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클래스의 인기가 정말 심상찮다.
'강남 싼타페'로 급부상했던 포르쉐 카이엔을 밀어내고
갑자기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강남에서 과시하고 있다.
바로 이전 세대만 해도 GLE-클래스는
경쟁작 중에서 제일 인기가 떨어지는 어정쩡한 차였고
M-클래스에서 이름을 바꿨음에도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며
우리나라에선 인기가 거의 없는 모델이었다.
그런 GLE-클래스가 풀 체인지를 거치며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웬걸
상품성이 천지개벽으로 개선되었다.
이전엔 차에 특색이 너무 없었다.
그 당시 동급 최강이었던 BMW의 X5,
3열 및 넉넉한 공간의 Q7,
운동성능의 카이엔 그리고
머리색이 빠질 나이의 중년들이 타는 XC90까지
각 모델 별 매력이 뚜렷했는데 GLE는 전무했다.
근데 이번 GLE-클래스는
등장과 동시에 X5를 밀어내며 강력한 모델로 떠올랐고,
여기에 쿠페 라인업까지 추가된 상황.
GLE-클래스의 경우 일반형 모델은
GLE300d 4Matic과 GLE450 4Matic,
그리고 고성능 GLE 53 AMG 4Matic+까지
이렇게 세 모델이 현재 국내 판매 중이고
늦게 출시된 쿠페형은
GLE400d 4Matic과 GLE 53 AMG가 있다.
곧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GLE350e가
두 가지 바디 형태 모두로 출시될 예정.
이번에 새로 출시된 GLE 쿠페는
전면은 일반형과 동일하게 생겼지만
후면의 디자인이 찌푸린 미간마냥 어색하다.
분명 일반형보다 더 멋져야 할 쿠페인데,
그리고 상당한 가격을 지불하는 만큼
디자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으면 안 되는데
일반형 GLE는 내 눈에는 다 이쁘다만
GLE 쿠페는 의문이 드는 디자인인 것 같다.
시승차는 GLE400d 쿠페로
대다수의 이 차급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파워트레인.
GLE300d가 첫 출시당시 2000cc급 디젤엔진이라고,
그에 비해 가격이 높다고 욕을 많이 먹었었는데
OM654가 워낙에 뛰어난 엔진이고
300d 라인업들은 트윈 터보 버전이라
막상 타는데 지장이 있는 모델은 아니었으나
1억 근방의 가격을 지불한다면
'이만하면 그냥 탈만하지' 수준보다
좀 더 원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SUV의 경우 디젤 선호도가 압도적인 국내 특성상
3000cc급 디젤 엔진이 E-SUV 급에선 중심인데
(경쟁모델인 X5 xDrive30d, Q7 50 TDI는 전부 3리터급)
경쟁사에 맞불을 놓기 위해 GLE400d가 쿠페로 출시되었다.
GLE400d 쿠페는 OM656 2925cc 디젤 엔진을 얹고
330마력과 71.38kg·m을 발휘하는데
GLE300d와 마찬가지로 트윈 터보 버전이다.
GLE300d가 사용하는 OM654에
실린더 두 개를 더 붙인 모듈러형 엔진이고
S400d, G400d, GLS400d 등과 공유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디젤 엔진이 이정도 파워를 내려면
4134cc나 되는 배기량을 갖춰야 했었다.
(2010년도 아우디 Q7 4.2 TDI가 335마력)
새삼 디젤 엔진의 발전이 엄청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엔진 자체의 회전질감은 정말 그지없이 매끈하다.
너무 매끈해서 엔진이 돌아가는지도 잘 모를 정도.
이게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 좋게 들리지만
내 취향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감각인데
BMW의 B57이나 현대의 스마트스트림 I6D는
부드럽지만 가랑가랑한, 발 끝을 살살 건드리는
매우 기분 좋은 질감이고 운전하고 싶게끔 만드는데
메르세데스-벤츠의 OM656은 OM654와 달리
디젤차의 큰 약점인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 좋긴 하지만 너무 맹맹하다고 해야할까.
동력 전달은 상당히 파워풀하게 잘 하는 편인데,
악셀을 밟다보면 금세 고속도로 제한속도까지 오른다.
성능은 좋지만 캐릭터가 좀 죽어있는듯한 모습.
예전엔 400d 정도면 엄청난 고성능 모델이었는데.
메르세데스-벤츠는 꼭 경쟁사보다
한 단수 많은 변속기를 자체적으로 채택했었는데
그 탓에 7G-트로닉 시절에는 울컥임이 꽤 있었고
9G-트로닉은 초반부터 잘 다듬은 편이었지만
저단에서 변속충격이 아예 없다고는 못할 정도였다.
이제 9G-트로닉도 상당히 무르익어서
BMW나 포르쉐의 ZF 8단만큼은 아니지만
종합적으로 봤을때 매우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아우디의 팁트로닉 ZF 8단은 영 꽝인지라
변속기의 제조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다듬어서 넣는 자동차 회사의 역량이 중요하다.
현재 GLE400d 쿠페의 9G-트로닉은
경쟁 모델 중 중상위 정도를 차지한다고 보면 맞다.
시승차는 20인치 휠을 끼고있어서 가속도 꽤나 빠른 편.
차의 덩치가 상당해서 20인치나 됨에도 휠이 작아보이는데
이 급에는 20인치가 딱 적당한 것 같다.
옵션으로 21인치 AMG 멀티스포크 휠이 준비되어 있지만
굳이? 라는 느낌이 강하다. 20인치 휠로도 충분.
승차감이나 성능이나 연비나 모두 이게 맞다.
승차감은 사실 생각했던 느낌하고 좀 달라서 놀랐는데
한 급 아래인 GLC와 달리 전반적인 주행감각 자체가
헐렁하고 여유있는 느낌이라 다소 의외였다.
GLE400d 쿠페는 에어매틱이 적용되어 있는데
(국내 출시된 GLE 전 라인업 에어매틱 기본장착)
요즘 이 급 독일차에 유행인 3챔버 에어 서스펜션.
SUV니까 에어 서스펜션이라고 해서
구름을 떠가는 승차감 같은건 기대하면 안 되지만
확실히 탄탄 보다는 부드러움에 가깝다.
아주 심하게 무르거나 출렁대는건 아니지만
소위 '독일차맛'이라고 하는 쫀득한 느낌은 거의 없고
차체의 움직임을 여유있게 허용하는 편이다.
확실히 북미 시장이 주 타겟인 모델이라 그런지
생각했던 느낌과는 거리가 좀 있다.
순정 타이어가 피렐리의 피 제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올려보면
괜히 벤츠가 아님을 어느정도 체감할 수 있는데
말로 표현하기 묘한 느낌이나
속이 널찍하게 빈 크고 둔중한(수박?) 장갑차가
노면을 짓밟는다기보다는 가볍게 누르면서 나가는
꽤나 안정적인 감각을 선사한다.
에어매틱이 적용된 메르세데스-벤츠 세단과도
느낌이 많이 달라서 처음에는 당황을 했는데
보통 고속안정감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차는
속도를 낼 수록 앞머리가 가라앉으면서
바람을 삭 가르면서 나가는 그런 느낌이 많은데
GLE400d 쿠페는 앞부분이 가라앉는 감각이 아니고
차체 전체가 일직선상에 놓인 채로 꾸준하게 밀고 나간다.
SUV라 그런 것인지(아직 GLS 시승을 안 한 상태)
아니면 차량의 셋팅 자체를 이렇게 한 것인지 미지수.
직진 주행 시와 코너 통과 시의 차량의 움직임이
다소 상이한 게 독특하다.
차량의 시트 역시 다소 큼직하게 설계된 듯 한데
내가 앉았을 때 이렇게 공간이 많이 남는 시트는
그리 많지 않다만 GLE400d 쿠페는 그 중 하나이다.
사실 GL'E'면 E클래스 급의 준대형 SUV인데
E클래스는 오히려 굉장히 몸과 밀착되고
운전자를 감싸는 느낌이 강한 시트인 반면
GLE는 벤치나 소파같은 널널한 느낌.
아주 어릴 땐 푹신하고 큰 소파가 좋다고
가구 사러 갔을때 떼 쓰던 나였는데
허리를 신경쓰는 나이가 되다 보니
적당히 단단하고 지지력이 좋은 의자가 좋다.
그런 의미에서 GLE의 시트는 내 스타일이 아님.
물론 이 체급의 E-SUV들 시트가 대부분 이렇지만
시트의 착좌감은 X5보다 좋단 생각이 안 든다.
그래도 엠보싱 키친타올같은 장식의
GV80 시그니처 디자인 셀렉션 II 시트보단 나은데
천하의 벤츠가 제네시스보다 좀 나은 수준이어서 쓰나.
아, Q7이나 Q8보다도 좀 낫긴 하다.
인테리어는 정말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다.
반박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 동급 최고의 럭셔리함.
메르세데스-벤츠가 앰비언트를 제대로 사용하니
타사에서도 죄다 따라하는데 원조만한 게 없다.
Q8 역시 화려하단 인상을 강하게 주지만
화려함과 동시에 고급감을 이만큼이나 선사하는건
GLE400d가 이 체급에서 유일하며 최고봉이다.
12.3" 클러스터 및 MBUX는 빠르고 쨍하며
시승차는 GLE400d 쿠페에 옵션인
브라운 오픈 포어 월넛 우드트림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GLE450에 기본, GLE400d 쿠페 옵션)
GLE를 구입할 거라면 꼭 오픈 포어 우드트림으로.
GLE400d 쿠페에 기본 적용되는 유광 우드는
인테리어의 격을 반 급 낮추는 것 같다.
GLE는 블랙/브라운 오픈 포어 우드 트림이 최고.
GLE300d를 구입하더라도 내장 트림은
꼭 변경하는 것을 추천한다.
시승차는 폴라 화이트 색상으로
펄은 고사하고 메탈릭 도장도 아닌
솔리드 화이트 컬러인데 솔직히 너무하다.
데지뇨 다이아몬드 화이트 브라이트야
워낙에 고급 도장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디지털 화이트 메탈릭이라고
화이트 메탈릭 색상이 새로 나온 마당에
솔리드 컬러는 차량 가격을 생각하면 좀 아니다.
GLE는 화이트가 인기가 제일 높던데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대목이다만
나라면 카반사이트 블루나 셀레나이트 그레이.
화이트의 인기 때문에 이들은 대기가 더 짧다.
사실 나는 GLE300d만 해도
타고다니기 충분하다고 말하는 입장인데
벤츠코리아가 GLE300d의 구성을 막장으로 해놔서
2021년식 기준 1억원에서 딱 40만원 빠지는 차인데
ARTICO 인조가죽 시트가 들어가질 않나,
AMG라인이 빠지질 않나 도저히 봐주기 힘들 정도.
2021년식에는 그나마 통풍시트와 HUD,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패키지(23p)와
스마트폰 통합 패키지 등 드디어 탈만하게 되어서
이정도인데, 솔직히 이것도 부족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디젤 구입을 고려하면
자연스레 GLE400d 쿠페로 올라오게 되는데
충분히 훌륭한 성능이고 좋은 차임은 맞으나
1억 2천만원을 지불하고 살 차인가는 물음표.
GLE450 가솔린이 구성과 가격을 따지면 훨 낫다만
편하게 탈 SUV인데 고급유(특히 지방 방문 시) 문제와
SUV는 디젤이라는 오랜 공식, 높아지는 유류비는
이래저래 고민할 만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무슨 1억원 넘는 차를 사면서
기름값 몇 푼으로 유난이냐 하겠지만
1억원을 전후하는 차량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기름값을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GLE를 구매한다 하더라도
이게 분명히 신경이 쓰이기에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GLE 이전에 강남 싼타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카이엔이야 워낙 출고 여부가 불규칙하고
이제 디젤도 단종되어 기본 모델을 사면 되고,
X5는 xDrive30d가 있고(심지어 더 저렴하다)
Q7과 Q8은 6기통 디젤 라인업이 두 개나 있다.
GV80 역시도 주력 모델이 디젤 모델이기에
GLE400d를 쿠페라고 웃돈까지 줘가며
6기통 디젤을 고수하기 위해 검토하는 것은
나처럼 메르세데스-벤츠가 정말 좋은게 아니고서야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꼭 그래야할만한 이유가
별로 많지 않다. 물론 승차감과 인테리어는 좋지만.
나 역시도 약간 갸우뚱하게 되는 상품기획인데
그냥 일반형 GLE400d가 출시되면 제일 좋을 것 같다.
GLE450의 수요를 잡아먹을까봐
일부러 출시하지 않는 것 같은데 좀 짜증난다.
사실 내가 제일 원하는 모델은 GLE350de라고
디젤 엔진과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한
극강의 경제성 지향 모델인데 이게 제일 탐난다.
GLE300d와 동일하게 OM654 디젤 엔진을 얹고
전기모터의 힘을 빌려 합산 320마력을 내
2000cc급 디젤이라고 부족하다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며
NEDC 기준 EV모드 주행가능거리가 106km이라
환경부 인증을 받아도 70km은 넘지 싶다.
엔진의 힘을 빌려도 경유를 주유하기에
기름값도 싸고 연비도 잘 나온다.
이런 완벽한 모델이 있음에도 없는게 너무 아쉽다만
GLE350e도 인증 받는 데 한 세월 걸렸는데
디젤 엔진까지 얹은 GLE350de는
배출가스 인증을 받기 더더욱 어려울 것인지라
벤츠코리아가 안 들여오는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아무튼 GLE400d 쿠페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정말로 이런 가격을 부를 만한 차가 아닌 것인지
내가 어지간해선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은
시승 전/후가 감상이 거의 동일하고
사고 싶다는 결론이 대개 내리는데
GLE400d는 시승 후 구매 의사가 사라졌다.
SUV인 것을 감안하면 승차감은 좋은 편이고,
특히 동급 차종끼리 비교했을 때에도 마찬가지.
실내도 화려하고 메르세데스-벤츠이기도 하나
꼭 이걸 사야하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길에 나가보면 보이는 GLE는
거의 다 GLE300d나 GLE450 둘 중 하나.
차라리 고급유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속 편하게 리스나 렌트로 GLE450을 출고해서
일반유 주유하고 타다가 만기 시
그냥 반납해버리는게 제일 나은 선택일 듯.
멋진 쿠페형 SUV를 타면서
경제성까지 챙기고 싶다면
포르쉐 카이엔 쿠페 E-하이브리드를 고민하는게.
물론 카이엔 E-하이브리드는 가격대가 다르지만
포르쉐 뱃지는 메르세데스-벤츠보다 한 급 위로 치며
카이엔의 승차감도 포르쉐라는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좋은 편이다. 달리기 실력이야 당연하고.
특히 쿠페형 SUV를 생각한다면,
포르쉐코리아가 카이엔 쿠페에는 일반형 카이엔보다
기본으로 포함시켜주는 장비들이 더 많고
옵션가도 저렴한 경우들이 꽤 되며
심지어 E-하이브리드 역시 추가적으로 갖춘 장비들이
일반 기본형 모델보다 더 많아서
이래저래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카이엔 쿠페 E-하이브리드를 1억 5천만원에 끊어서
출고하는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3천만원의 차액은 충분히 더 지불할 만 하다.
GLE400d 쿠페는 아쉽지만 탈락.
심지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 듯 하다.
GLE-클래스는 견적이나 출고 관련 문의를
할 때마다 최소 4-6개월 보라고 답을 받는데
GLE400d 쿠페의 경우
즉시출고 가능한 재고가 있다고도 했다.
안 팔리는 것 치고 프로모션이 박한건 의외지만
GLE300d나 GLE450만큼의 인기는 아니라는 것.
GLE를 꼭 사야겠다면 내 추천은 GLE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