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내 블로그 뿐만 아니라
맨날 인터넷에서 욕 먹는 아우디.
아우디가 옛날처럼 차를 잘 만들면
나는 A/S니 할인이니 다 덮어놓고 좋답시고
찬양일색으로 온 블로그에 도배를 했을텐데
요즘 여느 독일 회사처럼 맛이 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개중에 마음에 드는
A6, Q3, Q5등의* 차량들이 있어서
아우디에 정을 아직도 못 떼고 있다.
가끔씩 아우디 사고싶은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꾸준하게 주기적으로 쿨타임이 돌 때가 있음.
*40/45 TFSI 콰트로 기준. 디젤은 해당없음.
이 글의 주인공은 e-tron GT.
또 역시나 언제나처럼 아우디라서,
특히나 형제차인 포르쉐 타이칸이 있어서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출시 후 한동안 골프장에 유행이었던
타이칸의 그림자가 너무 큰 탓에
이제는 욕 조차 먹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숨어버린 이 차.
최근에 물량이 꽤 입항됐는지
아우디코리아 측에서 광고와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길래 갑자기 혹했다.
타이칸은 사실 나는 그다지 좋은지 타보니
잘 모르겠던데, 얘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끌렸음.
인터넷에서 미약하게나마 관심을 받는 건
가장 힘이 센 RS e-tron GT이다만
오늘 이 차는 e-tron GT 라인업 중
엔트리격인 기본형 e-tron GT.
e-tron GT의 제원은 간단하게
최고출력 476마력(부스트 시 530마력) 및
최대토크 64.3kg·m(부스트 시 65.3kg·m).
93.4kWh의 LG화학 NCM712 배터리를 탑재해서
실 사용가능 용량은 83.7kWh 정도로 잡혀 있다.
이 차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글 서두에서부터 했듯이 타이칸과의 비교인데
e-tron GT의 직 비교상대는 타이칸 4S.
동일하게 사륜 구동이고, 출력도 동일하나
그건 기본형(퍼포먼스 배터리) 기준이고
타이칸 4S에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를 장착하면
배터리 용량은 둘이 같아지지만
출력과 토크는 타이칸 4S가 앞서게 된다.
가속 성능도 타이칸 4S(플러스)가 0.1초 더 빨라서
e-tron GT는 (부스트 기준) 제로백 4.1초.
근데 뭐 0.1초인데 그게 중요한가 싶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이 차만 해도
출력감이 엄청나거든.
제로백 0.1초 차이로 자부심을 갖는 건
"우왓 내가 이번 가속은 지난 가속보다
0.0001초 더 빨라서 다른 정신병자들보다 빨라"
하는 난폭운전 테슬라 차주들
e-tron GT는 트림이 기본형과 프리미엄
두 가지로 나뉘는데, 오늘의 테스트카는 프리미엄.
프리미엄은 정식 출고가격이 1억 6632만원
에다 할인 8%(대략 1300만원) 지금 해준단다
으로, 기본형보다 2300만원 정도 더 비싸다.
그런데 프리미엄 트림에 넣어주는 게 너무 많아서
사실상 프리미엄만 팔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솔직히 그냥 통풍시트나 인테리어 고급화같은
편의/호화 옵션 추가면 트림명을 굳이 붙이지 않겠는데
아예 차랑 성격을 바꿔버리는 옵션들이
프리미엄 트림에 대거 들어와서 굳이 표기했다.
프리미엄 독점 옵션들을 읊어보자면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 및 다이나믹 올 휠 스티어링,
오렌지색 캘리퍼가 적용된 아우디 카바이드 브레이크,
뱅 앤 올룹슨 3D 사운드, 나파 가죽 시트 및 카본 트림,
프리미엄 에어 패키지(이오나이저 및 향수 디퓨저),
18way 스포츠 시트 프로, 솔라 글라스,
21인치 휠 및 블랙 외장 패키지까지
아주 긴 추가 옵션 리스트를 자랑하는데
여기서 에어 서스펜션 + 후륜 조향과
텅스텐 카바이드 코팅 브레이크만 해도
2천만원 돈 값어치가 넘지 않나 싶다.
이 많은 옵션을 담은 e-tron GT 프리미엄은
현재 실 구매가격이 약 1억 5301만원.
전기 승용차 중에선 테슬라 모델 S Plaid와,
전기차 통틀어서는 BMW iX xDrive50와
대략 가격대가 겹친다고 볼 수 있다.
거의 유사하게 구성한 타이칸 4S는
맞춰보면 2억원에 육박하기 때문에
아우디 뱃지가 붙어있다는 이유로
비슷한 차를 5천만원이나 깎아서 파는 셈이다.
종이를 읽어서 알 수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
이제는 운전석에 올라 차가 어떤지 알아볼 차례.
첫 인상은 상당히 마음에 들게 좋다.
운전대 림이 얇은거야 뭐, 아우디니까
맨날 볼때마다 똑같은 내용으로 깔 순 없잖아.
프리미엄 전용 스포츠 시트 프로의 착좌감이
GT라는 이름답게 적당히 편안하면서도
운전자 몸을 적당히 감싸줘서 좋다.
최저 시트포지션은 전기차인 탓에
그렇게 낮진 않지만, 용납할 수 있는 수준.
포르쉐의 18way 어댑티브 스포츠 시트 플러스는
너무 옥죄는 느낌이 들어서 난 14way가 더 좋은데
(911이나 718이면 몰라, 타이칸같은 4도어에는...;)
이 친구의 시트는 앉았을 때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국내에서 아우디의 대표적인 경쟁 브랜드들인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제네시스는
출시하는 전기차들의 모터 회전질감에
자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녹이고 있는데,
아우디는 그런건 안 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프리미엄 전용 e-tron 스포츠 사운드도 있단 점 자체는
나쁘진 않지만, BMW의 아이코닉 사운드보다는
웅장함이나 운전에 대한 몰입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사 차량의 티끌만한 요소 하나하나 전부
운전자에게 부담없이, 마치 매끈한 실크 소재의 감촉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도록 설정하는데, 메르세데스-EQ 차량들의
모터 회전질감 및 가상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반면 아우디의 e-tron 시리즈 차량들은
아우디가 어떤 회사인지에 대한 정보를
운전자가 받는 경험을 통해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프리미엄 브랜드답지 않은 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작하자마자 까는 이유는 '역시 비싼 아우디 ㅉㅉ'
여서가 아니라, 뒤에는 칭찬만 거의 하게 될 거라서.
일단 승차감부터.
사실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된 차량은 차종 무관 무조건
승차감이 좋을 것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에어 스프링의 설정된 경도 값이 높아서
오히려 바퀴가 밟는 충격에 대한 반응이 굳건하고
예상되로 단단한 차량들(CLS450이 생각남)도 많고
오히려 차체의 움직임, 특히 롤을 너무 많이 허용해
승차감 저하가 느껴지는 경우도(Q8이 생각남) 있는데
에어서스 = 좋은 승차감으로 퉁치는 무식한 이들이 너무 많다.
같은 회사 안의 e-tron 55 콰트로도 에어 서스펜션이 달렸지만
방지턱과 같은 요철을 밟을 시 꽤 큰 충격을 그대로
운전자와 탑승객에게 전달해서 놀랄 정도였다.
공기 챔버가 스프링을 대신하고 있어서
유입되는 충격의 형태가 둥근 건 알겠지만,
그 충격의 강도가 상당히 세서
이게 과연 승차감이 좋다 할 차량인가
굉장한 의문이 들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반면 e-tron GT는 아예 완전히 다른 차량이다.
e-tron 브랜드 내에서 거의 혼자 따로 논다고
생각될 정도로 완벽한 균형감을 자랑하는데
모든 상황에서 부드럽기 그지없는 모습에
정말 딱 적당한 수준의 노면 피드백을
운전자에게 시트를 통해 전달해서
내 입맛에 완벽하게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S-클래스 수준의 충격 전달률을 유지하면서
기분좋은 간질거림이 추가됐다고 해야되나.
S-클래스가 정말 무지 안락하긴 하지만
아직 젊은 나한테는 너무 부드럽게 느껴졌고
노면 정보의 완전한 차단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서 딱 가려운 부분만 긁어준 느낌이다.
내가 지금 어떤 곳을 지나가고 있는지
필요한 만큼만 차가 판단해서 알려준달까?
만약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면
'GT'라는 이름 내 수식어가 맞지 않았을텐데
이런 승차감 덕분에 완벽한 그랜드 투어러가 됐다.
그랜드 투어러는 모름지기 평소에는 점잔을 빼더라도
달릴 땐 힘을 좀 쓸 줄 알아야 되거든.
이 부분 때문에 이 차가 난 타이칸보다 낫다.
타이칸은 포르쉐라는 딱지가 붙어서 나오기 때문에
무거운 전기차로, 그것도 4도어인 차량이
스포츠카 행세를 하기 위해 너무 애쓴 느낌이고
가상한 노력만큼의 '포르쉐 스포츠카'다움은
난 찾기 어려웠는데 아예 이 노선이 확실하니 좋다.
그렇다고 온갖 주행 관련 옵션(PASM, 후륜 조향 등)을
다 갖다 붙이자니 가격이 안드로메다로 가거니와
그런거 안 달고 8천만원대에 더 뛰어난 이 차가 있는데 굳이.
포르쉐 탄다고 남들한테 자랑하고 싶어 미친 게 아니고서야.
여담으로, 최근의 흐리멍텅해진
BMW와 아우디를 보면서 많은 비난과 욕을 했었는데
e-tron GT와 i4, iX를 보면서 생각을 좀 고쳐먹었다.
그래도 얘네들이 자동차를 하루이틀 만든 인간들이 아닌 만큼
차를 대충 날림으로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는 거.
의외로 이런 차량들에서 확인을 하게 되다니.
주행 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꾸어도
멋들어진 그 자세와 점잖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다이내믹으로 주행 모드를 설정했으니
악셀을 깊게 밟아볼 차례.
이트론 55 콰트로를 타면서 내가 뭐라 했던
주 포인트는 출력 대비 가속감이 너무 답답하단 것이었다.
심지어 Q4 이트론도 페이퍼 스펙 대비,
유사한 출력의 경쟁사 전기차 대비
가속감이 지나칠 정도로 속이 터져서
얘넨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싶었었는데
e-tron GT는 출력에 걸맞는 시원한 가속감을 선보인다.
65.3kg·m이라는 최대 토크가 즉각적으로 발휘되니
굳이 RS e-tron GT까지 가지 않더라도
조수석에 탄 지인의 목디스크를 유발하기는 충분하다.
얘도 이런데 RS e-tron GT는 정말
정차 및 풀악셀 몇 번 했다간
뒷골이 땡겨서 입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건 허나 이 차의 순발력이 아니고
이 차가 R8을 제외한 역대 아우디 중
가장 후륜구동스러운 차량이라는 것이다.
제원 상 종합 출력이 476마력(350kW)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전륜과 후륜 모터의 스펙을 보면
전륜 238마력(175kW), 후륜 435마력(320kW).
엥??
아무리 전/후륜 모터의 출력을
단순히 덧셈해서 합산 출력을 낼 수 없다지만
종합 출력 대비 모터 각각의 출력이 굉장히 세다.
전륜 모터는 타이칸 4S와만 공유하는 게 아니고
타이칸 터보, 타이칸 터보 S와도 공유하는 물건인데
짐작컨대 급발진 상황을 제외하고서는
전륜 모터의 힘을 거의 끌어다 쓰지 않는 듯 하다.
앞바퀴가 미끄러지며 언더스티어 현상을 보이려 할 때만
약하게 출력을 보내서 코너 탈출가속을 돕고,
어지간해서는 후륜 모터의 힘만 주로 끌어다 써서
합산 출력을 476마력이라고 발표하지 않았나 싶다.
오버부스트 시 530마력(390kW)인것도
전륜 모터의 힘만 조금 더 끌어다 쓰게 만든 듯.
아니 순수하게 후륜구동인 Q4 e-tron 40조차도
타봤을 당시에 굉장히 주행성이 밋밋해서
아우디는 MEB같은 후륜 구동 기반 플랫폼을 갖다 써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차밖에 못 만드네 싶었었는데
e-tron GT는 진짜다.
타이칸을 타봤을 땐 J1 플랫폼을 이렇게까지나
돈을 갖다부어서 설계할 필요가 있었나,
그런 비용 투자 대비 결과물이 많이 실망스럽다
이런 생각만 잔뜩 들었는데
정작 J1이 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어
타이칸 혼자 쓰기에는 손해가 막심해서 부득이하게
아우디에도 물려줬더니만 아우디가 더 잘 썼네.
e-tron GT는 밸런스가 참 좋다.
거기에 휠베이스가 2898mm에
차량 길이가 5m에 육박해서
큰 덩치의 스포츠세단 형태임에도
후륜 조향이 적용되면서 확실한 효과를 봤다.
A6보다 길이가 더 긴 차가 운전자 체감으로는
훨씬 작은 차량처럼 느껴지고, 심지어는
2도어 쿠페인 A5보다도 작게 느껴진다.
A5는 오히려 실제 축간거리보다 체감 휠베이스가
훨씬 더 길게 느껴져서 별로였었는데,
이 차는 코너를 도는 느낌이 차분하면서 가뿐하다.
사뿐사뿐하다거나 요술망토같이 쉭쉭
차선 사이를 움직이는 신형 7시리즈와는
분명 다른 아우디만의 부드러운 안정감이 있으면서
여타 아우디들보다 훨씬 '돌고자 하는 의지',
즉 요(Yaw) 관성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가장 무거운 요소인 배터리팩이
차량 중앙에 모여있어 미드쉽 포맷같은 형태인
전기차 특유의 관성 모멘텀이 잘 살아있다.
2023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아우디 최초의 미드십 슈퍼카 R8과
비단 전면 마스크만 닮은 것이 아니라,
차량 자체의 특성과 성격을 멋지게 승계했다.
참고로 e-tron GT는 R8을 생산하던
독일 네카줄름 공장에서 생산된다.
결론적으로 얜 R8의 후계자로서
아주 완벽한 입지를 다진 차량.
심지어 생산 준비 및 생산 과정 전반에
탄소 중립을 실현했으므로
R8의 영혼이 2023년에 맞춰
한 발 더 진보한 형태로 환생했다 봐도 무방하다.
Vorsprung Durch Technik.
운전대 감각이나 브레이크 페달 감각이
타이칸보다 다소 무디고 희미한건
어쩔 수 없는 아우디가 가지는 포르쉐 대비 약점인데
평소같았으면 지적을 했을 것이다만
다른 부분들이 너무 인상깊어서
머릿속에 단점이 차지하는 점유율이
현저하게 줄어서 그냥 넘어갈 만 했다.
조향감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SUV인 BMW iX와 비슷한 정도의
노면 피드백이 들어오니 지적받을 만은 했다.
그 iX조차 CLAR 플랫폼 BMW들보다
확연히 부드러워지고 무뎌진 조향감을
짚고 넘어갔었기에 놓칠 수 없는 내용.
다만 회생 제동과 물리적 브레이크간의
전환될때의 자연스러움은 좋았고
특히나 텅스텐 카바이드 코팅 디스크가 적용된
브레이크이기 때문에(포르쉐에서는 PSCB)
제동력 자체야 말 할 필요 없이 좋고
디스크 자체의 내구성도 더 낫고
브레이크 분진 발생도 훨씬 적어서
휠 세척하는 고생은 한결 덜할텐데
나중에 디스크 교환 시에는 큰 금액 부담이.
어쨌든 오렌지색 캘리퍼가 이쁘니까
신차 상태인 지금은 좋다.
테스트카에 장착된 타이어는
굿이어의 이글 F1 어시메트릭 5.
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독일차들이
어시메트릭 3을 많이 썼었는데 그의 후속작이다.
타이어 성능은 승차감이나 주행성에
흠 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전기차이니 차량을 세워두고
실내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니
이제 실내로 자리를 옮겨볼까.
인테리어 디자인은 차량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밋밋하고 또 지겹지 않나 싶다.
BMW는 그 민원 많이 받은 탓에
최신 차량들은 호화롭게 꾸미려는 척이라도 했는데
아우디는 여전히 맨날 보던 그 아우디다.
프리미엄에 적용되는 실내 카본 트림도
포르쉐의 카본 트림과 달리 글로시 처리가
되어있지 않아서 되게 저렴해 보인다.
난 우드 트림과 가죽을 바르는 것을 선호해서
어차피 'GT'가 차명에 들어가는데
실내를 작정하고 호화롭게 꾸몄으면
한결 낫지 않았을까 싶다.
나파 가죽의 질감은 나한테 개인적으로 불호인
아우디 발코나 가죽보다는 좀 더 매끈해서
나쁘지 않았지만 아주 맘에들진 않았다.
아우디가 진짜 짜증나는 것 중 하나가
컵홀더를 작게 만든다는 것인데
e-tron GT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벅스 벤티 사이즈 두 개가
동시에 안 꽂히고 한 개도 빡빡하다.
프랑스차도 아니고 얘들 왜이러는지.
뒷좌석 레그룸은 차량 사이즈 치고는
그렇게까지 좋진 않은 평범한 수준.
내 운전자세대로 맞추고 내가 뒤에 앉으니
주먹 3개가 들어가는데 휠베이스를 감안하면
일반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뒷좌석 시트의 등받이 각도가
팍 깎이는 루프라인때문에 어느정도 서 있음에도
착좌감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장거리 탑승시에도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A6의 경우 등받이가 너무 서있어서
차렷 자세를 강요하는 불만이 있었는데
얘는 등받이가 서있음에도 절묘한 자세를 만들어서
좋은 승차감과 맞물려 탑승객 만족도가 뛰어날 듯.
뱅 앤 올룹슨 사운드 시스템도
기함급 차량이라는 것을 과시하듯
만족스러웠으나 의외로 미드레인지 표현이
다소 약한 점이 약점이었다.
제네시스의 뱅 앤 올룹슨과 반대로 가는 듯한 느낌.
전기차다운 짜릿하고 쨍한 음색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지만,
저/고역대 표현력은 준수해서
V자형 소리 선호하면 마음에 들어할듯.
중역대는 표현력이 약간 부족하면서
이를 무마하려고 부드럽게 음을 뭉개는 느낌이 들었음.
e-tron 55 콰트로는 뱅 앤 올룹슨 적용임에도
오디오가 좋단 생각 하나도 안 들었었는데
역시 비싼 만큼 돈은 배신하지 않네.
J1 플랫폼의 특징 중 하나는
리막에서 사온 기술인 800V 전장시스템.
e-tron GT는 정격전압 723V로
200kW급 충전기(500V*400A)를 물리면
최고 속도를 완전히 끌어다 쓸 수 있고
350kW급 충전기(1000V*400A)를 물리면
충전손실 등을 감안해서 최대 270kW*
정도로 피크 속도를 뽑아낼 수 있다.
아직 350kW급 충전기가 거의 없단게 문제지만
어차피 이런 비싼 차를 사서
하루이틀만에 팔아버릴 것은 아니니
장기적으로 보면 엄청난 장점이다.
아, 오히려 반대인가.
이런 금액의 차를 리스하시는 분들은
주기적으로 차 갈아치우시려나.
충전구가 앞 휀더에 있는 건 짜증.
평균전비는 내 평소 운행 패턴처럼
살살 운전하면 20kWh/100km(5km/kWh).
차량 덩치나 무게를 생각하면 준수하나
더 개선될 여지는 분명 존재한다.
지금은 여름철이라 이렇고
겨울철 되면 29kWh/100km(대략 3.4km/kWh)쯤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서.
이러면 충전을 굉장히 자주 해줘야 한다.
*배터리 온도가 적정 수준에 도달했을 시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는
채광도 좋고 널찍하긴 한데
난 무조건 썬루프를 여는 사람이어서
열리지 않는다는게 나한텐 단점.
그리고 e-tron GT 실내의 최고 문제는
적어도 나한텐 뒷좌석용 송풍구다.
내가 차량 실내 디자인의 완성도를 따질 때
제일 먼저 보는 곳이 뒷좌석용(2열) 송풍구인데
생각보다 이걸 이쁘게 디자인해내는 회사가
별로 없다. 메르세데스-벤츠나 벤틀리 정도.
타이칸에 4존 오토에어컨(4-Zone Climate Control)을
선택하지 않으면 들어가는 플라스틱 덩어리
뒷좌석용 송풍구가 여기에도 똑같이 들어가있다.
이 부분 디자인은 솔직히 1억 6천짜리 차가 아니고
2천만원짜리 소형차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아우디라는 브랜드가 가진 자산 중 하나인
하이테크한 실내 디자인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이 부분을 더 고급스럽고 이쁘게
꾸밀 수 있지 않았을까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e-tron GT는 어떤 차인가
요약하면서 마무리하자면,
분명 배 다른 형인 타이칸이
우월한 인지도와 뱃지값으로 선두에 나서서
이미지 리딩을 하고 있는 와중에
뒤에 숨어서 착실하게 제 몫만 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보면 - 특히나 차량을 타보면 - 오히려
e-tron GT 쪽이 균형감이 더 좋게 와닿는다.
청출어람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한동안 만만하게 봤던 아우디에 대한 내 인식 역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차량이다.
1억 중반으로 전기 승용차를 살거면 e-tron GT.
전기 SUV를 살거면 BMW iX xDrive50 Sport Plus.
의외로 내가 좋아하는 메르세데스-벤츠는
유사 가격대 추천 리스트에 없는데,
EQE 350+의 경우 가격 급이 한 체급 낮고
EQS 450+는 승차감이 부드럽긴 하지만
'부드러움'이 너무 많이 부각된달까.
"나 승차감 좋아, 나 이 충격 부드럽게 넘겼어"
라고 차가 막 나한테 말을 하는것같이
충격을 넘어간 여진이 오래 지속된다.
반면 e-tron GT는 충격량도 더 적어서
극히 적은 충격을 그냥 슥 하고 정리해버리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훨 깔끔하다.
그러면서 무작정 낭창낭창 무르기만 하지도 않고.
솔직히 이렇게까지 좋을거라고
기대는 커녕 예상도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S-클래스보다 더 맘에 들 줄이야.
아우디 아직 안 죽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