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소문이 무성하던
현대 캐스퍼의 전기차 버전,
캐스퍼 일렉트릭이 드디어 나왔다.
캐스퍼란 차가 처음 나왔을땐
내가 봐도 생긴 게 귀여워서
내가 경차 대부분을 싫어함에도
그나마 길에서 보면 괜찮았었는데
시간이 지나 초보운전자들이 대거
캐스퍼로 유입되며 여느 경차와
마찬가지로 꼴보기 싫어졌었음.
캐스퍼의 이미지와 이름을
전기차로 바꼈어도 그대로 간직중이지만
이번엔 경차 규격을 아예 벗어나서
경차가 아닌 소형차가 되었다.
소형차 캐스퍼?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미
캐스퍼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캐스퍼 = 경차란 인식이 각인됐는데
기존과 동일한 이름을 쓰면서도
경차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 캐스퍼 일렉트릭이 과연
정말로 살 만한 차량일까?
특히나 최근에 내가 시승기를 쓴
기아 EV3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같은 그룹사 내에 존재하고 있는데
EV3을 냅두고 굳이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역시나 이번에도 타보면서 알아보자.
캐스퍼 일렉트릭은 캐스퍼이기 때문에,
이전에 나왔던 기름 먹는 캐스퍼와
기본적인 디자인 틀은 동일하다.
앞모습은 기존의 귀여웠던
캐스퍼의 생김새와 이미지를
그대로 승계하면서 현대 전기차의 특징인
픽셀 디자인을 되게 잘 녹여서 좋다.
기존 캐스퍼의 방향지시등은
안쪽은 전구고 까만 줄로
단순히 U자형으로 나눠놔서
저렴한 차여서 갖는 원가 투입 한계를
대놓고 보여주는 점이 아쉬웠는데
이제 큼직한 7개의 사각형을
LED로 채워서 훨씬 보기 나아졌음.
사람의 얼굴도 눈썹이 인상을 크게 좌우하는데
원랜 좀 어눌해보이는 표정이었다면
이번엔 T존이 딱 선명하게 그려진 느낌.
헤드램프도 최근 모닝 페이스리프트가
경차 최초로 LED 헤드램프를
최상위 트림에선 옵션으로 구비하더니
이제 이 캐스퍼 일렉트릭과
얼마 전 공개된 캐스퍼 페이스리프트도
LED 헤드램프를 동시에 갖추었다.
아, 캐스퍼 일렉트릭은 경차 아니지.
소형차가 되면서
경차 규격 내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어
차량의 길이가 캐스퍼보다 크게 늘었는데
캐스퍼의 디자인은 그대로 쓰면서
허리만 죽어라 늘려놓은 모습이라
옆모습은 비율이 영 엉망이다.
상체와 하체는 짧고 허리가 제일 긴
사람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그게 바로 캐스퍼 일렉트릭.
후면 디자인은 한결 깔끔해졌다.
캐스퍼 디자인에서 제일 이상한 게
균형감이 엉망인 후면이라 생각했는데
차량 폭이 좌우로 넓어져서
완전 수평형인 테일램프가 안정적이고
원형 전구 방향지시등이 들어가던 자리에
픽셀 디자인 테마 덕분에
두 줄짜리 LED 방향지시등이 자리해
전반적으로 디자인 테마의 일체감이 생겼다.
그리고 캐스퍼는 좁은 경차 폭에
SUV라고 차고와 차량 자체 높이를 높여놓고
뒷 휀더를 빵빵하게 만들어서
난 그걸 보고 '똥싼 기저귀 찬 아기'
같다고 그간 말해왔는데 그런 느낌 이제 사라짐.
전반적으로 외관은
캐스퍼 디자인이 가졌던 강점을
그대로 살리되, 보기 좋게 다듬고
현대 전기차 패밀리룩을 세세하게
잘 녹여서 전반적으로 호평.
다만 앞의 문도 조금 늘려서
뒷문만 엄청나게 긴 이 비율
이것만 좀 눈에 거슬림.
실내는 캐스퍼 그대로다.
차량 사이즈가 커졌으니 그에 따라
당연히 늘어난 공간감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뒤떨어지는 내장재 품질 수준과
그런 싸구려 소재를 가리기 위한
디자인 포인트 및 장식들이 똑같다.
대시보드는 캐스퍼 판박이.
하지만 늘어난 차량 폭에 맞춰
전반적으로 옆으로 좀 길어졌고
그래서 시각적으로 비좁아보이는
경차답던 문제가 없어졌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핵심은
늘어난 뒷좌석 공간인데
경차 규격에 따른 제한을 탈피해서
차량의 사이즈를 현대차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던 덕에
배터리 넣을 공간도 챙길 겸
차 사이즈를 종전보다 크게 늘렸고
그 늘린 여유는 죄다 뒷좌석에 몰빵.
앞좌석은 여전히 소형차스럽게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데
뒤에서는 축구를 해도 될 법하게
레그룸이 아주 남아 돈다.
이 정도 레그룸이면 쏘나타 디 엣지와
동일하거나 더 좋은 거주성을 가진건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특히나 소형차에 있나 싶다.
이 늘어난 공간 중 일부를 떼서
앞 좌석에 조금만 주고
트렁크에도 조금만 주면
전반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싶은데
일부러 그렇게 안 한 느낌.
안 그러면 윗급 차를 안 사니까.
실내 디자인 자체는
원래 캐스퍼도 괜찮았어서
점수를 좋게 줄 법 하지만
차값이 경차급도 탈피하고
전기차가 된 탓에 크게 올랐는데
캐스퍼와 동등한 아주 극한의 싸구려
플라스틱을 사방에 도배한 건 극혐.
실내 감성품질로는 EV3에 상대가 안 된다.
내가 차량 실내 디자인을 평할 때
중요하게 보는 센터 콘솔 뒷편의
뒷좌석용 송풍구가 이 차엔 아예
있지도 않음. 차 크기가 이제 소형찬데.
뒷좌석용 C타입 포트 한 개만 있는데
이건 컴포트 패키지(60만원)에 묶인 옵션.
앞좌석 뒷편 하단의 저 구멍들이
송풍구가 맞는지 확인을 안 해봤네.
전반적으로 실내는
보기에만 괜찮고 품질은
경차 수준 그대로라 처참하다.
캐스퍼의 제일 큰 문제는
역시나 경차 규격상 배기량 한계가 있어
작디 작은 998cc 엔진과
낡아빠진 4단 변속기로 인해
자연흡기 모델은 숨넘어가게 느리고
터보 모델은 터보 랙도 심하거니와
터보차저로부터 온 토크가 갑자기 터져
균일하고 부드러운 운전이 안 된다는 거였는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전기차인지라
이제 그런 말도 안 되는 문제와 작별.
캐스퍼 일렉트릭의 파워는
최고 출력 84.5kW(115마력),
최대 토크 147Nm(15kg·m).
최고 출력은 캐스퍼 터보보다
15마력 높아서 한 급 위 차량다운데
최대 토크는 2.5kg·m 낮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캐스퍼 터보는 그 작은 엔진이
터보차저에 충분한 배기가스를
밀어넣기까지 한 세월이 걸려서
낮은 엔진 회전수로 평소에 다니는
시내 주행 및 고속 크루징에서
힘이 그다지 충분하지 못했고
또 느려터진 4단 자동 변속기와 물려서
전반적으로 부자연스럽고 답답한
쓰레기같은 파워트레인이었다.
난 그래서 정말 소름돋게 느릴지언정
차라리 자연흡기가 낫다고
그동안 계속 주변에다 말해왔었음.
그런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전기차라
발목을 잡는 변속기가 없고
또 1rpm부터 저 최대 토크가
쭉 나오기 때문에 훨씬 가속이 시원하다.
15kg·m이 초반부터 나오는 건
2000cc급 중형차 수준.
2리터짜리 중형차 답답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게 사실이잖아.
쏘나타 G2.0은 하도 킥다운을 안 하고
빨리 고단을 물도록 현대차가
연비 때문에 변속기를 그렇게 맞춰놔서 그렇지
일반적으로 2000cc면 다들 충분하다 하지.
반면 EV3과 비교하면
EV3은 최고 출력 204마력에
최대 토크 28.8kg·m이라
비교가 불가하게 강력하다.
여기까지 봤을땐 캐스퍼 일렉트릭이
경차인 캐스퍼 파생형이란 이유로
비실비실하기 짝이 없는 심장을 가진 것 같음.
하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의
(아래 사진 보다시피 17인치 휠)
공차중량은 1355kg이고
EV3(당시 테스트카는 19인치 휠)은
그보다 495kg나 무거운 1850kg.
거진 500kg나 무게 차이가 나서
토크 차이가 저만큼이나 나도
오히려 EV3보다 캐스퍼 일렉트릭이
무거운 무게가 누른단 인상 없이
가속이 훨씬 가볍고 경쾌해서 좋다.
1.35톤의 차를 이 정도 토크로 요리하면
초고속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힘이 넘친다는 느낌이 들 것.
실제로 타고 다녀보니 140km/h까진
아주 널널하고 부담없이 올라가서
캐스퍼를 타며 느낀 힘에 대한 결핍과 갈망
이런건 이제 완벽하게 없어졌다.
매끄럽고 부드럽게 운전하기에도
캐스퍼 일렉트릭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전기차의 회생 제동에만 적응한다면야.
EV3도 중량이 살짝 더 가벼운 17인치가
기본형에는 장착되기 때문에
캐스퍼 일렉트릭의 옵션형 17인치와
똑같이 비교할 휠 사이즈가 있음에도
17인치보다 더 불리한 19인치를
굳이 골라 비교한 이유는
내가 타본 차량끼리 비교해야 정확하니까.
차량 제조사에서 차를 주면 보통 풀 옵션.
레이 EV와 동일한 최대 토크를 내는 건데
레이 EV는 그때 내가 125km/h까진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올라간다 했었다.
레이는 경차면서 차량 높이가 높아
캐스퍼 일렉트릭보다 그런 고속에서
받는 공기저항이 훨씬 커서
같은 힘을 내는데도 내가 언급하는
'안정적인 가속을 보이는 속도'의 차이가 나는 것.
레이 EV가 주로 저속 환경인 도심에선
차가 작아 약간 더 빨리 치고나가긴 하지만
캐스퍼 일렉트릭과의 격차가 그리 크진 않다.
참고로 레이 EV의 최고 출력은 87마력으로,
최대 토크는 동일하지만 최고 출력은
캐스퍼 일렉트릭보다 28마력 처진다.
그 말인 즉슨 모터의 최대 회전범위가
캐스퍼 일렉트릭보다 좁고
토크의 유지력이 초고속에서 모자라단 것.
캐스퍼 일렉트릭은 3세대 PE 시스템이라
개선된 PE(파워 일렉트로닉스) 시스템을 얹어
E-GMP 플랫폼의 형님들 수준은 아니지만
레이 EV보단 모터가 더 높게 회전함.
더 뉴 아이오닉 5나 더 뉴 EV6는
E-GMP라 15000rpm까지 올라가거든.
새 PE 시스템과 얇은 타이어 폭 덕에
내가 차량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기록한 전비는 대략 6km/kWh.
내가 전기차 테스트 빡세게 해서
5km/kWh 이상 나오는 차가 많지 않은데
이 정도면 전력 효율이 훌륭하다.
레이 EV를 타고 간선 도로를 살살 다니니
8km/kWh가 나왔는데,
트립 리셋하고 캐스퍼 일렉트릭으로 비슷하게
살살 몰고 다니니 9km/kWh가 나왔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49kWh이고
실 용량이 45kWh쯤 된다 치면
100%에서 0%까지로 잔량을 다 쓰면
무려 405km을 갈 수 있단 계산이 나옴.
이건 모델 Y RWD를 웃도는 수치인데
모델 Y RWD도 전력효율이 되게 좋거든.
물론 모델 Y는 캐스퍼 일렉트릭보다
차량 부피가 훨씬 큰 차량이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이 더 작은 배터리로
좀 더 갈 수 있다 생각하니 의외.
실질적으로 85%에서 15% 정도를
쓴다 치면 충전 간 대략 283km 주행 가능.
환경부 공식 인증 주행가능거리가
17인치 휠 기준 295km이니
평소에 타고다니면 그 수치에
정말 가깝게 수렴할 듯 하다.
오늘은 비가 오기도 오고
난 각종 전장품을 다 사용하며
에어컨도 틀고 다녀서
전비에 타격이 좀 있는 상황.
81.4kWh의 거대한 배터리를 가진
EV3 롱레인지와 비교해서
배터리 용량은 크게 차이나지만
그만큼 공차중량 차이가 커서
실질적인 충전 간의 주행가능거리는
그리 드라마틱하게 차이나진 않네.
사실 이 차에선 주행 성능보다
승차감이 훨씬 더 중요한데,
EV3과의 비교에서 현저한 공차중량 차이를
벌써 언급해버린만큼 주행 성능부터.
캐스퍼 일렉트릭은 방금 말했듯이
1355kg라 가벼운 축이기 때문에
1.8톤이 쉽게 넘어가는 전기차에서는
주로 보기 힘든 사뿐함과 경쾌함이 좋다.
코너에 들어갈 때는 평범한 전륜 구동 차량처럼
무던하게 들어가는데 돌 때의 적은 부담이
이 차량 코너링의 하이라이트.
205mm의 얇은 타이어를 신어서
그 좁은 폭에 열심히 접지력을 눌러담는다.
205mm짜리 17인치 신발을 신은 차
또 다른거 내가 타본 건 구형 포르쉐 박스터.
그때와 비교하면 동일한 폭임에도
타이어 자체가 더 얇게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차가 높기 때문에
폭이 두꺼운 타이어가 주는 두툼함이
더욱 모자라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포르쉐와 비교하는 게 부당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니 가볍게 보면 됨.
그래서 1850kg의 EV3보다
기우뚱거리고 아둔한 느낌이 현저히 적어
운전하면서 훨씬 기분이 좋았다.
이 부분은 캐스퍼 일렉트릭이
EV3을 압도하는 주요 포인트.
차량 길이가 레이 EV보다 훨씬 길어서
레이 EV가 보여줬던 마치 선로가 정해져있는
기차처럼 쫙 내가 원하는 선대로 따라가는,
그런 시원함까진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도로에 바퀴를 내리까는
든든함과 가벼움의 중간을
줄타기를 잘 해서 제대로 맞췄다.
사이즈가 작고 비교적 가벼운
전기차가 애초에 흔치 않아서
현재 국내에 판매중인 모델은
미니 일렉트릭 말고는
딱히 비교대상이 떠오르지 않아
미니 일릭트릭과 비교하면
캐스퍼 일렉트릭이 한결 포근하다.
네 바퀴를 노면에 붙이는 행위가
용을 쓰고 있지 않다고 해야 할까.
미니 일렉트릭은 사실 미니보단
BMW의 느낌이 주행 시엔 강하거든.
작고 귀여운 차량에 더 맞는 주행성은
캐스퍼 일렉트릭이 가지고 있다만
순수하게 빠르기는 미니 일렉트릭 승.
근데 미니 일렉트릭은 고작 32.6kWh를 얹고
공차중량이 1390kg나 나가는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무려 49kWh면서
계속 언급하듯이 공차중량 1355kg.
정말 현대차의 경량화 기술이
이제 세계 무대에서도 앞서는 수준이 됐다.
그런데 왜 제네시스 G80은...
아직까지도 그렇게 무거운 건가요...
그 외에 푸조 e-208은 아직 내가 경험 전.
조만간 경험해보고 후기 남기리라.
아니지. 생각해보니 캐스퍼 일렉트릭도
현대차에서 밝히기론 SUV인데
경쟁상대가 그럼 e-2008이 되어야지.
e-2008은 내가 이미 타 봤거든.
e-2008은 배터리 용량이 50kWh라
캐스퍼 일렉트릭의 49kWh와 거의 동등.
균형감과 안정감 측면에서
캐스퍼 일렉트릭이 e-2008을 짓밟는다.
e-2008은 약간 무슨 느낌이냐면
푸조 특유의 쫀득한 서스펜션은 그대로인데
내연기관 차량과 달리 무거운 배터리가
휠베이스 사이에 위치해있어서
배가 잔뜩 나온 중년 남성이
플랭크를 하려다 배에 무게가 쏠린
딱 그런 이상한 느낌이었음.
캐스퍼 일렉트릭은 직선 주행 시에나
코너링 시에나 그런 불쾌감이 없이
무게 분배가 차량 전 영역에 된 '느낌.'
방금 느낌이란 단어 강조한 이유는
뒤에 승차감 설명하면서 설명 예정.
아무튼 e-2008은 비교 대상도 못 된다.
그러고보니 e-2008은 공차중량이
무려 1575kg나 되네.
현대차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캐스퍼 일렉트릭이 이렇게 가벼운거야.
e-2008 얘기 나왔으니
또 형제차인 지프 어벤저 얘기도 나와야지.
그 차 곧 시승기 올라갈 예정.
지금 써야 할 차들이 너무 많이 밀려있는데
내가 최근 휴가를 계속 가서 늦어지는 점 죄송.
지프 어벤저는 e-2008과
완전 똑같은 기반을 공유하는 형제 차량인데
차체 전반의 일체감이 푸조보다 훨 좋고
돌아갈 때의 느낌도 무난무난해서
캐스퍼 일렉트릭과 비등하긴 하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의 그 가벼운 느낌은 따라오지 못함.
어벤저에서 캐스퍼 일렉트릭으로 바꿔 타면
마치 약간 밑창에 무게가 있는 구두에서
러닝화로 갈아신은 느낌이랄까.
와 난 글 처음 구상할땐
EV3나 레이 EV 정도와
대충 비교하고 말랬는데
이렇게 또 끝도 없이 길어지는 중.
글 짧게 쓰기가 너무 어려워요.
이 차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승차감은?
이 글의 직전 글인
더 뉴 K8 시승기에 언급한
'주파수 감응형 댐퍼'가
캐스퍼 일렉트릭에 장착되어 있고,
그게 캐스퍼 일렉트릭이 주로 보여주는
부드러운 승차감의 핵심.
EV3와 전체적인 승차감 테마는
거의 동일하다시피 한데,
500kg에 가까운 무게 차이 때문에
방지턱 등을 넘을 때
서스펜션이 지탱해야 할 무게가
현저히 적어서 약간 더 말랑하다.
주파수 감응형 댐퍼가 방지턱 등을 만나도
푹신하게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에
그 위를 상대적으로 크게 가벼운 차체가
부담 없이 지나갈 수 있어서
뒤뚱거린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EV3만 탈 때는 몰랐는데,
캐스퍼 일렉트릭까지 타니까
현저하게 이런 부분이 티가 난다.
EV3는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방지턱 진입 시 댐퍼 컴프레션이
약간 더 단단하게 설정되어 있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스퍼 일렉트릭의 승차감이
EV3보다 낫나, 그건 아니다.
앞좌석 뿐만 아니라 뒷좌석까지
전 좌석을 다 고려하면 EV3가 낫다.
그 이유는 주파수 감응형 댐퍼가
적정 속도로 요철을 밟으면
들어오는 충격을 아주 유연하게 받아내는데
과한 속도로 방지턱 등을 넘으려고 시도하면
주파수 감응형 댐퍼가 미처 손을 쓰기 전에
차량이 요철을 밟아버리고,
그럼 이 댐퍼가 보여주는 마법을
저속에서와 같이 체험하는 건 불가능.
캐스퍼 일렉트릭의 구조를 보면
전륜 구동 차량이기 때문에
앞에 PE 시스템이 있고,
차량 가운데에 배터리가 있다.
그럼 뒤에는? 아무것도 없음.
이게 주파수 감응형 댐퍼의 보조 없이
생짜로 충격을 감당해야 할 때
뒤가 순간적으로 크게 상하로 흔들리고
낭창거린다는 느낌이 굉장히 강하다.
앞에 무게가 엄청나게 쏠린듯한,
비유하자면 V10을 얹은 아우디처럼
뒤는 텅 하고 가볍게 허공에 뜨면서
앞만 아주 무겁게 가라앉는
그런 느낌이 매우 심했다.
사실 캐스퍼 일렉트릭에서 가장 무거운 건
단연 배터리지만, 배터리는 위치가 낮고
PE 시스템은 엔진룸(?)을 거의
통으로 먹을 정도의 높이인지라
무게가 위치하는 높이 차이 때문에
과한 속도로 요철을 통과하면
순간적으로 앞으로 팍 쏠리는 느낌을 주는 것.
EV3도 동일한 문제가 있지만
EV3은 81.4kWh짜리의 큰 배터리가
차체를 좀 눌러주고 있어서
뒤가 순간 나른다는 인상이 더 적다.
그리고 캐스퍼 일렉트릭은
사진을 보면 뒷좌석 레그룸이
어마어마하게 넓고, 그 말은
뒷좌석이 뒷바퀴로부터 EV3보다
더 가깝게 자리한다는 뜻이다.
이 뒤가 텅 하고 뜨는 느낌과
뒷바퀴와의 더 가까운 거리에 힘입어
EV3보다 뒷좌석 승차감은
훨씬 좋지 못하다.
차량 급 차이가 여기서 나타남.
EV3도 뒷좌석 승차감은
소형 SUV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더 떨어짐.
게다가 EV3은 그냥 하나의 완성된,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된 비율의 차량같은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캐스퍼에서
허리만 강제로 잡아늘린 느낌이
비단 시각적으로 뿐만 아니라
승차감에서도 약간씩 느껴진다.
차량 중간부가 과하게 길다는 것이.
차량 선회시에도 미세하게 느껴지지만
그건 느끼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할 건데
빠르게 방지턱을 넘으면
뒤가 뜬다는 인상인 것에
이 부분도 한 몫을 함.
유일한 해결책은
적정 속도 이하로 방지턱과 같은
큰 요철을 통과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차량의 특성을 잡아내려고
내가 평상시보다 높은 속도로
일부러 통과해보고 알아낸 것이니,
일반적인 주행 패턴대로라면
캐스퍼 일렉트릭의 승차감은
앞좌석은 매우 양호하고,
뒷좌석은 경차보다 조금 낫다.
기름 먹는 캐스퍼랑 비교하면
캐스퍼는 차가 작으면서
17인치 휠까지 구비해두는
미친 짓을 해서 그런지
17인치를 장착하면 거의 뭐
거대한 네 바퀴 가운데에서
차체가 이리저리 휘둘리는 마차 같았고
15인치는 차에 딱 맞는 정 사이즈라
대부분 여론을 보면 15인치를 많이 추천하던데
난 오히려 반대 의견이었다. 난 17인치 추천.
왜냐면 15인치는 스틸 휠이고
17인치는 알로이 휠이라
15인치가 2인치나 작음에도
휠이 17인치보다 훨씬 무겁거든.
이게 차량 총 중량이 무거운 차량에선
이런 현가하질량 차이가 안 느껴지지만
캐스퍼같이 작고 가벼운 힘없는 차량에선
너무나도 극심하게 느껴지는 탓에
승차감과 가속력 부담에도 17인치 선택을
구입 예정인 이들에게 주로 권했었다.
캐스퍼 터보에 15인치를 끼우니까
차가 정말 힘겹게 바퀴를 굴리는
힘이 모자라단 느낌이 아닌
무거운걸 어거지로 돌리는 느낌이 있었음.
이제 캐스퍼 일렉트릭은
배터리팩의 무게 때문에 1355kg라
1060kg(캐스퍼 터보 17인치)보다
300kg 가까이 늘어서
현가하질량 추가가 극적으로 부각되는
그런 이슈는 찾아보기 힘들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15인치도 알로이 휠이라
사실 스틸 휠의 문제를 겪을 일이 없지만..
다만 캐스퍼는 경차 사이즈임에도
놀랄 만큼 고속에서 다부진 안정감을 보였는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그보다는 조금
노면에 축 늘어진 듯, 처진 인상이라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덜했다.
하지만 휠베이스가 캐스퍼보다 훨씬 길고
서스펜션도 부드럽기 때문에
속도를 냈을 때 편안함은
캐스퍼 일렉트릭이 더 나음.
레이 EV는 바퀴가 원체 작아
운전석 기준 저 밑에서 약간 통통거리는
그런 느낌을 줘서 평소엔 더 부드럽지만
주행 전체적으로 고급스럽고 매끄러운 느낌은
더 좋은 플랫폼과 주파수 감응형 댐퍼
이 둘을 품은 캐스퍼 일렉트릭에서만
찾아볼 수 있어 차이가 현격함.
미니 일렉트릭, e-2008, 어벤저
이 세 차종보단 캐스퍼 일렉트릭이
더 보편적인 성향이 승차감이면서
바퀴가 굴러가고 끈덕지게 매끄러운
그런 차급을 상회하는 고급스런 감각을 보여줘
나머지 세 차종이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지금까진 거의 장점만 말했다.
넓어진 실내공간, 편안한 승차감,
경쟁 수입차들을 앞서는 주행성 등.
내세울만한 강점이 엄청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스퍼 일렉트릭은 단점이
거의 없거나 약한 차량이 아님.
강점이 원체 많아서 가려졌을 뿐
단점 또한 분명한 차량이다.
우선 실내 디자인 설명때
얘기한 처참한 내장재 품질.
현대차가 이를 감추기 위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시선을 돌리기 위해 유쾌한 장식을
여러 군데 박아놓았으나 내 눈엔 어림없음.
차량 가격이 보조금 수령 전
3500만원에 육박하는데
이런 경차 수준의 딱딱하고
긁어보면 벅벅 소리나는 플라스틱은
도저히 내 눈엔 용납이 불가능하다.
캐스퍼 자체가
싸구려 소재를 곳곳에 바르고도
상당히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큰 수익과 마진을 기록하기 위해
이런 디자인 포인트도 주고
젊은 세대를 타겟한다며
제네시스처럼 전용 웹사이트도 만들고
캐스퍼를 타며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광고로 계속 내보냈는데
그거 다 차량의 본질을 고객 의식 속에서
흐리기 위한 현대차의 마케팅 전략.
다시 언급하지만 나 경영학 전공했음.
그런 전략을 캐스퍼 일렉트릭에서
마찬가지로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앞좌석의 CASPER 레터링은 도대체 뭘까.
캐스퍼의 해외 수출명은 인스터인데
그럼 인스터 일렉트릭은 시트에
INSTER라고 쓰여 있나?
인스타그램 힙스터 줄임말 같음.
진심으로 거지같음.
인스터라고 써있는거 보면
젊어보이고 싶어서 미친
스냅백 뒤집어쓴 중년 남성같을듯.
다행히도 확인해보니 인스터는
이런 레터링 없이 시트 대부분이
그냥 직물로 뒤덮혀 있다.
정말 다행이다.
도어트림의 + 모양 장식도 마찬가지.
막상 만져보면 정말 저렴한 소재다.
이 차의 예비 구매자들은
즐겁게 여길지 모르겠다만
내가 봤을땐 그저 눈속임이다.
하기사 캐스퍼 일렉트릭의
구매자 연령층이 그리 낮지 않을 듯 한데
그들은 인생에 활력이 필요할 수도 있지.
그리고 이 차는 트렁크가
정말이지 너무너무 좁다.
경차인 캐스퍼보다 전장이
230mm나 늘어나 3825mm인데
그걸 거의 다 휠베이스에 몰빵해서
휠베이스가 180mm 늘어났고
그게 뒷좌석 레그룸에만 추가됐다.
내가 봤을때 이건 고의로 그랬음.
EV3와 트렁크 사이즈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으로 차이가 나
트렁크에 뭘 좀 실어야 한다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낙제다.
시트 폴딩하면 당연히 널널하지만
애초에 트렁크 용량 설계를
이렇게 작게 해버린 거랑
폴딩해서 넓어지는 거랑은 별개다.
폴딩해버리면 짐을 고정하지 않는 이상
앞좌석 뒷편에서 짐이 계속 돌아다니잖아.
중간 사이즈의 짐을 싣기 매우 불편하다.
차라리 아주 큰거면 또 몰라.
근데 아주 큰걸 실을 땐
막강한 실용성의 레이 EV가 더 낫지.
약간 이게
'니들 캐스퍼 경차라서 좁다고
그동안 징징댔지? 그래 아주 확실하게
뒷좌석 하나만큼은 정말 넓게 해줄게'
이렇게 악에 받혀서 키운 느낌이랄까.
앞좌석도 여유를 좀 주면
EV3 및 현대차그룹 내의
내연기관 차량의 영역을 침범할 것 같고.
현대차가 캐스퍼 일렉트릭의 포지션을
정말 치밀하게 설계했는데,
나는 현대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돈 조금 내고 다 가지려고 하지 마'
그래서 캐스퍼 일렉트릭.
캐스퍼가 갇힌 경차의 틀을
제대로 벗어나보고자
여러 시도를 한 흔적들이 보인다.
경차 규격은 차량 크기와 엔진 크기를
동시에 제한하고 있어서,
이를 탈피해 자유분방한 삶을
갈망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실제로 캐스퍼 일렉트릭은
경차에선 감히 누릴 수 없는
엄청난 거주성과 편안함을 갖춰
신분 세탁을 제대로 한 듯 했으나
곳곳에서 캐스퍼의 감출 수 없는 흔적들이
여전히 이 차가 진정 탈-경차를 해
EV3처럼 제대로 된 소형급 이상의 차량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걸 막아서고 있다.
결국 피는 못 속인다.
첩이 될 운명을 걷어차고
자유를 찾아 떠났던 황진이,
그리고 지금까지도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서 이름을 남긴 그녀가
캐스퍼 일렉트릭을 타고오니 생각남.
경차로 태어난 기구한(?) 운명을 개척하고자
스스로 완전 탈바꿈한 캐스퍼 일렉트릭.
하지만 자동차 세계에서의 황진이는
자신의 출신 성분을 완전 감추진 못했다.
EV3 시승기에 내가 제목을
EV3이 캐스퍼 일렉트릭을 죽일 거라 썼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정도까진 아니다.
함께 같이 살아갈 것 같다.
배터리 용량 차이 때문이 아니라
차량의 완성도 및 고급감 차이로
이 둘의 포지션이 약간 다르게 나뉘었거든.
그렇다고 캐스퍼 일렉트릭이 EV3보다
종합적으로 훨씬 낫다거나
그렇진 전혀 않으니 안심해도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