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리즈란 차는 무엇인가.
이번 7세대(G70)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역사를 자랑하는 모델이기에
다양한 수식어가 앞에 붙는 차량이다.
'S-클래스에 이은 만년 2등',
'스포츠카 타는 기분 내기 위한 대형 세단',
'3천만원 이상의 할인이 붙는 가성비 대형차' 등등.
아마도 BMW에서 만드는 기함급 대형 세단이다보니
편안하고 조용하게 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차급 대비 좀 역동적인 운동성능을 자랑할 것이라
많이들 대략적으로 추측해왔고, 실제로 타보면
그런 이미지에 부합하게 만들어진 차였다.
특히나 이전 세대(G11)는 M760Li라는,
V12를 얹은 모델도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좀 들어서 큰 차량을 타야겠는데
'좀 달린다' 싶은 차를 원하면 여지없이 7시리즈였다.
나도 7시리즈와 연이 아주 깊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내게 'BMW란 이래야 해'라는 기준점을 만들어준 차량이라
7시리즈를 살펴볼 때는 유난히 더 꼼꼼해지는 듯.
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연수를 받을 당시 탄
4세대 745i (E65)는 실로 감동적인 차량이었다.
이때만 해도 40i, 45i, 50i 차량들 모두 V8에
오래 전부터 BMW를 타왔다면 누구나 기억하는
소름이 쫙 돋는 차분한 고속에서의 안정감.
큰 차량임에도 사뿐한 움직임까지
한 데 녹아있는 '운동성' 하나에 집착한
스포츠 대형 세단이어서 놀라웠다.
지금 세상에는 포르쉐 파나메라가 있어서
역동적인 대형 세단으로서의 독보적인 지위는
7시리즈가 다소 내려놓은 면이 있지만,
역사가 더 긴 건 이쪽이기 때문에
으레 기대하는 바가 있기 마련.
그런 7시리즈가 7세대로 거듭났고,
심지어 코드네임도 G70이라 도처에
행운의 숫자 7이라는 숫자가 깔렸다.
이번 7시리즈는 여러가지 방면으로 파격의 주인공.
일단 정말 못생긴 외관으로 논란이 여전히 진행중이고,
시리즈 최초로 순수 전기차인 'i7'과 동시에 출시되었다.
사실 나는 i7이 훨씬 더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어쩌다보니 내연기관 단독 모델인 7시리즈부터 만났고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은 제일 엔트리급 모델인 740i sDrive.
i7 xDrive60과 같이 출시된 친구라서 먼저 만나보았다.
740d xDrive와 750e xDrive는 시승 당시엔 없었지만,
추후에 추가되어 금세 라인업이 놀라우리만큼 풍성해졌다.
과연 7세대 7시리즈는 여전히 '스포츠 대형 세단'으로서의
남다른 면모를 여전히 자랑하고 있는지,
'7'이 많은 만큼의 행운이 따라주고 있는지
이번 글로 소상히 확인해보려고 한다.
우선 외관부터 확인... 해야되는데
너무 못생겨서 별로 하고싶지가 않다.
테스트카는 740i sDrive M Sport Package여서
전면에 콧수염을 닮은 블랙 하이그로시 장식이
눈길을 잡아끌며 자리하고 있는데, 진심 너무하다.
난 차라리 Design Pure Excellence라 이름 붙은
기본형 외관 디자인이 훨씬 깔끔하니 나은 듯 한데
여전히 외관은 적응되지 않고 있다.
후면 디자인은 이 차량이 쿠페형 SUV가 아님에도
일자형으로 뻗은 테일램프와 트렁크가 아닌
범퍼에 장착되는 번호판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BMW는 X2, X4, X6 등
쿠페형 SUV에만 이런 디자인 큐를 적용했었는데
갑자기 왜 7시리즈가 이런 모양새를 받아들였는지
헤리티지와 일관성을 죽어라 따지는 내게
좀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내로 자리를 옮겨보면 '과함'과 '부족함'이 공존하는
특이한 구성의 인테리어가 나를 맞이해주는데
그동안 경쟁사 대비 실내 디자인의 빈약함으로
매번 지적받는 BMW의 수준 안에서
주력 시장인 중국의 취향에 최대한 맞추려고
애쓴 흔적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인다.
직전의 6세대는 이게 3시리즈인지 7시리즈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저렴해보이고 단순한
인테리어 레이아웃이 큰 약점 중 하나였는데
(당연히 내장재의 차이 때문에 실제론 비교가 불가함)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차이 중 하나는,
벤츠의 경우 S-클래스의 요소들을
아랫급 E-클래스와 C-클래스가 나눠 갖는 형태로
모델이 출시돼왔던 반면 BMW는 3시리즈의 DNA가
윗급 차종들로 퍼져가는 형태였기 때문에
이런 열세가 어찌보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7시리즈(G70)는 완전히 새로운 실내 디자인을
최초로 선보이면서 도처에 앰비언트 라이트와
화려한 장식들을 군데군데 박아 두었다.
뒷좌석 도어 손잡이에 터치스크린을 달아서
그걸로 시트 조작 및 마사지 기능 조절,
심지어 노래 선곡까지 가능하게 만든 것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쫙 깔린 앰비언트는
여러모로 좀 과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함다운 품격이나 고급스러움은
실내가 큰 변화를 맞이했음에도
생각보다 많이 느껴지지 않아서
BMW가 여전히 인테리어 디자인에 있어선
고급 승용차의 기준점인 메르세데스-벤츠보다
몇 수 뒤쳐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여기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G90(RS4)와의
비교도 피할 수 없는데, 고급스러움과 따뜻함은
G90의 시그니처 디자인 셀렉션 인테리어가
큰 차이로 앞선다고 나는 느끼지만
선도적 지위의 기술력을 갖췄다는 첨단 이미지는
7시리즈가 좀 더 우세하게 느껴져서 1대 1.
사실 7시리즈의 실내를 보면서
샤오미 스마트폰같단 생각이 들었었다.
뭔가 좋은 걸 많이 담으려고 애쓰고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지만
그게 진정 고급스럽거나 부자의 시선에서
꼭 갖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런 모습.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난 실내는 무조건 밝은 색상이 좋다 주의인데
이번 7시리즈가 자랑으로 내세우는
메리노 가죽&캐시미어 울 시트 인테리어는
투톤 컬러가 적용된 차량에서만 제공된다(국내 기준).
캐시미어 울 시트의 착좌감은 내가 앉아봤을때
그닥 고급스럽거나 부드럽지 않았지만
크림 색 메리노 가죽과 그레이 캐시미어 소재의
조합만큼은 꽤나 아름답게 느껴졌었기에 아쉽다.
이 차량의 실내는 블랙 메리노 가죽이 적용됐는데
난 메리노 가죽을 되게 좋아하고,
실제로도 가죽의 질감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메르세데스-벤츠 S580의 익스클루시브 나파 가죽보다도
난 이게 더 마음에 들고, 아우디 A8의 발코나 가죽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파나메라의 클럽 레더는 부드러워서 좋긴 한데
너무 약해서 관리의 부담이 다소 있거든.
G90의 프라임 나파 가죽이 고급스럽기는 더 고급스럽지만
미끈한 메리노 가죽 특유의 촉감에 난 흡족.
드디어 좀 달려볼 시간.
740i sDrive는 B58 I6 2998cc 가솔린 엔진이
최고출력 381마력과 최대토크 55kg.m을 내뿜는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더해져
ZF 8HP 자동변속기와 조합을 이루고,
성능은 당연하게도 부족함이 없다.
메르세데스-벤츠 S450의 M256 및
제네시스 G90의 람다 III 트윈 터보 유닛과
여러가지로 자웅을 겨루는 엔진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M256이 '고급 승용차'에서는
압도적인 우월함을 자랑한다고 생각한다.
7시리즈 시승기니까 B58 얘기부터 먼저 하자면
B58은 내가 생각하는 매끄러운 회전질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엔진이라 느껴진다.
오히려 디젤 B57은 디젤인걸 감안하더라도
너무나도 기분좋은 매끄럽고 기름칠한 회전질감이
굉장히 인상깊어서 난 벤츠의 OM656보다 좋은데
가솔린 B58은 특히나 '실키 식스'로 유명한
BMW의 엔진 치고는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BMW는 모든 엔진 라인업에서
자꾸 아무때나 토크가 뻥뻥 터지게 셋팅하는
그 경향을 못 버리는게 아주 불만이다.
이게 배기량이 작은 B48에서는 적어도
성능적인 우위를 타사 대비 점할 수 있기에
이해라도 할 수 있는데, B58과 N63(V8)은
왜 이렇게 유행을 거슬러가면서 만드는지 모르겠다.
이미 배기량과 힘이 충분한데도 수시로 터져대는 토크가
고급 승용차 본분에 맞게 부드럽고 차분한 주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굉장히 불만스럽고
점잖게 길들이고자 하면 갑자기 리스폰스가 죽는다.
최신이라 하긴 다소 민망한 10년 된 유행은
이제 너도나도 터보차저가 장착된 엔진을 쓰기에
터보 엔진으로도 더 큰 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 같은
매끈하고 균일하면서 넉넉한 엔진 리스폰스를
뽑아내는 것이 유행인데 BMW만 혼자 반대로 가는 중.
M256은 2999cc지만 4리터급 엔진 같은
기분 좋은 풍만함, 넉넉함이 훌륭하기 때문에
S-클래스같은 기함급 차량에 올리기 손색이 없는데
B58은 도요타(ㅋㅋ)수프라 같은 곳에서는
훌륭한 성능을 내고 있지만, 고급 승용차에선
글쎄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
G90의 람다 III 트윈 터보 엔진은
기름칠한듯한 느끼한 회전질감과
트윈 터보에 배기가스가 제대로 차기까지의
터보 랙이 체감될 정도로 느껴져서
B58보다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가 적용된 2023년식을
테스트해본 후 다시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고급 승용차의 미덕 중 하나는 좋은 승차감.
미덕이자 필수 요소이자 제일 중요한 기준이다.
7시리즈가 전통적으로 약했던 부분이기도,
S-클래스가 오랜 세월 왕관을 놓지 않았던
분야이기도 하기에 신형이 나온만큼
7시리즈는 당연히 승차감이 좋아야 한다.
근데 내가 느끼기에 앞좌석의 승차감은
사실 그다지 좋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고,
뒷좌석은 별로라는 생각이 여전하다.
7시리즈는 커맨더-뷰라는, 높게 앉은
뒷좌석 포지션을 고집하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도대체 왜? 이해가 안된다.
높게 앉은 만큼 부드럽게 방지턱 등을 넘어가면
미끈하고 안락한 느낌이 들겠지만
7시리즈는 짧은 주파수로 우당탕 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여서 승차감이 좋다 말하기 어려웠다.
운전석과 상석 간의 승차감 차이가 없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데, 문제는 차이 없이 일관되게 별로라는 점.
내가 글 서두에 4세대 7시리즈를 잠깐 탔었다 했는데
그때 느낀 뒷좌석 승차감보다는 세련되고
약간 낮게 앉긴 했는데, 여전히 높다.
이게 i7과 뒷좌석 착좌 높이가 동일한데,
i7의 경우 전기차이고 배터리 배치 때문에
승용형 전기차는 뒷좌석이 약간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게 되면 매우 좋은 수준이다만 반성 좀 해 eG80
7시리즈는 내연기관 승용차이기 때문에 전혀 아니다.
또한 i7은 전기 고급 승용차이기 때문에 비교군이
메르세데스-벤츠 EQS라서 비교우위를 점하기 쉬운데
7시리즈는 경쟁 상대가 S-클래스이기 때문에
맞붙어서 살아남기가 불가능에 가깝고,
이번에도 역시나 크게 뒤지는 모습을 보였다.
동일한 수준의 방지턱을 넘을 때
S-클래스가 실내로 넘기는 충격량을 20이라 치면
7시리즈는 60, G90은 100 정도 되게 느껴진다.
7시리즈는 G90보다 납작하니 약한 형태의 충격이
더 길게 들어오고, G90은 아주 강한 충격이 금세
치고 빠지는 형태라 승차감은 두 차종 다 그닥이다.
'구름 위를 떠 가는듯한' S-클래스의 명성은
7세대(W223)에서 약간 탄탄해졌음에도 변치 않았고
똑같이 7세대인 7시리즈는 아직 멀었다.
i7의 승차감이 그렇게 좋다는데, 과연 전기차 버전은 어떨지.
추후 테스트 후 업데이트 예정.
이번 7시리즈의 강력한 카드 중 하나는
뒷좌석을 위한 시네마 스크린이다.
31인치 8K 디스플레이라며 엄청난 페이퍼 스펙을 자랑하는데
사실 4K 16:9 모니터를 두 개 이어붙인 형태라서
8K라고 하는 것은 허위 광고는 아니지만, 과장 광고가 아닌지.
실제로 컨텐츠를 감상해보니 정말 좋긴 하다만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으신 분들은
넷플릭스보다는 스카이라이프를 보시지 않을까.
아이들은 정말 좋아할 것 같은데,
엔진 공회전 없이 무시동으로 이를 감상할 수 있는
i7에서 빛을 더 발할 것으로 짐작한다.
i7의 경우 차량 충전 중 킬링타임 용도로
이를 활용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러모로 i7에 맞춰서 개발하고,
내연기관 7시리즈도 당장에 포기할 수 없으니
구색 맞추기 용도로 개발한듯한 찝찝한 느낌.
이번 7시리즈는 전 모델 Bowers & Wilkins
다이아몬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어서
들어보면 사운드의 품질도 탁월한데,
시네마 스크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컨텐츠 재생 시 웅장하고 타격감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특이하게도 그런데 하급 차량인 iX가
동일한 B&W 다이아몬드 시스템이 적용됐음에도
소리가 주는 압도감이나 음 표현력, 타격감이
7시리즈보다 더 좋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국내 수입분 iX에는 B&W 미 포함.
난 개인적으로 S-클래스(W223)에 기본 장착된
부메스터 3D 시스템이 화사하고 산뜻한 음 표현력과
밝은 음색을 들려줘서 취향에 더 맞긴 한데,
7시리즈의 B&W 시스템도 정상급 맞다.
G90의 Bang & Oulfsen 시스템은 꽤 괜찮은 편이나
이 둘과 견줄 정도는 못 되어서 다소 부족했다.
국산차 치고 400만원이나 받으면서.
i7이 전기차이기 때문에, 오디오가 높은 출력에 힘입어
이보다 약간 더 좋지 않을까 기대되긴 한다.
마사지 시트는 준수했으나
막 엄청 좋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런 부분은 역시 국산차인 G90이 압도적.
G90은 솔직히 달릴 것이 아니고
그냥 차를 세워두고 상석을 리클라이닝 한 다음
마사지 기능을 누리며서 노래나 듣는게 좋은 차다.
달리기 시작하면 경쟁력이 처참하게 무너지니까.
7시리즈의 마사지 시트는 지압은 나쁘지 않게 하는데
마사지 프로그램의 꼼꼼함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뉴 레인지로버의 핫 스톤 맛사지 기능은 난 그냥 그랬는데
7시리즈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까먹고 S-클래스 타면서 마사지를 안 써봐서
비교가 안 되네.
앞서 언급했듯이 7시리즈의 오랜 캐치프레이즈는
'스포츠 대형 세단'이었고, 그래서 주행성능이 중요한데
주행성능 하나는 신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7시리즈가 원래 실 차체 사이즈 대비
작은 차처럼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CLAR 플랫폼의 힘과 더불어서
알라딘의 마법의 양탄자를 탄 듯한 느낌.
거기다 3.5도 후륜조향까지 합세하니
차선과 차선 사이를 수평으로 휙휙 순간이동 하는 듯 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코너링 역동성은 뛰어나지 않다.
아무리 스포티한 맛을 주는 대형차라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크고 무거운 승용차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스포츠 드라이빙을 따지긴 어렵다.
문제는 5시리즈(G30)까지는 경쟁사 동급차종대비
실제로 공차중량이 가볍기도 하고, CLAR 플랫폼이
깜짝 놀라울만큼의 사뿐함을 선회 시 자랑했는데
740i sDrive의 경우 제원상 공차중량이 2205kg로
경쟁 차종인 S450 4Matic의 2140kg보다 무겁다.
G90 3.5T AWD 역시 2165kg인데 두 차종은 사륜 구동.
후륜 구동밖에 안 되는데도 이런 공차중량이면
xDrive 적용 차량은 더 무겁다는 뜻.
비슷한 조건으로 맞추면 100kg나 차이가 난다는건데
아무리 시네마 스크린 등 담은 것이 많다고 해도
BMW가 가진 원천적인 캐릭터를 놓친 것이 아닌가.
실제로 빠른 조향을 수반하게 되면
S-클래스가 더 좋은 안정감을 선사하면서도
오히려 차체를 가누는 실력과 느낌은 7시리즈를 앞질렀다.
G90(RS4)의 경우 후륜 조향의 과격한 작동으로 인해
차체 컨트롤이 좋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그렇게까진 뛰어나지 않은 모습인데
7시리즈의 후륜 조향은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나
최대 3.5도는 이 큰 덩치와 무거운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다소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BMW가
신소재 도입이나 차량 제작, 설계 기법에서는
앞선 회사 중 하나인데, 메르세데스-벤츠는 무려 10도다.
분발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타이어도 앞 255mm, 뒤 285mm로
굉장히 광폭인 물건이 끼워지는데, 10도 후륜 조향의
S-클래스가 뒤에도 255mm를 끼는 것을 생각하면
되게 넓은 편. S-클래스는 후륜 조향이 없는 차가
동일한 타이어 너비를 가지고 출고되니 후륜 조향을 갖추고도
승차감에 불리한 이런 조합은 굳이 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뉴 레인지로버도 최대 7.3도나 뒷바퀴가 돌아가는데
자사를 대표하며 이미지를 선도하는 기함급 차량이
아무리 숫자놀음이라지만 페이퍼 스펙에서 밀리면
그 지위와 브랜드 자체의 근간이 위협받지 않나 싶다.
소싯적 휠베이스가 긴 이런 고급 승용차들 중
독일차들은 고속에서의 탁월한 안정감으로 유명했고
세그먼트 리더 S-클래스는 역시나 명불허전.
'장거리는 벤츠' 공식이 있을 만큼
메르세데스-벤츠도 옛날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독보적인 지위의 고속 안정감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4세대 745i(E65)는 E-코드 섀시 시절이라
세상과 단절된 듯 하면서도 바람을 쫙 가르면서 나아가는
대단하고 경이로운 고속에서의 안정감을 보여줬기에
지금도 그 잣대로 BMW들을 평가하고 있고,
오늘날의 BMW들은 이때보다 많이 못하다.
7시리즈 역시 요즘 BMW라 그런지 예외가 아닌데,
옛날에는 저속에서는 가볍고 날카롭게 휙휙 돌아가고
고속에서는 묵직하면서도 착 깔리는
대단한 안정감의 대표주자가 BMW였다면
이제는 속도와 상관없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오히려 나는 G90(RS4)의 고속에서의 느낌이
옛 BMW 스타일처럼 노면에 착 붙어서 쭉 밀어주는
훌륭한 감각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정작 본가인 BMW는 이러고 있으니 원.
CLAR를 사용한 G-코드 차량들은
F-코드 차량들의 허접해 빠진 조향감에서
상당한 개선을 이루었었는데,
7시리즈는 다소 무딘 감이 없잖아 있다.
물론 고급 승용차에 '직결감 있는 핸들링'이
얼마나 중요할까마는, 7시리즈의 정체성이 원래
달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 고급차여서 따질 수 밖에 없다.
iX같은 근래의 차량도 이런 이슈를 갖고있긴 하지만
그 차는 SUV이기 때문에 약간 봐줄 수 있었다.
아예 편안하고 헐렁한 성격으로 갈거면
일관된 캐릭터를 보여줘야 할 텐데,
BMW는 고급차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갈팡질팡 갈 곳을 잃어버린 듯 하다.
특히나 포르쉐가 스포티한 이미지에서는
BMW보다 한 수 위이고, 실제로 내놓는 차량들도
훨씬 역동적인 주행에 맞춰진 차량들이기 때문에
'이미지 팔이'에 전문인 오늘날의 BMW도
이런 세그먼트에서는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CLAR 특유의
앞 바퀴가 노면을 삭삭 긋는듯한 기분좋은 피드백이
약하게나마 남아있다는 것인데, 이 역시도
다른 BMW 대비 너무 약하다.
제네시스 G90은 이번에 자동문 기능을
옵션으로 갖추면서 탁월한 편의성에 감탄이 나왔는데
사실상 G90은 자동문과 고속안정감 빼면 시체
뉴 7시리즈(G70)도 동일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소프트 도어 클로징이 갖춰져 있는데도
자동문 버튼으로 문을 닫으려고 시도하면
문이 휙 하고 날아와서 쾅 하고 닫힌다.
고급차가 이렇게 천박하게 문 닫는것 나는 처음 본다.
만약 운전기사가 이렇게 상석 문을 닫았다면
당장에 해고됐을 것이 분명하다.
소프트 도어 클로징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는 차량이, 왜 마지막에 쾅 닫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런 차급이라면 당연하게도
조용히 날아왔다 체결 직전 속도를 늦추면서
스르륵 부드럽게 닫혀야 하는 것인데
고급차를 처음 만드는 회사도 이렇게 안 할 듯 하다.
제대로된 기함을 처음 만드는 제네시스조차
훌륭하게 조절해놓았는데, 오랜 역사의 BMW는 왜 이런지?
그래서 결론.
7세대까지 왔음에도 7시리즈는
여전히 S-클래스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불가능할 정도의 턱없이 모자란 완성도에 그쳤다.
S-클래스 역시 7세대인데, 7시리즈는 매번 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지 아쉬울 따름.
그나마 지적받던 실내는 눈길을 잡아끄는 요소들을
대거 투입해서 어느정도 만회를 했는데
차량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벽인 S-클래스에 밀려 나가떨어졌다.
신흥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도
하위 세그먼트에서는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기함급에서는 신생 브랜드답게 부족한 모습이다.
S-클래스의 벽은 매번 높았지만,
이번에도 변함없이 매우 높았고
행운의 여신은 7시리즈의 편이
안타깝게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기함'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과
그에 어울리는 품격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룹 내에 롤스로이스를 소유한 회사가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롤스로이스의 페인트 기법'이라며 투 톤 컬러를 칠하고
3천만원 더 받아먹는 천박한 전략같은건 좀 집어치우고.
롤스로이스의 DNA를 1%만이라도 승차감에 좀 녹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