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는 창사이래
이런저런 모험적인 시도를 꽤나 해왔는데
그런 도전은 고성능 모델이라고 예외는 없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8년 전인 2013년에 공개했었던
메르세데스-벤츠 SLS AMG 일렉트릭 드라이브는
AMG 세계에 순수 전기차를 소개했던
역사적인 모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AMG 디비전을
별도로 분리하지 않아
메르세데스-AMG가 아닌 메르세데스-벤츠.
지금 기준으로는 코나 EV보다 작은
60kWh의 배터리를 얹고 무려 740마력.
5억원이 넘는 가격표를 붙이고
극소량의 판매량을 보이며 생을 마감했지만
진취적인 메르세데스-벤츠의 도전정신은
고성능 차량도 환경친화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었었다.
최근에는 53 AMG 라인업을 통해
3.0L I6 M256 엔진에 EQ 부스트를 더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모델을 도입했었고
E 53 AMG, CLS 53 AMG, GT 4dr 53 AMG 등
본격 라인업 확장에 들어갔었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을 통해서
2999cc 엔진으로 다운사이징을 했더라도
훨씬 큰 배기량의 엔진을 얹은 듯한
자연스러움과 성능 향상을 꾀했는데
합산 451마력(429+22)이라는,
불과 10년 전 만 해도
5439cc에 슈퍼차저까지 더해야
낼 수 있는 출력을 구현했다.
이렇게 AMG 디비전도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전동화 기술을 자사 차량에
본격적으로 접목하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AMG 세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 첫 모델이 바로 이놈.
메르세데스-AMG GT 63 S E-Performance.
다행히 4Matic+이 이름에서 빠져
읊는데만 한 나절이 걸릴뻔한 사태를
극적으로 막았다만 길긴 길다.
대표적 경쟁모델인 포르쉐 파나메라는
이번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
파나메라 4S E-하이브리드(국내 미출시),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3종류나
갖추어서 본격 친환경 레이스에 참전했다.
그에 비하면 메르세데스-AMG는
환경을 생각하는 고성능차 계열에선
선구자이긴 하지만 이번엔 조금 늦은 편.
그런데 이 녀석은
다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심지어 파나메라와 비교해서도
성격이 사뭇 달라보인다.
일단 스펙부터 적자면,
메르세데스-AMG GT 63 S에서 가져온
많은 사랑 받았던 M177 엔진이 그대로.
4.0L 트윈터보 V8 유닛으로,
동일하게 630마력을 발휘하는데
여기에 전기 모터(201마력)가 힘을 보태
합산 831마력의 정신나간 출력을 자랑한다.
여기에 4.8kWh의 경량 배터리팩이
후륜 차축에 붙어있는데
14.8kWh를 잘못 쓴 게 절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 E300e가 13.5kWh짜리
배터리를 얹고 있으니 거의 3분의 1 수준.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배터리 용량이 더 증가해
이제 17.9kWh라는 상당한 사이즈인데
AMG는 배터리 용량을 점차 늘려가는
최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추세와는
정 반대의 노선을 택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비는 영국기준 33mpg.
참고로 E300e가 영국기준 176mpg이니
말 다 했다. 전기 단독 주행가능거리도
EPA 기준 꼴랑 7마일(11.2km)라서
국내 인증 시 6-7km 정도가 끝일 듯.
이 차는 맥라렌 P1을 연상케 하는데,
P1은 전기 모터를 딱 한 가지 용도로 사용한다.
터보의 부스트가 완전히 차지 않았거나
변속되는 그 짧은 찰나에 동력이 끊어지는 등
엔진이 최대 출력을 내고있지 않은 상태일때
그때 전기모터가 치고 들어와
최상의 출력을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번 메르세데스-AMG GT 63 S E-퍼포먼스도
이런 레시피를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은
배터리 용량을 25.4kWh로 늘리는 것으로
메르세데스-벤츠가 홍보중이니
이것은 AMG GT 4도어의 친환경 모델이 아닌
GT 63 S 4Matic+보다 한 체급 더 높은
최상의 성능을 구현한 최고 모델로 보는게 맞다.
원래는 이름이 GT 73이 될 것으로
다들 예상하며, 전설과도 같았던
7291cc 엔진을 얹은 73 AMG의 부활을 기대했으나
대신 E-퍼포먼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AMG가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메르세데스-AMG GT 63 S E-퍼포먼스는
0-100km/h 가속을 2.9초만에 끝내고
0-200km/h 가속은 10초 미만에 해치운다.
AMG 스피드시프트 MCT 9G 변속기가
메르세데스-AMG GT 63 S와 동일하게 얹히는데
예전에는 이런 출력과 토크가 감당이 안돼서
7G-트로닉이 한창 사용되고 있었음에도
65 AMG 라인업에는 5G-트로닉이 장착됐다만
기술의 발전이 실로 눈부셔서
이제 9단 멀티클러치 변속기가 그대로 올라간다.
다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다른 특이한 점은,
메르세데스-AMG GT 63 S E-퍼포먼스는
전기 모터를 구동하는 2단 변속기도
별도로 갖추고 있는데,
140km/h에서 2단으로 변속된다.
고속에서 힘이 빠지는 전기차의 특성을
고려해서 변속기를 탑재한 포르쉐 타이칸과
유사한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201마력이나 되는 높은 출력의 모터를
고속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F1에서 습득한 노하우를 접목한
AMG 디비전의 필살기이다.
그 밖에 높아진 출력에 맞춰
브레이크 성능도 한층 강화되었는데,
원래부터 AMG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는
무지막지한 디스크 사이즈를 자랑해왔건만
이제 전륜에 420mm 디스크가 탑재되고
후륜에는 380mm 디스크가 장착된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4Matic+보다
각각 18mm, 20mm 증가한 수치.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메르세데스-AMG GT 63 S E-퍼포먼스는
내년에 출시될 2023년식 모델에 포함되며
국내 출시 여부는 아직 미지수.
메르세데스-AMG GT 63 S 4Matic+가
수요를 못 따라가 긴 대기를 자랑하던
메르세데스-AMG GT 43 4Matic+과 달리
초고가 라인업이라 재고 여유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극소량 입항될 수도 있을 것 같다만
출시가 될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남들이 전부 달라진 세상에 맞춰서
북극곰이 살 보금자리를 잃었니
열대우림의 절반이 없어지게 생겼니
떠들고 있으면서 연비 향상에 집착할 때
미친 퍼포먼스의 대명사 AMG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량의 성능을 강화하는데
전동화 기술을 접목해버렸다.
점차 색깔을 잃어가는 자동차 업계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내연기관.
그리고 더 빨리 없어질
대배기량, 고출력 엔진들.
모노크롬 필터가 껴진 세상에
수려한 유화 물감으로 한 가닥 쭉.
나는 이래서 AMG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