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로 넘어오면서
출력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
내연기관으로는 1천 마력을 달성하기 위해
이제는 전기 모터 3개로 해결이 가능한데다
엄청난 가속력을 내면서도
기존의 큰 엔진들 대비
몇 배나 적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바야흐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대가 확실하다.
그래서 그런지 국산차에도
무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고작 3.5초만에 도달하는 차량이 나온단다.
이름하여 EV6 GT.
얼마 전 내가 엄청난 호평과 찬사를
동시에 쏟아부었던 그 EV6의
더욱 성능을 끌어올린 고성능 모델.
EV6의 완성도는 실로 어마무시했다.
E-GMP 플랫폼을 활용하는 형제들 중에서는,
EV6가 가장 스포티함을 추구하는 차량이지만
특별히 '나 엄청나게 빠르고 단단해'
과시하는 모델이 아닌 보편적인 차량이다.
그런데 그 속에 숨겨진 엄청난 가능성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나,
기아차가 드디어 미친 것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하는 차종이었다.
그걸 기반으로 성능을 한껏 끌어올린
EV6 GT는 당연하게도 나를 비롯한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관심의 대상.
드디어 긴 기다림 끝에 EV6 GT가 나왔다.
'한국형 슈퍼카' EV6 GT는 과연
EV6의 맏형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국산 양산차 최초의 580마력 출력과
국산차 최단시간인 3.5초의 제로백을
내세울만큼의 멋진 달리기 실력을 보여줄지.
EV6 GT의 외형은 사실
기존에 나와있던 EV6 GT-Line과
별반 차이가 없으나, 소소하게 다르다.
그런데 오히려 GT-Line이 내가 보기엔
훨씬 스포티하고 고성능차 다운 분위기다.
GT의 경우는 앞 범퍼의 공기 흡입구 폭이
GT-Line의 것보다 가로로 짧고,
안개등 역시 세로형 디자인이라
GT-Line이 보다 더 안정되고 낮게 깔린 스탠스.
뒷 범퍼의 반사판 역시 마찬가지이다.
GT의 경우 범퍼의 장식들이 대개 세로형.
하지만 21인치의 큰 휠과
그 뒤에 숨어있는 대형 브레이크 디스크,
형광 녹색 브레이크 캘리퍼를 보면
이 차량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GT 모델의 테마는 형광 녹색이라
실내의 스티칭 및 GT모드 버튼까지
모두 동일한 색상으로 꾸며져 있다.
실내로 자리를 옮기면 상당히 본격적인
형상의 시트가 운전자를 반긴다.
GT라는 뱃지를 붙이면 이 정돈 해야지.
그 밖의 차이점이라면 앞서 언급한
형광 녹색 포인트 컬러로 꾸며진 실내.
그 외엔 기본형 EV6와 큰 차이는 없다.
실내 곳곳이 스웨이드 재질로 덮혔지만
이런 스웨이드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난 무조건 가죽이 좋다.
운전석에 앉으니 기대감에 꽤나 설렌다.
기본형 EV6의 시트도 괜찮았지만,
EV6 GT 전용 시트는 확실히 멋드러진다.
전기차이기 때문에 최저로 내려도
여전히 약간 높은듯한 시트 포지션은
어쩔 수 없이 감안하고 넘어가야지.
시트 자체의 지지력이 엄청나게 좋지는 않다.
너무 운전자를 꽉 잡아주는 시트는
아무래도 범용성은 크게 떨어지기에
차량의 전반적인 용도를
두루 감안한듯한 모습인데
우선 GT라는 이름에는 어울리는 선택.
GT의 의미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Gran Turismo의 약자로서 이태리어다.
영어로는 Grand Tourer.
빠르게 달리며 먼 거리를 달리는,
장거리 고속주행 특화 차량이라는 뜻.
'GT' 혹은 이와 비슷한 네이밍을 붙이고도
원 의미를 착실하게 따르지 않는 차들도
여지껏 더러 있어왔지만, 어쨌든 GT는 이런 차량들.
최근에는 GT카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긴 역사의 페라리에서만 주로 많이 보이는 듯.
한 예로 488 GTB의 GTB는
Grand Turismo Berlinetta의 약자.
Berlinetta 역시 2도어 차량이라는 이태리어라
고속주행용 2도어 차량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그럼 기아차가 그동안 내놓았던 GT는 어떤가.
제대로 선을 보였던 것은 스팅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현재는 현대차그룹이
별 볼일 없어보이기도 하지만,
스팅어 3.3 터보 GT는 첫 등장 당시에는
정통 후륜구동 차량다운 실루엣과
형제차인 제네시스 G70 대비
좀 더 큰 덩치에 넉넉한 적재공간,
비교적 편안한 장거리 운행 편의성 등
'GT' 이름값에 정말로 충실한 차량이었다.
3.3 터보 엔진의 넉넉한 토크로
고속으로 도약하는 것 역시 편안했고.
기반이 된 EV6의 훌륭함,
짧지만 이름값엔 충실했던 역사,
최근 현대기아차의 우수한
차 만들기 역량까지 한 데 모여
EV6 GT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인다.
첫 시작은 상당히 좋다.
나는 운전석에만 주로 앉기 때문에
기본형 EV6 승차감에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지만,
뒷좌석 승차감이 부족하단 지적이
더러 있었는데 이제 이 역시도 개선됐다.
기본형 EV6를 타며 차량의 많은 요소들이
폭스바겐그룹의 그것을 연상케 했는데,
EV6 GT의 승차감은 아우디 느낌이 꽤 난다.
아우디 중에서도 1억 전후하는 모델들.
저속 주행 중에는 GT 모드를 놓더라도
댐핑이 강하게 억누르지 않는데다
스프링 자체는 원체 부드럽게 설정돼
아우디 느낌에서 덜 탱탱하면서 찐득한
전반적으로 좋은 수준의 승차감이다.
컴포트나 에코 모드로 돌리면 더 하다.
21인치나 되는 큰 휠을 끼웠다는
흔적을 운전자에게 별로 전달하지 않는다.
최근 현대기아차 모델들 중
승차감 좀 괜찮단 최신 차량들은
대개 이 느낌과 상당히 유사하다.
아이오닉 6 역시도.
그래서 차에 대한 첫 인상은 매우 좋았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직전까지만.
EV6의 하이라이트는 달리기 성능.
EV6를 타면서 정말 재밌었던 것은,
우선 자세제어장치를 버튼을 눌러 해제하면
순수하게 꺼져서 별다른 방해를 하지 않는데다
묵직한 무게감이 안정감 구현에 일조하면서
운전자의 의도대로 후륜이 미끄러지기에
통제할 줄만 안다면 매우 즐거운 차량.
당연히 무게와 덩치, 특히나 긴 휠베이스 탓에
트랙을 공략하거나 할법한 차는 아니었지만,
공도 주행 환경 하에서는 재밌게 달리기
부족함이 보이지 않는 차량이었다.
특히나 이런 저렴한 충전비용으로
누리는 즐거움이라니. 감동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EV6 GT는 재미가 없다.
정말 의외인 부분이었다.
여기서부터 과연
'이 차는 무엇을 지향하는 차인가' 하는
굉장한 의문에 빠지게 된다.
우선 내 심기를 건드린 것은 eLSD.
기본형 모델과 달리 EV6 GT는
뒷바퀴에 전자식 LSD가 장착된다.
내가 벨로스터 N을 싫어하는 이유와 동일하게
이 차는 LSD의 개입이 굉장히 티가 많이 난다.
코너 중간즈음 악셀을 전개하면
코너 중간지점을 바라보며 차가 안쪽으로 말린다는,
LSD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표시가 확 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아반떼 N으로 오면서 N 차량의 경우
이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었기 때문에
아반떼 N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EV6 GT는 아직 LSD의 잠김 정도를
제어하는 로직 최적화가 덜 된 것 같다.
기아차가 후륜에 LSD 장착을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설익은 실수를 했을까 다소 의문.
여기에 더해서 굉장히 '사륜 구동' 차량 같다.
최근 고성능 차량들의 트렌드는
접지력 확보 및 초반 가속력 강화를 위해
사륜 구동을 채택하면서도
후륜 구동을 기반으로 삼은 흔적을
템포가 높은 주행 시 전부 보여준다는 점이고
기본형 EV6는 4WD를 선택하더라도
운전재미가 죽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오히려 4WD의 충분한 출력이
EV6의 무게와 덩치를 갖고 놀기에
한결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기에 흡족했었다.
각을 잡고 미끄러트리면 후륜 구동 차량처럼
슬며시 잘 미끄러진다는 점도 대박.
그런데 EV6 GT는 오히려 더 잘 미끄러지고
더 활기차야 할 것이 더욱 재미가 없다.
좋게 말하자면 안정감 추구인데,
운전 재미를 깎는 선까지 넘어서면서 이러는 건
이 역시도 아우디같은 행동인지 뭔지.
전륜 모터가 GT 모드건 스포츠 모드에서건
너무 자주 들어와 즐거움을 방해한다.
'드리프트 모드'가 별도로 있지 않느냐?
사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기본형 EV6는 스티어링 휠 좌측
ESC OFF 버튼 꾹 누르기만 하면 잘 꺼지는데
이건 별도로 드리프트 모드를 들어가는
수고를 무려 'GT' 라는 차량에서 해야 하나?
심지어 드리프트 모드 진입은 굉장히 복잡하고
정차 중에 해야 한다. P단까지 걸고서.
실수로 진입해서 ESC가 다 꺼져
어디 들이박는걸 방지하기 위해
이런 말도 안되는 절차를 거치게 해놨나본데
솔직히 EV6 GT를 살 정도의 사람이면
이걸 실수로 진입할 일이 있나?
그냥 인포테인먼트 메뉴 중 설정 같은 곳에
숨겨두면 되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오히려 대중적인 성격이 강한 기본형은
ESC OFF 하기 쉬운 반면
매니악한 EV6 GT가 이런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심지어 끄더라도 드리프트 모드가 아닌
GT 모드에서도 완전히 꺼지질 않는다.
GT 모드 선택 후 ESC OFF 버튼을
꾹 눌러 다시 완전히 끄더라도
개입 시기가 늦춰질 뿐 해제되진 않는다.
이게 나를 굉장히 신경질나게 했다.
심지어 기본형 차량보다 출력이 높아선지
ESC의 개입 정도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일찍 개입하는데 역시나 이해불가.
코너 중반에서 악셀을 전개하면
기본형 EV6의 경우 높은 섀시 완성도와
적절한 ESC의 개입 정도에 힘입어
안정감과 속도감을 동시에 구현했고
ESC OFF시 슬쩍 뒷바퀴가 빠지면서
캐주얼하게 달릴 시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EV6 GT는 기본적인 카운터조차
코너 중간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아래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타이어가 꽉 잡고
ESC 역시 내가 차량에 기대하는 만큼
충분히 놔주지 않는다.
드리프트 모드에 들어서야 비로소 다 꺼진다.
그런데 '드리프트'와 '빠르게 달리기'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고, 난 서킷 같은 곳에서
빨리 달리고 싶은데 자세제어장치 개입을 막으려고
드리프트 모드를 켰더니만 전륜에 동력이
일반적인 상태보다 적게 가서
가속력에 손해를 보면 언짢을 것 아닌가?
그리고 순정 타이어가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츠 4S인데, 얼핏 봐선 좋으나
내가 보기에 차량과의 궁합은 영 꽝이다.
동일한 타이어를 쓰는 아반떼 N의 경우
HN 딱지가 붙는 전용 타이어인데,
EV6 GT의 경우 그런 거 없다.
그리고 잘 안 놔주는 ESC와
이 타이어의 높은 접지력으로 인해
원체 잘 미끄러지지도 않고,
기본형 대비 느껴지는 밋밋함을 더욱 강조시킨다.
타이어가 255/40ZR21 규격인데,
EV6 GT의 무게와 덩치를 감당해가며
아예 안정감에 집중하기에는 폭이 모자라고
즐겁게 차를 날리며 타기에는
굳이 21인치에 굳이 255mm일 필요가,
심지어는 굳이 파일럿 스포츠 4S일 필요까지
굳이 있나 싶다. 한 마디로 별로다.
차라리 접지력 수준이 살짝 낮은
피렐리의 피 제로 코르사 pzc4나
파일럿 스포츠 4 정도를 끼는게 어떨지.
GT 모드 + 2단계 ESC OFF 상태에서
정말 억지로 날려보겠다고 악셀과 조타각을
계속 무리해서 유지하면 뒤가 미끄러지긴 하나
기분 좋은 형태가 아니어서 역시나 별로.
내가 의도해서(조향,가속) 미끄러진다기보다는
LSD가 잠겨서 미끄러지는 모양새.
그나마도 GT 모드에서야 이렇고,
일반 스포츠 모드에서는 아예 미끄러지지도 않는다.
기본형 EV6는 후륜 구동이든 사륜 구동이든
스포츠 모드에 ESC OFF면 아주 잘 날아가는데.
기본형 차량(20인치)에 적용된
컨티넨탈의 크로스컨택 RX가 4WD에는
출력을 감당하기 살짝 모자라게 미끄럽다 했는데
차라리 그 편이 훨씬 재밌다.
주제를 아는 운전을 하기도 훨씬 수월하고.
기본형 EV6는 스프링이 그닥 단단한 편이 아니었지만
큰 덩치를 즐겁게 휘두를 만큼의 단단함을 갖춰
빠른 조향에 의한 적당한 차체 반응성을 냈고
대신 댐퍼가 충분한 감쇠력으로
안정감 구현 및 차체 지지를 해나갔었다.
그런데 EV6 GT는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있다는 것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전륜 서스펜션의 스프링이
기본형보다도 더 부드럽게 설정된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빠릿빠릿함이 떨어지게 느껴진다.
오히려 후륜쪽에 힘을 몰아주기 위한
조치로 느껴지지만 후륜도 글쎄.
후륜 모터에 물려진 출력이 더 강한 것 외엔
전반적인 역동적 주행 성능 구현과는
전/후륜 모두 거리가 있어 보인다.
조작성이 그 때문에 기본형 EV6보다
사실 되게 떨어지게 '느껴진다.'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
이게 되게 중요한 차이인데,
운전 감각 측면에서 GT가 훨씬 무난하고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댐퍼 역시 컴프레션이 강한 것에 비해
리바운드가 너무 약해서 LSD의 역할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너무 언더스티어 쪽으로
차량 밸런스가 치우쳐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거기에 타이어와의 미스매치,
ESC의 중간 개입까지 전부 합쳐져서
두루 주행질감이 기본형만 못하다.
그것도 아주 큰 폭으로.
EV6 특유의 그 묵직함과 노면을 짓누르던,
나는 "911 같다"고 표현하던 그 느낌이 사라졌다.
전륜 모터가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
GV60 퍼포먼스 AWD보다야 낫지만,
둘 다 재미없기는 뭐 비슷하다.
그렇담 원래 'GT'의 의미처럼
편안하게 먼 거리를 달려나가는
그런 크루징용 차량에 더 맞는걸까?
애석하게도 EV6 GT는 그 부분에서도 실격.
세상에 최근 탄 차량 중에서 초고속 영역으로
도약했을 때 이렇게 불안정한 차는 오랜만.
댐퍼가 너무 강하게 - 특히 GT 모드에서 - 설정돼
130km/h 위에서는 차가 사방으로 튀며
170km/h 위에서는 내 몸이 시트에서
이탈하려고 할 정도로 노면과 차가 따로 논다.
더 높은 속도로 출력을 믿고 올려보면
다시 올라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컴포트 모드로 돌리면 조금 나아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가 일반적인 주행을 하는
도로들에서는 전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
GT 모드는 도대체 그럼 왜 만든거야?
이름값만큼 빠르고 편안하게 달리기도 안돼,
아주 역동적으로 차를 잡아돌리기도 안돼
그럼 이건 도대체 존재의 의의가 뭐지.
형광 녹색으로 큼직하게 스티어링 휠에
버튼을 따로 달아둘 정도라면
'모든 걸 다 놔주는' 모드가 되어야지
시선만 왕창 끌고 별 볼일 없네.
평균속도가 160km/h는 되어 보이는
자유로 이산포JC - 파주 구간 같은 곳에서
EV6 GT로 밟다간 저승길로 직행한다.
전기차는 악셀을 밟는 즉시
풀 토크가 나오지만, 회전수가 많이 높아지면
서서히 발생하는 토크량이 떨어진다.
EV6 GT는 그 부분에서 아주 훌륭하게,
배터리 온도 제어가 이루어지며
기본형의 최대 15000rpm보다
훨씬 높은 21000rpm까지 모터가 회전해
어지간한 초고속 영역까지 높은 토크가
쭉쭉 밀어주는 느낌이 인상적이다.
K-아우토반 동해고속도로가 아니라서
최고 속도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이런 하드웨어 및 BMS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낸 현대기아차 연구진에 박수를.
그런데 문제는 최대 토크 자체가
기본형 EV6 4WD의 61.7kg·m보다
차이나게 높지 않다(75.5kg·m)는 것.
그래서 순간적인 가속감은 오히려
EV6 4WD가 더 강하게 느껴지고
EV6 GT는 후반까지 꾸준히 밀기 위해
초반의 가속 민감도와 강도를
의도적으로 깎아놓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최고 출력이 이렇게 차이나는 이유는
EV6 GT의 모터가 훨씬 높게 회전하기 때문.
물론 런치 슬립 컨트롤같은 신기술 적용으로
모든 것을 해제하고 GT 모드까지 놓으면
3.5초의 무지막지한 가속력이 나오지만
서울 시내에서 드래그를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택시라면 모를까. EV6 GT는 택시로 강추.
물론 택시로 쓰이면 손님들이 무조건 토함.
*동일한 스포츠 모드 기준, GT 모드 아님
그리고 변속기가 없는 전기차 특성상
높은 속도로 갈수록 전비가 급격하게 하락해
대륙간 탄도미사일같이 고속으로
꾸준히 항속주행하기 실질적으로 어렵다.
기술적 진보는 당연히도 인정하지만,
우리가 쓸 일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GT'라는 정체성에 아직 전기차는
그닥 맞지도 않거니와
EV6 GT는 그러기도 불편하다.
그리고 GT라는 컨셉에 맞추려면
편안하고 안락한 시트를 갖춰야 하는데
굳이 이런 형상의 시트를 그것도 수동으로?
차라리 착좌감 좋은 전동시트를 다는 게
GT라는 이름값에 더 걸맞다.
물론 EV6 GT는 고속에서 차가 매우 튀기에
어지간한 볼스터로 운전자를 잡아두기 힘들지만.
차라리 풀 버킷 시트를 다는게 나을 것 같다.
2.2톤의 뚱땡이에 대단한 경량화 효과가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닐 것 아닌가.
난 상관 없지만 통풍 기능이 없어서
펄펄 뛸 사람들이 더 많을 듯. ㅋ
테스트 차량의 누적 주행거리가
200km밖에 되지 않았기에,
제동력을 판단하기에는 부적합하나
기본형 EV6 4WD가 조금 부족했던
브레이크 부분을 강화했다는 점은 좋다.
지금 기준에서도 제동력은 괜찮았으나
이는 대부분 파일럿 스포츠 4S 덕분.
조향감은 가변 기어비 MDPS를 적용했는데
유약한 전륜 서스펜션과 만나
조향성이나 정보 전달력에서 모자라고
특히나 580마력짜리 차 치고는 많이 부족하다.
다시 타이어 이야기로 잠시 돌아와서,
전기차는 아직까지 주행가능거리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고속 주행을 염두에 둔 차량이라면
역시나 파일럿 스포츠 4S보다 다른 타이어가 좋다.
접지력이 높다는 것은 구름 저항이 높다는 뜻이기에
342km밖에 안 되는 환경부 인증
주행가능거리에 타이어가 일조한다.
물론 살살 타면 400km은 넘겠으나
방전까지 쓸 수 없다는 전기차 특성상
이렇다면 300km 전후해서 매번 충전해야 한다.
참고로 와인딩 반복 테스트 시
EV6 GT가 기록한 전비는 무려 2km/kWh.
감이 잘 안 온다고?
단순 환산하면 100% 충전 시
이 전비라면 대략 140km 주행 가능.
난 기본형 EV6가 너무 훌륭해서
이런 발열 제어를 갖춘 EV6 GT가
저렴한 유지비로 서킷 어택할 좋은 차가 될 거라
굳게 믿고 있었는데, 적어도 비용은 맞다.
인제 3세션 타면 대략 80km 정도인데
3세션 타고 충전하고를 반복하면
내연기관 차량의 각종 소모품과 기름값 소모 대비
충전료와 타이어값만 감당하면 되니
인제서킷 가서 노는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인제까지 오고 가는 톨게이트비 반값은 덤.
근데 EV6 GT가 서킷을 탈만한 차가 아니네?
에라이...
그래서 이 차가 뭘 말하고 싶은건지
전체적으로 쭉 둘러봤을 때 하나도 모르겠다.
직선 구간에서 편안하게 쏠 수 있는,
안락한 GT 그 자체도 전혀 아니고
곡선 구간에서 짜릿한 기분을 만끽하며
잡아 돌릴 수 있는 차도 전혀 아니다.
출력은 높지만 막상 타보면
초고속 구간 진입 전까지는 기본형과
대단하게 차이가 나는 경우는 드물다.
전기차는 밟으면 전비가 살살 녹기에
사실 출고하고 한 두번 한 뒤로는
런치 컨트롤 및 GT 모드 진입 후
즈려밟는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전동/통풍시트는 없고.
저속구간 승차감이 더 좋아졌지만,
그걸 위해서 천 몇백만원을 더 태워?
내 대답은 강력하게 '아니올시다.'
웃기게도 EV6 GT가 평범한 주행 상황에선
더 윗급 제네시스 GV60보다 승차감이
좀 더 낫긴 하지만, 제네시스는 제네시스다.
난 이보다 i4 eDrive40(기본형)이 더 재밌었고,
아직 i4 M50은 타보기 이전이지만
i4 특성상 M50이 더 기대되는 모델이라
EV6 GT를 살거면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천만원 더 주고 i4 M50으로 가겠다.
그게 아니라면 EV6 기본형이 모든 것을 만족한다.
(차량가액 기준) 8500만원 정도로 올라가면
탁월한 승차감과 고급감, 상품성의
어중간한 가격대에 이상한 상품성.
그보다 결정적으로,
앞서 칭찬한 이 미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곧 아이오닉 5 N이 출격한다.
EV6 GT보다 훨씬 하드코어한,
정말 순수한 재미를 추구한 모델이 등장 예정.
어차피 전기차로 초고속 항속주행
구매자들이 잘 안할거라면,
산길을 타는 데 완전 미쳐버리는 게 어떤가.
아이오닉 5 N이 그 주인공이 될 거라 한껏 기대중.
EV6 GT가 달성 못한 본격 첫 국산 전기 서킷 머신
타이틀 역시 이 친구가 가져오지 않을까.
EV6 GT는 본격 첫 번째 한국형 슈퍼카가
될 자질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등장했지만
서자는 역시나 서럽다.
아이오닉 5 N에 등장할 기술력을
세상에 공개하는 쇼케이스격 차량밖에 안 됐다.
아이오닉 5 N이라는 차량의 존재가
즐거움 및 짜릿함 추구를 방해한다면,
'GT' 답게 편안하고 빠른 그런 차가 될 수도 있었잖아.
GT라는 이름이 왜 붙은건지,
단순히 그냥 기아차의 고성능 브랜드가
고작 개나소나 갖다쓴 GT라는 단어여서
억지로 붙은 건가 싶다.
EV6 GT는,
자기가 뭘 해야되는지 하나도 모르는 멍청이.
GT 이름값이 아깝다.
운전재미를 생각하면 기본형 EV6 4WD.
정말 전기차로 미쳐버리고 싶으면
아이오닉 5 N을 기다리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