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항상 지나간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그게 기억 속에서 미화된 것이든
정말 좋았던 기억들로 가득해서든
확실한 건 이따금 과거를 추억하면서
그땐 좋았다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일이
잦지는 않지만 종종 있는 일이라는 것.
2000년은 태어난지 3개월 차였던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맞았던 해지만
Y2K라 새천년 건강체조도 생기고
90년대를 주름잡던 X 세대가
지금 MZ라며 도매금으로 묶여 고통받는
M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던 시기.
아직 얼마 살지 않은 내가 회상한다면
머릿속에 떠올릴 때가 바로 이 시절이다.
당시에는 갓 출범한 삼성자동차가
SM5를 내세워 돌풍을 일으켰지만 휘청였고
대우자동차는 위기에 봉착한 상태였다.
사람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지만
자동차업계에 큰 획이었던 한 가지는
바로 '고성능 SUV'의 서막이 오른
본격적인 시기가 이 때라는 것이다.
지금이야 청담동에 하루종일 있으면
전국에서 다 모인 메르세데스-AMG G 63이나
람보르기니 우루스 등을 지겹게 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퍼포먼스 SUV는 생소한 개념.
독일 메이저 3사들이 본격적으로
SUV를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영화 < 쥬라기 공원 >에 등장해 친숙한
메르세데스-벤츠의 ML-클래스(지금의 GLE)가
체어맨에도 얹힌 M113 엔진의 5439cc 버전을
심장으로 얹고 ML 55 AMG를 내놓은 것이
첫 총성이 울린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지금의 GLE-클래스와 달리
ML-클래스는 언제나 평가가 좋지 않았고
현재의 AMG와 달리 그때는
정신나간 토크로 아스팔트를 씹어먹었지만
순수 역동성과는 거리가 다소 멀었다.
망할 뻔한 포르쉐를 살려낸
카이엔이 아직 등장하기 전이니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인지 확 와닿지 않나.
지금은 국내에서 카이엔 출고대기가 2년.
그러니 사실상의 퍼포먼스 SUV의 시초는
2001년에 나온 BMW X5(E53) 4.6is다.
당시 온로드 중심의 스포츠 지향 SUV로
큰 인기를 끌던 X5의 고성능 버전.
추후에 BMW가 미친 짓을 한번 더 한다만,
암튼 그땐 이게 세계에서 가장 빠른 SUV였고
이때만 해도 이런 모델들은 이상하게 여겨졌다.
국내에선 당연히 상상도 못했고.
그런데 세월이 흘러 2022년에
첫 국산 퍼포먼스 SUV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바로 이 글의 주인 코나 N.
물론 이전에도 큰 엔진을 얹은
국산 SUV들이 종종 있어왔고
이를테면 맥스크루즈 3.3 GDi라던가
재작년에 출시된 제네시스 GV80 3.5T가
국산 SUV 중 최고 출력(380마력)을 달성,
국산차 역시 기술 발전에 힘입어
퀀텀 점프를 이루었다.
하지만 '달린다'에 집중한 국산 SUV는
단 한번도 제대로 등장한 적이 없었다.
코나 N은 명실상부 국산차 최초의
고성능 SUV로서 명예가 드높고,
그와 동시에 어깨가 무겁다.
22년동안 세상은 물론이고
경쟁사 제품들의 완성도와 소비자의 기대치
둘 다 압도적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N 브랜드를 런칭한 지 얼마 안 된
현대자동차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2000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대한민국 첫 고성능 SUV 코나 N.
2000년대를 그리워하는 내게
과연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지.
코나 N은 강력한 라이벌이
국내에서조차 이미 있다.
바로 아반떼 N이라고.
코나 N과 동시에 출시되었지만
레시피상 더 뛰어날 수 밖에 없는,
이미 타봤지만 완벽에 크게 가까워진
무시무시한 적수가 함께 판매중.
아반떼 N은 구매 사유가 너무나도 명확한데
코나 N은 그럼 누구를 타겟팅한 걸까.
일단 외관부터 살펴보면
코나 N은 당연히 '코나' 답게 SUV이고
코나의 디자인을 공격적으로 다듬었다.
아반떼가 방사능 실험실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아반떼 N과 달리 코나 N은 독특하게도
코나 N 라인의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큰 스포일러와 본격적인 후면 디퓨저,
박격포식 듀얼 배기구와 N 전용 휠 및
범퍼/스커트 하단의 빨간색 포인트 정도가 전부.
하지만 코나 N 라인의 디자인 자체가
이미 꽤나 스포티하고 멋지기에
작정하고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고
N이라는 이름에 충분히 어울리는 스타일링.
특히 후면은 앙증맞으면서도 대담하다.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고 출발하니
N 모델다운 시동음과 배기음이 반긴다.
아반떼 N때도 이야기했지만
새로 튜닝한 배기음과 가상 사운드는
벨로스터 N때보다 훨씬 듣기 좋아졌다.
밖에서 듣는 볼륨 자체도
벨로스터 N DCT보다 소폭 커졌고
SUV일지언정 '듣는 즐거움'은 놓치지 않았다.
패밀리카로 주로 쓰이는 큰 SUV들과 달리
활동적인 일상을 원하는 1인 혹은 2인을 위한
소형 SUV이기에 소리도 자유분방한 그대로.
컴포트 모드에서 일부러 첫 출발을 했는데
가변 배기 플랩이 닫힌 상태에서는
약하게 팝콘이 터지긴 하지만
남들이 쳐다볼만큼의 볼륨은 아니다.
오히려 코나 N의 과감한 디자인에
시선을 뺏기면 뺏겼지.
시승 차량은 '아틀라스 화이트' 색상인데
국내 지명을 이름에 붙인 기념으로
'다이브 인 제주' 색상이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만
아틀라스 화이트 색상이 워낙
코나 N, N 라인과 궁합이 좋아 만족.
다만 일반 코나에 흰색은 쏘카같다.
출발 즉시 바로 와닿은 것은,
아반떼 N과 셋팅 방향이 다르다는 것.
아반떼 N은 유연한 신형 플랫폼을 깔아
고성능 차량 치고는 굉장히 부드럽지만
일반적인 차량들과 비교해선
매우 단단한 스프링과 댐퍼를 갖추고도
여유넘치는 승차감과 역동성을 구현했는데
코나 N은 모든 것이 바늘 끝에 간 듯한,
눈에 핏줄과 목에 핏대가 거칠게 세워진 느낌.
스프링은 코나 N이 더 부드럽고
댐핑 스트로크도 더 긴데,
오히려 그래서 둥근 요철은 코나 N이
아반떼 N보다 시트로 더 전달한다.
큰 충격이나 아주 자잘한 잔 충격은
코나 N이 더 잘 넘기지만 깔끔함이 덜하다.
그래서 전부 따져보면 코나 N의 승차감이
아반떼 N보다 그리 뛰어난지 잘 모르겠다.
아반떼 N은 팔방미인의 너그러움이,
코나 N은 뒤쫓는 입장의 급박함이 느껴진다.
역시 새 플랫폼 앞에 장사 없다.
아반떼 N은 훨씬 접지력이 좋은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S를 쓰기에
이를 믿고 댐핑의 강도를 적정선에 끊었는데
코나 N은 벨로스터 N과 동일하게
피렐리의 P Zero를 쓰는 것도 이유일 터.
난 P Zero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접지력만 놓고 보면 게임이 안 되는 것도 사실.
아반떼 N의 더 긴 휠베이스와
베이스 모델인 아반떼와 코나의 차이까지
전부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본다.
코나 N이 모자란 게 아니라
아반떼 N이 너무 뛰어난 걸로.
벨로스터 N의 뻣뻣한 승차감과 비교하면
코나 N은 SUV라는 약점을 지니고도
상당한 개선을 이루었다.
한 가지 코나 N이 앞서는 것은
출력을 쏟아내는 방식이다.
아반떼 N보다 훨씬 강한 출력감과 토크감이
가속 페달을 밟는 내내 휘몰아친다.
아반떼 N의 몇 안되는 약점이
N 전용 2.0L 플랫파워 터보 엔진인데
이는 예전부터 쓰이던 세타 II 터보를
완전히 뜯어고치다시피 손봤음에도
기존 세타 II 터보가 워낙 형편없어서
폭스바겐의 EA888(골프 GTI)나
메르세데스-벤츠의 M260(A35 AMG)보다
회전 질감과 카리스마, 동력 성능 모두
따라잡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
플랫파워 딱지가 붙으면서
고회전 영역에서 토크 지속력이 개선된 건
확실히 체감이 되었으나 여전히 아쉬웠는데
코나 N은 SUV라는 점을 감안했는지
초반 응답성을 더욱 앞으로 당겨놨고
5500rpm까지는 더 강하게 밀어붙인다.
이후 6700rpm까지는 플랫파워 엔진이지만
터보 엔진답게 소위 '바람 빠지는' 느낌,
전달되는 토크가 줄어드는 느낌은 동일하다.
아이들 상태부터 5500rpm까지의
가속감이 아반떼 N보다 한결 강력해서,
레드라인까지 가는 과정마저도
아반떼 N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아반떼 N 탈때와 동일한 외기온(9℃)인데
토크 스티어가 밑도 끝도 없이
훨씬 강하게 발생하는 것만 봐도
코나 N은 출력을 뿜어내는 것을 넘어서
가진 것을 전부 쥐어짠 뒤 토해낸다.
이런 가속감은 엔진에 대한 아쉬움을
약간이나마 덜어주고, 좋은 일이다.
N Grin Shift(NGS)까지 동원하면
그야말로 날아다닌다.
180km/h 이상에서는 SUV인 특성상
공기저항 탓에 크게 더뎌지지만.
고속 안정감은 아반떼 N보다
당연하겠지만 소폭 못하다.
아반떼 N이 워낙 뛰어나기도 하지만
속도를 올릴수록 노면과 가까워지는
그 밀접한 느낌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그런 감각이 없으니 조금 허전하다.
제원 상 최고 속도는 240km/h.
위에 언급한 X5 4.6is보다 빠르다.
V8 4619cc 독일 SUV보다 빠른
I4 1998cc 터보 국산 SUV.
21년의 세월과 체급 차이가 있지만,
국산차의 발전이 눈부시고
정말로 격세지감이다.
이런 언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대자동차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실감나게 해주고, 최근들어 유투브의
해외 리뷰 채널 댓글창에 이런 언급이
많이들 적힌걸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니다.
N 차량의 중요한 특징이라면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을 꼽겠는데
아반떼 N은 종전과 다르게
자연스러우면서도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그 적절한 셋팅에 감탄했던 바 있다.
벨로스터 N은 eLSD의 개입이
너무나 인위적이어서 불쾌했는데
아반떼 N은 거짓말처럼 제대로 고쳐서
남양 연구원들의 노고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코나 N은 높은 차량 차고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코너 안쪽으로 집어넣는다는
인위적인 느낌은 동일하게 없지만,
작동의 효과는 글쎄.
아반떼 N보다 디퍼렌셜이 잠기는 것도
풀리는 것도 둘 다 덜하게 느껴진다.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이라는 이름 답게
아주 날카로워야 하는데
조금 무뎌지고 흐물흐물해진 느낌.
디퍼렌셜의 작동 효과가 덜해서
토크 스티어가 아반떼 N보다
풀 악셀 시 더 강하게 발생하는 것이기도.
SUV라는 특성을 생각해서
조금 널널하게 셋팅한 것 같은데,
사실 코나도 패밀리카로 쓰긴 너무 좁다.
그래서 코나 N도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코나 N은 아반떼 N보다
전장이 460mm나 짧고,
휠베이스도 120mm나 짧다.
이만하면 엄청 큰 차이.
코나 N은 작은 차 답게
코너에 들어가고, 돌아나가고,
탈출하는 모든 과정이 경쾌하다.
'코나 N은 누구를 위한 차일까'라는
앞선 질문의 해답이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정말 순수하게 운전 재미를 추구하는,
랩타임은 좀 뒷전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차 일줄 알았는...데
맞긴 하나 여기선 SUV라는 점이
크게 발목을 잡는다.
만약에 이게 i30 N으로 나왔다면
재미만을 요구하는 고객 헌정 차량
같은 느낌일텐데 높은 차고와
부푼 덩치가 아쉬움을 남긴다.
i30 N만 해도 아반떼 N보단
코나 N의 크기에 더 가깝거든.
사실상 국내에 팔지 못하는 i30 N을
SUV의 형태로 국내에 들여온게
코나 N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거기에 이미 구형인 2세대 플랫폼 기반이라
신형 3세대 플랫폼을 쓴 아반떼 N같은
노면에 착 붙는 느낌이 없다.
접지력이 낮은 P Zero와
SUV 특유의 덩치까지 맞물려
코너에서의 안정감은 아반떼 N이
한 3수 정도 위.
'코나 N은 누구를 위한 차일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 나섰건만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반떼 N에서 또 감동했던 건
제동 감각이 너무 자연스럽고
트랙 주행 시 차체의 움직임을
컨트롤하는 법을 체득하기 좋게
훌륭한 셋팅값을 자랑한다는건데
희한하게 코나 N은 그렇지는 않았다.
시승차의 브레이크 길들이기가 처음에
똑바로 안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초반 페달감이 좀 공허하게 느껴진다.
아반떼 N의 경우 정확성도 놓치지 않았는데
코나 N은 '이 정도면 이 만큼 서겠지' 보다
약간 더 깊게 밟아줘야
원하는 만큼의 제동파워가 나온다.
브레이크의 성능이 부족해서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PS4S 대비 P Zero의 접지력이 낮아서라기엔
타이어 온도를 충분히 올렸음에도
페달을 밟은 초반에만 모자라게 느껴지고
30% 선부터 제동력이 더 터져나오는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쉽다.
변속기는 이제 칭찬하기 입 아프다.
N 전용 8단 습식 DCT는 정말이지
이런 저렴한 가격의 차량에 기본 포함인게
정말이지 가히 미친 수준이고,
현대자동차가 국산차라 가능한 일.
N 파워 시프트 기능 적용으로
변속 시 탁 하고 밀어주는 느낌이
수동의 클러치 붙는 느낌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한 운전재미를 선사한다.
N 험로 주행 모드라는 것도 있는데
코나 N이 SUV라는 점을 감안해서
이런 기능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로 험지에 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기에 테스트는 딱히.
SUV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다.
비록 전륜 구동일지라도.
사실 난 이 차에 앉아만 보고
이미 낙제점을 준 상태였는데
굳이 타보는 이유는
위에 궁금했던 코나 N의 정체,
'정말 재미있는 차'일지도 몰라서
타보고 나서 한 소리 하려고 기다렸다.
Pure Fun은 아닌 걸로 판명났으니
이제 그 얘기 할 차례.
이 차의 시트와 계기판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모르겠다.
시승차는 'N 프리미엄 시트'(25만원)가
적용된 풀 옵션 모델이다.
그 말인 즉슨 아반떼 N에 옵션으로 구비된
'N 라이트 버킷 시트'가 없다는 것.
SUV니까 세미 버킷시트가 없다고 치자.
그럼 달려나오는 전동시트는
운전 자세는 최소한 멀쩡히 뽑혀야 하지 않나.
일단 시트를 최저로 낮춰도 너무 높다.
너무 높은 수준이 아니라 에베레스트다.
이게 팰리세이드라면 넘어가겠는데
명색이 고성능 SUV 아닌가?
시트 포지션 자체가 전혀 맞지 않다.
스티어링 휠 틸팅 범위는 또
왜 이렇게 좁고 제한적인가.
시트가 높으면 스티어링 휠 위치도
그에 맞게 높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앉은 위치는 높은데 스티어링 휠은
내가 원하는 만큼 올라오지 않아
이상한 자세로 열심히 달려야 한다.
스포츠 버킷시트라는데 지지력도 별로.
아반떼 N의 기본 시트랑 형상이 다른데
아반떼 N의 기본 시트는 어떤지 모르겠다만
통풍 시트고 나발이고 그딴게 뭐가 중요해.
통풍 필요하면 이 돈으로 그랜저나 사라고.
당장 N 라이트 버킷 시트 가져와라.
고성능차라면서 운전자세가 트럭같은
이런 말도 안되는 차는 처음 본다.
10.25인치 풀 디지털 클러스터는
시선상 정면이 아니라 아래로 파묻힌 형태.
코나 N은 분명 고성능차라며?
왜 고작 계기판 보는데 시선이동을 시키지.
테슬라 오너들도 아니고 난 계기판 본다니까.
시트 포지션이 높아서 더 짜증나게 만든다.
한마디로 높게 앉아있으면서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은 저 아래 있는 것.
개발하면서 테스트 안 해보셨나요?
이것 때문에 이미 별 1개 확정.
이런 가격에 이런 패키징이 워낙 대단해서
정말 심한 말 안 하고 싶은데
이 운전 포지션은 그냥 미쳤다고밖에 할 말이.
탁월한 변속기를 보며 화를 억누르고
이 차를 보며 든 한 가지 의문점을 떠올렸는데
코나 N은 출시 전 사륜 구동이라는 소문도
잠시 돌았었던 모델이었다.
그러나 양산 차량은 전륜 구동으로 출시.
현대자동차 측에서 이에 대한 답변을
공식적으로 준 적이 내가 알기로 없는데
사실 처음에는 나도 갸우뚱했다.
코나 N은 유럽에도 판매할 모델이고,
유럽은 고성능 소형 SUV의 격전지이다.
코나 N의 경쟁 차종들로 꼽을
폭스바겐 티록 R, 아우디 SQ2,
쿠프라 아테카, BMW X2 M35i
그리고 메르세데스-AMG GLA 35까지
전부 사륜 구동계를 갖추고 있다.
코나 N만 혼자 전륜 구동인 셈.
잠시 앞에 언급한 2000년으로 돌아가자면
현대자동차의 사륜 구동 고성능차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짧지 않다.
어릴 적에 < 그란 투리스모 4 >에서 본
베르나(액센트) WRC는 정말 멋졌고,
이 차량이 현대자동차가 WRC에 첫 참전하던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출격한 차량.
최근 i20 N WRC 차량은
2019년 현대 모터스포츠 팀에
컨스트럭터 1위를 안겨주기도 했고
2020년에도 2위, 2021년엔 3위를 기록했다.
N 브랜드 이미지를 선도하고 있는 것도,
현대자동차가 내세울 수 있는 모터스포츠도
전부 사륜 구동 차량인데
정작 N 라인업에 사륜 구동 차량이 없다니.
우스갯소리 하나 더 하자면,
2000년 전후로 출시된 현대정공 싼타모는
사륜 구동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미쓰비시의
랜서 에볼루션 III의 구동계에서
LSD를 빼고 갖고 들어온 게 그것.
사실 알고보면 현대자동차의 DNA는
네 발 달린 동물의 것이 아닐까.
근데 왜 코나 N은 전륜 구동이냐고.
이유를 추론해보건대 네 가지다.
첫 번째는 바로 가격.
이런 차량들의 본고장
우중충한 날씨의 영국 기준으로
코나 N은 3만 6천 파운드 정도.
티록 R은 3만 9천 파운드 전후로 시작,
쿠프라 아테카는 4만 파운드부터,
메르세데스-AMG GLA 35는
조금 더 비싼 4만 5천 파운드부터.
아주 피튀기는 가격대인데,
여기서 사륜 구동까지 얹고
가격을 더 올려서 받게 되면
사실상 신입이나 다름없는 N 브랜드인데
N 브랜드 최초의 SUV를
제아무리 i20 N, i30 N으로 입지를 다졌지만
너무 높은 가격표를 붙이는 셈이 된다.
일반 코나에 쓰이던 걸 그대로 쓸 순 없으니
코나 N에 맞는 사륜 구동계를
별도로 연구개발해야되기도 하고,
장착 시 인상되는 차량 원가까지
다 고려하면 전륜 구동으로 멈추는게 맞다.
두 번째는 바로 무게.
현대자동차가 발표한 코나 N의 공차중량은
1510kg*로, 이것만 보면 감이 잘 안 온다.
사이즈가 아주 살짝 더 큰 티록 R이
사륜 구동까지 얹었는데도
Curb Weight(공차중량)이 1497kg.*
*티록 R의 국내 미출시로 둘 다 영국 기준
세 번째는 배기가스 배출량과 연비인데
약간 억지스럽기도 한 것 같지만
코나 N은 Co2 배출량이 194g/km이다.
티록 R은 사륜 구동 얹고 196g/km.
국내랑 달리 유럽은 배기가스 배출량으로
자동차세를 매기는 경우가 많고,
연비도 코나 N이 복합 33.2mpg
티록 R은 복합 36.7mpg로
코나 N이 전륜 구동인데도 더 무겁고
배기가스는 비슷하게 내뿜으며
연비는 더 떨어진다.
사륜 구동은 이 모든 것에
악영향을 끼치면 끼쳤지 보탬이 되진 않는다.
아무래도 세타 II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N 플랫파워 엔진 탓 같은데, 별 수 없다.
이게 해결되려면 아이오닉 5 N까지 기다려야.
여기까진 전부 돈 때문에 그렇다는 거.
코나 N은 유럽 전략 차종임을 잊지 말아야.
마지막으로 최근 사륜 구동 핫 해치나
이를 기반으로 만든 고성능 SUV는
다판클러치식 LSD의 클러치 팩을 통해
좌/우 후륜에 동력을 최대 100% 몰아주는
그런 똑똑한 사륜 구동계를 채택한다.
경쟁 모델 중 전륜에 LSD가 달린 차는
존재감이 소멸하다시피 한
BMW의 X2 M35i 뿐이고,
이마저도 기계식이라 다르다.
나머지는 전부 후륜에 달리며
코나 N만 전륜에 전자식 다판클러치 LSD
일명 '코카디'가 장착된다.
연구개발의 비하인드를 나는 모르지만
아마도 사륜 구동계를 구조상
완전히 손봐야 하지 않았을까 추정.
궁극적으로 이것도 돈 문제긴 한데
돈 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니까.
쓰면서 이걸 조금이나마 풀어놓은
현대자동차측 보도자료가 있을까 싶어
열심히 찾아봤지만 그런 거 없다.
문과니까 헛발질은 여기까지 해야지.
그건 그거고
아쉬운 건 여전히 아쉽다.
코너 중심을 향해 당차게 나아가는 데
뒷 바퀴까지 돌면 더 박력있게 꽂힐텐데
막 나가는 사춘기의 청소년이 되기엔
아직 한참 남은 2000년의 내 모습 같기도.
고성능차에서 후륜이 돌고 안 돌고는
제 아무리 전륜 구동 기반 사륜 구동이라
최대 50%의 힘밖에 뒤로 못 보내더라도
분명한 큰 차이인데, 코나 N은 없다.
특히나 휠베이스가 짧은 차라서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을 더 갈구하게 된다.
사륜 구동이었더라면, 코너 중반에서
악셀을 내리밟으면 마치 부스터 킨 것 처럼
부왁 하고 튀어나갈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라.
아이오닉 5 N은 사륜 구동으로 나오겠지.
그래서 정녕 앞에 던진 질문
'코나 N은 누구를 위한 차인가?'에 대한 대답은
영영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나는 시승 중엔 찾지 못했다.
작은 덩치의 이점은 높은 차고가 덮고
그 외엔 SUV라 역동성 면에서
물리적 한계로도, 현대자동차의 셋팅에서도
많이 풀어진 상태이기에 손해를 봤다.
짧은 전장 및 휠베이스가 주는 짜릿함과
폭발적인 엔진의 출력감은 기억에 남는데,
아반떼 N을 놔두고 굳이 이걸 골라야 하냐면
글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아반떼 N의 키를 집어들겠다.
비단 주행성능 뿐만 아니라 실용성까지
아반떼 N이 뒤처지나 하면 그것도 또 아니거든.
아반떼 N은 2열 승차감에 마술을 부렸고
심지어 2열 레그룸도 코나 N에 비하면
아주 광활해서 아파트가 따로 없다.
코나 N은 코나의 고질적인 좁은 2열을
너무나도 당연히 그대로 갖고 있고
소형 SUV들이 다 그렇다지만
트렁크가 크기도 힘들다.
아반떼 N의 트렁크 용량이 더 크다.
폴딩 하면 코나 N이 더 크지만
코나 N 사서 차박 하시게요?
코나 N은, HUD가 없으면 운전이 안 되는
아주 기이하고 대한민국에 몇 명 될까 싶은
그런 소비자에게 제격이다.
아반떼 N엔 없는 HUD가
코나 N에선 옵션으로 고를 수 있으니.
코나 N에 스마트 크루즈컨트롤이 있다고,
눈이 번쩍 뜨이는 노인네들이라면
코나 N이 아니라 그랜저나 사라.
도대체 왜 이런 차에 ASCC를 요구하는지?
인제 서킷 가서 열심히 탄 뒤
돌아올때 크루즈 켜놓으면 편하다고?
이런 머저리들은 집에나 있길 바라지만
돈이 남아나서 코나 N이 사고싶다면
구입해도 꽤 괜찮을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인제 서킷에 자주 갈건데
ASCC를 위해 아반떼 N을 포기하고
코나 N을 살 미친 인간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대한민국 안에서는 적어도
극단적으로 소수의 고객층을 겨냥했다.
옛날에 렉스턴이 대한민국 1%를 자처했는데
이건 대한민국 0.00001%쯤 되겠다.
둘 다 SUV라는 공통점은 있네.
유럽 현지의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유럽에서는 성공하길 빈다.
유럽인들이 하체가 짧고 팔이 길었던가?
아반떼 N은 아반떼가 미치다 못해 돌았다면
코나 N은 코나 배기구에 청양고추를 왕창 넣은,
그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코나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아반떼를 '고성능'으로 재정의하는 것.
둘은 여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2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부 다 끝까지 갈아엎은 코나 N은
이미 저문 몇 년 전의 현대자동차에 대한
에필로그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달라지던
그 첫 발자국을 내딛던 시기에 대해
스스로 보내는 마지막 피날레 겸 찬사랄까.
유통기한 임박한 재료들을 한 데 모아
최고의 레시피로 요리해서 만든 느낌.
분명 레시피대로라 맛이 없진 않은데
음식은 모름지기 신선도가 중요하지.
새로 갓 사온 신선한 재료들로는
대충 만들어도 맛있다.
근데 아반떼 N은 스타 셰프까지 등판.
이길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난 얼마 전부터 최근까지
'어렸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기왕 어려질거면 지금과 똑같이 살더라도
가장 많이 어려지는 게 좋겠지.
태어난 직후인 바로 2000년이 제격.
그런데 막상 생각을 해 보면
지금 누리는 이 모든 진보된 것들이,
그 시절에는 꿈도 못 꾸지 않나.
10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현대자동차에서 이런 차가 나올거라 하면
대낮부터 약주했냐고 물어보지 않겠나.
그런데 하물며 20년 전은 어떤가.
따지고 보면 2022년인 오늘이
22년 전의 오늘보다 사실
훨씬 더 나은 세상이란 걸 잊지 말자.
기억조차 없는 2000년에 대한 향수는
오늘날 눈 앞에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게 해주는 장치가 아닐까.
달려나가는 아반떼 N의 운전석에 올라
뒤는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물론, 후회가 일상인 일부는 돌아봐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