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종보통 운전면허를 가진 이들이라면
최소 두 번은 무조건 몰게 되는 차가
바로 현대 포터와 이 글의 주인공 기아 봉고.
한국과 중동에서 유명한 이 트럭은
그동안 디젤 엔진이 주력이었다.
승용차 및 SUV에서는 이미 디젤이
상당수 퇴출된 분위기인데,
트럭을 비롯한 상용차에서는 아직
디젤 엔진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
디젤 엔진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
첫 시도는 순수 전기차 모델이었다.
포터 일렉트릭과 봉고 EV는
최고 출력 184마력, 최대 토크 40.3kg·m의
디젤 모델보다 강력한 힘을 내는
전기 모터가 얹혔지만, 200kg 가량
늘어난 무게와 제한된 주행가능거리,
또 영업용 번호판을 무료로 뿌린 탓에
충전기 과점유로 일반 전기차 운행 및 보급을
방해한다는 큰 문제점이 있다.
나도 전기차를 많이 타고다니는 입장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내의 충전소에
딱 도착했는데 포터나 봉고가 충전중이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니, 말 다했지.
그래서 이번엔 또 다른 파워트레인이
봉고 라인업에 등장했는데, 바로 LPG 터보.
이 엔진이 등장하면서 디젤 모델은
아예 완전히 단종되었다.
그동안 현대기아차 및 르노삼성 등에서
LPG 엔진은 꾸준히 출시되었고
경제성을 무기로 인기를 끌었었는데
이들은 모두 자연흡기 방식이었다.
LPG 엔진에 터보를 더해서 양산차에 얹은 건
이 봉고 T-LPDi가 사상 최초라 할 수 있음.
그럼 이 봉고 T-LPDi가 끝물에 다다른
디젤을 완전히 죽이고도 남을 물건인지
한 번 타보면서 살펴보자.
다른 차량 시승기에는
보통 내/외장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는데, 봉고의 경우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차가 아니라서.
다만 오늘날 판매중인 2024년형 봉고는
정말 트럭 치고는 호화로워졌다.
깡통부터 차로 이탈 경고 시스템 및
전방 충돌 방지 보조 시스템이 기본.
운전석에 요추 지지대(럼버 서포트)도 기본.
이 차량은 풀 옵션 사양인 GLS라
운전대 열선 및 운전석 통풍 시트,
하이패스와 USB-C 포트도 있다.
GLS에서 10.25인치 내비게이션(80만원)을
선택하면 내비게이션 뿐만 아니라
폰 프로젝션 및 버튼 시동 + 스마트키,
오토 에어컨까지 전부 딸려온다.
2024년은 트럭에셔도 애플 카플레이가 되는 세상.
카플레이로 내 아이폰을 연결해서
노래도 좀 들어보았는데,
명성대로 생각보다 포터와 봉고의
4-스피커 오디오는 들어줄 만 하다.
이 차량으로 화물을 나르거나
본인의 업무를 충실히 다 하는 이들이
양호한 소리로 라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오디오 튜닝이 놀라울만큼 준수하다.
이보다 BMW 1시리즈의 깡통 오디오나
아우디 A6의 깡통 오디오가 더 나쁨.
스피커 갯수가 모자라서 공간감이나
실내를 채우는 밀도감이 부족한 건
당연한 부분인데, 균형감이 괜찮다고.
초고음과 초저음 부분이
저렴하거나 나쁜 오디오에서는
공란인 경우가 많은데, 봉고는 아니다.
고음이 날카로운 편이긴 하지만,
주로 듣는 게 라디오일 것이니
목소리를 선명하게 표현코자 이리 만든 듯.
사진 속의 브라운 인테리어는
4만원짜리(40만원 오타 아님) 플러스 패키지에
'전용 메탈그레인'과 함께 묶인 것인데
전용 메탈그레인은 창문 스위치 주변에
메탈 룩 필름지를 붙인 장식이다.
우중충한 봉고의 실내를 내장 색상만
땅콩버터 색상으로 바꾼 것인데
생각보다 활기가 돈다.
봉고 T-LPDi의 핵심은
LPG 터보 엔진이니, 이것부터 바로.
스마트스트림L 2.5 T-LPDi 엔진은
2469cc 직렬 4기통 터보 LPG 직분사.
고압 액상 직분사가 신규 적용되어
기존의 LPi가 아니고 LP'D'i인 것.
가솔린 직분사(GDi)의 그 D와 동일한 의미이고
액화 상태의 LPG를 연소실 내부에
직접적으로 쏘기 때문에
연료만 다르지 GDi와 원리가 동일함.
그리고 그 앞에 터보를 의미하는 T가 붙었다.
엔진의 최고 출력은 159마력(자동),
최대 토크는 30kg·m(자동) 인데
디젤의 135마력 / 30kg·m보다
출력은 24마력 올랐는데
최대 토크는 그대로다.
그럼 엔진의 회전 범위가 넓어졌던지
최대 토크의 발현 범위가 넓어졌던지
둘 중 하나인데, 이 경우는 후자.
이 T-LPDi 엔진의 최대 토크는
무려 1250rpm부터 3800rpm 사이에서
끊이질 않고 뻥뻥 나온다.
아이들링의 기준이 1000rpm이고
이 엔진의 최고 회전수는 4000rpm이니
사실상 엔진이 돌고있는 매 순간이
최대 토크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또, K8 가솔린 2.5 모델에 사용하는
세타 III 엔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4기통으로 2469cc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기통당 배기량이 617cc로
상당히 큰 편이라 순간 발진 시
출력감이 생각보다 강력하다.
바로 전 콜로라도 시승기에도 적었듯
짐을 싣는 트럭에는 이런 기통당 배기량이
큰 엔진이 차의 본 용도에 훨씬 어울린다.
그리고 이렇게 기통당 배기량이 크면
터보차저에 배기가스를 밀어넣기
훨씬 유리한 구조가 되기에
터보랙을 잡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디젤보다
압도적으로 나은 엔진이다.
디젤은 2497cc 직렬 4기통이라
사실상 T-LPDi 엔진과 동급이지만
최대 토크가 1500 - 2500rpm
사이에서만 고작 나올 뿐이라
악셀을 끝까지 즈려밟으면
봉고 T-LPDi가 훨씬 시원하게,
혹은 무시무시하게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디젤 특유의 느린
엔진 반응성 때문에
T-LPDi 엔진의 반응이 더 빠르고,
이 부분은 동일한 부분이다만
기통당 배기량이 커서 터보랙이 적다.
디젤 모델은 VGT를 동원했음에도
T-LPDi 모델의 터보랙이 더 짧아
뒤에 짐을 싣고 오르막을 등판하거나
혹은 고속도로에서 막 밟는
아저씨들의 수요를 훌륭하게 만족시킴.
어쩌면 이 세타 III 2.5L 엔진 라인업은
이 봉고와 포터 T-LPDi를 위해
태어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GV80 2.5T같은 모델들에서는
304마력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304마력이 모자란 출력이 아님에도
차량의 중량과 덩치를 감당하기에는
약간 버거워하는 모습이 보였었는데
정말 이 엔진의 회전질감과
소음 및 진동, 낼 수 있는 출력과 용도
이 모든 것이 차량과 딱 맞다.
전기 버전의 즉각적인 출력만큼은 아니지만
전기차의 충전 문제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이 정도의 넉넉한 힘을 낸다니
기술의 발전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악셀을 좀 밟으면 순식간에 100km/h.
변속기는 아쉽게도 자동 5단인데
새 엔진을 개발해서 넣을 거면
변속기도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더 짜임새있게 엔진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조금 있다만,
엔진이 이미 도는 내내 최대 토크를
상시 뿜어내는 수준이기 때문에
5단 변속기여도 사실 큰 문제 없다.
지금처럼 뒤에 실은 짐 없이
고속 크루징을 쭉 하면
5단을 걸고도 차가 쑥쑥 나간다.
짐을 실으면 좀 더 느려지겠지만
엔진과 변속기의 궁합은 이대로 충분.
이 차의 고객들은 변속기 다단화나
연비보다는 차량 가격에 더 민감하기에
있던 변속기를 그대로 써서
차량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되고,
기아차도 똑같이 생각하나보다.
엔진이 너무 힘차서
패들 시프트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디젤을 대체할 수 있을지,
힘은 충분할지 같은 우려들은
충분히 불식시켰다고 확신할 수 있다.
특히나 30kg·m의 최대 토크는
3.5 LPi의 32kg·m하고 근접하지만
3.5 LPi는 4500rpm이나 되어서야 나온다.
이 T-LPDi는 회전할 수도 없는 영역.
3.5 LPi는 3470cc나 되지만
자연흡기인지라 이럴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T-LPDi가 실용 영역에서는
비교불가하게 힘차고 강력하다.
엔진의 최고 회전수가
4000rpm으로 제한된 것은
LPi 엔진들의 높은 발열량 때문에
터보 엔진으로서는 고회전의
이 엄청난 온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부득이 막은 것으로 보인다만,
짐을 싣고 언덕을 등판하는 등의
트럭 용도상 어차피 고회전은 필요 없으니
이런 실용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엔진 말고 따져볼만한 건 승차감.
승차감은 솔직히 말해서
지금 구입해서 탈 수 있는
국산차 중에서는 최하위권인데,
이 거친 트럭 특유의 승차감이
강력한 엔진과 만나서
마치 야생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분명 운전중인데, 막 동물을 사냥해서
가죽을 벗겨서 둘러메고 죽창을 던지며
불을 피운 동굴에서 자는
선사시대로 복귀한 느낌.
지금도 판매중인,
징하게 우려먹는 중인 모하비는
바디-온-프레임 방식이라
정확히 봉고 기반이라고 할 순 없지만
트럭 기반에 가까운 차량인데
현행 모하비 더 마스터는 승차감이
다소 개선되었다는 말이 있다만
모하비 더 마스터 출시 이전의
초기형 및 1차 부분변경 모하비는
이 봉고 T-LPDi와 승차감 수준이
거의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트럭 특성상 운전자가 앞바퀴보다 앞에 앉기에
앞뒤로 흔들리는 피칭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그 문제점 하나 빼고는 뭐 둘이 엇비슷함.
바꿔 말하면 모하비의 승차감은 최악.
쌍용(현 KGM)의 올 뉴 렉스턴이
이보다 훨씬 부드럽고 바디-온-프레임 형식
특유의 쿵쾅거림이 훨씬 억제가 잘 되어있다.
승차감은 그냥 다들 아는
그 느낌 그대로.
그래서 봉고 T-LPDi는
디젤을 완벽히 죽일 수 있을까.
일단 이 차를 단시간 운행할 때의
내 대답은 완벽히 '네'.
전동화 파워트레인이 1차로
디젤을 죽이고자 들었고, 성공했지만
전기차가 가진 문제들로 인해
완전 확인사살은 못 했었는데
뒤에 나온 이 T-LPDi 엔진이
결정타를 날려 디젤을 아주 매장시킨다.
마무리 안타라고 봐야 할 듯.
아니지, 엔진의 완성도와
전 세계에 전례 없는 T-LPDi라는 점을
두루 감안하면 마무리 홈런.
내구성에 대한 우려는
시간이 지나면 답이 나오겠지.
현재로선 이런 엔진을 개발해낸
현대-기아의 연구진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디젤이여 진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