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야심작 EV3가 나왔다.
EV3의 핵심 포인트는 한 두 가지가 아님.
(롱 레인지 17인치 기준) 501km의
인증 주행가능거리를 달성해
500km 고지를 넘긴 차량이라는 점,
그리고 공격적인 가격 책정으로
보조금을 포함하게 되면
서울시 기준 EV3 롱 레인지가
38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는 것.
전기차의 주요 진입 장벽을
기아가 허물기 위해 이번에
상당한 공을 들였단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지난주 대다수 유튜버들의
시승기가 올라왔고 극찬이 많았는데,
나 역시도 타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니
서둘러 EV3를 가져와보았다.
표면적인 가격과 인증 주행가능거리
뿐만 아니라 승차감과 거주성에서도
좋은 평을 많이들 내놓았다만
정말로 그런지 한 번 확인해보자.
이 글 하나로 나머지 EV3 시승기 및
유튜브 영상 안 봐도 되게
EV3의 거의 모든 면*을
다 집대성해보도록 노력해보겠다.
완전 새로 출시한 차량이니
디자인부터 짚고 넘어가야지.
EV3의 디자인은 기존에 공개됐던
EV3 컨셉트카의 디자인을
양산차에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으로
차량의 크기는 작지만
그 내부는 꽉꽉 채운 듯한 모습.
난 개인적으로 GT-Line이 나은데
이 기본형 외장의 어스 트림은
흰색을 칠해놓으니 되게 귀엽다.
주차장에 주차해놓고 걸어가다
문득 뒤돌아보면 갑자기 달려와서
멍멍 짖을거같은 강아지 느낌도 있고
까만색 장식이 많아서 그런지
아기 판다같은 느낌도 있다.
차량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뒷쪽으로 갈 수록 낮아지는 형태라
두꺼비가 앉은거같기도 하고
비슷한 느낌을 주는게 죄다 동물이라
EV3의 외부 디자인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동물원.
현재 판매중인 니로 EV(SG2)는
후면이 배바지 입은 중년 남성 같은
'대우 레조'스러운 디자인이라
후면이 완전 에러였는데,
EV3는 그 정돈 아니지만
레조의 향기가 아주 없어진 건 아니다.
트렁크 리드가 치켜 올라가고
후면 유리창이 작은 게
멜빵 바지를 입은 것 같기도 하고.
휠 디자인은 너무
'나 전기차야'를 부각하는데,
이게 기아의 전기차 디자인 컨셉.
기아차는 전기차라는 카테고리를
아예 기존 차량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은건지
별도의 차량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자사 내연기관 모델들과 완전히
차별화된 디자인을 하는 중인데,
EV3 역시 그러하다만
휠이 그 종지부를 찍는 느낌.
메르세데스-벤츠같은 회사는
전기차로 전환하여도 기존의 자신들이
오랫동안 이어오던 전통과 역사를
부분적으로 녹이는 전략을 쓰는데
기아는 기존까지의 이미지가
저렴한, 대중적인 차량이어서 그런지
연결고리를 끊고 싶은 속내가 보인다.
기아 보이즈같은 이미지와도
외부 디자인은 어쨌든 완전 신차라
균형감이 좋고, 또 귀엽다.
이 정도면 외모를 보고 선택하는 이도
꽤 될 것 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보톡스 맞은 2050년의 미니 쿠퍼'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요즘의 미니도
이미 왕창 커져서 2050년엔 이게
'보톡스 맞은'이 아니고 그냥 미니일지도.
이제 실내로 올라타보자.
테스트카는 실내 색상이 네이비.
분명 네이비인데 베이지 색상인 부분이
내가 보기엔 더 많아 보인다.
베이지 / 블루 투 톤 시트와
오렌지색 포인트 컬러는
캐스퍼에서 봤던 것 같은데.
베이지와 네이비의 조합 자체는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에 좋다.
캐스퍼의 베이지 / 블루는
파란색이 완전 쨍해서
애들 장난감같은 느낌이었는데
EV3는 장난감보다는
어른의 물건, 진짜 자동차스러움.
캐스퍼 일렉트릭은 아예 그 부분을
아주 극대화시켜서 실내를
놀이 공간처럼 꾸며놨는데,
개인적으로 캐스퍼 일렉트릭의
그 부분은 떨어지는 내장재 품질과
그런 걸 감안했을때의 높은 차량 가격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으로 보인다.
EV3는 차량 가격에 걸맞거나
그보다 약간 더 좋아보이는,
단정한 느낌이라 흡족.
이전의 내 글들을 봐 왔으면
내가 가죽이라면 죽고 못 사는,
실내 도처에 가죽 바르는 것을 선호하는
그런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데
EV3의 실내는 시트와 운전석을 제외하면
가죽과 우드트림은 전멸. 하나도 없음.
그러고도 보기 좋게 꾸몄단 점에서
실내 디자인은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고 생각한다.
대시보드 전체를 덮는 오돌토돌한 소재나
시트의 가죽 품질 및 실내 곳곳에
소재를 배치한 센스 및 짜임새
이런 점들이 아주 훌륭해 보인다.
저렴한 차에 이런 밝은 내장 색상을
고르면 떨어지는 내장재 수준 탓에
싼 티가 무조건 나는데,
EV3는 그런 점이 거의 없고
오히려 이보다 윗급 차량인
더 뉴 EV6의 실내보다도 낫다.
다만 어스 트림과 GT-Line에 적용되는
앞좌석의 메쉬 헤드레스트는 싫다.
디 올 뉴 코나 일렉트릭에 먼저 쓰더니
이제 여기에도 왔는데, 극혐.
운전하면서 휴양지 온 느낌 만끽하란건지
머리를 댔을때 편안하다기보단
해먹에다 머리를 걸쳐놓은 느낌이라
시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꽝.
특이하게 제일 기본형인 에어 트림과
현재 보여지고 있는 어스 트림은 모두
'프리미엄 바이오 인조가죽시트'가 적용.
EV3은 최상위인 GT-Line까지 올라가서
GT-Line 전용 바이오 인조가죽시트가 적용돼도
천연가죽은 누릴 수 없는 호사.
인조가죽의 질 자체는 상당히 괜찮다.
운전석 시트 쿠션은 부드러운 편.
좀 덩치가 있는 사람들은
시트가 약간 작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소형 SUV니까.
빅 사이즈인 사람들은 차도 크게 가야지.
EV3은 깡통인 에어 트림부터
운전석 시트는 전동이고,
어스 트림으로 올라가면 조수석까지 전동.
캐스퍼 일렉트릭은 풀 옵션이어도
운전석 시트 수동. ㅋㅋ
뒷좌석의 레그룸은
내 운전 자세를 맞춘 뒤 뒤에 내가 앉으면
앞좌석과 내 무릎 사이에 주먹 두 개 반이 들어감.
이 정도면 매우 넉넉하기 때문에
'소형 SUV'라는 체급 파괴 수준.
뒷좌석 레그룸에 몰빵한 캐스퍼 일렉트릭과
큰 차이 없이 둘 다 차급 대비 아주 넓다.
EV3은 캐스퍼 일렉트릭보다
차량 사이즈가 더 크기 때문에
뒷좌석 레그룸이 비슷한 게
단점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EV3의 레그룸만 해도 아주 널널하고
대신 EV3는 쓸만한 공간의 트렁크가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트렁크가 없다시피한
경차 수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는데
EV3의 트렁크는 트렁크라 할 만 하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이런 문제는 마치
사람이 정상적으로 머리 - 허리 - 발
을 다 갖춰야 될 것을
허리만 죽어라 늘려놓고
발을 없앤듯한 느낌이라 불편.
다만 어디까지나 EV3도
전기 소형 SUV이기 때문에
트렁크가 막 넓고 활용성이 대단히 좋고
그렇지는 전혀 않으니 큰 기대는 말아야.
사진 찍어두는걸 까먹은
전면부의 트렁크(프렁크)는 25리터로
니로 EV(SG2)의 20리터보다
25%나 공간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EV3은 전륜 구동 차량인지라
차량 앞부분에 PE 시스템이 올라가
용량 확보가 어렵단 점은 나도 알지만
글쎄, 테슬라는 앞에도 구동 모터가 들어가는
사륜 구동 롱 레인지 차량들이어도
프렁크가 훨씬 크고 넉넉한데.
E-GMP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800V 아키텍쳐 + 후륜 구동이 아닌
이전의 니로 EV와 동일한
400V 아키텍쳐 + 전륜 구동인데도
E-GMP라고 부르려면 적어도
프렁크 공간은 훨씬 더 확보를
해야 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E-GMP의 특징 중 하나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어서
차량의 전장 대비 휠베이스를
훨씬 길게 뽑을 수 있다는 것인데
EV3에서 휠베이스가 차량 총 길이 중
차지하는 비중은 니로 EV(SG2)와
거의 차이가 없다(EV3 62% vs. 니로 EV 61%).
이거 전기차 전용 플랫폼 맞아?!
전기차 전용 모델이라 전용 플랫폼을 썼다고
말은 해야겠는데, 실제 E-GMP는 원가가 비싸니
원래 있던 걸 조금 개선시켜서
E-GMP로 택갈이 한 듯한 느낌이다.
아! 캐스퍼 일렉트릭은
풀 옵션이어도 트렁크 여닫는 게 수동.
EV3은 어스 트림에서는 기본,
깡통인 에어 트림에선
컨비니언스(119만원)을 넣어야.
옵션으로라도 최소한 있는 게 어디야.
슬 달리기 시작해봐야지.
유튜버들의 찬사가 쏟아진 부분이
바로 EV3의 승차감이어서
나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EV3의 승차감은 차급을 아득히 뛰어넘는
굉장히 부드럽고 편안한 수준인건 맞다.
첫 출발부터 시내 및 고속도로 주행 시
크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자랑했다.
최근 출시된 현대차그룹의 많은 차량들이
그렇듯이 바퀴가 굴러가는 느낌이
매끄러우면서 진득한 놀라운 느낌을 주는데
EV3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매우 좋다.
자잘한 진동은 에어 스프링이 아님에도
억제를 잘 해서 실내로 거의 전달하지 않는다.
소형 SUV들이 원래 휠베이스가 짧아서
고속 주행시의 안정감을 확보하기
여러모로 어려운 차급이기도 하고,
전기차는 배터리가 휠베이스 사이에 있어
엔진이 앞으로 나가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직진성을 구현하기 어려움에도
EV3는 높은 속도 영역에서 훌륭하다.
속도가 150km/h 이렇게 찍혀도
그보다 낮게 체감될 정도이니
'소형차'라면 으레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편안함과 안정감이다.
하지만 한계점이 명확하다.
방지턱을 조금만 빨리 넘으려 시도하면
마치 휠베이스가 매우 짧은 차량같이
심한 피칭이 수반되고, 꽝 때리는 느낌이
특히 뒷바퀴가 노면에 떨어질때 느껴진다.
소형차 급을 뛰어넘었다는 말이지,
소형차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준중형, 중형, 준대형, 대형까지
아주 갈 길이 구만리인데
소형차 급이란 허들을 하나 넘었어도
윗급의 차량들을 넘볼 순 없는 것.
방지턱을 만날 때 속도를 많이 낮추면
아주 매끄럽게 통과하는데,
과한 충격을 받았을 때에는
전기차인지라 무거운 차체 무게 때문에
버티기 위해 댐퍼가 수축이 풀릴 땐
평소보다 너무 단단한 느낌.
215mm라는 얇은 타이어로
이 작지않은 덩치와 1.85톤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 뒷쪽 리바운드 강성이
좀 필요 이상으로 높지 않나 싶음.
그런데 문제는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고가인지라 아무리 EV3가 싸게 나왔어도,
동 가격대의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하면
필연적으로 이런 부분은 부족하게 된다는 점이다.
제목에 '쏘렌토의 희생양'이라 적은 건
바로 이런 대목에서 EV3가 밀린다는 것.
앞좌석만 주로 쓸 도심형 차량이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내가 EV3의 뒷좌석에 타보지 않았음에도
뒷바퀴가 순간순간 보이는 태도를 보면
'승차감이 좋기 어렵겠다'란 생각이
운전하는 내내 절로 들더라.
요새는 준중형 SUV, 중형 SUV도
SUV와 큰 차를 원하는 이들 덕에
혼자서, 혹은 조수석까지만 사용하며
타고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런 방지턱을 넘고 큰 요철을 밟을 땐
스포티지나 쏘렌토가 당연하게도
한결, 아니 훨씬 편안하다.
승차감이 떨어진다고 말하면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겠지만
EV3는 가격이 보조금을 받아도
윗급 차량에 맞먹기 때문에
승차감에서의 열세가 딱히 당연하진 않다.
기존의 니로 EV(SG2)보다는
현저하게 승차감이 개선되었다.
니로 EV는 거의 뭐 유럽인들이나
용서해줄만큼의 탄탄함이었는데
EV3는 한국인들도 만족 가능.
EV3의 승차감에 대한 호평이
워낙 자자해서, 혹시나 이게
테슬라의 신형 모델 3(하이랜드)와
견주었을 때 2024년 올해의 전기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EV3을 다양한 환경에서 운행해보니
그런 생각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신형 모델 3보다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고,
신형 모델 3 또한 승차감과 고급감 면에서
차급을 뛰어넘는 센세이션한 차량이었기 때문에,
그 충격파의 수준이 EV3냐 신형 모델 3냐
그것을 고민했는데, 내 생각엔
신형 모델 3가 더 놀랍다.
둘을 비교한다는 사실이 다소 웃기지만,
두 차량의 승차감을 비교하면
EV3 대비 신형 모델 3은 댐퍼가 더 짧아서
방지턱 등의 첫 진입은 약간 탄탄한데
앞 / 뒤가 균형감있게, 일관되게
차체의 피칭과 롤을 억제하며 넘어간다.
평소 주행 시에도 신형 모델 3이 더 고급스럽고.
이 부분은 그냥 재미로 봐주길.
댓글로 '무슨 EV3랑 모델 3랑 비교하냐!'
화내지들 말고요.
음 근데...
신형 모델 3 RWD와
EV3 GT-Line 스탠다드 풀 옵션은
(롱 레인지 아닙니다) 보조금을 반영해도
가격 차이가 한 500만원 선인데
음.................
500만원 차이 작지 않다는 거
나도 알지만, 차량의 수준 차이가 더 크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아직
현대차 측에서 테스트카를 돌리지 않아
타보지 않아서 비교가 어렵지만,
EV3보다 좋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위에서 많이 뭐라 했지만 EV3의 승차감
그래도 상당히 인상적인 건 맞거든.
EV3의 또 다른 특징은
i-Pedal 3.0이 들어갔다는 것.
이번에 달라진 것은
기존의 i-Pedal 모드란
주행하다 회생 제동을 사용해서
완전 정차까지 가능한,
가장 강력한 회생 제동 강도였는데
이제 i-Pedal 모드도
0,1,2,3단계로 설정 가능하고
그냥 회생제동 설정값도
0,1,2,3단계가 있으며
심지어 기존에 있던
전방 차간거리를 감지해서
자동으로 회생제동 강도를 바꾸던
Auto 모드도 자리하고 있다.
좌측 패들을 길게 당기면
i-Pedal 모드로 진입하며,
우측 패들을 길게 당기면 Auto 모드.
남들은 회생제동 조절 단계를
단순화하지 못해서 안달인데,
현대기아차는 완전 역행 중이다.
20대인 나한테조차도 뭐가 너무 많아.
일반 회생제동 0단계와
i-Pedal 회생제동 0단계의 차이점이 뭐냐면
일반 회생제동 0단계는 다들 알던것처럼
악셀을 놓으면 아무런 회생제동 없이
차량이 데굴데굴 굴러가서
브레이크 페달로 차량을 세워야 한다.
i-Pedal 0단계는 일정 속도 이상 주행 시엔
회생제동이 거의 개입하지 않다가,
신호 대기를 위해 정차하는 등의
극저속 상태까지 차량 속도가 내려오면
은근슬쩍 슬슬 회생 제동이 걸린다.
하지만 회생 제동의 강도가 미약해서
역시나 거의 비슷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가지고 차량을 세워야 한다.
이런 일관되지 못한 모드는
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며
i-Pedal 모드 내의 세부 단계를
굳이 설정하게 왜 만들었을까?
이건 선택권을 더 줘서 좋은 게 아니고
복잡함만 추가돼서 오히려 헷갈린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20대이고
전기차 및 전자제품에 적응이 빠른 사람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난 전기차 만으로도 10만km 가까이 운행했음.
그리고 기존의 i-Pedal 시스템은
좌측 패들을 강하게 당겨서
평소엔 0 ~ 3단계로 다녔어도
회생 제동만으로 차량을 정차시킬 수 있어
나는 현대 / 기아의 전기차를 탈때
굳이 발을 쓰지 않고서도 타이밍 맞춰
내가 원하는 위치에 차량을 세울 수 있어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었는데
EV3의 이 i-Pedal 3.0에는
그 기능이 삭제됐다.
잘 쓰던 건 없애고
복잡함을 끼얹어줌.
정말 고맙다.
기존의 수동 조절 가능한 0,1,2,3단계와
최대 회생제동 강도인 i-Pedal,
그리고 자동으로 차가 해주는
Auto 모드 이 세 가지가
훨씬 깔끔한 듯 한데 왜 바꾼거지.
타면서는 좋단 생각이 많았다가
이 차가 어땠나 돌이켜보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내 생각보다
나쁜 점이 훨씬 부각되고 있는데
EV3이 오디오 하나는 정말 좋다.
테스트카는 풀 옵션 사양이라
어스 트림에서 59만원을 내면
선택할 수 있는 하만 카돈 오디오.
GT-Line 역시 동일하며,
깡통인 에어 트림에선 선택 불가.
난 하만 카돈이란 이름에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데,
딱 노래 틀자마자 나오는 소리가
정말 너무 괜찮아서 놀랐다.
전기차 특유의 강한 전장 출력에
하만 카돈 특유의 먹먹함? 눌린 음색이
결합돼서 의외로 밸런스가 좋다.
여전히 하만 카돈인지라
찌르는 듯한 고음이나 시원함은
이퀄라이저를 손봐줘야 좀 살아난다만.
반대로 저음은 다소 강한 편인데
이퀄라이저에 손을 대서 저음을 빼면
저음이 급격하게 답답해져서
중 / 고음을 올리는 게 낫다.
이런 특징은 렉서스 RX의
마크 레빈슨 오디오와 동일한 점.
이 정도 음 표현력 및 깔끔함이면
최근 탔던 폴스타 2의 하만 카돈보다 낫고
BMW M3의 하만 카돈보다도 낫고
현대 / 기아 / 제네시스의 전기차 중에서는
GV60, Electrified GV70, EV9 다음이다.
더 뉴 EV6 및 현대의 아이오닉 차량들은
EV3의 하만 카돈보다 한참 못 함.
EV3은 전기차 라인업 중
가격으로는 가장 막내인데..
특히 더 뉴 EV6의 메리디안은
귀가 아플 정도로 중음에 치중되어 있고
더 뉴 아이오닉 5 및 아이오닉 6의 BOSE는
돈 주고 옵션 넣은 게 아까울 정도의
처참한 오디오 품질이라 그렇다.
내연기관 차종으로 비교군을 확대하면
그랜저 및 싼타페의 BOSE 다음으로 좋다.
성향 자체는 완전 다르지만
소리 품질을 점수로 매긴다면
그랜저의 기본 오디오보다 살짝 나은 정도.
다만 소리 자체의 성향은
니로 EV(SG2)의 기본 오디오가
내실이 튼튼하진 못할지언정
시원한 출력감이 난 제일 마음에 들었다.
니로 EV(SG2)의 하만 카돈보다도
EV3의 하만 카돈이
소리가 한결 짱짱함.
스포티지나 쏘렌토의 크렐보다는
당연하게도 EV3의 승리.
특히 쏘렌토는 더 뉴 쏘렌토로
페이스리프트가 되면서 크렐 오디오가
종전보다 많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EV3의 하만 카돈에는 많이 못 미친다.
차량 실내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전기차 특성상 오디오가 매우 중요한데
이 부분은 잘 해내서 다행.
평상시에 얼마나 편안한지
승차감은 이미 따져봤으니,
이제 주행 성능도 확인할 차례.
EV3은 전자제어식 서스펜션이 아닌
고정형 서스펜션이라 주행 모드를 바꾼 들
차량의 거동이 바뀌진 않는다.
다행히도 비가 떨어지기 전에 테스트해서
EV3을 조금 몰아붙여볼 만 했는데,
이 차는 완전 한계까지 가기도 전에
이미 타이어와 앞머리가 항복하는 편.
EV3에게 과격한 주행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걸 하라 만든 차량이 아니지만
니로 EV(SG2)는 놀랄 만큼 좋았거든.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진 데에는
이 정도 가격대에선 희생이 따른다.
이 차는 한 50 ~ 60%의 페이스로
여유롭게 스윽 돌아나가는 게 가장 즐겁다.
코너 안쪽으로 빠르게 들어가려 하면
여지없이 앞바퀴가 쭉 미끄러짐.
대놓고 언더스티어 성향임이 느껴질 정도.
타이어가 빈약한 215mm라서 그런가
처음에는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니로 EV(SG2)도 동일한 타이어 폭이었다.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앞머리가
끈덕지게 붙어있기를 어려워한다.
아까 방지턱 넘을 때
차량이 작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했는데
이럴 땐 작으면서 높은 차 느낌이라
롤이 느리게 일어나지만, 양감이 좀 된다.
EV3을 타는 사람들이 이런 운전을 하진 않을테니
안전제일주의의 이러한 설정값은
맞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로선 아쉽.
아까 말한 스포티지와 쏘렌토가 여기서 재등장한다.
스포티지와 쏘렌토는 평소에 더 편하면서
코너링은 EV3보다 월등히 빠르고 안정적.
니로 EV는 낮은 무게중심을 십분 활용해서
훨씬 자극적이고 매콤한 느낌인데
EV3는 이럴땐 숭덩숭덩 썰어넣은 맑은 순두부.
타이어는 17인치와 19인치가
끼워지는 신발의 종류가 다른데,
19인치는 넥센의 엔페라 슈프림 S.
디 올 뉴 그랜저 깡통에도 끼워지는 신발로
타이어 자체의 접지력은 괜찮은 편.
바꿔 말해 EV3의 섀시가
운전자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
17인치는 금호의 솔루스 TA51.
TA51 나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리고 드디어 읊는 EV3의 파워트레인 :
싱글 모터가 앞 바퀴를 굴리는 전륜 구동이고,
최고 출력 204마력에 최대 토크 28.8kg·m.
니로 EV(SG2)와 최고 출력이 동일해서
같은 PE 시스템인가 싶겠지만, 아니다.
니로 EV는 최대 토크가 26kg·m이라
최대 토크가 EV3의 것보다 더 낮다.
그 말인 즉슨 EV3 모터의 회전범위가
더 낮거나 최대 토크가 종료되는 시점(속도)이
EV3쪽이 더 이르다는 뜻.
E-GMP 차량들의 특장점이
15000rpm까지 올라가는 모터와
고 회전에서의 출력 유지력인데
E-GMP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그래선지 모터가 출력을 내는 감각조차
'이 차는 빠르거나 과격한 달리기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특히 고속에서 가속이 무뎌짐이 두드러진다.
비슷한 파워트레인의 니로 EV(SG2)나
심지어 코나 일렉트릭(OS)보다도.
안 그래도 현대 / 기아의 전기차는
즉각적인 토크감의 테슬라와 달리
내연기관 차량에서 넘어온 신규 고객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운행하도록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움직이는 듯한
약간의 의도적인 딜레이가 있는데
이 분야에서 EV3이 제일 심하다.
그리고 배터리를 많이 얹은 만큼
니로 EV(SG2)보다 무게가
150kg가량 더 많이 나가는데,
그래서 최대 토크가 살짝 더 높아도
나가는 느낌은 훨씬 덜하다.
더 뉴 EV6은 내가 아직
2WD(후륜 구동) 모델을 못 타봐서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EV6와 비교하면
EV6 쪽이 출력이 살짝 높아도
그 출력차이보다 훨씬 가속감이 강력하다.
다른 전기차와 비교해서 그렇지,
EV3의 가속력은 충분하니 오해금지.
운전대 무게감은 평상시엔
꽤나 가벼운 편이고
스포츠 모드로 두면 일반적인 사람들이
무겁다고 민원 넣지 않을 만큼
딱 적절하게 적당히 무게감이 생긴다.
브레이크는 아쉽게도 테스트 불가.
비가 내리는 것도 문제인데
차량의 누적 마일리지가 160km.
브레이크 길들이기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고
전기차인지라 회생 제동이 있어서
내연기관 차량보다 브레이크 길 들이기에
마일리지가 보통 더 소요되는 편.
더 뉴 EV6보다 훨씬 나은 점 하나는
최근 더 뉴 아이오닉 5와
더 뉴 EV6가 각각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악셀 페달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이상한 설정값에 나 운전하면서 놀랐었는데
다행히도 EV3는 그렇지 않다.
여타 전기차들과 유사한 페달 무게감.
그 밖의 실내 디테일과 할 이야기들.
투 톤 앰비언트 라이트는 난 좋다.
들어간 부분도 딱 적절하고,
낮에도 빛이 잘 보이는 편이며
색이 예쁘게 들어온다.
소형차에 이런 화려한 실내 조명은
메르세데스-벤츠 정도나 넣는 건데
보조금 받기 전엔 GLA-클래스와
차값이 유사해서 그런 건가.
EV3 실내의 주요 포인트는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로
평소에 수납함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당겨서 더 늘릴 수 있는 판이 달려 있다.
차량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전기차라
차량 안에서 음식 먹을 걸 감안해서
고안해낸 물건인 듯 한데,
일단 이건 어스 트림 이상부터.
이것 때문에 앞좌석 주변엔
이렇다 할 수납공간이 별로 없다.
도어 트림의 주머니와 대시보드 수납함이 끝.
내가 봤을땐 저 컵홀더 뒷쪽을
격벽으로 막아서 최소한 수납공간이
작게라도 있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콘솔 테이블에
먹을 걸 올려놓고 먹는 걸 예상했다면
컵홀더를 테이블 끝단에
눌러서 나오게 하는 팝업식으로
만드는 것이 음료 보관하기도, 먹기도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운전자 팔 위치보다 저 아래에 있는
컵홀더에 꽂아둔 컵 꺼내다가
엎을까봐 좀 걱정됨. 엎으면 대형사고.
EV3은 대시보드 디자인을
간소화한다고 공조 패널을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모니터 사이에
터치식 화면을 넣어서 구현해놨는데
내 운전 자세대로 앉으면
운전대에 가려서 이 모든 게 안 보인다.
운전대를 잡은 오른손과 가깝다는 점에서
운전 중에 쓰기 편할 줄 알았는데
개별 아이콘들이 크지 않아서
눈으로 굳이 봐야 조작 가능했고
이 부분도 조금 불편했다.
자주 쓰는 온도 조절과
송풍 단계 조절은 피아노 건반 타입 버튼으로
대시보드 좌측에 자리하고 있어서 다행.
아. E-GMP 차량들,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 및 EV6
이 차량들은 에어컨이 최대로 틀어도
전기차인지라 내연기관 차량만큼 강하지 않았는데
EV3는 E-GMP라 주장함에도 에어컨이
8단으로 트니까 강하게 나와서 좋았다.
좋긴 한데, 너 진짜 E-GMP 아니지?
주차 칸이나 칸 주변 공간이
좁은 (서울)부암동주민센터 전기차충전소
이런 곳은 EV3를 충전하기 아주 곤란하다.
충전구가 전면에 있는 것도
매번 전면주차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
이젠 아예 주차 후 옆에 남을 공간까지
고려를 해야하니 여간 불편한게 아님.
전면이나 후면이 아닌 측면에
충전구가 있는 많은 PHEV들은
완속 충전이 주요 충전이니
아파트에 주차하고 옆에 플러그에 꽂아
충전하기도 편리하고,
설령 공간이 좁더라도 완속 충전이라
충전기 자체의 부피도 작아서
문제가 덜하지만 이건 완전 BEV.
다음 번엔 이러지 맙시다.
그래서 EV3은
소형차 수준을 뛰어넘는
승차감과 편안함, 실내 공간 및
실내 디자인과 오디오를 갖췄다.
이런 차량을 타는 사람들이
산길로 가서 막 차를 잡아돌리거나
과격한 운전을 수시로 하진 않을 테니까
'거의' 육각형 차량인 셈이고
전기차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도
짜증나는 측면 충전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다 가져서 합격.
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니
EV3를 굳이 꼭 사야 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네' 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난 이 차를 타고 있는 동안엔
꽤나 만족했는데,
(반나절 뒤인)지금에 와서는
왜 이렇게 불만족스러운지
곰곰히 생각을 해 봤다만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과 별개로
주변에 다른 선택지가 너무 많다.
EV3가 이렇게 공격적인 가격을
큰 마음 먹고 책정해서 나온 이유는
주춤하는 전기차 시장의 확장세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함이 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가격이 내려와서
본격적으로 내연기관 차량과 경쟁에 돌입하니
EV3는 내연기관 차량만큼 완전히 싸지도 않으면서
충전의 불편함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최근 인천에서의 EQE 화재와
어제 일어난 EV6 화재 탓에
전기차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 하락이 매우 큰 상태.
EV3가 이걸 뛰어넘을 만 하냐?
전기차 캐즘(chasm)을 극복할 만 하냐?
전기차 시장을 오래 지켜봐왔고
전기차를 오래 타고 다녔으며
경영학을 전공한 내 입장으로선
'절대 아니오.'
아마 그걸 이겨낼 주인공은
내년에 출시할 테슬라 모델 Y 주니퍼가
되지 않을까 나는 예측해본다.
저 테슬람 아니고 테슬라 주식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같은 그룹사 내의
캐스퍼 일렉트릭과 비슷하게 출시했는데
캐스퍼 일렉트릭과 비교하면
비교 할 것도 못 되게 EV3 압승.
그 내용은 캐스퍼 일렉트릭 시승기에서
아마 다루지 않을까 싶다.
캐스퍼 일렉트릭과 같이 나오는 바람에
형제의 난(?)에선 이기겠고
현대차(제네시스 제외)보다 기아차가
내수 판매량에서 우위인 것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이는데
EV3 또한 같은 핏줄한테 죽을 예정.
그것은 바로 말도 안 되게 좋은
더 뉴 쏘렌토 하이브리드.
주행가능거리 부담 없는
작은 전기 SUV가 필요한 이들에겐
EV3가 제격이지만,
대중성을 띄는 가격 책정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전기차 보급에는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승차감이 좋은 건 사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