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GTI란 차는 사실
원체 유명해서 내가 굳이 말 안해도
자동차에 조금 관심을 가진 적 있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차량이다.
핫 해치백이란 장르를 만들어낸,
낮은 차량 가격과 유지 비용으로도
운전하며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러면서도 실용성까지 챙겨버린
사실상 만능에 가까운 차량이
바로 폭스바겐의 골프 GTI.
그런데 세상이 바뀌면서
비단 돈 뿐만 아니라 자동차 출력에도
인플레이션이 엄청나게 생겨버렸다.
이제 국산 고성능 해치백인
벨로스터 N도 275마력이고
280마력(NGS 290마력)이며
핫 해치 시장에 마찬가지로 참전한
BMW의 M135i는 무려 306마력.
장르가 조금 다르지만,
빠르게 다니거나 신나게 탈 만한
전기차인 더 뉴 EV6나 모델 3(하이랜드)
이 둘은 각각 325마력, 482마력.
물론 핫 해치는 출력 가지고 정의할 차가 아니지만
(일반 차량과 비교해서)비교적 높은 출력이 주는
빠르기는 핫 해치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에
전기차가 등장하며 출력만큼은
내세우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내가 모델 3(하이랜드) 시승기에
걔가 장르를 파괴한, 높은 차량 완성도의
새로운 폭스바겐 골프라고 했는데
그럼 진짜 오리지널 골프는?
그리고 그 위의 골프 GTI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글 제목에서 이미 말했다시피
8세대로 진화한 이 골프 GTI는
새로운 장르를 또 개척해나가는 중.
제목만 봤을땐 골프 GTI가
'핫 해치백의 대명사'라
또 뻔한 소리 하네 싶겠지만
내 블로그는 뻔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 하는 곳이 아님.
이 신형 골프 GTI는 이제
웜 해치(Warm Hatch)다.
핫 해치라고 하기엔 요즘 기준으론
조금 뜨뜻미지근한데,
또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음.
지금까지 핫 해치가 맞니 아니니만
많은 이들이 따졌지만, 신형 골프는
똑똑하게 그런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그 옛날 초대 골프 GTI가 했던 것처럼
자체적은 새 장르를 개척했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글을 차차 따라와보면 알 수 있다.
해외에는 이 8세대 골프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인 8.5세대가
진작 공개되었고 이미 판매중인데
역시나 폭스바겐코리아는
얼른 들여올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서
국내에는 아직도 8세대가 그대로 판매중.
그런데 8.5세대는 디자인이
좀 이상하게, 정확하게는
과시욕에 휩싸인거같이 바뀌어서
이 8세대 골프 GTI가
딱 단정하고 깔끔하니 좋다.
그런데 핫하다기보단
따뜻하단 인상을 받는 이유가
내가 기억하기론 5세대까지만 해도
GTI의 대표 컬러는 빨간색이었는데
지금도 빨간색이 꽤나 잘 어울린다만
내 눈엔 이 8세대에는
흰색이나 까만색을 칠하는게
디자인과 궁합이 더 좋다.
그릴 뿐만 아니라 헤드램프까지
빨간색 포인트가 길게 쭉 들어가서
차체까지 전부 빨간색으로 덮는것보단
악센트 컬러로서 남겨두는게 좋다.
뭔가 쨍하고 강렬한 이미지보단
단정하고 세련된 느낌이 이제 주 테마가 됨.
국내엔 없지만 포드 포커스 ST나
국내에 있는 미니 쿠퍼 JCW를 보면
확실히 걔네들은 골프 GTI보다
원색이 훨씬 어울리는 차량이라
악동같은, 장난꾸러기 핫 해치 느낌이
보기만 해도 대놓고 훨씬 강하잖아.
청소년때 막 뜨거웠던 가슴이
철이 좀 들면 온도가 약간 내려오는 것 처럼
골프 GTI는 성숙해진 만큼 이제
뜨겁다기보단 따뜻한 수준으로
온도가 내려온 느낌. 외관부터가.
실내 디자인은 전형적인 폭스바겐이고
이 레이아웃 및 디자인이 이미 선보인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 눈에 익은지 오래.
보기에는 깔끔하고 좋은데,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바로 아래에
공조 온도 조절과 미디어 음량 조절을
터치식 슬라이더로 만들어놓은 건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인지
의견 낸 사람 얼굴 좀 보고 싶다.
인포테인먼트 내의 UX도
죄다 몇 번 터치해서 들어가야 하고
직관적이지 못하게 되어있어
최악 중의 최악.
그리고 차선 이탈 경고 등
각종 ADAS 기능의 켜고 끔이
저장되지 않아 시동을 걸 때마다
계속 꺼줘야해서 굉장히 짜증난다.
이게 일반 골프라면 그럼직하지만
스포츠성이 가미된 GTI가 이러면 안 됨.
옛날엔 폭스바겐(그룹)이 그 누구보다
투박하고 수수해보일지언정
운전 중 직관적인 사용성과 실용성을
많이 따지던 회사였는데,
어쩌다가 이리 되었는지. 쯧쯧.
이래서 골프 GTI는 이런 성가신 장비가
새로 추가된 8세대 말고 차량의 근본적인
주행성이 거의 동일한 7세대를 사라는
조언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맞는 것 같다.
계기판 디스플레이와 그 주변부
베젤 디자인을 보니 뭔가 낯이 익지 않나.
르노코리아 그랑 콜레오스가 딱 똑같이 생김.
심지어 계기판 내부의 테마도
지금 GTI 전용 테마로 맞춰놔서 그렇지
일반 골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것들
GTI에서도 선택 가능한데,
그 테마들은 그랑 콜레오스와 유사함.
괜히 언급한 것이 아님.
이제 골프 GTI와 달려볼 시간.
보통 GTI 하면 으레 짜릿한 달리기를
연상시킬 법 하지만, 난 순서를 바꿔
사실 이런 핫 해치백에서
생각보다 제일 중요한
승차감부터 짚고 넘어가려고.
이번 8세대 골프 GTI에는
DCC(다이나믹 섀시 컨트롤)가 탑재돼
댐핑을 무려 15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전자제어식 서스펜션이 장착되어 있는데,
제일 부드러운 15단계로 놓으면
현재 국내에 판매중인 골프 2.0 TDI에
거의 근접하게 상시 부드러운 모습.
때론 더욱 매끈하게 요철을 넘어가서
이게 즐겁게 산길을 탈 펀카가 아니고
오히려 전륜 구동 고속 크루저같이
손쉽게 몇 백 km을 먹어치울
장거리용 투어러가 아닌가 싶을 수준.
반면 제일 단단한 1단계가 되면
공도 주행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단단해져
이 정도면 거의 트랙에서만 써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댐퍼의 성격이 확 달라진다.
스포츠 모드가 15단계 중 3단계라서
스포츠보다도 조금 더 단단한건데
스포츠 모드가 딱 노면 괜찮은 공도에서
빠르게 탈만한 마지노선으로 설정돼 있음.
그런데 이 제일 단단한 1단계조차
폴스타 2 퍼포먼스의 올린즈 댐퍼
순정 설정값보다는 훨씬 포용력이 크고
요철 친화적이라 간간히 턱턱 치는걸
감수할 수 있으면 그냥 탈 만 하다.
미니 JCW나 아반떼 N, 코나 N
국내에서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차종들과
승차감에서는 큰 격차로 우세함.
골프 GTI가 핫 해치백 치곤
스프링이 굉장히 탄력적이고 부드러운데
N 차량들은 이에 비하면 거의
스프링이 돌로 만들어진듯하게 단단하다.
N 차량들은 컴포트 모드를 놔도
골프 GTI의 스포츠 모드보다
모든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훨씬 단단하니
승차감에선 애시당초 같은 그룹이 아님.
미니 JCW는 활기차고 통통대는 대신
접지력의 수준 차이가 거의 하늘과 땅 차이.
골프 GTI가 듬직하게 바퀴를 바닥에 붙이는 편이라
안정감과 차분함이 훨씬 좋아 역시나
큰 격차로 골프가 승차감에선 앞서나감.
내 개인적으론 이 중에선 5단계가
차체를 충분히 빠릿빠릿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딱 정말 필요한만큼의 적은 롤만 생기게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의 충격량만
실내로 유입시켜 승차감 하락을
잘 억제해 올라운더로서의 차량 성격과
궁합도 제일 좋고 일상 주행을 포함해야 하는
고성능 해치백의 본분에 제일 잘 들어맞는다.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지만 해외에는 존재하는
상위 버전인 골프 GTI 클럽스포츠에는
아예 노면 나쁜 트랙에서 사용할 수 있는
'뉘르부르크링 모드'가 존재하는데
우리나라 도로 실정에도 그게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승차감으로 또 비교할만한 차가 음..
전기차 영역으로 넘어가면
가격대가 유사하면서 흡입력있는 운전에
다소 신경을 쓴 차량들이 내가 글 서두에 말한
더 뉴 EV6와 모델 3(하이랜드) 정도인데
더 뉴 EV6보단 골프 GTI가 낫다만
모델 3(하이랜드)는 따라가지 못한다.
신형 모델 3은 거의 낮게 앉은 BMW X5 수준으로
댐퍼를 정교하게 새로 짰거니와
골프 GTI보다 댐핑 스트로크가 약간 더 짧아
단단하게 조였을 시 더 잘 어울리거든.
이래서 골프 GTI는 뭐랄까,
정말 본격적으로 스포티한 달리기를
제대로 추구하는 차량은 아니다.
물론 GTI는 태생이 실용성까지 감안한
적당한 즐거움을 주는 균형파였지만
이번 8세대만큼 GTI인데도
승차감이 주요 강점으로 부각된 적이
아마 여지껏 없지 않나 싶을 정도다.
승차감 면에서도 막 뜨겁다기보단
포근포근 이불을 덮은 듯 안락하니
핫 보다는 웜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명색이 GTI인데,
차량의 퍼포먼스 이야기를
안 하고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우선 골프 GTI의 파워트레인은
5세대 골프 GTI부터 계속 이어져 온
폭스바겐의 EA888 엔진이 주축인데
이제 EA888 evo4라 네 번째 진화형이다.
그리고 걘 폭스바겐의 상징과도 같은
DSG 듀얼 클러치 변속기와 조합됨.
이 1984cc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 출력 245마력 @ 5000rpm,
최대 토크 37.7kg·m @1750 - 4300rpm의
아주 강하진 않지만 넉넉한 힘을 낸다.
엔진 블럭이 알루미늄이 아닌 주철이라
특유의 엔진 회전시의 안정감과 부드러움,
특히 고회전에서의 매끄러움이 있다.
알루미늄은 다소 높은 주파수의 진동을
외부 혹은 주변으로 전달하는 편이라서.
그리고 주철 블럭이라 튜닝 포텐셜이 좋다.
공장 출고 상태는 245마력인데,
워낙 폭스바겐그룹이 이 엔진의 출력을
더 높여서도 많이 쓰고있기 때문에
간단한 맵핑만으로도 출력이 확 뜀.
이 엔진의 주행 시 특징은 솔직하게 말해서
아우디 A6같은 차에 훨씬 어울림.
방금 말한 그런 부드러운,
4기통이라곤 믿기 어려운 매끈함은
짜릿한 차량에 얹어 쥐어짜기보단
효율적으로 파워를 내 큰 덩치를 이끄는
중형 혹은 준대형 세단에 더 어울리거든.
BMW의 B48도 비슷한 이유로
내가 M135i xDrive 시승기에
이런 차에 어울리는 물건은 아니다
라고 말을 했었는데 여기도 똑같음.
그럼 메르세데스-벤츠의 M260은 어울리냐,
아주 핫 해치다운 물건은 역시나 아니지만
그래도 미세하게 B48이나 EA888보단 가깝다.
현대의 세타 II 터보 이런건 그냥
걸걸거리고 회전 질감도 거칠고
엔진 리스폰스도 경쟁사들보다 느리고
여러모로 많이 부족해서 비교가 안 됨.
제일 핫 해치스러운 파워트레인은
아이러니하게도 BMW의 B48인데
이제 그걸 미니가 가져다 써야됨.
BMW가 쓰면 아주 밋밋하고 재미 없는데
미니가 JCW 차량에 올려서 쓰면
제법 묵직한 볼륨과 적당한 팝콘을
추가해서 훨씬 잡아돌리고 싶게 만들거든.
4기통 터보 전륜 구동(기반) 핫 해치 중에선
미니 JCW가 제일 즐겁다 내가 꼽는
주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변속기는 예전에 폭스바겐이
DSG를 처음 도입해서 쭉 쓸땐
듀얼 클러치 특유의 직결감과 체결감이
일품이었는데, 이번 골프 GTI는
도대체 왜 이렇게 부드럽게 다듬었는지
변속이 이루어지는지 내가 알기가 어렵게
변속 충격도 극도로 억제되어 있고
굉장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흘러간다.
하기사 포르쉐조차도 PDK를
날이 갈 수록 매끄러운 변속감에
더 초점을 맞춰 일반 모델에 얹고 있으니
'서민의 포르쉐' 골프 GTI도 당연한 수순.
분명 충분히 빠르게 변속하고 있고
스포티한 운전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도와주고 있는데, 그게 운전자인 나한테
그렇게까지 와닿진 않는다는 거.
핫 해치백은 운전자와 차량이
다른 더 높은 출력의 슈퍼카들보다
끈끈하게 교감하는 게 특징인데
이번엔 다소 서로 서먹해진 것 같다.
N 차량들이 현대차 출신이라
어쩔 수 없이 얹어야 하는
세타 II 터보 엔진에서의 열세를
변속기로 넘어오면서 확 뒤집는다.
N DCT의 땅땅 쳐주는 변속감과
번개같은 변속 속도 및
동력계통을 직접 잡아돌린다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거친 변속 질감
이 모든 것이 강력하고, 또 기분 좋다.
현대차가 듀얼 클러치 명가
폭스바겐을 변속기로 이기는 날이 오다니.
하지만 메인터넌스를 따지면
플라이휠 키트를 차량 운행 중
마일리지가 쌓이면 교환해줘야 하는
DCT로 즐거움을 내는 차량들보다
그냥 토크컨버터식 자동변속기로
엇비슷한 스릴을 만끽토록 도와주는
이번에도 미니 JCW가 더 낫다.
파워트레인 면에서는 거의 독보적임.
골프 GTI의 엔진 소리는
가상 사운드가 가세해서 들려주는데도
그렇게까지 카랑카랑하거나
시원한 톤이 아니고 무난한 편에
배기음도 그리 크지 않고
운전석 기준 저 뒤에 멀리서 들림.
나도 배기음 큰 차 싫어하지만
이건 좀 너무 작지 않나,
GTI 딱지를 떼버리고 일반
4기통 가솔린 터보 차량들과
극적으로 다른 면이 너무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다.
점잖다고 에둘러 쉴드치기에는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는 사운드다.
파워트레인도 끊는 듯한 뜨거움보단
적당히 '아 이만하면 잘 나가네'
여유롭게 약간의 펀치를 갖춘 느낌.
이래서 웜 해치란 말이 나온 것.
폭스바겐도 이를 알고 있는지
지난 7세대까지만 해도
출력을 크게 올린 GTI 클럽스포츠는
GTI 출시 이후 한참 뒤에 나왔었는데
이번 8세대 들어서는 거의 동시에 나왔다.
GTI 클럽스포츠는 300마력으로,
앞에 말한 N 친구들을 제침은 물론
메르세데스-AMG A 35 4Matic나
BMW M135i xDrive와 어깨를 나란히 할
그런 출력을 제대로 갖췄거든.
아예 이 때문에 GTI는 누구나 다루기 쉬운
그런 출력 수준에 맞춰서 내지 않았나 싶다.
당장 계속 언급중인 미니 쿠퍼도
원래 미니 쿠퍼 S가 최고봉이었는데
3세대부터 JCW가 공식 모델화되며
S는 다소 밋밋해진 중간에 낀 모델이 됐거든.
터보에 제대로 배기가스가 들어가는
3000rpm부터 본격적으로
터보가 뿜어내는 토크가 제대로 체감되는데
놀랍게도 이 EA888 evo4는
레드라인까지 가면서 힘이 빠진다는 인상이
터보차 치고는 꽤나 적은 편이다.
4기통 중 이 분야의 최고봉은 포르쉐의
수평대향 4기통 가솔린 터보인데,
그만큼은 아니지만 유사하게 느껴짐.
아무래도 엔진이 6700rpm까지 돌아
최고 회전수가 그리 높지 않단 점도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일 수 있겠다만
토크 유지력은 상당한 편.
가속력 자체는 제로백이 대략 6초 정도로
요즘 세상에는 그렇게까지 빠르진 않은데
이 작은 차가 6초만에 100km/h에
금세 도달하는 건 그리 느리지 않다.
다만 정지상태보단 속도를 더 많이 냈을 때
그때 꾸준한 가속력이 눈에 띄는데
확실히 아우토반의 나라 출신 차량들은
개발할 때 고속주행을 상정하고 만든단 게
고속주행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골프 2.0 TDI가 이 GTI보다
더 낫게 느껴져서 의아했다.
디젤 모델을 탔을때 '이건 정말
차 크기만 작지 정말 탱크같다
이래서 골프 골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바로 뇌리를 스쳤는데
GTI는 오히려 더 고속주행을 많이 하게 생겨선
그만큼의 묵직하면서 막강한 안정감까진 아니었다.
댐퍼가 단단한 게 주요 원인이겠지.
정말 많이들 착각하는데,
차량이 단단하다고 해서
높은 속도에서 더 잘 달리는 게 아님.
댐퍼 너무 단단하게 해놓으면
노면이 그리 매끈하지 않은
일반 도로에서 쏘다가 차 튀어서
어디 들이받고 사망하기 딱 좋음.
EV6 GT의 GT 모드가 딱 그렇더라.
앞좌석 시트가 굉장히 두툼하고
포르쉐의 스포츠 시트 플러스를
연상케 하도록 볼스터도 강조돼있는데
생각보다 최저 시트 포지션이
그리 낮지 않은 것이 의외다.
비엔나 가죽의 질은 그냥 양호함.
GTI의 심장은 그래서
내가 언급한대로 의도적인 디튠을
약간 거쳐 뜨뜻미지근한 수준.
이 역시도 핫 해치보단
웜 해치라고 이 차를 부를만한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한 대로 다 하는' 성격의
차량이 세상에 하나 더 있는데
출력도 거의 두 배, 가격은 두 배가 넘는
BMW M3 투어링이 그 주인공.
M3 투어링하고 워낙 많은 게 달라
직비교하는 건 좀 웃긴 일이지만
올라운더로서의 성격과 강점을 따져보면
M3 투어링은 왜건 형태의 차체만 가졌지
섀시 측면, 파워트레인 측면, 실용성 및
편의성 측면 이 모든 곳에서
단 하나의 타협도 하지 않은
정말이지 데일리 슈퍼카라고 부를만 한
놀라운, 꼭 사야 할 차량이었는데
골프 GTI는 가격대가 크게 내려와서인지
여러모로 모든 점을 부드럽게 다듬고
살살 달래놓은듯한 느낌이 강하다.
분명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GTI의 이미지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마지막으로 빼먹을 수 없는
차량의 코너링 및 섀시 이야기.
이번 8세대 골프 GTI는
풀 옵션이 늘 수입되다시피하는
대한민국 이외의 외국에도
VAQ(LSD)가 기본 장착됐다.
지난 세대만해도 브레이크를 잡아
토크 벡터링 기능을 수행하는 XDS만
GTI에 기본이었고, VAQ는 옵션이었는데
8세대 들어서 VAQ도 기본화됐음.
이 VAQ의 공격성은 아반떼 N의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에 비하면 거의 뭐
반절도 안 되는 수준으로 안 잡아당긴다.
N 차량들은 전륜 구동 차량에
그런 높은 토크를 보내는,
구조적 한계를 이끌어내는 행위를
최대한 거슬러보고자 전자식 LSD를
엄청나게 쫙 잡아당기게 만들어놨는데
골프 GTI는 이제 VAQ를 기본으로 갖췄지만
그런 시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딱 토크가 넘치기 직전에만 슥 닦아준달까?
그래서 토크 스티어도, 언더 스티어도
완벽하게 잡고자 하는 의지가
아예 초장부터 있지가 않음.
대신 이 전륜 구동 차량이란 특성을
운전자가 직접 느끼면서 이해하게끔
슬쩍슬쩍 티를 내는 수준 정도로 맞췄다.
전륜 구동 차량 치고
미니 JCW 다음으로 이렇게
후륜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차가
또 있나 싶을 정도이다.
요즘의 전륜 구동(기반) 고성능차는
아예 뒤에다가 힘을 보내버리고
그걸 우측으로 보냈다 좌측으로 보냈다
하는 등 별의별 방법을 다 쓰고 있는데
골프 GTI는 순수하게 트랙션 차이 및
운전자의 조작으로 뒷 바퀴를
이래저래 가지고 놀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아예 앞에다가 완전 중심점을 찍고
뒤를 팍팍 돌려버리는 미니 JCW와
정도 및 과격함은 분명 다르지만,
전륜 구동으로 내는 오버스티어도
즐겁다는 것을 성실하게 알려주는 중.
하중 이동이 천천히 일어나야
스킬이 높지 않은 운전자조차
대응할 시간을 갖고,
대처할 방법을 익히는데
그런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차량에 현재 끼워진 신발은
브릿지스톤 포텐자 S001.
235/35R19가 스퀘어로 끼워져있는데
차량 성격에 딱 맞는 폭과 사이즈다.
19인치를 끼고도 이렇게 승차감이 부드럽다니.
19인치나 되는 휠을 장착했단
느낌이 운전 중 거의 안 드는데,
코너링 시의 선명함에서는
이런 큰 휠을 꼈단게 약간 와닿는다.
참고로 이 19인치 'Adelaide' 휠은
해외에선 GTI 클럽스포츠에서조차 옵션.
내가 차량을 출고하면 이 타이어보단
피렐리 P Zero PZ4같은 걸 신길 듯.
좀 더 굳건히 신발이 받쳐주면
접지력을 꾹꾹 눌러담을 때
자신감과 확신이 더 생길 것 같거든.
사이드월과 컴파운드가 단단한 P Zero는
조향감도 직관적이게 느껴지기도 하고.
운전대 조향감은 묵직하니
'그래도 여전히 Das Auto 안 죽었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F8x M2, M3, M4들의
무식하게 무겁기만 하고
피드백은 거의 없는 엉망 스티어링과
완전 궤를 달리할 정도로 좋다.
솔직히 말해서 이거 전륜 구동 차량이고
전륜에 245마력이나 보내는데
이렇게 조향감이 깔끔하고
앞 바퀴에 전달되는 높은 토크가
앞바퀴 피드백 감각을 저해하고 있단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놀랄 노였다.
이거 이렇게 말하면 욕 먹을 각인데
정말 스티어링 피드백이나 조향감은
포르쉐 911과 718 박스터보다 낫다.
포르쉐도 전자식 EPS를 도입하곤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었는데
서민의 포르쉐가 진짜 포르쉐를 추월.
락투락이 짧아서 운전대를
조금만 돌려도 차가 쉭쉭 움직이는데
차량의 섀시 자체가 앞머리에
완전 몰입했다기보다는
차체 전체가 한 목소리로 삭 움직이게
설정되어 있어 저속에서 빠릿빠릿하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 감각 및
제동감은 이런 Das Auto에,
The Original German에
기대할만큼 선명하진 않았다.
이런 부분은 정말 포르쉐가 끝판왕.
브레이크는 차량의 누적 마일리지가
1200km대를 갓 넘겨서인지
길들이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듯.
제동력을 확인하긴 그래서 어렵다.
이래서 골프 GTI의
주행을 관통하는 DNA는
안정감, 편안함, 신뢰성.
막 뜨거워서 데일 법한,
뭣 모르고 운전하다 들이박을
그런 위험한 차가 아니다.
골프 GTI의 마지막 숨은 병기라면
매트릭스 LED 기술을 품은 IQ 라이트.
그렇게 좋기로 정평이 나 있고
4천만원대 차량에 이런 게 기본 사양이라니
호화롭기 그지 없는데, 아쉽게도
난 낮에만 이 차량을 타서 체험을 못함.
터널에 들어갔을 때 밝긴 하더라.
현대기아차가 최근 지능형 헤드램프(IFS)를
슬슬 다양한 차종에 탑재해 나가곤 있지만
개별 빔을 꼼꼼하게 제어해서
최적의 시야를 밝히면서 타인의 눈부심은 막는
그런 정교함은 여전히 많이 부족한 편.
이 IQ 라이트엔 악천후 모드도 있어서
A필러 하단 좌우까지 비춰주는데, 정말 좋다.
이 정도 헤드램프 퀄리티라면
메르세데스-벤츠의 멀티빔 LED나
디지털 라이트가 안 부러운 수준.
이 차의 시승기를 어찌 마무리할까
고심을 좀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8세대 골프 GTI의 퍼스널 컬러를
사람처럼 굳이 따지면 가을 웜톤 같은 느낌.
여전히 서늘한 기계스러운 질감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지구 온난화로 많이 사라지고
따뜻한 나날이 이어지는,
그런 가을같은 계절감의 웜톤.
딱 2024년 올해 가을 같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가을볕은
여름 못지않게 따가웠고
골프 GTI도 힘차게 달리려고 할땐
한번씩 그런 쨍한 맛을 은근슬쩍 보여준다.
그래서 8세대로 거듭난 골프 GTI는
전통적인 핫 해치백의 범주보단
새롭게 웜 해치백이란 세그먼트를
따로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다.
내가 이 차를 타고 오고선
정말 차는 참 좋은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진 않는달까.
즐겁지만 궁극의 짜릿함은 없고
그래서 만족이 안 되는 이 감정이
처음에는 되게 어색하게 다가왔었다.
좋은 차인데 마음 속에서 좋은 평이 안 나오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역시나 퓨어 스포츠카에 익숙해진 이들한테
이 차는 너무 친절하고 부담이 없으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내 운전을 다 받아줄 느낌.
스포츠카들이 으레 선사하는 짜릿함이나
때론 위험하게 느껴지는 스릴
이런 것들을 여기에서 찾으면
번지수를 잘못 찾아 온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골프 GTI가 약간
아우디화 된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장르의 1번 타자이기 때문에
낯선 감정이 든 게 어쩌면 당연한 것.
골프 GTI가 나긋해졌다고 해서
의미가 퇴색됐거나 그렇진 전혀 않다.
나긋해진 게 절대적으로 따져서도지만
상대적으로 따져서도 그러하니
스포츠카에 수반되는 타협 따윈
고민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겐
지금도 골프 GTI는 훌륭하다.
모두가 더 공격적으로,
더 스포티하게 차를 조이는 와중에
혼자 다른 길로 향한 골프 GTI.
이런 방법도 나쁘지 않네.
하지만 FF로 궁극의 재미를 누리자면
내 선택은 미니 쿠퍼 JCW.
근데 미니 쿠퍼가 이번에 엉망이 돼서
살만한 차가 아반떼 N 뿐인데...
아 몰라 그냥 펀카랍시고 FF 사지마
제대로 된 F(M)R이나 MR 차량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