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이 작년 초 야심차게 출시한 XM3는
요즘 돈이 잘돼서 개나소나 다 만드는 소형 SUV 시장에 참전할
르노삼성 회생에 있어서 비장의 카드였는데
출시 초기에는 인기를 좀 끌더니
시동꺼짐과 같은 큰 결함 탓에 판매량이 폭락했다.
판매량 대부분은 실제로 주력인 TCe260 모델에서 나오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1.6 GTe 모델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사실상 이 차가 대체하게 되는 SM3와 유사한 파워트레인에
르노삼성에서도 TCe260만 위주로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시 초기에 나는 이미 TCe260 모델은 시승을 마쳤었고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들을 안고 차에서 내렸었다.
좋지 못한 승차감. 매끄럽지 못한 회전 감각.
국내에서 개발을 주도한 탓인지 르노 특유의 기민한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지 링크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좀 느렸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이었나.
물론 셀토스랑 비교하면 무조건 XM3를 사겠다만
과하게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소형 SUV임을 생각하면
동 가격선에서는 적당히 옵션 넣은 중형세단을 사는게 나았다.
소형 SUV 시장 및 준중형차 시장을 폭넓게 커버하는 TCe260과 달리
1.6 GTe 모델은 소형차 시장에 대응하는 모델이며
현대의 베뉴가 거의 유일한 경쟁상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가격으로 맞추면
옵션이나 배기량 등 얼추 둘이 비슷하다.
베뉴도 타보고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라
XM3 1.6 GTe도 한번 갖고와봐야지 싶었는데
가져왔는데 폭설이... 하아.......
다행히 다음날은 제설이 좀 되어 어느정도 타볼 수 있었다.
XM3 1.6 GTe는 소형급을 대체하는 차종이지만
생각만큼 대단히 저렴한 차량은 아니다.
클라우드 펄 색상(15만원)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눈길을 끄는 장비인 10.25인치 클러스터와 9.3인치 이지링크는
최상위트림인 LE+에 와서 158만원이나 주고 시그니처 패키지 I을
넣어야 들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가격이 막장으로 치닫는다.
시승차는 클라우드 펄 색상까지 적용으로,
현재 옵션 선택시 20만원 지원 프로모션까지 포함해도
2373만원이나 되는 차값을 자랑한다.
아반떼 G1.6 모던에 17인치휠/썬루프/플래티넘플러스 빼고
다 때려박은것과 거의 유사한 가격인데, 소형급으로썬 너무 비싸다.
아랫급 트림을 선택하면 되지 않나 싶겠는데,
TCe260과 마찬가지로 최상위 트림에 와서야 좀 탈만하게 해놓았다.
그럼 차는 괜찮을까.
전체적으로 주행과 관련된 포인트들은 베뉴가 한 수 위인 듯 하다.
TCe260 시승 당시에도 생각했던 바지만, 국내에서 개발을 지휘해서 그런지
르노 소형차 특유의 날쌔고 청설모같은 날랜 느낌이 없다.
QM6야 닛산의 로그를 베이스로 깔고 있으니 일본차라고 생각하면
대충 납득이 가는데, CMF-B HS 플랫폼을 쓰는 XM3가 이러니
제대로 된 플랫폼을 가져다 쓰고도 주행질감이 상당히 밋밋하다.
확실히 거의 같은 차임에도 캡쳐가 주행품질이 압도적으로 좋다.
베뉴는 급 이상의 침착하고 깔끔한 코너링 실력이 놀라웠던 반면
XM3 1.6 GTe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XM3 1.6 GTe에는 베뉴처럼 전동시트가 달리지 않는데,
역시나 수동식 시트답게 딱 맞는 자세가 안 나와서
처음에 자세 맞추는 데 약간 애를 먹었다.
TCe260조차도 최상위 트림인 RE 시그니처 가야 6way 전동시트가
운전석에 겨우 달리니 1.6 GTe에는 있을 리가 만무하다.
시트 포지션은 그냥저냥 평이했다.
핸들 자체는 베뉴의 그것보다 잡기도 좋고
무게감 자체도 셋팅을 꽤나 잘 했으나
앞바퀴와의 직결감은 윗급 SM6/QM6에 못 미친다.
베뉴의 C-MDPS보다는 셋팅이 잘 되어있는 편.
다만 타 차종들은 핸들 뒤 볼륨/선곡 조절 버튼과 다이얼이
핸들을 잡고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볼륨버튼을 당기면 조절이 가능해서
굉장히 편했는데, 같은 위치임에도 이제 옆으로 누르는 방식으로 바뀌는 바람에
편의성의 많이 떨어졌다. 이럴 바에야 핸들에 버튼을 내장하는 것이 낫다.
TCe260 모델을 시승하고 승차감이 나빠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1.6 GTe 모델은 확실히 승차감 면에서는 나은 모습을 보인다.
작아진 휠(17인치)와 부드러워진 하체 셋업, CVT의 삼중 콜라보.
DCT의 울컥거림이나 소형 SUV들의 수준낮은 승차감에 질렸다면
XM3 1.6 GTe의 승차감은 꽤나 만족스러운 수준을 보여줄 것이나
최신형 CVT임에도 약간의 울컥임을 종종 보였는데
이 차량만의 문제인지 확인을 못 해봤지만
CVT를 적용한 윗급 차량들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DCT 수준은 아니니(심지어 르노삼성의 DCT는 억제가 잘 된 편이다)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다. 베뉴의 IVT가 조금 더 나은 듯 하다.
가속 능력 역시 베뉴가 조금 더 앞서는데,
XM3 1.6 GTe는 실용 구간 내에서 크게 답답하진 않았지만
100km/h 도달이 이렇게 힘겨웠나 싶을 정도로 꽤나 시간이 걸렸다.
제설 작업이 어느정도 끝난 후 외곽순환에 올랐는데
'2천만원 짜리 차에 뭘 대단하게 바라나'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기존 SM3 GTe보다는 7마력이 올랐는데,
차고 올린 SUV라 그런지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
안 나가는 만큼 기름은 적게 먹는 편이다.
베뉴와 똑같은 구간을 주행한 것이 아니라 직비교는 어렵지만,
주행 패턴 등을 감안했을 때 베뉴보다 연비가 소폭 낫다.
베뉴와 공인연비는 엎치락뒤치락 하는 수준인데
실 주행 시에는 XM3 1.6 GTe가 약간 더 높게 찍힌다.
베뉴보다 100kg가량 무거운 무게를 생각하면 선방했다.
이지링크 9.3" 시스템은 확실히 보기 좋고 신차 같으나
시스템의 구동 속도가 답답하기 딱 직전에서 멈춘 수준이다.
기존에 르노삼성차들이 쓰던 S-Link 8.7"보다야 한결 낫지만
현대기아차의 시스템이 월등히 빠르고 부드럽다.
그래도 1.6 GTe에 이게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다.
시그니처 패키지 I을 넣지 않으면 7인치 디스플레이 오디오가 달리는데
그럼 베뉴랑 비슷한 꼴이 된다. 심지어 모니터는 베뉴보다 작음.
실내 내장재는 확실히 가격 급에 맞지 않게 괜찮은 것들을 발라놨다.
셀토스가 모닝과 유사한 수준의 저질 플라스틱을 떡칠해놓은 것에 비하면
여기는 거의 벤틀리에 가깝다.
전 좌석 오토윈도우인 것도 베뉴와의 차별점이다만,
열선핸들이 없다. 열선핸들이 없다. 열선핸들이 없다.
손시려서 죽는 줄 알았다. 옵션으로라도 선택 불가.
르노삼성이 열선핸들에 인색한 브랜드가 아닌데 도대체 왜?
그리고 국민정서에 맞는 통풍시트가 없다.
베뉴의 경우 모던에는 운전석에 기본/동승석에 옵션,
FLUX에는 동승석까지 기본이다.
통풍시트는 참더라도 열선핸들이 없는건 너무한거 아닌가.
경차에도 옵션으로 구비되는 사항이다. 이건 아니다.
사실 최근에 이렇게 급이 낮은 차를 탄 적이 없어서
글로브박스 내 조명이 없는걸 보고 좀 놀랐는데
생각을 해보니 DL3 K5도 없네. 중형세단 게 섯거라
10.25인치 풀 디지털 클러스터는 확실히 급 이상의 장비이다.
이 급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리는 셀토스조차이해불가
7인치 디스플레이 클러스터가 최대인데
이것도 시그니처 패키지 I을 골라야 하긴 하지만,
시원스럽고 반응도 빠르고 화질도 쨍하다.
TCe260에서 선택가능한 9 스피커 BOSE 오디오가 없긴 하지만,
6 스피커 기본형 오디오 자체의 품질도
르노삼성이 언제나 그랬듯이 꽤나 괜찮다.
트레일블레이저의 이상한 BOSE보다 차라리 이쪽이 낫다.
MFR타입 LED 헤드램프를 전 모델 기본장착 해준 것은 좋았는데
베뉴가 안팔리는 바람에 2021년식 와서 상품성 개선을 거치면서
주력 트림인 모던에 프로젝션 LED 헤드램프를 기본으로 넣어줬다.
MFR보다는 프로젝션 타입이 훨씬 깔끔하고 환해서
이것도 베뉴에 소폭 뒤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선바이저에 조명이 없다. 베뉴는 마찬가지로 모던부터 기본이다.
물론 XM3 1.6 GTe는 차선이탈 경보/방지 보조 및 사각지대 경보가 LE+에 기본이고
시그니처 패키지 I에 주차 조향보조, 후방 교차충돌보조도 들어가 있어서
안전장비는 베뉴보다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 편이다.
베뉴는 그 비싼 FLUX 가서도 스마트센스를 돈 주고 넣어야 하며,
후측방경보와 후방 교차충돌보조가 끝이다.
그래서 가격까지 포함한 상태로 차량을 전반적으로 둘러보니
XM3 1.6 GTe는 꽤나 애매하다.
주행질감이나 선호도 높은 옵션은 베뉴가 더 제대로 갖추고 있고,
XM3의 필살기인 9.3" 내비게이션 + 10.25" 클러스터를 넣으려면
차량 가격이 너무나도 올라가 이 급을 선택하는 것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
이 급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볍게 타고다닐 이동수단을 찾는 이들이 사거나
사회초년생들이 첫 차로 검토해봄직 한 모델인데
옵션을 갖추면 차 급에 따른 예산 상한선을 아득히 넘어버린다.
XM3의 경우는 클라우드 펄의 선택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클라우드 펄까지 포함한 가격이 2373만원.
쏘나타 G2.0이 2386만원부터 시작한다.
나라면 둘 다 안사겠지만 베뉴를 고르고 2천만원 극 초반에서
해결 볼 방안을 검토해볼 것 같다.
XM3 1.6 GTe는 크게 인상깊은 면모 없이
가격 대비 구성이 떨어지며 베뉴 대비 우위가 거의 없다.
르노삼성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XM3 1.6 GTe는 구입을 고려할 이유가 없다시피 하다.
베뉴 사라.
+
여담인데, 최근의 르노삼성 차량들은 자세제어장치 해제가 불가능하다.
눈길에서 안그래도 힘이 없는데, 구동력 제어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계속 훼방을 놓는다.
덕분에 그리 가파르지 않은 작은 언덕조차도 올라가지 못해 진땀을 빼는 상황이.
베뉴의 경우는 자세제어장치와 구동력 제어장치 둘 다 해제가 가능하다.
언덕을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써도 차가 지속적으로 힘을 죽여버려서
주파가 불가능한 상황을 그 날만 수 없이 마주치니 화가 날 지경.
퓨즈 뽑고 운전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사륜구동 쏘렌토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