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시장의 최근 트렌드는 '아시아화'이다.
그 이유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량 확보를 위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자동차 회사들의 행보가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입맛에도
인정하기 싫지만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특히나 독일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을 겨냥해서
호화로운 인테리어 및 내외장 디자인을
두루 선보이고 있는 와중에,
생각보다 미국 브랜드들도 비슷하게 애쓰고 있다.
GM 역시 중국 시장 빼면 시체가 될 정도로
뷰익 같은 브랜드는 이제 아예 중국에만 초점을 맞췄고
쉐보레 내 차종들도 중국 입맛에 맞춘 차량들과
심지어는 전용 모델들까지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대한민국에 출시한 신형 트랙스.
정식 명칭은 '트랙스 크로스오버'로
미국 시장에는 트랙스, 중국 시장에는
씨커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그런데 이름은 미국형에서 가져오고
각종 편의장비는 중국형에서 가져온 독특한 모델이
바로 국내에 출시한 트랙스 크로스오버다.
요즘 세상은 SUV 천하이기 때문에
본격 SUV가 아닌 크로스오버 차량들도
SUV라고 빡빡 우기는 마당인데
특이하게 트랙스는 아예 이름에
크로스오버라고 못박아버린 독특한 경우다.
특히나 쉐보레는 SUV라는 카테고리를
창시한 브랜드이기 때문에, 좀 더 의외.
트랙스는 출시 전 가격을 가지고
많은 논란? 기대?가 있었는데
깡통 트림인 LS가 정말 2052만원으로 책정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인기와 관심을 얻고 있다.
그런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어떤 차량인지
싸지만 괜찮은 차량, 혹은
싸니까 별로인 차량인지 확인해보자.
트랙스를 체급으로 따지면
정말 애매함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차인 스파크가 단종되면서
출시한 대체 차종인데 경차가 아니고,
소형 SUV면서 형님격인 윗급 트레일블레이저보다
길이는 생각보다 훨씬 길어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큰 차 = 더 높은 급'
공식에 부합하지 않는 모델이라 특이하고 애매하다.
트랙스를 실물로 보면 차가 생각보다
매우 낮고 넓고 길어서 놀랄 정도인데,
1199cc 터보엔진이 올라가는 차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은근 부피감이 의외다.
말이 나온 김에 파워트레인 이야기부터.
트랙스의 파워트레인은 단일 버전으로,
1199cc 3기통 엔진(LIH)에 6단 자동변속기(6T30)가 조합된다.
지금은 단종됐지만 엔트리 버전 트레일블레이저에
사용되었던 그 엔진과 동일한 물건 맞다.
그런데 트레일블레이저는 CVT와 조합됐었고
트랙스는 구식 보령 6단 자동변속기와 매칭되는데
우려만큼의 체감출력 저하는 의외로 별로 없었다.
이 6단 자동변속기는 올 뉴 말리부 1.5T에 얹힌걸
타봤을땐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동력손실도 많이 되고 변속 속도도 느려터졌었는데
이번엔 다행이도 그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미국차답게 변속충격이 정말 심하다는 것.
트래버스 시승기때에도 변속기 문제를 지적했는데
쉐보레(GM)의 경우 6단이건 9단이건
전륜구동용 하이드라매틱 변속기들은
변속 충격 및 미션 슬립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일어난다.
근데 비단 쉐보레 뿐만 아니라 포드도 그러니
미국차들은 변속충격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트랙스는 저속 시내주행 시에도 간헐적인 변속충격이
실내로 전달되고, 순간적인 가속력 확보를 위해
악셀을 내리밟아서 킥다운 할 때에도 쿵 하는 충격이
거의 매번 빠짐없이 실내로 전달되어
예상했던 대로 변속기가 제일 큰 약점이 되었다.
변속 속도도 느긋하고 효율도 엉망.
일반적으로 CVT가 구식 자동변속기보다
단가가 비싸서 캐스퍼도 그렇고 트랙스도
차와 전혀 맞지 않는 변속기가 올라갔는데
캐스퍼는 경차고 시작가격이 1380만원이니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친다만
트랙스는 실질적으로 판매비중이 높은
액티브와 RS 트림으로 가게되면
2800만원을 훌쩍 넘는 차량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다니 용서하기 어렵다.
한참 더 저렴했던 스파크조차도 자동 모델은
C-TECH라고 CVT를 얹었어서
모닝보다 훨씬 파워트레인 효율이 좋았는데
이건 너무 대놓고 티나는 원가절감이자 수작질.
난 3기통 엔진의 진동에 굉장히 관대하고 무딘 사람인데
제공된 차량의 누적 마일리지가 300km대였음에도
진동이 굉장히 많이 들어와서 이 역시도 놀라웠다.
차급 자체가 엔트리 소형 SUV라 매우 낮기 때문에
차량 자체의 방진 대책이 모자란 것은 일정 부분 감안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 말리부가 쓰는 1349cc L3T 엔진보다
진동 유입이 눈에 띌 정도로 많기 때문에
진동이 신경쓰인다면 코나로 가는 수밖에 없다.
엔진의 회전질감은 평범한 3기통의 그것이고,
쉐보레 측에서는 'Rightsizing'이라는 표현을 붙여
차량 크기에 맞는 적절한 엔진 사이즈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에는 나는 동의한다.
터보엔진이기에 1199cc밖에 되지 않더라도
최대토크 수치가 22.4kg.m이라
일반적인 용도로 타고 다니기엔 충분하다.
변속기가 허당쳐서 깎아먹더라도
이만한 중량과 덩치에는 딱 알맞는 수준.
베뉴의 자연흡기 1.6L 4기통 가솔린 엔진이
한결 정숙하고 진동도 적어서 낫지만
'활동적이고 젊은 감각'이라고 포장해도 될 만큼의
나쁘지 않은 선에서 딱 멈춘 거친 질감을 가져서
트랙스의 1.2L 엔진은 나쁘지 않다.
다만 스파크의 SGE 엔진은 사운드가
꽤나 바리톤 음색의 묵직한 소리여서 좋았는데
트랙스의 이 엔진은 별다른 생각이 안 든다.
아마도 이런 차에 제일 중요한 것은
단연 승차감일 것이다. 많이들 따지는 부분.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트랙스의 승차감은
나쁘진 않은데, 생긴대로 논다고 해야할까?
쉐보레측에서 RS 트림 모델을 준비해줘서
제공된 차량에는 19인치 휠이 장착되어 있는데
솔직히 출력과 차급을 생각하면 19인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만, 요즘 유행이 그러하니..
19인치 장착으로 인해 노면을 굴곡을 타는듯한 증상은
별로 없어서 좋은데, 노면을 다소 읽는듯한
서스펜션 셋팅은 이 차량의 구매층의 입맛에 맞춘 듯 하다.
트랙스의 승차감은 난 덜 부드러운 BMW iX3같은
느낌이라는 생각이 타자마자 머릿속에 들었는데
부드럽고 긴 스트로크의 스프링과
그에 비해 살짝 단단하면서(특히 컴프레션)
극단적으로 스트로크가 짧은 댐퍼의 조합.
잔진동 처리는 단단한 댐퍼가 버티는 형상이라
어느정도 시트로 전달되지만 긴 스프링이
방지턱같은 충격은 여유있게 받아내는 모습.
기존의 쉐보레 차량들과는 좀 다른 형태의 승차감이다.
iX3도 그래서 사실 마음에 안 들었는데
역시나 트랙스도 내 취향은 아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승차감이 괜찮다고 할 것 같다.
절대적으로 봤을때는 양호한 수준이다.
트레일블레이저가 형님인 만큼 승차감 구현에서는
한 수 위이고, 난 베뉴도 트랙스보다 편안했다.
트랙스도 꽤 준수하지만, 남들이 더 잘함.
다만 XM3 1.6 GTe보다는 트랙스의 승차감이 나아서
역시나 XM3 이런건 사는게 아님.
납작하게 눌린 트랙스의 얼굴처럼
서스펜션의 움직임도 납작하게 꾹꾹 눌린다는게
내가 이 차를 타면서 받은 인상이었다.
관상 이즈 사이언스.
나는 미국차 중에서는 쉐보레 차량들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고유의 느낌이 있어서다.
튼튼한 차대가 전달하는 특유의 든든함이
쉐보레 차량들을 선호하는 이유인데
놀랍게도 그 조그만 스파크조차
그런 느낌이 어느정도 살아있어
역시나 차를 오래 만든 회사다운 면모가 엿보인다.
말로 설명하기 다소 어렵지만
운전하는 내 밑으로 견고한 #자가
잘 버티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하지만 트랙스는 그런 느낌이 거의 없어서
역시나 생긴대로 논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굴과 눈이 째진 또 다른 쉐보레 차량,
이쿼녹스도 같은 증상을 보였거든.
스파크, 트레일블레이저, 말리부, 트래버스, 콜로라도
심지어 타호까지 미국산 차량다운 안정감이 인상적인데
트랙스는 승차감을 비롯해서 역시나 생긴 만큼
아시아화가 너무 많이 된 느낌을 줬다.
트레일블레이저와 말리부가 신기한 점은
서스펜션을 그렇게 부드럽게 설정하고도
수준급의 주행성능을 보여준다는 것인데
그들에 비하면 트랙스는 서스펜션 셋업,
특히 댐퍼가 어느정도 더 단단함에도
아시아산 차량처럼 풀어헤친듯한 무른 느낌이
군데군데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게 쉐보레 차량이 맞나...?
무늬만 쉐보레가 아니라 닛산 아닌가
그 쉐보레 특유의 마법이 없어져서 갸우뚱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맛본 싸구려 미국산 피자.
무늬만 피자고 토핑같은건 다 한국화된
그런 맛이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트랙스의 실내공간 자체는 넓지만
시트는 급에 맞춰서 칼질을 많이 당했고,
말리부와 트레일블레이저의 8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화면이 작을 지언정
내장된 프로세서가 빨라서 시원시원한
반응속도와 조작감을 보여줬는데
트랙스의 11인치 인포테인먼트는
딱 급에 맞게 원가절감이 되어서
느리기도 기존보다 훨씬 느리고
정리되지 않은 인터페이스 탓에
여러모로 나빠진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무선 CarPlay가 되는건 좋지만
인포테인먼트가 느려짐과 동시에
무선이어서 생기는 딜레이가 콜라보를 이루어
내 기준에서는 많이 답답했다.
저렴한 쉐보레 차량 중 최초로
풀 디지털 클러스터(8인치)가 적용됐는데
이 역시도 반응 속도나 사용성이 그닥이다.
오디오 역시 BOSE 딱지 없는 쉐보레 차량 답게
평균적인 수준 이하의 품질을 보여줬다.
액티브와 RS는 6 스피커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되어
LS/LT의 4 스피커 시스템보다는 한결 낫지만,
그래봤자 쉐보레의 기본형 오디오들 수준이 그렇지.
특히나 트랙스는 스파크를 대체하는 차종이고
스파크는 희한하리만치 기본 오디오가
나쁘지 않은 품질을 선보였었기에
트랙스는 이 분야에서도 원가절감.
이런 트랙스의 상황을 보건대,
차량의 가격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분명 트랙스의 제일 기본 가격은 2052만원.
근데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쉐보레 차량들은
그간 비싼 프리미어, 액티브, RS 트림 아니면
탈 게 못 된다는걸 눈으로 봐 왔었다.
이번에는 파격적인 시작 가격으로 시장의 주목을
크게 받았지만 결국 풀 옵션에 가까운 구성으로 와야지만
탈만해진다는 사실은 트랙스 크로스오버도 예외 없다.
시승차는 RS에 테크놀러지 패키지가 추가되어
2803만원이고, 썬루프까지 넣게 되면
풀 옵션 가격은 2872만원이다.
이러면 디 올 뉴 코나 1.6T 프리미엄 트림에
썬루프와 스마트센스를 넣은 것 보다 비싼 것이다.
당연히 코나는 현대차답게 옵션이
아주 넘치다 못해 풍부하고 빵빵한 차량인데,
트랙스는 '쉐보레 치고' 옵션 수준과 가격 책정이
양호하지만 경쟁사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어차피 경차 혜택을 받는 차량도 아니고,
똑같이 소형 SUV 차급으로 묶이는 차량들인데
굳이 디 올 뉴 코나를 놔두고 트랙스를
왜 사야 할까 하는 의문이 나는 든다.
특히나 디 올 뉴 코나가 굉장히 부드럽고
푹신한 승차감에 맞춰 설정된 차라
보편적인 입맛에도 더 적합하고 상품성도 우월하다.
트랙스라는 선택지가 시장에 하나 더 생긴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내가 구매자의 입장이 되어
이 시장을 바라본다면 트랙스는 굳이.
트랙스는 저공해3종 차량이라
그 혜택을 받을 순 있지만,
나중에 되팔 때 혜택으로 인해 그동안 절감한 비용보다
더 심한 감가를 맞아 더 큰 손해를 볼 것이 뻔한데
유지비 측면에서도 트랙스가 코나보다 나은가?
하는 질문 역시 나는 의문이 많이 생긴다.
차량 유지비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차량의 감가니까.
트랙스의 추천 트림은 나는
LT 등급에 ASCC(어댑티브 크루즈)를 넣는 것.
그러면 개소세 3.5% 기준 2401만원이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갖출 건 다 있다만
앞좌석 전동/통풍시트, ECM 및 하이패스,
11" 인포테인먼트 및 8" 계기판,
스마트폰 무선충전 및 무선 프로젝션 등이 빠진다.
이걸 원하면 액티브 이상으로 올라가야 하고,
가격은 어느새 2천만원 후반대로 진출.
심지어 차급 치고 놀라운 옵션인 전동 트렁크도
액티브 이상으로 가서 테크놀러지 팩을 골라야 함.
가격 장난질 없다고 하는데, 없긴 왜 없어.
그동안의 풀옵션 강요하던 쉐보레 치고 양호한 거지.
그나마 트랙스는 프로젝션 LED 헤드램프가 기본이라
너무 어두워서 있으나마나 수준이었던
쉐보레의 할로겐 전구 헤드램프를
더 이상 안 봐도 되어서 천만 다행.
그래서 이 차를 타보고
블로그에 뭐라 쓸까 고민하던 중
딱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파는 피자였다.
코스트코에서 팔던 피자와 비슷하게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도
가성비 타이틀을 쓴 피자를 파는데
진짜 미국 회사인 코스트코와 달리
국내 회사인 이마트신세계가 팔아서
한국사람 입맛에 맞추려고 더 애쓴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네들 특유의
고기 잡냄새같은 단점은 귀신같이 복사했고
처음에는 분명 저렴한 가격 대비 큰 사이즈로
가성비 식품으로 출범했던 반면
최근 가격 인상으로 이제 생각보다 싸지도 않다.
미국차의 단점은 그대로 가진,
아시아화 과정을 거친 미국차이면서
2052만원이라는 가격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막상 사려고 따져보면 그렇게 싸지도 않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돈을 아껴가며 소형 SUV를 사야겠다면
분명 베뉴가 더 나은 선택이고,
2천만원 중반 이상으로 가격대가 뛰면
디 올 뉴 코나가 두루 우수하다.
난 죽어도 현대기아차가 싫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렇다면 트랙스와 XM3 중에선
트랙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
이 차가 대신하게 되는
스파크의 단종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아쉽다.
창원공장에 쌓아둔 스파크 신차 재고도
꾸준한 판매로 인해 거의 다 동났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