 걸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
이 당시는 EPS 도입 초창기여서 그런지
더욱 가관. 피드백이나 정확성이
그다지 좋지 못하게 느껴짐.
무게감은 적절한데, 포르쉐와
비슷한 급의 라이벌 브랜드들도
그건 당연하게 하는거여서
잘 했다고 말하긴 뭐하다.
브레이크 조작감도 포르쉐보단
폭스바겐에 한참 가깝고.
포르쉐도 '공용 플랫폼'으로
무려 'SUV'를 만드니 어쩔 수 없었네.
만약 포르쉐가 페라리 프로산게나
애스턴마틴 DBX처럼 독자 플랫폼을
자체 개발해서 카이엔을 만들었으면
이보다 월등한 결과가 나왔을까.
가능성은 어느정도 있다고 보는데
그럼 가격도 지금보다 월등하겠지.
아닌가. 그저 SUV라서 구제불능인건가.
포르쉐가 예전에 폭스바겐의 각종 부품들
다 긁어 모아 만든 924 / 944는
스포츠카로서 찬사가 계속 이어져서
초대 박스터(986)가 등장하기 전까지
거진 20년을 우려먹었었는데
(심지어 이름도 924 - 944 - 968로
세 번이나 새로 붙여가며)
카이엔은 글쎄. 약간 갸우뚱하다.
현행 카이엔도 투아렉보다
묵직하고 진중한 맛이 덜하고
댐퍼를 조이면 차량 상부와 하부가
따로 노는 덜렁대는 느낌이 있으니.
스포츠카 전문 회사에서는
스포츠카를 사는걸로.
그런 카이엔 디젤은
역동적인 코너링같은건 안하고
평소에 빠릿빠릿한 반응성만 즐기며
편안하게 타고다니는 데 제격.
어차피 가족 태우고 다니거나
도심을 뺑뺑 돌아다니고 말 차량인데
스포티한 차체 움직임이 무슨 소용.
디젤이지만 디젤의 핸디캡을
탈피한 엔진과 변속기의 궁합에
디젤의 좋은 연비가 주는 경제성 및
이런 큰 SUV에 고급 휘발유 마시는
대형 엔진들은 주유소 방문을
너무 자주해야해서 불편한데
그럴 일도 없어 갖는 편리함까지.
디젤이라 실용 구간에서의
넉넉한 토크로 악셀을 티끌만큼
터치하고 다녀도 잘 나가기도 하며
국내에선 지방가면 고급휘발유 안 팔잖아.
방금 말한 역동성은 카이엔이어서
문제가 되는거지 디젤이어선 아님.
어쩌면 카이엔 라인업 중에서
디젤이 최고의 선택. 근데 단종.
중고로는 으음... 사지 마세요.
수리비 어쩔려고.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시트 제발 포르쉐 출고할때
스포츠 시트 플러스 넣지 말았으면.
특히 카이엔에는 더더욱.
편하고 여유롭게 타고다닐 SUV에
옥죄는 18way 스포츠 시트 플러스
굳이 넣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심지어 박스터나 911조차도
트랙에서 차량 자주 쓸 거 아니면
14way 스포츠 시트로 충분한데
(전동 기능 제외하면 2way)
SUV에 그걸 꾸역꾸역 넣는건 꼴값.
돈을 낭비하고 싶으면 다른 데 낭비하지
자선단체도 아니고 왜 포르쉐에 기부해.
돈이 들어가는 옵션이라고 해서
꼭 더 좋아지는 게 아니니
반드시 앉아보고 비교 후 결정할 것.
현행 카이엔의 14way보단
2세대 카이엔의 14way가
시트 자체가 좀 더 단단해서
앉았을 때 막 편안하단 인상은 아니나
장시간 앉아있어도 일어나고 싶던지
불편하다던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오디오.
포르쉐의 깡통 오디오들이
볼륨을 올리면 찢어질지언정
균형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되려 이보다 윗급인 BOSE보다
저음이 뭉치는 현상이나
해상력이 부족한 고음 등의
저렴한(?) 오디오가 주로 지니는
문제점이 한결 덜한 편인데
이때의 카이엔 또한 예외가 아니다.
기본 오디오가 옵션형인 BOSE보다
밸런스가 좋은건 현대차인데?;;
고음이 살짝 갈라지고
초고음역대 표현이 모자란 건
부득이하지만 차 급이 있는지라
기본형 오디오도 꽤 들을만 하다.
특히나 이상한 PCM 에러로
iPod 인식이 처음에 딱 한 번 됐다가
그 이후론 계속 안 돼 블루투스로
결국 노래를 계속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다니면서 크게 문제삼을만큼
오디오가 떨어지진 않아서 놀람.
차는 옛날 차량이고 내 폰은
너무 최신폰이어서 그런건지.
이퀄라이저를 손보지 않으면
엔진의 부밍음 비슷하게 웅웅
음색이 부풀려지는 감이 좀 있는데
그건 이퀄라이저 조절로 해결 가능.
BOSE는 특유의 저음 편중
음색때문에 이퀄라이저 만져도
시원하게 질러야 할 때 답답하거든.
PCM은 현행 카이엔의
그것보다 사용하기 훨씬 불편하다.
터치가 되어서 그나마
하나님 만세 할렐루야 감사하긴 한데
컨트롤러로만 조작하게 만들어도
쓰기 편한 인터페이스가 있는 반면
이때의 PCM은 터치를 도입했는데도
굉장히 쓰기 껄끄럽고 난잡하다.
뭐... PCM이 쓰기 편했던 적이
언제 있기는 했냐마는.. 그렇다.
15년의 세월이 흐르니까
이 버전의 PCM은 아주
구닥다리 고물이 다 됐다.
나 차에다 뭐 바라지도 않고
그저 노래 재생만 제대로 되면
장땡인 사람인데도 그래.
지금 절찬리에 판매중인
최신형 카이엔에는 옵션으로
조수석용 디스플레이도 구비되어 있는데
그거 앞으로 시간 조금만 더 지나면
몹쓸 물건이 다 되어있지 않을까 싶음.
굳이 돈 주고 넣지 마시라. 진심.
돈을 낭비하고 싶으면 다른 데 낭비하시라22.
차를 2년 내지 3년만 타고
리스 계약 종료와 함께 반납하면
또 모르겠다만 그럴 재력이 있더라도
처음에 신기해서 동승객이나
한두 번 만져보고 말건데. 뭐하러 달아.
쓸모가 없기만 하면 다행인데
향후 고장날 확률 매우 높음.
포르쉐 소프트웨어에 뭘 바라.
포르쉐는 하드웨어를 기가막히게
뽑아내는 만큼 소프트웨어를
아주 기막히게 못 만드는 회사.
글을 마무리할 시간.
시작할때 던진 질문으로 돌아와서
카이엔 디젤은 정말 포르쉐인가?
포르쉐의 의미를 어디다 두느냐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결정할 듯.
스포츠카로서의 포르쉐를 기대하면
이건 완전 꽝. 그저 SUV일 뿐.
근데 있는 재료 열심히 쥐어짜는
포르쉐의 본성과 장기를 생각하면
이것 또한 포르쉐가 빚어낸
작품다운 실력을 보여줬다.
솔직히 나처럼 아주 예민하고
또 수시로 와인딩 코스를 즐기는
그런 사람 아니고서야
카이엔이 코너 통과 시 둔한지
어떤지 알지도 못할 거고
카이엔 고객 대다수는 솔직히
구입의 이유가 단지 '포르쉐라서.'
카이엔 구매자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카이엔 오너들 대다수가 그래.
내 주변의 카이엔 차주들도
한결같이 대답이 똑같음.
'포르쉐'가 만드는 'SUV'라서.
그들조차도 디젤 차량을 운행하면
디젤 특유의 답답함을 캐치할텐데
그런 부분을 성실히 막아냈고
또 승차감과 다른 여러 부분들에서
포르쉐다운 질감을 상당히
잘 구현해놨다는 걸 생각하면
포르쉐가 카이엔 구매자들에게
딱 맞춰서 차를 만들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한편으론 든다.
포르쉐 연구진, 개발진들 천재 맞네.
나한테 있어서 이건 포르쉐가 아냐.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카이엔은
앞머리에 붙어있는 뱃지대로
분명한 포르쉐가 맞다.
PTM 해제하고 과감히 악셀링하니
자세제어장치 개입 일절 없이
살랑 살랑 꼬리가 흔들리는 건
포르쉐다운 움직임이긴 한데,
지금이 2025년이라서
별다른 메리트가 딱히 없다.
2011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역시 포르쉐가 만드니까 사륜 구동에
SUV인 카이엔이 이런 움직임도 보인다'고
놀라며 말했을 텐데 지금은 남들도 다 해.
2025년은 현대차조차도
2.7톤짜리 아이오닉 9도
그런 움직임을 대놓고 보이게
세팅하고 전자장비 개입도
되려 독일차보다 더 죽여버리는
그런 놀라운 격동의 시대라고.
생각해보니 2011년의 카이엔 디젤은
지금의 아이오닉 9 가격과 비슷함.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