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개같이 써내려가고있는
호주 여행기가 드디어 4편째.
좀만 더 끌면 진짜 다 까먹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머리를 풀 파워로 돌려
기억을 쥐어짜 빠르게 쓰고 있음.
첫 두 편은 시드니와 그 인근을
넓게 돌아다니는 코스였고
세 번째 편은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내려오는 900km+의 여정을
글 하나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제 멜버른에 도착했으니
멜버른에서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또 둘러볼만한
좋은 드라이브 코스는 어디인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살살 풀어보려고.
의외로 멜버른에서 할 얘기가
시드니때보다 많아서
멜버른 로드트립 편은
상, 중, 하 이렇게 세 개로
쪼개야 할 것 같다.
서둘러 쓰고 있는 만큼
멜버른 로드 트립도 얼른 시작해보자.




또 새로운 날이 밝았으니
아침부터 먹고 시작해볼까.
아침먹으러 나가려는데
차를 가지고 갈까, 아니면 걸어갈까
고민하다 그냥 차를 타고 나왔는데
식당 근방을 뺑뺑 돌아도
주차 자리 비는 곳이 없더라.
배고파서 아침 빨리 먹고싶은데.
간신히 자리를 하나 찾았는데
보니까 식당까진 꽤 걸어가야하고
내 숙소에서는 가까운 곳.
이럴거면 그냥 다시 숙소에다
차를 넣고 걸어나오겠다 싶어서
차를 다시 집어넣었음.
결과적으로 난 그냥 아침에 나와
기름을 길바닥에 조금 뿌리고
시간 약간 낭비하고 아침 먹으러
걸어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출발.
시간이 한시간즈음 지체돼
안 그래도 배 고팠었는데
배가 고파서 차 트렁크에서 과자 꺼냄.
아침을 먹을거니까 간단하게
사뒀던 오레오 하나 집어먹는데
해외에 파는 다양한 맛의 오레오들
마트 갈때마다 발견하면
몇 개씩 집어뒀다 먹어보는 편.
뉴욕 치즈케익 맛이라는 이거는
그냥 롯데 샌드 맛.
오레오같은 느낌이나
뉴욕의 풍미는 전혀 없고
집 앞 마트에서 천몇백원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익숙한 맛이어서
다른 맛 살 걸 약간 후회함.
대충 집어먹었으니 진짜 밥먹으러.




원래는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밀리고 밀려서 정오를
어느새 넘어가버렸더라고.
그래서 아점이 된 오늘의 아침은
호주에서 쉽게 먹을법한 브런치.
Cafe Victoria라는 곳에서 먹을건데
빅토리아 주로 넘어왔단
티가 팍팍 나는 이름의 브런치 카페.
이 곳은 토스트나 팬케이크같이
가볍게 먹는 아침 메뉴랑
가격은 가볍지 못한 점 주의
크레페, 아사이 볼 등을 파는데
난 그 중에서 오믈렛을 시켰다.
오믈렛만 먹으면 아쉬우니
해시브라운 2개 ($4)도 추가.
오믈렛에 넣고 싶은 거
내가 직접 고를 수 있었는데
감자와 베이컨, 치즈를 골랐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남. 사실 기억 안 남.
사진 보고 대략 추측할 뿐.
그렇게 주문한 오믈렛 먹는데
옆자리에 앉은 어르신께서
오믈렛 안에 든 게 뭐냐 여쭤보셔서
감자랑 베이컨이라고 설명드리다
어쩌다보니 스몰 토크 하게 됐음.
여행 왔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렇다,
난 지금 시간이 남아돌아서
온 부자들이 다 부러워 할
세계 최고의 부자라고 농담했더니
웃으시면서 삶에 있어서
만족감의 척도는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렇게 살라고 막간 조언을 주셨다.
정말 공감되기도 해서
끄덕끄덕하며 대화 마무리.
멜버른까지 내려온 이 여정을
흘려보내며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곱씹어봤는데
아, 정말 다시 안 올 시간이더라.
아침 먹으러 나왔다가
주차 자리 없어서 열받고
걸어오는데 비 쏟아져서
짜증났던 기분이 그리 생각하니
눈 녹듯이 사라져버림.
기왕 여행 왔는데 즐겨야지.






그렇게 아점 먹고
다시 드라이브 나가려고
숙소로 걸어서 복귀.
걸어오는 길에 바로 코앞인
퀸 빅토리아 마켓 인근에서
커피도 한 잔 사 마시고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다가
다섯시 반 쯤 숙소로 돌아왔는데
아까 소나기처럼 내렸던 비가
하늘을 깨끗하게 씻어줘서
28층이었던 내 숙소에서 보이는
하늘 뷰가 정말 끝장나더라.
퀸 빅토리아 마켓 등 주변 상점들
구경한 이야기랑 오후에 멜버른 시내
걸어다니며 구경한 건 여기 말고
따로 호주 여행기 올릴때 넣을 거.
로드 트립 편은 자동차로 이동한
여정 위주로만 가급적 쓰려고.
저녁 드라이브의 첫 목적지는
Elwood Beach라고,
멜버른 중심가에서 살짝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여유롭고 넉넉한 해변가.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하니
막히는 시간인데도
대략 20분만에 도착했는데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꽤나 불편한 위치에 있어서
여기 오기란 쉽지 않다.
어젯 밤 멜버른에 도착했으니
멜버른을 차 타고 둘러보는 건
지금이 처음인 셈인데
동네 정취가 날씨 맑은 영국.
영국풍 가게와 거리들이
아담하고 고즈넉하게 자리해서
영국 여행 가기 부담스러우면
여기가 그나마 돈 좀 덜 들이고
와서 놀 수 있는 대안인 듯.





엘우드 비치 와서 느낀 점:
바다의 질감이 다르다.
왜냐면 여긴 태평양이 아니고
인도양이기 때문....인가?
그동안 여러 곳에서
태평양을 봐 왔지만
태평양은 뭔가 매끄럽고 장대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라면
멜버른에 와서 난생 처음 본
인도양은 훨씬 표면이 거칠다.
똑같은 바다인데 마치
태평양 대비해서 인도양은
해상도가 훨씬 높아 선명한 것 처럼
물결 표면 하나하나가 다 보임.
호주라고 해서 전부
인도양으로 둘러싸인 것은 아니다.
시드니를 포함한 뉴 사우스웨일스 주에서
보는 바다는 여전히 태평양.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내려오면
단순히 남쪽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살짝 남서쪽으로 오는 거라서
경도 기준 멜버른이 약간 더 왼쪽인데
멜버른이 등장하기 직전 즈음 경도가
인도양 - 태평양 간의 경계선.
멜버른 앞의 배스 해협이
인도양과 남태평양의 연결고라라는데
어떤 곳에선 배스 해협을
태평양의 일부로 치기도 해서
사실 구분이 대단히 명확히 되진 않음.
근데 멜버른의 위치 상
태평양보단 인도양이라고 보는게
더 알맞다고 할 수 있을 듯.
엘우드 비치는 현지인들이
조깅이나 러닝 하러도 많이 오던데
나도 멜버른 살았으면 자주 왔겠지.
이런 걸 보면 호주는 확실히
여행하기 좋은 동네라기보단
살기 좋은 동네에 가깝다.
근데 주차비 하나만큼은 정말
별로 살고싶지 않은 동네.
난 여기 주차장이 넉넉하고
텅텅 비었길래 무료 주차인줄 알았더니
무려 한시간에 $6.2나 받아 잡수심.
멜버른이 시드니 다음으로 유명한
호주 제 2의 도시 느낌이고
엘우드 비치는 약간 주류에서
살짝 비껴갔지만 시내에선 비교적 가까운
그런 해변가 느낌이니까
한국 기준으로 바꿔버리면
부산에 송정해수욕장? 느낌?
해운대보다 약간 우측에 있는 거기.
부산사람들한테 송정해수욕장에
주차비 시간당 5천원씩 받는다하면
국밥 뚝배기로 머리통 얻어맞을걸?







바다 구경 실컷 했으니
다시 드라이브 출발.
두 번째 목적지는 이름도 희한한
Wurundjeri Spur Lookout.
이름에서 대충 티가 나듯이
이 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부족 이름.
원래 호주는 유럽인들이 침략하기 전
원주민들이 살던 섬이었잖아.
한국말로는 뭐라 읽어야 할 지
감이 전혀 안 잡힘. 우룬제리?
여긴 멜버른의 한강인
야라 강이 흐르는 강변에 있는
낮은 산등성이이기 때문에
호주 사람들이 날씨 따뜻할 때
피크닉을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오늘은 약간 쌀쌀하고
특히나 바람이 차가운지라
산길 타러 온 바이크족들
일부 밖에 없었음.
타고 있는 르반떼의 면모를
알아보려고 잡아놓은 코스인데
이미 2500km가량 주행하며
차에 대해서 충분히 파악했기에
난 바이크들처럼 쏘지 않고
노을이나 적당히 즐기다 가려고.
시드니의 경치는 솔직히 말해서
오페라 하우스가 반절 이상인데
멜버른은 정말 도시 곳곳에
한번 쯤 꼭 감상해봐야 할
장관이 숨어있어 볼거리가 많다.
나도 호주에 와보기 전까진
시드니 이외의 다른 도시는
딱히 가보려고 생각해본 바 없었는데
생각보다 시드니는 볼 게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고
정작 Great Ocean Road 때문에
내려온 멜버른이 더 구경하기 좋았다.
특히나 자연환경을 보는 걸
좋아하는 내 입장에선 더더욱.
호주 와서 딱 한 곳만 갈건데
시드니냐 멜버른이냐 고민된다면
무조건 멜버른 추천.



끝내주는 노을 구경하고나니
끝내주는 야경이 보고싶어서
멜버른의 밤을 어디서 구경하면
잘 봤다고 소문이 날까
지도를 열심히 뒤적거려보니
윌리엄즈타운이라는 동네가 눈에 띔.
멜버른은 홉슨스 만을 둥글게 둘러싼
크루아상 같은 생김새의 도시인데
우리가 관광객으로서 '멜버른 왔다' 하는 건
주로 동쪽에 몰려있는 CBD.
Central Business District의 약자로
정말 이름 그대로 중심 도심지.
윌리엄즈타운은 반대로
멜버른 서쪽에 있으면서
크루아상의 꼭지같은 위치라
바다 앞에 차 세워놓고 보면
멜버른 도심지의 전경이
쫙 보이리라 예상돼서 그리로.
멜버른은 직사각형으로
딱딱 도로망이 정렬돼있어서
전반적으로 시드니보다 운전하기
한참 수월하다. 중심가 빼고.
심지어 외곽으로 나가는 경로도
한두번 지나다니면 외워질 정도로
어렵지 않게 잘 만들어져있음.
반면 시드니는... 옛날 도시처럼
좁고 구불구불하고 복잡함.
멜버른에서 지낼 땐 멜버른이
차를 타고다니기 그리 좋은 동네란
생각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은데
여행기를 쓰고있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네.
다만 중심가는 주차 전쟁.
그것만 빼면 뭐... 근데 그게 중요함.
윌리엄즈타운에서 보는
멜버른의 야경은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고 말하기에는
멜버른 중심지에서 너무 멀어서
중심가의 불빛과 화려함이
다소 작게 보여서 아쉬웠음.
그래서 여기서 야경을 보려던
내 전략은 절반 정도만 성공.
여기로 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지 주차하니까
거의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리깔림.
저녁이 있는 삶의 나라들은
사람들이 퇴근을 일찍 하고
집에서 밤을 보내기 때문에
약간만 외곽으로 가도 깜깜하다.
난 차에 타고있으니
특별한 걱정을 하진 않았지만
혼자 여행다니는 입장에선
좀 신경쓰일 정도의 적막.
만약 뚜벅이라면 조심해야됨.





그렇게 멜버른에서의
첫 드라이브도 끝.
멜버른은 또 처음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엔
호주 자체가 처음 와본 곳인데
일주일 지내서 익숙해졌던
시드니와 또 분위기가 달라져서
낯설고 전반적으로 어색했다만
하루 열심히 돌아다녀보니
어느새 여기가 맘에 들기 시작.
정신없이 여행기 쓰다보니
잠시 미뤄뒀던 자동차 리뷰
안 그래도 밀려있었는데 더 밀려서
몇 개 쓰고 다시 돌아와야겠음.
그때가 언제가 될 지 모르겠다만
오래지 않아 돌아올테니
그때 다시 만나요! 멜버른 中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