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곱 살때 개봉했던
'분노의 질주 : 도쿄 드리프트'의 대사 중
현대차가 언급 된 대목이 있다.
주인공에게 빨간색 랜서 에볼루션을 주며
주인공의 서포터 역할을 하는 '한'이
라고 말하던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만 해도 현대가 만든 차란
주행 성능과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차.
이미지로나 현실으로나 모두 맞다.
심지어 '한' 역을 한국계 미국인인
성강 씨가 도맡아 했으니...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현대자동차는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최근 현대자동차의 행보는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을만큼
모든 면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다.
판매량으로는 아직이지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제네시스,
현대에게 영국 Top Gear 선정
'올해의 브랜드' 트로피를 안겨준 아이오닉.
거기에 Never Just Drive를 내세워
싸고 넓지만 주행성능은 떨어진다던
그간의 현대자동차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새로운 고성능 브랜드 N까지
전부 생각보다 빠르게 안착시켰다.
그동안 나는 N 브랜드의 탄생과
가능성은 높게 샀지만,
내놓는 모델 라인업은
쏘나타 N 라인을 제외하면
내게 늘 비판의 대상이었다.
모름지기 퍼포먼스 카, 펀 카라면
운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운전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차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벨로스터 N은 단연 최악의 차.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이
너무 깊고 강하게 개입해
모든 코너링을 차가 대신 수행하고
핸들을 통해 들어오는
노면의 피드백은 제한적이며
청각적인 요소 및 편의성은 엉망인
하나부터 열 까지 다 싫은 차였다.
심지어 N 브랜드의 첫 모델로서는
의구심이 들 만큼 너무 강한 BMW 향.
N 브랜드가 절대
저렴한 BMW 아류작으로
남으면 안 된다고 펄펄 뛰는 나는
벨로스터 N은 모든 것이 완전히
잘못 나온 차라고 주장해왔다.
여전히 내겐 미니 쿠퍼 JCW가
완벽한 펀 카의 표본으로 남았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두 번째 메인 N카,
아반떼 N이 혜성같이 등장했다.
해외네는 i20 N과 i30 N이 있지만
국내에는 코나 N 포함 총 3종류 뿐.
지난 벨로스터 N 이후
처음 만나는 N이라 기대가 컸다.
사전에 공개된 내용과 광고 모두
흥분을 자극하긴 충분했다.
자칭 '펀카'를 표방하면서
나한테서 좋은 점수를 얻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인데
운전연수 하면서 탔던 차가 745i
면허 따고 처음 몰아본 펀카가 JCW,
그리고 그 뒤에 휴가 가서 탄 게 MX-5.
이건 뭐 현대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기준점이 높다.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저런 것들만 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반떼 N은 상당히 기대되는 차.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하는데.
키를 받아 차에 타니
이미 아는 것처럼 최저 시트포지션이
내가 희망하는 것 보다 좀 높다.
새 플랫폼을 도입하면서
저중심 설계를 그렇게 강조했는데
시트 포지션을 낮추는건 왜 안 되나.
그리고 조작부 자체가 수동이다.
어차피 정말 경량화에 신경쓰면
기본형 시트로 출고 후
경량 풀 버킷 시트로 바꿀 듯 싶은데
지지력과 사용성을 둘 다
무난하게 잡는 용이면
전동으로 만드는게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지지력은 준수하다.
다행히도 수동 시트인데
운전 자세는 얼추 금방 나왔다.
나는 팔보다 다리가 긴 사람이라
남들보다 앞으로 당겨 앉고
시트 방석 앞부분을 들어서
다리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데
버킷 시트라 잠기는 듯한 자세여서
내게 맞는 시트 포지션은
어렵지 않게 바로 잡을 수 있었다.
BMW를 닮아서 좋은 점 하나는
핸들의 림이 내 취향에 맞게 두껍다는 것.
늘 말하지만 나는 BMW M 핸들이
두껍고 손에 꽉 잡혀서 아주 좋다.
BMW만큼 엄청나게 두꺼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의 두께.
포르쉐의 GT 스포츠 핸들은 너무 얇아.
시동을 거니 아반떼 N으로 오면서
개발진들이 신경을 쓴 부분 첫 번째가
즉시 귀에 들어왔는데, 바로 소리다.
벨로스터 N은 실내에서 들으면
어처구니 없이 심심한 주제에
아파트 단지의 다른 입주민들을
성질나게 만드는 소음이었는데
아반떼 N은 배기음과
실내 가상 사운드 조율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 같다.
벨로스터 N과 미니 쿠퍼 JCW를
비교하면서 소리에 대한 아쉬움을
늘 토로했었는데, 시작이 좋다.
첫 출발은 노멀 모드로 시작했는데
놀랄 만큼 승차감이 좋다.
아반떼 N은 벨로스터 N 처럼
전자제어 서스펜션을 채택하여
주행 모드 간 승차감 차이를 두는데
벨로스터 N은 출퇴근용으로 쓰긴
부담스러울 정도의 승차감이었다.
아반떼 N은 새 플랫폼으로 오면서
유연해진 충격 흡수 능력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좋다.
(후륜이 멀티링크인)아반떼 하이브리드보다
승차감이 비슷하거나 좋으니 놀랍다.
벨로스터 N은 제일 부드러운 셋팅에서도
뻣뻣하고 마치 위축된 신입사원 어깨마냥
신경질적으로 충격을 받아들였는데
아반떼 N은 시간이 흐른 만큼 여유가 보인다.
아무래도 타이어 편평비가 겨우 35%에
폭이 245mm, 휠 사이즈도 19인치
이다보니 교량을 넘을때 쾅 하거나
자잘한 충격을 시트로 전달하긴 하지만
고성능 차량에 이정도도 용납 못하면
이 돈으로 그랜저나 사라.
신형 플랫폼의 특징 중 하나가
후륜 서스펜션에 힘이 들어간 느낌을
적용된 대부분의 차량에서 준다는건데
아반떼 N은 오히려 그렇지가 않아
더욱 승차감이 깔끔하게 느껴진다.
큰 요철이 아니라면
밟았을 시 아반떼 N의 승차감이
쏘나타 N 라인보다도 좋다.
아반떼 N의 순정 타이어는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츠 4S인데
타이어가 타이어 자체 성능 치고
승차감이 준수하긴 하지만
모든 것을 감안해도 놀랍다.
난 유튜버 및 기레기들이
아반떼 N의 승차감이 좋다고 떠들 때
대부분 반 이상 걸러 들었는데
타보니 사실이었다.
본격적으로 달리려고 짜둔 코스에
도착해서 이제 N 모드로 변경.
N 스탠다드 모드로 놓고 시작했다.
N 차량들은 전부 'N 코너 카빙 디퍼렌셜',
즉 LSD(전자식 / i20 N의 경우 기계식)를
기본으로 다 장착하는데,
벨로스터 N의 경우 이게 그 차를
싫어하는 주된 원인이 되었었다.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이 너무 강해
차량의 움직임이 내 의도와 따로 놀고
마치 차가 나를 훈계하는듯한,
"트랙 레코드를 위해선 이 라인 타야해"
하는 잔소리만 계속 해댈 뿐
나에게 여유나 즐길 시간은 주지 않았다.
실제로 코너 진입, 통과, 탈출은
전부 빨랐지만 즐거운가 하면 아니었다.
스톱워치를 상대로 매일 싸우는
프로 선수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내 의지와 페이스대로 즐기려 하고
운전을 하나의 취미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런 강박을 주입하는 차,
즉 벨로스터 N은 싫다.
북악산에 매일 들이박는 오너들 수준에
전혀 맞지 않는 차이기도 하고.
아반떼 N의 경우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했다.
N 커스텀 모드에서 e-LSD를 스포츠로 놔도
위화감 없이 부드럽게 개입했다 풀린다.
골프 GTI의 XDS(+VAQ) 디퍼렌셜이
들어온듯 나간듯 바로 알아채기 힘든
알쏭달쏭한 느낌을 주면서도
GTI 클럽스포츠 S가 뉘르부르크링에 가면
전륜구동 차량 중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울 정도로 효과적인 LSD인데
그 장점을 아반떼 N이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 문제를 벌써 고치다니 내 짐작으론
개발진들이 이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N 코너 카빙 디퍼렌셜의 개입은
충분히 부드럽지만 또 아반떼 N 자체는
굉장히 공격적으로 코너를 공략한다.
차체의 강성은 좋아졌지만
새 플랫폼 자체의 유연함을 무기로 삼아
코너로 진입하는 동작과 태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이에 비하면 벨로스터 N은
짜리몽땅한 게 애쓰는 느낌이다.
마트 바닥을 이모님들 대신 청소하며
장난감 사달라고 떼 쓰던 어린이가
갑자기 4년 만에 어른이 됐다.
한가지 더,
주행 감각에서 N 브랜드만의 색깔을
쏘나타 N 라인부터 서서히 갖추더니
아반떼 N 역시도 착실하게 구현했다.
더 이상 짝퉁 BMW가 아니어서
정말이지 천만 다행이다.
후발주자라 겪은 설움 중 하나는
여기저기에 빗대어지기 쉽다는 건데
드디어 N 브랜드도 고유 색깔을
아직 완전히 선명하진 않지만
도화지에 칠하기 시작했다.
기껏 런칭한 서브 브랜드가
남의 다리 밑으로 기어 들어가면
이 얼마나 억울하고 헛되는가.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한데,
정말 다행히 한 번으로 끊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라면
몇 번 실수해도 봐주겠지만
늦게 참전한 만큼
실수할 여유가 남아있지 않다.
아반떼 N은 개성을 갖추고 이미 유명한
GTI나 GR, 타입 R, R.S.를 맹추격한다.
또 벨로스터 N은 핸들의 무게감이
N 모드를 놓으면 너무 무거워서
오히려 가짜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면서 정보 전달량은 적었다.
나는 BMW M3(F80)의 핸들 역시
무게감 설정이 개판이라고 말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데
딱 그 문제를 답습한 꼴이었다.
아반떼 N은 가장 무거운 셋팅에서도
핸들을 돌릴때 무게감이 적절하다.
제일 가벼운 컴포트 모드에서는
일상용 차량으로 쓰기에도 충분하고
스포츠+ 모드에서는 돌릴 맛이 난다.
다만 노면에 대한 피드백은
조금 더 많아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고성능 차량 치고는 약간은 제한적인데
더 많이 전달하면 좋을 것 같다.
자연스러운 코너링과 핸들링이
한 데 어우러져 아반떼 N은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완숙한 퍼포먼스카로
한 단계가 아니라 한 다섯 단계 성장했다.
기존에는 서킷만 고려한 차였다면
아반떼 N은 빌딩 숲과 진짜 숲,
그리고 서킷에까지 전부 어울린다.
핸들 무게감 역시도 고쳐진 걸 보니
개발진 쪽에서 지각 중이던 듯.
내가 미니를 사랑하는 이유는
미니가 자랑스레 내세우는
'고 카트 필링'이라는 특유의 감각,
전륜구동 차량임에도
후륜의 재빠르고 날쌘 움직임에
훨씬 더 작은 차를 타는 듯한
묘한 느낌 때문인데
아반떼 N의 주행 질감이
마음에 든 이유도 얼추 비슷하다.
벨로스터 N의 경우는
후륜의 움직임을 작정하면
재빠르게 휘두를 수 있으나
그렇게까지 가면 위험하고
차 자체도 이를 거부하려고 한다.
대개 전륜구동 = 언더스티어라고 생각하는데
아반떼 N은 해당사항이 거의 없다.
물론 미끄러운 노면에서 내리밟으면
순간적인 토크스티어는 발생하나
고출력 전륜구동차량다운 문제는
말끔하게 잡은 상태이다.
아반떼 N은 놀자고 차에게 말하면
자신도 좋다고 기쁘게 대답하고
N 모델 답게 탁월한 안정감 속에서
안전한 선을 지켜가며
고의적인 빈틈을 보인다.
페라리가 SSC(Side Slip Control)라고
자세제어장치를 완전히 해제하지 않고도
운전자가 차량을 음미할 수 있게
최근 E-디퍼렌셜과 함께 넣어서 돕는데
이 시스템이 정말 똑똑하다만,
아반떼 N은 이를 전륜구동 차량에
일부 적용한 것 같다. 너무 과찬인가?
오버스티어 역시 어렵지 않게
내가 하고자 하면 구현 가능하다.
난 운전을 즐기려고 펀카를 타는데
아반떼 N은 드디어 내 요구를
받아줄 마음이 차에서 엿보인다.
스포츠세단의 필수 요소라면
운전자와의 대화인데
아반떼 N은 나에게 하는 말도 많아졌고
나의 말도 차분하게 잘 들어준다.
벨로스터 N을 타면서
제동력에 대한 불만은 크게 없었으나
제동 감각 또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바가 없었다.
아반떼 N의 네 번째 놀라운 점은
제동 감각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는 것.
시승차 특성상 브레이크 길들이기가
개인 소유 차량만큼 제대로 되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데도
너무나도 훌륭하고 좋은 제동감을
현대차 사상 처음으로 제공해서 놀랐다.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또 놀랐다.
미니 쿠퍼 JCW의 최고 강점 중 하나가
운전 재미를 정면으로 겨냥한
자연스러운 차량 거동을 위해 셋팅된
브레이크 감각이었는데,
드디어 아반떼 N도 이에 해당된다.
요즘 현대기아차가 전기차에
브레이크에 스포츠 모드 따위를 넣어
답력을 더 앞으로 당기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는데
아반떼 N은 다른, 좋은 방향으로 미쳤다.
시승차는 기본 브레이크인데
N 퍼포먼스 브레이크도 장착 가능.
단조 휠과 묶인 패키지로만
장착 가능한데, 나라면 넣겠다.
한번 와인딩에 들어가면
40분 이상 냉각 없이 쏘는데
기본은 마지막에 약간 지칠 듯.
변속기는 이미 벨로스터 N부터
훌륭했으니 더 칭찬할 게 없다.
변속 속도는 아주 빠르고
직결감도 훌륭하다.
그러면서 컴포트 모드와
저속 시내 환경에서는
울컥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끄럽고 정교하게 잘 다듬어져있다.
직결감 자체는 좋은데
스포츠+ 모드에서는 변속 시
고의적인 변속충격을 조금만 더 주면
내 입맛에 맞을 것 같다.
수동의 손맛이 그립고 좋아
수동으로 출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N DCT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
자동변속기를 선택해도 아쉽지 않다.
심지어 N Grin Shift까지 딸려오니
20초간 10마력이 올라가
더욱 빠른 아반떼 N을 사는 셈.
시승을 트랙에서 하진 않아서
N 트랙 센스 시프트는 아쉽게도
테스트하지 못했다만 안 봐도 8K 비디오.
불과 5년 전 정도만 해도
이런 변속기를 손에 넣으려면
ZF나 게트락만 쳐다봐야 했고
고가의 수입 스포츠카에서만
누릴 수 있었는데 격세지감이다.
N DCT 패키지 단 돈 190만원에
현대트랜시스의 습식 8단 DCT와
남양 연구소의 N 전용 변속 프로그램.
국산 파워트레인으로는 120% 만족.
국뽕 원샷.
아반떼 N(과 코나 N)의 특징 중 하나는
N 전용 플랫파워 엔진이
새롭게 적용되었다는 것인데
정말 그렇게 욕먹은 세타 II 엔진을
여기까지 갈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고 박수쳐줄 만 하다.
이 엔진이 스팅어에 올라갔을 때
제원 상으론 255마력이었는데,
체감은 200마력 정도로 느껴졌다.
느려터진 변속기와 무거운 차체도
한 몫 했지만 엔진 자체가 별로였다.
그걸 아직도 쓴다니 아쉬웠었지만
N 뱃지를 달더니 새 물건이 됐고
이제 플랫파워 딱지까지 붙어서
5000rpm 넘어서 급격하게 힘이 빠지던
종전의 느낌을 많이 없앴다.
N 플랫파워 엔진은 설명 상
5500rpm부터 6700rpm까지
최대 출력을 유지한다는데,
정말로 체감이 될 정도의 차이이다.
조금 더 높게 회전했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히 없잖아 있지만,
이게 마지막 내연기관 N이라니
허튼 희망이라 접기로 했다.
이 엔진의 기반이 세타 II 엔진이라
회전하는 감각 자체가 짜릿하진 않고
그 무난함이 고회전 영역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쉽다.
모름지기 고성능 차량이자 펀카라면
엔진의 캐릭터가 더 있어야 하기 마련.
쏘나타 N 라인의 사실상 세타 III인
스마트스트림G 2.5 터보와
출력 및 토크가 유사한데,
저쪽은 배기량이 더 큰 만큼 넉넉하니
이쪽은 그만큼의 앙칼짐이 필요하다.
내가 자연흡기 엔진 차량을
끝까지 쥐어짜는 것을 사랑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쉬운건 아쉬운거지.
그리고 역시 배기량이 깡패다.
하지만 이 엉망인 세타 II 엔진을
여기까지 손봐서 소리까지도
상당히 듣기 좋게 잘 다듬었다.
N 사운드 이퀄라이저는 이제
다양한 (가상)사운드 모드를 지원하는데
나는 그 중 스포티가 제일 나았다.
'스포츠카 감성 주행음을 제공'하는 이 모드는
존재감과 볼륨감, 박진감 세 가지를
균형감 있게 잘 맞춘 듯 하다.
퍼포먼스나 TCR은 약간 과하다.
벨로스터 N의 광고를
팝콘 터지는 소리로 할 정도로
현대자동차에서는 그 파파방 하는
팝콘 배기에 공을 들이는데
벨로스터 N의 것은 아주 듣기 싫었다.
냉간 시동 시 배기 플랩이 열려
배기음 자체가 큰 건 별 수 없지만
아파트 단지나 동네를 다니면서
굳이 N 모드 놓고 팝콘 터트리는
정신병자들이 워낙 많아서가 1번,
소리 자체가 꽝이어서가 2번이었다.
그런데 아반떼 N은 팝콘 배기 소리마저
한결 듣기 좋은 바리톤 음색으로
크게 개선되어 다시 놀라게 했다.
벨로스터 N의 DCT 모델이 출시되며
배기 라인 납품처가 달라져서
배기음 볼륨이 줄어든 것에 대한 항의를
현대자동차가 의식을 했는지
아반떼 N에서는 음량이 소폭 다시 올랐다.
벨로스터 N 수동 모델 수준은 아니지만.
난 하도 벨로스터 N 오너들이
시내에서 배기 소리 내고 다녀서
열받은 이들의 극성 민원에 시달린 끝에
배기음을 줄이기로 결정한 줄 알았었는데
알고보니 납품하는 회사가 달라서였던걸로.
아반떼 N은 이번에도 균형을 잘 맞춰
일상용 차량으로의 사용성도 만족하고
펀카로서의 면모도 동시에 과시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훨씬 듣기 좋은 소리가,
외부에서는 훨씬 차분한 소리가 난다.
볼륨이 커지고 톤 역시 높아졌는데도
차분하게 느끼는 이유는 음색 자체가
듣기 좋은 방향으로 옮겨가서 그런 듯.
어차피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본네트에 앉아서 운전하는 게 아니잖아.
운전석에서 듣기 훌륭하니 그걸로 만족.
아반떼 N의 승차감이 너무 좋아
이번엔 이례적으로 뒷좌석에도 앉아봤다.
내가 시승을 하고 시승기를 작성하는건
전부 운전석 기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운전석에서는 컴포트 모드와 N 모드 간
승차감 차이가 적잖이 눈에 띄었는데
신기하게도 뒷좌석(상석)에서는
편차가 극히 미미했고, 좋았다.
3세대 플랫폼 특유의
단단한 후륜 서스펜션 느낌이 없어
오히려 큰 요철을 넉넉하게 받아치고
작은 요철의 전달량 역시 적다.
앞좌석 승차감도 놀랍지만
뒷좌석 승차감이 진정으로 충격이다.
요즘 SUV 열풍이 불면서
뒤떨어지는 승차감에 대해 사람들이
비교적 이전보다 관대해진 느낌인데
아반떼 N이 이런 후석 승차감을 과시하면
패밀리카라고 우기더라도
와이프한테 허락받을 만 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반떼 N의
스프링과 댐퍼가 굉장히 부드러워서다.
고성능 차량이라고 하기에는
특히나 댐핑이 부드럽고 너그러운데
뻣뻣하기 그지없는 일부 핫 해치와
스포츠카들보다 한참 여유있는 셋팅이다.
신형 플랫폼의 전방위적 유연함과
순정 타이어인 파일럿 스포츠 4S의 접지력,
적절한 스프링 레이트와의 조화를
두루 믿고 이렇게 부드러운
댐퍼 셋팅을 한 듯 하다만
남양의 개발진들이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해냈다.
스프링 레이트도 솔직히 설정값이
차량의 성능 대비 극단적으로 높지 않고
이보다 주행성능이 낮은 차보다도
낮고 부드럽게 잡혀있다.
그래서 뒷좌석에서도 안락감이
차급과 차량 성향 대비 높게 다가왔다.
최근에 제네시스 시리즈 게시물을
준비하면서 제네시스만 탔는데도
이렇게 느껴질 정도면 말 다 했다.
그렇다고 이 차가 부드럽기만 하냐,
그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금물.
차 자체의 문제는 아니고,
나라서 가지는 하나의 걱정은
나는 이 차를 구입하면
타이어 교체 시기가 도래할 시
피렐리의 피 제로 코르사(PZC4)로
교체하고자 하는데,
파일럿 스포츠 4S의 접지력에
맞춰서 댐퍼 셋팅이 되어있어서
이보다 접지력이 낮은 타이어로 가면
차량의 밸런스를 깨지 않을까 싶다.
나는 피렐리 특유의
살짝 미끌거리는 느낌을 좋아해서
피렐리 타이어를 선호하는데
미끌거린다는 뜻은 접지력이 낮다는 것.
파일럿 스포츠 4S와 동급 타이어지만
당연히 PZC4쪽의 접지력이 낮다.
현대자동차 쪽에서
파일럿 스포츠 4S의 가격이 높다보니
타이어 교체를 감안하고
설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만
교체하더라도 대부분 서킷용이라
18인치로 인치다운 + 세미슬릭
조합으로 갈 것 같아
순정보다 접지력이 낮은 경우는
따로 고려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세미슬릭 타이어의 경우
접지력이 향상되는 케이스니.
나중에 출고 후 검증해보던가 해야겠다.
참고로 일반 파일럿 스포츠 4S와
아반떼 N 전용으로 납품되는
HN 파일럿 스포츠 4S의 접지력 차이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파일럿 스포츠 4S의 접지력이
워낙 뛰어나서 그럴 터.
N 전용 플랫파워 엔진으로 가면서
출력이 280마력으로 올라
가속력 역시 기존보다 개선되었다.
제원상 0-100km/h는 5.3초.
실제로 가속력을 시험해보니
얼추 비슷한 시간이 나온다.
터보 엔진 특유의 넓은 영역대에서
꾸준하게 분출되는 최대토크는
고속까지 꾸준히 밀어주긴 하지만
극적인 느낌까지는 아니다.
플랫파워 엔진 덕에 그 범위가 늘어나서
밟는 맛이 종전엔 찾기 힘들다가
그래도 이제는 좀 생겼달까.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신형 플랫폼과
낮아진 차고, 크게 향상된 노면 추종성까지
전부 한 데 모여 매우 뛰어나다.
벨로스터 N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개선이 이루어져
이제 중미산 같은 고속 와인딩에서
갖다박는 사람이 좀 줄지 않을까 싶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댐핑 덕분에
고속에서 종전보다 매우 차분하다.
보통 무식한 사람들이
서스펜션을 단지 단단하다/부드럽다로
아주 단순하게 나누면서 고성능차니까
막연히 고속 안정감이 좋을거라 착각한다.
아반떼 N의 경우 착각이 아니지만,
벨로스터 N이나 타 차량의 일부 오너들은
아반떼 N으로 올 예정이라면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아반떼 N을 탈 정도면 적어도
그 이유는 알고 타야 할 것 아닌가.
좋은 고기를 썰면서 왜 맛있는지 모르면
참 가슴아픈 일이 아닐까. 차도 그렇다.
하도 할 이야기가 많아서
디자인이나 실내 이야기는
모조리 건너뛰었는데
막바지이니 간략하게 하자면
이 차는 내 눈에는 흰색이 최고다.
나는 내/외장 모두 강한 대비를 좋아해서
이렇게 까만 장식이 많은 차는
대개 흰색을 선호한다.
퍼포먼스 블루의 색상 자체는
너무 이쁘지만 너도나도 고를거라
다른 색으로 눈을 돌려보자.
아반떼의 기본 디자인이 받쳐주기에
어떤 색상을 고르건 이쁘다.
실내에 N 퍼포먼스 블루 색상으로
액센트 컬러를 고른건 정말 잘했다.
그리고 이전의 내 예상대로
알칸타라 패키지를 넣을 필욘 없는데
사이드 브레이크에는 두르고싶다.
현대차의 또 다른 장점이 뭔가.
모비스튠을 개시하면 된다.
N 퍼포먼스 블루 색상에 맞춰
앰비언트 컬러도 지정해두면 실내는
정말 이쁘고 가격 파괴 수준이다.
처음에는 계기판 좌측의
동그란 장식이 멍청해보였는데
오히려 거기 드라이브 모드 버튼을
꾸역꾸역 넣은 아반떼 N 라인이
이제 보니 더 멍청해보인다.
뇌이징이 다 돼서 이제 그 장식도
크게 거슬리지 않고 볼 만 하다.
N 전용 계기판 클러스터 테마는
AMG의 그것을 연상케 하고 이쁘다만
여백이 좀 많아 보이니
RPM 게이지를 좌우로 더 크게
넓히면 완벽할 것 같다.
난 그 테마를 상시 쓰고싶은데
아쉽게도 N 모드에서만 가능하다.
상시 N 모드로 하라는 계시인듯.
생각보다 정속주행 시 연비도 괜찮다.
아주 저배기량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1998cc답게 준수한 편.
인제 갔다오면서는 살살 오면
14km/l 정도는 무난하게 뽑지 싶다.
ASCC가 없다고 불만인 틀딱들은
그냥 제발 다른 차 좀 사길.
그것도 힘든 노인네들이 무슨
펀카를 산다고 설치는지 어이가 없다.
이런 차에 보행자까지 감지하는 AEB랑
차로 유지 보조까지 있으면
입 닫고 감사합니다 하고 사야지
무슨 말도 안되는 불만이 많은지.
어차피 사이드 브레이크가 수동이라
ASCC가 설령 달렸더라도
정차재출발은 미지원이다.
그럼 도대체 이게 왜 필요한지.
설마 EPB 달아달라는 건 아니지?
소소한 불만이라면
아반떼와 동일하게 사이드미러가 좀 작다.
광각 미러이긴 한데 영역이 좁아서
내가 늘 하는대로 차에 붙이면
살짝 답답하게 느껴진다만
스마트센스 패키지가 준비되어 있어
후측방경보를 단 돈 55만원에
아반떼 N에 장착할 수 있다.
근데 아반떼 N 살 정도면
사실 이런 거 없이도 문제 없어야 정상.
아무튼 옵션의 현대차는 건재하다.
나는 내가 자체적으로 선정하는
공신력 제로 '2021 올해의 차'는 당연히
EV6에게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반떼 N에게 줘야겠다. 미안하다.
가격 같은건 다 논외로 치고
차량 자체만 놓고 봐도 이건 정말
미친 패키지라고 할 수 있다.
전부 제끼고 이 정도 주행성능과
주행질감만 챙겨도 이 가격엔 대박인데
충분히 타협 가능한 승차감을 갖추고
현대차다운 휘황찬란한 옵션에
마지막으로 3212만원부터 시작.
가격까지 완벽하게 화룡점정.
벨로스터 N은 N 브랜드의 출발을 알렸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는데
아반떼 N은 갑자기 거의 완벽해져서
화려하게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아반떼로서 가지는 장점 :
넓은 실내공간과 좋은 장비,
디자인은 고스란히 흡수했고
N 브랜드의 일원으로서
열 발짝을 한방에 껑충 뛰어서
이젠 정말 세계 무대에서 놀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괴물이 탄생했다.
정말 '현대차'가 '국산차'라서 가능한
이 말도 안되는 가격은 팔아줄 때 사야 한다.
현대차가 아니면 이런 구성과 성능이,
국산차가 아니면 이런 가격이 안 나올 것.
그래서 아반떼 N은
앞으로 더 길게 이어질 N 브랜드 역사의
일원으로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N 브랜드의 첫 메가 히트작.
이런 신생 브랜드는 보통의 경우
내가 내놓는 모델에 대해 호평을 하더라도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같은 소리를 할 텐데
아반떼 N은 나중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자체만으로도 탁월하며
2076년쯤에 국산 고유모델 100주년을 맞아
국산 10대 명차 같은 걸 선정한다면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식 표현으로 '성공시대'는
영어식 표현으로 'Rock'n Roll Days'다.
이제 갓 신생아 티를 벗은 N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인정 받는
초석으로 남을 차가 아반떼 N이라고
나는 과감히 주장해본다.
i20 N도 최근 탑 기어 선정
'올해의 퍼포먼스 카'에 당당히 선정되며
N 브랜드의 주가를 신나게 올리고 있는데
아반떼 N이 이 성공시대의
창대한 개막을 장식하리라 확신한다.
전설적인 록 밴드로 남은
핑크 플로이드는 수많은 명반을 냈지만
첫 본격 히트 작품이자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앨범은
'The Dark Side of the Moon.'
어두운 색상의 시승 차량과도 어울리며
아반떼 N은 N 브랜드의 첫 히트 상품.
그리고 훗날 N 브랜드를 추억한다면
우리 모두가 기억할 차가 바로 이거다.
아반떼 N.
지금 이 시점에서
제일 안타까운 이들은 벨로스터 N 오너들.
당장 차 팔고 아반떼 N으로 갈아타라.
안 그러면 치욕을 맛 볼 테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팔 때 당장 사야 한다. 이 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