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라는 물건은 참 신기하다.
따지고 보면 달리는 쇳덩이인데,
안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함께 숨쉬어서 그런지
나같이 자동차가 좋은 환자들은
차와 아주 죽고 못사는 인간들이 천지다.
1999년에 태어난 내 나이상
적당히 짧지 않은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내가 모든 세대의 모델을 타볼만한 모델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데,
SM5부터 이어져 SM6에 이른 지금까지
내가 전체 모델을 타본,
아마 유일한 모델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르노삼성의 중형 세단과 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주 각별하다.
SM5가 이름을 고치고 SM6가 될 줄 알았건만,
결국 SM6는 고급화를 추구하는 중형차로
SM5와 별개의 모델로 출시되었고
SM6의 초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대한민국 표준으로 일컬어지는
쏘나타의 아성을 초창기 SM5 이후로
십 몇년만에 다시 한번 꺾는다고,
새로운 감각의 중형차가 나왔다고
많은 이들이 기대감을 표했었으니.
그런 SM6는 폭발적인 반응과
당초 예상과 달리 초기 품질 관리 실패,
(5년 뒤 XM3를 내놓으며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초도 물량 예측 실패, 각종 구설수에
판매량이 사경을 헤매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SM6 프라임 및 막바지 LE 스페셜 트림 출시로
월 1천대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다
더 뉴 SM6가 출시되며
완전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더 뉴 SM6가 출시되던 당시
나는 기존에 지적받던 문제점을
거의 모두 고쳤다는 르노삼성 측 발표에
크나큰 기대를 걸면서도 반신반의 했는데,
자동차라는 것은 초반에 굳어진 이미지를
뒤집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괜히 돈만 많이 투자하고 허탕치는 것 아니냐
SM6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또 한 번
가슴아픈 일이 일어날까봐 불안했었고
그 걱정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SM6는 유독 '타보지 않은 이들의 편견'이
굉장히 강했던 차인데, 사실 지켜보는 내 입장에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억울함을 토로해도
실 판매량이 반등하질 못하니
그 억울함을 풀 길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더 뉴 SM6의 완성형
TCe300을 타보고 나서야 직감했다.
나 역시도 SM6를 보내줄 때가 왔다고.
그렇게 사고싶다고 몇 년을 난리쳤었는데
더 이상은 나도 못하겠다고.
그래서 마음을 담담하게 정리하며
막 쏟아냈었던 르노삼성이 만든 중형차들과
가졌던 좋은 기억들과 여러 기분들을
이제 한 곳에 담아 추스르기로 했다.
그게 바로 이 글.
시승기 뒷편의 숨은 감정들을 가감없이 담아
종이 돛단배처럼 떠나보내려고 적는다.
초기형 중의 극 초기형이다.
이때 당시엔 일반형이 EF쏘나타와,
V형이 그랜저XG와 경쟁하는 구도였는데
우리 집에 있던 이 녀석은 V형이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 차는
삼성자동차가 출범하던 그 해에 출고된 차.
이제는 삼성자동차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웃기지도 않는 르노코리아자동차라는
누구 머리에서 나온 이름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이름이 먹칠을 하고 있는데
나한텐 어림도 없다.
내가 운전면허를 따기까지
20여 년 동안 뒤에 타고다녔고,
면허를 따고 나서는 이 차로
운전 연수도 몇 번 받았다.
한 가지 선명하게 기억나는건
많은 이들이 칭송하는 VQ다운 회전질감.
예전에 우리 엄마가 차 좀 바꾸자는 내 칭얼거림에
아직도 우리 차 잘 나간다는 말을 뒤에 앉았을땐
별로 공감하지 않았었는데 타보니까 알겠다.
엔진이 도는 느낌은 시원하고 카랑카랑하면서
동시에 굉장히 부드러워
지금도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
'토션 빔' 때문에 승차감이 떨어진다고
훗날 이 차의 먼 후신이 엄청나게 욕을 먹었지만
초기형 SM5 역시 후륜 서스펜션은 토션 빔 방식.
토션 빔 자체가 문제가 아니란걸
이 차를 타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타고 다녔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차의 뒷좌석은 생각보다 되게 안락하다.
요즘엔 경차에나 겨우 달릴법한 15인치 휠의
크나큰 역할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차량 자체가 구현하는 편안함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당시 < 자동차생활 > 잡지에 실렸던
그랜저 XG와의 비교 시승기를
나중에 기회가 되어 읽었던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코멘트가 "그랜저 XG와 대비되는
독일차를 연상케 하는 안정적인 움직임" 이었다.
물론 그때의 현대차는 요즘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안 되는
처참한 수준이었고, 이 차는 닛산의 세피로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조립한 차량이기에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실제로 그래서 삼성자동차가 대번의 강자로 부상했고
여러모로 지금 타보아도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차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체감될 정도로 완성도가 좋았다.
단순히 '일본차를 가져와서 조립만 했'으니
특별한 건 아니라는 평가절하는 어울리지 않는다.
24년이 지난 오늘날 타도
큰 문제는 없다만,
4단 자동변속기가 내는 연비는
눈 앞이 조금 어지러워진다.
그렇게 2세대 SM5.
사실 이 차도 나온지 상당히 오래 됐지만
이번에 더 뉴 SM6 TCe300를 타본 것 이외엔
전체 모델 라인업 중 가장 늦게 타본 차다.
차에 대한 감상평은 시승기에 썼으니
여기선 이전보다도 한결 성장한
나의 감상을 주로 다뤄보자면,
1세대가 주는 느낌과 좀 다른 차다.
초기형은 접지력 수준이 높은 건 아니지만
네 바퀴를 선회 중 도로에 붙이는 능력은
꽤나 괜찮고 차분하단 인상이 강했는데
2세대로 오면서는 그보다 무색무취에 가까워졌다.
자잘한 요철에 대한 잔진동 전달은
오히려 초기형보다 많아졌지만,
큰 요철을 통과할 때의 실내로 전달되는 충격량은
2세대로 진화한 차량답게 전작보다 줄어들었다.
조향감 역시 초기형은 꽤 가벼운 편이었고
'직관적인 핸들링'과는 거리가 좀 있었는데
2세대도 마찬가지긴 하다만
적어도 무게감은 만족할만큼 증가했다.
이 차의 전반적인 감상은
3세대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디딤돌 같은 차량이다.
승차감이 동시대 쏘나타보다
한결 편안하긴 한데 막 좋진 않다.
3세대는 이 2세대의 주행 시 특성을
거의 대부분 흡수하면서도
정숙성이나 승차감 면에서 한결 진보해
사실상 2세대의 완성형에 가까워지거든.
소싯적 이 차대에 VQ35DE를 얹은
SM7 RE35가 슈퍼카로 일컬어졌었는데
SM7 RE35도 언젠가 정말 우연히
타볼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그렇게 3세대로 왔다.
초창기 SM5가 SM518, SM520,
SM520V와 SM525V에 LPG SM520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모델 라인업을 선보였던 것에 비해
지난 2세대에선 SM5와 SM7로 모델 분리가 되며
2.0L 가솔린 / LPG 4기통 라인업만 출시가 됐었다.
그런데 3세대로 오면서 다시 라인업이
이전처럼 대폭 늘어났다.
3세대 SM5는 모델 역사 중 처음으로
디젤 엔진과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었는데
정작 내가 타본 건 기존에도 팔던 LPG 버전.
디젤 모델의 경우 동일한 엔진을 클리오로,
가솔린 터보 버전은 최종 진화형인
더 뉴 SM6 TCe300을 타보았으니
크게 막 궁금한 모델들은 아니지만,
TCE 모델은 아직도 좀 궁금하네.
마침 이 뒤에 나온 SM6도 LPe를 타봐서
오늘날 LPG에 올인하고 있는 르노삼성의
LPG 모델 발전사가 확 와닿기도 한다.
3세대이자 마지막 SM5는
모델 최초로 르노 모델을 베이스로 개발됐는데,
말은 르노 베이스지만 티아나도 여전히 섞여 있다.
마치 르노가 발굴된 유적지를 더 들고 파보니
닛산의 잔재가 추가로 발견된 듯한 느낌.
이때까지만 해도 자트코의 CVT가
D-Step 로직이 적용되지 않아서
풀 악셀 시 계속 회전수가 레드라인 근처에 머물러
차가 터질 것 같은 이질감이 심했었다.
근데 제원상 출력이 140마력에 머물고
최대 토크도 19.8kg·m밖에 안 되는데
예상보다는 꽤나 밟는대로 잘 나갔다.
역시나 택시가 빠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악셀 팍팍 과격하게 밟기"였다.
르노 베이스라지만 주행시 무난함과
특유의 심심한 안정감은 일본차에 가까웠고
동급에서 가장 승차감과 정숙성이
좋은 차 답게 그럭저럭 편안했다.
의외로 시트가 좀 푹신했던 기억.
20주년을 맞아 화려한 은퇴식 대신
'2천만원으로 사는 중형차'라는
삼성자동차의 당찬 출범에 비하면 민망하기 그지없는
막판 프로모션과 좋지 않은 결말을 끝으로
SM5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SM5가 사라지고 SM6가 생긴건 아니다.
SM5의 마지막은 SM6과 나란히 함께 했으니.
프리미엄 중형세단을 표방하며 SM6가 출시됐고
나는 정말 이 차가 진심으로 좋았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가 뭔지,
내가 어떤 차에 끌리는지
하나하나 다 가르쳐준 차다.
SM6의 경우 2.0 GDe와 2.0 LPe
두 가지 모델을 타보았었는데,
2.0 LPe는 SM6에 어울리는 엔진은 아니다.
2.0 LPe 모델을 처음 타봤을땐
세간의 혹평에 나 또한 수긍하는,
2.0 GDe를 타보고 뒤집힌 평가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 역시도 첫 인상이 별로였다.
이 엔진은 QM6에 나중에 얹혀서
다 죽어가는 회사에 붙은 인공호흡기마냥
유일한 회사의 생명줄 역할을 하게 된다.
위에 말한 D-Step 로직의 적용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변속기의 작동질감이 크게 개선되었고
악셀 개도량 대비 시원시원하게 엔진 회전수를 끌어다 써
기존에도 그럭저럭 탈만했지만 답답함이 거의 없어졌다.
다만 이 정도 파워트레인에 18인치 휠은 좀 너무하지 않나.
18인치가 아니라 17인치를 끼면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대망의 2.0 GDe SE.
정말 한동안 줄창 타고다녔었는데
이 차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갖고 있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앞머리,
낮은 최저 시트포지션과
중형세단 치고 지지력 좋은 시트,
(AM링크 결함으로 인해) 약한 뒷 바퀴 접지력과
직결감 좋고 가볍게 치고 나가는데 일조하는
듀얼 클러치 7단 EDC,
시원시원하고 은근히 풍부한 토크감의
자연흡기 MR20DE 엔진까지.
난 사실 뒷좌석 거주성엔 큰 관심 없고
트렁크가 큰 건 중요했으며
운전 중엔 항상 노래를 듣기에
좋은 오디오 또한 필수이다.
짜증나게도 르노삼성 차량들은
불란서 출신답게 자세제어장치 해제가 불가능함에도
AM링크의 문제점 덕분에 후륜이 접지력을 놓도록
휘두르는게 개선형 AM링크가 들어간
2019년식에서도 충분히 가능했고,
나같이 산길 타는걸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덩치가 큰 중형세단답지 않은 묘한 느낌을 전달했다.
앞 머리를 코너 중심에 꽂아넣는 수고는
차량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덜하면서도
꼬리가 뒤따라오면서 과장된 형태로 춤을 추니
적은 수고를 들이고도 큰 움직임을 만드는 것같은
착각에 빠지기 쉬웠고, 불안정하다 하지만
자세제어장치가 작동중에 있기에
결코 위험한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다.
특히나 가벼운 차량 중량으로 인해
스프링이 부드럽게 셋팅된 편이라
이 신나는 휘청거림이 급작스럽게 태세를 전환하거나
순간적으로 노면을 길게 놓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내가 한창 이 차를 타고다닐 적의 평가라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었는데 새삼 여러 차를 타보면서
나도 많이 깨달았음을 깨닫는다.
스포츠카 타는 기분으로 타는 중형차.
기본형의 6-스피커 오디오나 12-스피커 BOSE 시스템이나
당시에는 동급에서 최고 수준의 오디오를 자랑했다.
쏘나타(LF)의 8-스피커 JBL 시스템은 이에 비하면 처참했고.
옵션으로 구비된 LED 퓨어비전 프로젝션 타입 헤드램프는
옵션가 59만원 치고 엄청나게 좋은 물건이었는데
기본으로 적용된 할로겐 전구 헤드램프는
광량이 많이 부족하다.
전구 헤드램프는 장식이나 다름없는
쉐보레보다 조금 나은 수준.
이래서 자연스레 지적받던 단점을 다 고쳤다는
더 뉴 SM6에 큰 기대를 하게 되는데...
더 뉴 SM6는 TCe260과 TCe300
두 가지를 결국 출시 2년만에 다 타보았는데
내 결론은 이제 확실해졌다.
TCe260을 살거면 말리부 E-터보를 사고
TCe300을 살거면 쏘나타 N 라인을 살거다.
결국 나 조차도 더 뉴 SM6는 안 살거라는 뜻.
더 뉴 SM6로 바뀌면서 많이들 지적하던
문제들을 대부분 개선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고,
그렇게 개선되며 내가 좋아하던 SM6와는
이제 굉장히 많이 멀어지고 말았다.
더 뉴 SM6가 잘 팔리면 편하게 떠날텐데
판매량이 바닥을 치는 와중에 나 마저 포기하니
마음 한 켠이 굉장히 불편하고 씁쓸하다.
TCe260은 생각보다 되게 거칠다.
XM3과 캡쳐에도 동일하게 올라가지만
그보다 출력이 살짝 더 높은데(156마력)
파워트레인 자체가 아주 별로라고 나는 느꼈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도 이 엔진을
M282라는 코드네임을 붙여서 쓰는데
그 탓인지 르노삼성 일부 대리점에선
이걸 "벤츠 엔진"이라고 홍보하던데,
소싯적 쌍용도 아니고 이런 짓은 안 하는게 어떤지.
여담으로 국내엔 이 엔진이 얹힌 벤츠는
전혀 수입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중적 성격이 강한 TCe260보다
TCe300이 7단 DCT의 체결감을 부드럽게 다듬어놔
TCe260은 이럴거면 그냥 CVT를 물리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리부 E-터보가 비슷한 배기량에 CVT를 조합했는데
난 굉장히 만족스러운 파워트레인이었거든.
서스펜션 역시 토션빔 특유의 승차감 저하가
오히려 TCe300에서 적게 나타나는 등
도대체 TCe260은 뭐지?? 싶은 순간이 많았다.
편안함을 따지자면 난 말리부 특유의
튼튼한 차대가 받쳐주는 듬직함 속에서 누리는
푹신한 시트와 서스펜션이 주는 편안함이
대중적으로도 그렇고 내 입맛에도 더 나았다.
작정하고 달릴거면 더 빠릿빠릿한 반응의
쏘나타 N 라인이 시원스레 달리기도 더 좋고.
콩깍지가 벗겨지니 그동안 의도적으론 아니었지만
SM6를 좋아하는 내 마음 속 뒤편에 숨은 그림자 같았던
더 뉴 SM6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나타난다.
어릴 때에는 내장재에 크게 관심을 안 뒀는데
이젠 실내 소재 역시 꼼꼼히 보는 편이고
SM6는 내장재의 품질이 주 경쟁 상대인
쏘나타 대비 꽤나 떨어지는 편이다.
윈도우 조작 스위치와 그 주변부,
도어트림 하단 수납함 주위나
센터터널 양 옆 및 일부 스위치까지.
프리미에르 전용 퀼팅 장식 대시보드 또한
인조가죽 장식이 얇고 딱딱하다.
난 사실 SM6가 경쟁 차종들 대비
제조 원가가 비싼 차라는걸 아는 입장이라
그동안은 이걸 눈감아줬는데 이젠 안 된다.
그리고 이지링크 9.3"의 반응 속도는
정말이지 답답한 수준에 가까웠다.
이상하게 이게 시간이 경과되며 더 느려지는지
이지링크 9.3"을 접하는건 다섯 번째인데
이렇게까지 속터지게 느렸었나 싶을 정도.
카플레이의 반응 속도는 원래 전화기를 따라가고
인포테인먼트가 느려 반응이 느려진 경우는
지금껏 거의 못 봤는데 더 뉴 SM6가 그랬다.
인내심 부족한 한국 사람들이 이걸 참아줄만큼
삶에 여유가 넘칠 것 같진 않다.
이 정도 반응속도면 현대기아차 기준으론
아반떼랑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것.
그리고 최근에 계속 타사 차량 타다가
이지링크 9.3"을 조작하려니
팔팔하고 두뇌회전 빠른 스물 넷인 나조차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신이 어지러웠다.
오디오 이퀄라이저 조절 메뉴 찾는데
한 10분 걸렸다. 대 참사다.
인-카 페이먼트를 최근에 르노삼성이
XM3을 필두로 밀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이거 누가 쓸까 싶다 난.
기존의 SM6가
'내가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를 알려줬다면
완전히 달라진 더 뉴 SM6는
'2년 간 내 취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려준다.
사실 중형세단의 본분에 더 들어맞는 차량이 됐고
좋게 봐주려면 솔직히 좋게 봐줄 수 있거든.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아직 SM6라는 차에 미련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차는 이제 많이 달라졌다.
일단 나는 아반떼 N이나 S-클래스같은
예외적인 차량을 제외하면
승용차를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SUV 열풍이
전혀 납득이 안되는 사람이었는데,
나 역시도 이제 SUV만 고집하는 사람이 됐다.
최근에 계속 신형 스포티지를 타는 이유도 그것.
도로에 SUV들이 판을 치니 나만 낮은 차를 타면
제한되는 전방 및 주변 시야가 굉장히 답답하고
아무 곳이나 하부 긁힘 걱정 없이 타고 싶은데
방지턱의 나라 대한민국에선 승용차론 어렵다.
이전에는 난 승용차로도 충분히 실용성 챙기면서
경제적이며 좋은 주행성능을 챙기겠다고 했다면
이제 나는 완전히 SUV파로 넘어와버렸다.
SM6를 쳐다볼 금액이면 아반떼 N을 사서
그냥 완전히 달리는 방향으로 틀어버릴 것.
두 번째는 기존에는 난 자연흡기 엔진 특유의
균일한 토크 그래프 상승 혹은
터보 엔진이어도 자연흡기와 유사한 감각을
전하는 엔진들을 선호해왔었는데,
최근에 전기차를 너무 많이 타서인지
두둑한 토크가 초반부터 밀어주는 형태를
좋아하는 방향으로 내 선호가 바뀌었다.
요 근래 내가 줄창 타면서
무결점이라며 좋아하는 스포티지 가솔린은
1500rpm부터 최대 토크가 발휘되는데
더 뉴 SM6 TCe300의 경우
그보다 높은 2000rpm이 되어서야 발휘된다.
엔진의 회전 질감 역시 기존 감마 터보 엔진의
우악스러운 토크 분출을 점잖고 부드럽게 다듬은
새 스마트스트림G 1.6 T-GDI 엔진이
수치보다 넉넉한듯한, 여유로운 토크 전달을 보여주면서도
답답하지 않게 밀어붙여주는 느낌이 좋다.
더 뉴 SM6 TCe300의 MR18DDT의 경우
터보 엔진 치고 저회전대와 레드라인 근처에서
시원하긴 하지만 자연흡기 MR엔진에서 맛봤던
그 짜릿함은 찾기 어렵고 중간 회전 영역대에선
오히려 너무 소프트한 토크감에
내 입맛엔 이도저도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변속기도 마찬가지다.
기존 SM6도 습식 7단 EDC였지만
DCT 특유의 직결감과 울컥임 억제가
동시에 잘 구현된, 중형 세단 본분에 맞는
충분히 좋은 변속기였는데
이번 더 뉴 SM6로 오면서
너무 부드러움에만 초점을 맞췄다.
난 신형 투싼과 스포티지에
습식 8단 DCT를 얹는 윗급 형님들과 달리
그대로 건식 7단 DCT를 얹는다는 소식에
어휴 쯧쯧... 하면서 욕을 했었는데
스마트스트림 딱지가 붙으면서
소위 '잠수함 패치'라 불리는 내부 개선이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음을 타고다니면서 체감했고
그러면서도 DCT 특유의 거친 변속 질감이 잘 보존돼
타고다니면서 아주 마음에 들었었다.
사실 나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울컥임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입장이라 더더욱.
중형 세단 본분에 방향성을 맞췄긴 했지만
너무 죽도 밥도 아니게 된 것 같아
더 뉴 SM6의 특색이 옅어져버렸다.
잘 팔리는 차량이 더욱 높은 판매고를 위해
자신의 강한 캐릭터를 일부 내려놓는 경우는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호불호가 강해 판매량 제고가 어려웠던 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특장점 및 캐릭터를
놓는 순간 기존의 소수 팬들조차 떨어져 나간다는 거.
마지막으론 내가 요즘 언제나와같이
운전 연습을 하면서,
역으로 롤이 많이 발생하는 차량을 타고
그런 서스펜션 설정값의 차량이 선회 시 일으키는
하중이동을 느끼면서 최대한 외측륜에 접지력을
눌러담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SUV를 타고 와인딩을 타며
운전 연습을 자주 반복하고 있다.
대부분 SUV를 타고 산길을 탄다니
무슨 생각이지 하는 반응이 많을텐데,
오히려 롤이 극도로 억제된 스포츠카는
내가 운전을 잘 해서 빠르게 통과한다기보단
차가 다 해줬는데 마치 내가 잘 통과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쉽거니와 연습도 어렵다.
캐주얼하게 와인딩 자체를 즐기는 목적이라면
스포츠카가 비교도 안되게 맞겠지만
나는 좀 근본적인 지향점이 달라서.
그러면서 차량이 보여주는 움직임과
그 흐름을 파악하고 최대한 급한 감속 없이
매끄럽게 통과하려는 연습 중이라
그래서 내가 스포티지를 타는 이유도 있다.
브레이크가 열에 대한 내구성이 취약해서
브레이크를 아껴서 써야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더 뉴 SM6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난 요즘 쉴 때
한적한 강가에 차를 세워놓고
트렁크를 연 다음 걸터앉아
재생시켜놓은 노래를 들으며 쉰다.
승용차의 경우 트렁크가 분리되어 있어
이렇게 하긴 불가능하다. 높이도 낮거니와.
차에 타고 내리기도 SUV가 훨씬 편하고,
여러모로 SUV 마니아가 되었다.
예전에는 왜 국내에서는 왜건이 안 팔릴까,
SUV의 실용성을 다 갖췄으면서도
승차감 구현이나 주행질감 확보에 유리한데.
SUV는 불티나게 팔리면서 왜건은 왜...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냥 SUV가 타고 싶은 거다.
그 '사람들' 명단에 나 또한 추가되었다.
르노삼성은 창사 이래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SM525V의 '가치를 아는 사람, 당신은 다릅니다'부터
최근까지 '조금 다른 특별함'을 강조해온 행보까지.
실제로 삼성차 타는 사람은 계속 삼성차만 탄다던
고유의 가치가 제품 전반에 녹아있는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남들과 비슷해지려 하니 어디 그게 되나.
예전에 사브가 없어질 때를 당시에 어렸던 나도 기억하는데
르노삼성의 출발이나 지금 처한 위기나
둘 다 사브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한 것 같고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샀지만 정작 사람들이 사지는 않았던
사브의 급작스러우면서도 쓸쓸한 퇴장처럼 르노삼성도
운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게 내 직감이다.
지난 2022년 7월 르노삼성은 국내에서
단 4257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QM6가 선방하는 달은 좀 늘어나는데,
QM6 판매가 부진하는 달은
회사 전체 판매량도 와장창.
4257대라는 성적은 현대 캐스퍼(4478대)
단일 모델의 판매량보다도 모자란 것.
차량 자체도 내 마음에서 멀어졌지만
르노삼성이 살기 위해 사활을 걸고
아둥바둥 노력하는 회사였으면
아마 내 마음이 이렇게 냉담하게 돌아서진 않았을텐데
르노삼성은 한국GM처럼 한국에서 도망가려는
특수한 의도를 가진것도 아니면서 자해를 일삼는다.
쌍용처럼 토레스같은, 화제가 될만한 모델을 내놓아
어떻게든 회사의 명줄을 이어가려 애써야 하는데
결정권 가진 양반들이 바보인지 뭔지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화내면서도 막상 르노삼성이
정말로 문을 닫는다면 그 날은 아마...
굉장히 슬픈 하루가 될 것 같다.
현대차그룹이 지금과 같은 좋은 완성도의 차량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당시에 나는 르노삼성의 팬이었고
아마 현 현대차의 수준이 10년 전과 비슷했다면
아직도 르노삼성만 좋아하고 있을 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N 비전 74 같은 차가 국내 회사에서
뻥 하고 공개되는게 2022년이다.
이제는 나도 힘들어.
애증의 회사 르노삼성에 대한
정말 마지막 남은 내 관심과 사랑을
여기다 고이 간직해두려고.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가슴 위에 손이 올라가더라.
그만큼 쓰면서 곱씹은 르노삼성의 행태가
답답하고 속상한거일거야.
대외적으로 '난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다닐 수 있었지만
정작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는 불분명했던
어렸던 내가 내 마음을 절절히 깨닫도록
알려준 바로 그 SM6에 이제
작별 인사를 고할 차례다.
후속 모델 역시 나오지 않을테니
르노삼성의 중형세단 전체를 다루고자 한
이 글이 더 이상 수정될 일도 없겠지.
난 이제 현대차로 간다.
안녕, SM6.
진짜진짜 좋아했던 내 첫 본격 드림카.
그리고 기다려라 아반떼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