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에 열릴 부산 모터쇼에서
월드 프리미어 예정이었던 아이오닉 6의
공식 이미지가 어째선지 좀 빨리 나왔다.
요 며칠간 찔끔찔끔 외형 일부분을
티저 형식으로 풀다가,
갑자기 차량 전체가 확 공개되니
좀 놀랐지만 일단 쭉 보기로 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괴작이
나왔을 줄이야 나는 상상을 미처 못했다.
아이오닉 6는 이미 출시되어 인기몰이 중인
아이오닉 5와 EV6, GV60과 동일하게
E-GMP 플랫폼을 사용해서 개발됐다.
그간 블로그 내 시승기들을 통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하나의 플랫폼을 가지고
3개의 모델에 각각의 독특한 개성과 차별점을
선명하게 부여했다는 점에 내가 칭찬을 했었고
각 모델을 보면 개발 의도나 타겟인 소비층이
전부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였었다.
그런데 아이오닉 6는 이게 뭐지?
처음 본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괴상함 덩어리.
디자인이 이상한 것도 문젠데
이 차는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난 아이오닉 6가 공개되기 이전에는
E-GMP 플랫폼 발표 당시에 언급한
"500km 이상 주행 가능한 전기차 플랫폼"
이라는 말을 실현하기 위한 차량이 아닐까
짐작했던 바 있는데, 아이오닉 6의 디자인은
딱 봐도 효율성을 극한으로 추구한 느낌.
그런데 그간 테스트카에서 여러번 잡혔듯이
아이오닉 6는 N 모델이 아님에도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츠 4S 타이어가
옵션으로 준비된다. 왜지?
전비를 뽑아내는 데 집중한 차라면
접지력이 그정도나 되는 타이어를 끼는 것은
차의 컨셉이나 전력 효율 추구 둘 다에
완벽하게 상극인 행동인데, 납득이 잘 안 된다.
파일럿 스포츠 4S는 물론 좋고 비싼 타이어고,
이를 장착하는 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한 가지만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실제로 아이오닉 6는 공기저항계수 0.21cd라
양산 차량 중 최저 공기저항계수를 자랑하는
메르세데스-벤츠 EQS의 0.20cd에
간발의 차로 뒤설 정도로 공기저항을 줄이는 데
큰 공을 들인 모델이고, 생김새를 희생하고
이런 디자인을 채택했으면 기왕이면
아예 전비를 뽑는 데 끝장을 봤어야지.
참고로 누가 봐도 공기저항 많이 받게 생긴
아이오닉 5는 0.28cd라 큰 차이가 난다.
오히려 접지력 좋은 타이어가 필요한
제네시스 GV60에는 그런 형편없는 거 쓰고,
굳이 파일럿 스포츠 4S 여기다 껴야 하나
싶은 아이오닉 6에는 끼워준다니 납득이 어려운 대목.
아직 배터리 용량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E-GMP를 기반으로 만든 차량인만큼
77.4kWh 용량인 배터리를 쓸 확률이 높은데
아이오닉 6의 경우 배터리 공급처가
중국 CATL로 기존 E-GMP 트리오와 달라
니켈 비중이 낮아진 배터리를 쓸 수 있다만
차량 사이즈가 또 다른 모델 대비 커져서
배터리 용량에 대한 확신은 아직 이르다.
신형 니로EV가 CATL제 배터리를 달면서
무려 NCM 523*짜리 석기시대 물건을 납품받아
아이오닉 6도 약간 걱정이 되긴 하는데,
설마 기껏 새 브랜드 런칭해서 내는 새 주역에
그런 저-스펙 배터리를 채택하는 실수를
할 것 같지 않긴 하다.
* 니켈(N) / 코발트(C) / 망간(M)의 비율,
현행 최신 전기차들은 대개 NCM 8:1:1이며
아무리 구식이어도 NCM 6:2:2 정도.
니켈 비중을 올리면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기술력이고
차세대 전기차들엔 NCM 9:0.5:0.5짜리
'NCM 구반반' 배터리 채택 예정.
NCM 5:2:3은 2022년 기준 형편없는 스펙.
정체성도 모호한데 디자인도 문제다.
대충 만든 디자인이 아니라서 더더욱 문제.
해외 매체들을 통해 공개된 내용들과
아이오닉 6 담당 디자인팀 수장 인터뷰를 봤는데
내용들이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하다.
근데 그럼 뭐해. 결과물이 이모양....
현대는 이전부터 강조했듯이 조약돌을 깎은,
유선형 형태(Streamliner)를 아이오닉 6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데 그건 한 눈에 보인다.
그런데 후륜 구동 기반 E-GMP 플랫폼을 쓰면서
프레스티지 디스턴스(전륜과 앞 도어 사이 간격)이
전륜 구동 차량스럽게 매우 짧은 게 의아하다.
분명 의도는 'Streamliner'답게 길게 쭉 빠져야 하는데
측면 뷰를 보면 앞 휀더까지는 차가 압축된 것 같고
도어 시작부분부터 후면부까지는 축 늘어진 인상이라
하나의 디자인 안에 상극인 인상이 공존한다.
프레임리스 도어 처리는 제네시스에만 해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이는 듯한 DLO 라인이 보이며
거기에 껑충한 차체 높이를 숨기기 위해
DLO 자체의 두께도 두껍게 처리했다.
아이오닉 6의 디자인 수장의 인터뷰를 보면
아이오닉 6는 초기형 사브와 1940년대의
유선형 차량들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고 한다.
아이오닉 5가 자사의 첫 고유모델 포니의 디자인을
완벽하게 현대화하면서 재해석해 극찬을 받았던 것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데,
뭔가 이번엔 너무 멀리 가버렸지 않나 하는 인상.
복고적인 볼륨감과 두툼하고 풍만한 라인이
사방에서 보이는 건 인정하나,
요즘 유행에 맞게 녹여내는 데에는
다소 실패하지 않았나 싶은 디자인이다.
사실 아이오닉 6를 보고 기분이 안 좋았는데
그래도 디자인의 속 사정을 들여다보니
조금이나마 기분이 풀렸는데,
상당히 공을 들인 디자인이긴 하다.
아이오닉 6는 승용차 형태임에도
하부 배치된 배터리 때문에
살짝 높아진 차고를 가리기 위해서
사이드 스커트를 시작으로 뒷 범퍼까지
투 톤 컬러로 처리했다.
이 하단부 그레이 컬러 마감은
타이어 안료를 재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렌더링 이미지 상에선 잘 안 보이는데
공력성능 향상을 위해서 바퀴와 휠하우스
좌우간의 틈을 줄이기 위해서 착시효과로
잘 안 보이게 가림막 비슷한 것을 설치했다.
디테일에 신경쓴 흔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난 처음에 앞범퍼의 저 이상한 까만색 바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싶었는데,
저 바가 각종 센서들을 싹 포함해서
센서류들이 제각각 자기주장을 펼치는 걸
막고 깔끔하게 처리하고자 했다 한다.
그닥 보기 좋은 솔루션이 아니긴 하지만 노력은 인정.
헤드램프 내 메인 빔들(하향/상향) 옆에
작게 IONIQ 6라고 각인을 붙여놓은 것도
나름 고급차들에나 들어갈법한 디테일.
헤드램프의 DRL이나 트렁크의 각종 버튼류에
개별 픽셀과 같은 디테일을 심어놓아
정사각형 모둠으로 처리해둔 건
아이오닉 브랜드의 정체성 확립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 같아 이것도 칭찬.
그런데 앞모습 역시 헤드램프 주변의 상단부와
범퍼를 아우르는 하단부가 제각각 따로 논다.
구아방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많은데,
헤드램프 주변부가 극도로 단순한 면, 선 처리로
구성되어 있어 굉장히 심심한 데 반해
앞 범퍼는 각종 데코레이션 덩어리이다.
하이그로시 처리 된 바를 시작으로
좌우 각각의 오각형 모양의 공기흡입구와
이를 연결하는 또 다른 하이그로시 처리 된 바,
중간에 끊는 ADAS 센서와 두 개의 에어로 플랩
마지막으로 6개의 작은 픽셀 모양 흡입구와
위에 언급한 오각형에서 살짝 삐져나온 까만색 선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완전 조잡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 보고 색종이를 마구잡이로 잘라 붙인 줄.
대충 연상되는게 90년대 - 00년대 초반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던 미국차들.
차량 전체의 컨셉은 더 먼 과거에 근간을 두는데
마스크는 또 다른 시대에서 따 온 형태다.
아무리 복고풍 디자인이라고 해도
하나의 시대 정도로만 회귀해도 충분하지 않나.
리메이크 송도 70년대 80년대 90년대 00년대 분위기가
한 데 집어넣어져 있담 니들 같으면 어지러워서 듣겠니.
뒷모습은 아이오닉 6가 기초로 삼은
프로페시(아) 컨셉트카 시절에는
포르쉐를 닮았다는 말이 꽤 나왔었는데,
양산차로 나온 걸 보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메인 스포일러에 마찬가지로 픽셀 디테일을 심은
제동등을 큼지막하게 달아놓은 건 멋진데
축 늘어진 뱃살처럼 후면부가 가라앉아 있고
뭘 의도하고 디자인한지 모르겠는 뒷 범퍼가
후면 디자인의 균형감을 망쳐놓고 있다.
크로스오버나 SUV에 어울릴 것 같은 범퍼 디자인을
이런 승용차 형태의 차량에 왜 적용한건지 모르겠다.
후면이 민달팽이 같은 느낌도 드는데,
1960년대의 프랑스 차량들 느낌이 꽤 든다.
아이오닉 6가 복각하고 싶어하는 시절 하나 더 추가.
외관에서 이런 난동을 부리는 사이
의외로 실내에서는 별다른 파격이 보이질 않는데
아이오닉 5와 비슷한 수평형 레이아웃은
그대로이나 소재와 디테일들의 고급화가
여러 군데에서 눈에 띈다.
갤럭시 노트2를 두 개 이어붙인 듯 했던
아이오닉 5의 흰색 베젤은 이제 저리 가고
까만색 베젤에 메탈 룩 테두리가 둘러진
인포테인먼트 화면과 계기판이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아이오닉 5와 비슷하게 생긴 스티어링 휠은
이제 ···· 자리에 조명까지 들어와서
배터리 잔량과 충전 상태를 보여준다.
배터리 현환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사려깊게 고려된 디테일.
독특하게 도어트림에 보통 자리하는
창문이나 도어 조절 버튼들이
전부 센터콘솔로 자리를 옮겼고,
도어트림의 수납함은 신기하게 반투명이다.
앰비언트 라이트도 아이오닉 5보다 화려하게
상하 컬러를 달리 설정할 수 있도록 장착됐고
드디어! 디지털 사이드 미러의
실내 디자인이 위화감 없이 자연스러워졌다.
기존에는 그냥 싸구려 태블릿을 갖다붙인
성의없는 디자인이었는데 이제서야.
그래봤자 디지털 사이드미러 선택 안할거지만
그래서 아이오닉 6는
너무 많은 걸 한 데 담으려다 체한 느낌.
E-GMP를 활용한 차량 중
극한의 효율성 컨셉을 내세우면서도
주행 성능까지 고려하려 애썼고
아이오닉 브랜드의 중심과 같은
복고풍 스타일링과 미래지향적 요소들의
매끄러운 결합은 오만 가지 시대상을
한방에 다 갖추려다 전부 따로 놀고 있다.
난 이 차를 보고 북미 중심의 아이오닉 5와 달리
유럽 판매를 염두에 두고 만든 차량 같단
생각을 많이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맞는 듯.
차량의 조형이 옛날 푸조나 시트로엥을
옅게나마 연상케 한다. 영감을 얻은 사브도 마찬가지.
한 때 미국에서 유행하던 한 덩치 하는
1930~1940년대의 유선형 차량 역시도
모티브에 포함인 듯 한데, 그래서 그런지
아이오닉 6의 디자인이 복고풍인건 알겠는데
정확히 어느 쪽에 맞춰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방금 위에 말했듯이 유럽에서의 판매를
기존보다 더 많이 고려한 것 같긴 하지만.
그러면서 또 환경친화적 요소들도
무공해 브랜드 답게 여기저기 집어넣어야 하고
아이오닉 5보다 비싼 모델이기에
그보다의 고급화까지 신경써야 했다.
근데 또 의외로 실내는 보수적이다.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훨씬 긴 전기차이기에 전기차는 인테리어에
모든 자동차회사들이 공들이고 있는데,
외관에서만큼 어쨌거나 시선을 잡아끌만한
무엇인가가 실내에선 오히려 또 없다.
아이오닉 6가 아이오닉 브랜드 산하가 아닌
제네시스 뱃지를 달고 나오는 차라면,
프리미엄 브랜드답게 오만 잣대를 들이대겠는데
아이오닉 6는 어디까지나 대중 브랜드인
현대자동차 산하의 무공해차 브랜드.
그러니 한 가지 역량 혹은 정체성에만
크게 집중해도 충분하다. 특히나 E-GMP 차량들은
이외에도 충전 속도 유지력이나 널찍한 실내공간 등
일반 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강점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무리 할 필요가 없는데
굳이 사서 무리를 하다 넘친 느낌.
꼼꼼하게 마무리까지 신경쓴
공들인 디자인임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정말 너무 많은 요소들과 포인트들이
한 데 정리가 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높이는 중.
과한 건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옛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과유불급.
아이오닉 6는 조금 더 정리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