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는 내가 시리즈로 다룰만큼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는 브랜드.
지금은 제네시스가 정말 언제 했는지
생각도 안 날 풀 모델 라인업을 갖췄지만
3년 전 2020년 1월만 하더라도
'두 줄' 제네시스의 첫 번째 모델인
GV80이 사상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원래대로라면 G80(RG3)이 먼저,
GV80이 나중에 나와야 했었지만
출시시기를 앞당긴 GV80이 먼저 출시되어
새로운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럭셔리 코드를
세상에 알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잘 수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출시시기를 당긴 GV80은
꽤나 훌륭한 완성도를 선보여 나도
좋은 점수를 지속적으로 줘왔었는데
출시를 미룬 G80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GV80은 이미 3.5T 모델을 블로그에서 다루었고
GV80 3.0D의 경우는 시승기를 따로 적진 않았지만
여러번 타봤기 때문에 어떤지 잘 아는 상태.
사실 지금까지는 'GV80은 6기통이지'
라는 믿음이 나한테도 강했었기 때문에
단 한번도 2.5T 모델에 관심을 주지 않았었는데
생각보다 GV80 2.5T가 많이 팔리더라.
지난 1년간의 누적 판매수치를 보건대
2.5T 가솔린이 1만 3천여대로 압도적인 1위,
3.0D 디젤이 그의 3분의 1 수준이라 2위,
3.5T 가솔린은 생각보다 멀리 있진 않지만
당연하게도 제일 판매비중이 적었다.
인터넷에서 맨날 6기통 추앙하는 머저리들과
'인생 마지막 내연기관으로 6기통 타고싶어서
그랜저 3.5 사려구요' 이따위 소리 하는 놈들
멍청이라고 생각하고, 엔진은 작을수록 좋다고
늘 말해오던 나조차도 GV80은 4기통 모델을
여지껏 고려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이라
제일 많이 팔리는 모델도 어떤지 봐야겠어서
이번엔 GV80 2.5T로 내 발걸음이 향하게 되었다.
많이 팔리는 차가 꼭 좋은 차는 아니지만
일단 많이 팔리니까.
그래서 가져온 GV80 2.5T.
사실 국산차라 2.5T 가솔린이 있는거지
현재 국내 판매중인 경쟁 차종들은
순수 가솔린 모델 중 4기통은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GLE는 4기통 디젤 GLE300d와
4기통 가솔린 PHEV인 GLE350e를 팔고있지만
GLE300d는 싼 GLE여서 다들 사는거였지
만약 북미처럼 GLE350이 있었으면
아무도 안 샀을 게 분명하다.
참고로 GLE300d는 연식변경하면서
옵션강화도 됐지만, 어쨌든 꾸준히 가격이 올라
1억원이 넘는 가격표를 달고 있음에도
시트 가죽이 ARTICO 인조가죽이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좋아하는 나도 아....이건 좀.
이외에는 예전에 아우디에서 Q7 45 TFSI를
파격적인 가격에 팔았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Q7과 Q8 전부 6기통들로만 구성된다.
GV80 2.5T는 특이한 위치에 있는 셈.
근본적인 차량 자체는 그간 익숙한
GV80들과 동일하게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점은 별로 없다.
출시 3년차에 접어들면서 모든게
굉장히 익숙하고, 솔직하게 말해서 약간 지겹다.
그래서 GV80 페이스리프트가
올해 중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GV80 2.5T의 제원은 간단하게 정리해서
스마트스트림G 2497cc 가솔린 터보 엔진에
최고출력 304마력, 최대토크 43kg·m.
2.5리터급 엔진을 6기통이 아닌 4기통으로 만드니
스트로크가 101.5mm라 꽤나 롱스트로크형 엔진이고,
실제 주행 시 토크가 쏟아지는 느낌 등 체감도 그렇다.
두툼한 토크감이 낮은 회전수부터 든든하게
밀어주는게 디젤을 대체할만큼 이 차에
잘 어울린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
이 엔진이 GV70에 얹혔을때는 뭐랄까
넉넉한 파워는 좋지만 묵직하게 미는 느낌이
GV70을 적극 고려한 엔진이 아니란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GV80에 얹히니까 딱 맞는 듯.
다만 디젤의 압도적인 부드러움과
간지러우면서 기분좋은 회전질감은
흉내내지조차 못하고 많이 떨어진다.
겨울철 되면 디젤이 더 시끄럽지만,
직렬 6기통 형식이 주는 느낌이
난 더 마음에 들기 때문에
이 G2.5 터보 가솔린은 괜찮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파워트레인은 아님.
사실 나는 작은엔진 파이기 때문에
그동안 6기통 라인업만 타봐서
더 작은 4기통 엔진이 기대됐는데
GV80은 이미 차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앞머리에서 무게 좀 덜어낸다고
그게 체감될 정도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4기통이어도 직렬 형상이라
V형인 가솔린 3.5T보다 앞으로 엔진이 나가있는듯
(느낌이 그런 것이라서 확인 필요함) 해서 별로고
직렬 형상이 주는 고속에서의 직진성 향상은
직렬 6기통 디젤보다 못하게 다가와서
이도저도 아닌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4기통이 되어 앞머리에서
무게를 덜어내니 앞이 텅텅 빈 느낌.
앞에 무게가 좀 실려서 눌러줘야 될 것 같다.
결국 GV80은 6기통 엔진이 얹히는게 좋다.
변속기는 모든 GV80 라인업이 그러하듯
현대트랜시스의 A8R50 자동 8단.
주행모드별 변속기 프로그래밍도
6기통 라인업이 훨씬 짜임새있게
(기어비 이야기가 아님) 이루어져서
스포츠 모드일땐 훨씬 공격적이고,
컴포트 모드나 에코 모드에서는
더 많은 토크로 부드럽게 밀고 나간다.
GV80 2.5T의 경우 약간 맥을 못 추는
어중간한 느낌. 토크가 좀 더 세면
이런 변속로직이 딱 맞지 싶다.
연비는 그렇게까지 좋진 않은데
시내 5-6km/l, 고속도로 11km/l 정도.
웃기게도 GV70 2.5T AWD와 거의 동일하다.
GV70 2.5T가 충격적으로 연비가 안 좋은 것.
그래도 연비 생각하면 디젤이 좋긴 하다.
차량이 주는 전반적인 질감이
경쟁상대인 독일차 대비 아낀 2~3천만원만큼
그 금액이 그대로 빠져있는듯한 느낌이 강하다.
승차감도, 주행성능도 모두 마찬가지.
GV80에 그동안 높은 점수를 줬던 이유가
경쟁 차종들과 유사한 가격대에 포진한
G80과 다르게 경쟁력있는 가격을 갖추고도
메르세데스-벤츠 GLE, BMW X5, 아우디 Q7 등
쟁쟁한 경쟁자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기 때문인데,
그건 이제와서 보니 6기통 라인업 한정.
디젤 3.0과 가솔린 3.5T는 8~9천만원짜리
준대형 SUV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우리만큼 좋은 종합 균형감과
압도적인 실내의 고급감, 편의성 및
손쉬운 유지보수를 갖춰서
적수가 없을 만큼 국내에서는 훌륭했는데
가솔린 2.5T는 돈 덜 쓴 티가 난다.
GV80 디젤은 차체의 움직임을
주로 냅두는 편으로, 서스펜션 움직임도 많고
푹신한 축에 속해서 안락했지만
롤과 피치가 둘 다 많았기 때문에
멀미한다거나 승차감 저하를 체감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일장일단이었고
가솔린 3.5T는 그보다는 한결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짧아서
안정적인 질감을 주었지만,
극강의 부드러움을 주지는 못했다.
이 글의 주인공 가솔린 2.5T는
저 두 모델의 단점만을 한 데 모았다.
차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한다는,
정제되지 못했단 느낌을 주면서도
디젤 모델만큼의 안락함 역시 없다.
Q8이 하도 둥실둥실 떠다니는 타입이라
이래저래 차가 휘둘린다는 느낌이 강해
그닥 좋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렇게 어중간하게 차체의 움직임을 억누를거면
아예 다 풀어버리는게 차라리 낫지 싶다.
2.5 터보 역시 304마력이라
낮지 않은 출력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방 속도가 붙는데,
그 두툼한 토크가 데려다주는 속도 영역에서
안정감이 6기통 모델보다 부족하다.
GLE나 X5, Q8보다 차분하단 느낌이
글쎄 하나도 들지 않아 이상했다.
가솔린 3.5T와 디젤 3.0D는 훌륭했는데.
앞서 말한 엔진 형식에서 온
고속안정감의 부재 뿐만 아니라
서스펜션 설정값도 여기에 일조한다.
스프링이 너무 늘어진단 느낌이 강해서
범프 강성을 좀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에어 서스펜션 미적용에 따른
아쉬움은 없는데, 전반적인 차량 완성도는
꽤나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부족하다.
내 기준 E-SUV 극강의 승차감은
단연 레인지로버 스포츠. 물론 값도 GV80의 두 배.
GV80 3.5T도 내가 처음 시승기를 쓸 당시랑
2022년식이랑 승차감 차이가 좀 났고
현대차 측에서는 승차감을 개선했다지만
내가 느끼기엔 감쇠력을 필요 이상으로 풀어서
원래 없던 잔진동과 여진이 자잘한 요철 통과 시
올라왔던게 굉장히 언짢았던 기억이 있다.
왜 멀쩡한 차를 망치는지 모르겠는데
2023년식 GV80은 다시 한 번
승차감 개선이 이루어졌다니까
추후에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지.
이 2022년식 GV80 2.5T는 어쨌든
나빠진 3.5T보다도 별로라서
점수를 높게 줄 의사가 하나도 들지 않는다.
GV80이 좋은 차고, 구입해도 좋다는
추천을 그동안 아끼지 않았었는데
정작 제일 많이 팔리는 모델이
이 정도로 별로라니 다소 실망스러웠다.
GV80 2.5T는 출고 대기가 무려 30개월이라고
국산차 중 최장기간이라며 뉴스에도 나온
인기 차종 중 하나인데, 이렇게밖에 못했나 싶다.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북미, 유럽에서도
GV80 2.5T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차량이 수준미달인 점은
현대차가 반성 좀 해야될 것 같다.
제일 경쟁이 치열하고 럭셔리 브랜드에게
주력 시장인 D-SUV 체급보다
GV80은 한 급 더 높지만, E-SUV 역시
피터지는 장르라 사활을 걸어야 한다.
특히나 제네시스가 고전하고 있는
유럽 시장에는 2.5T 모델이 중요한데
이런식으로 만들어서 될까 싶다.
이 혹독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고
오래 산 이들은 저마다의 노하우로
이 악물고 버텨내고 있다.
새로 태어난 이들 조차 신생이라고
세상이 별로 봐주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 해야 하는데,
분발해야 할 것 같다.
소비자들의 평가는 냉정하거든.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는
원래 잘 나가던 이들과 상대가 되겠나.
다 똑같은 조건에서라면
친숙하고 전통있는 회사의 제품을
사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수순.
근데 GV80 2.5T는 남들에 비해
비슷한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으니
정신 좀 차려야 한다.
앞으로 잘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