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인생에 정답을 찾아내려 한다.
삶에 정답이 어딨어.
근데도 남들이 하는거 따라하려고,
얼핏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으니까.
자기 주관대로 살아야 하는데
꼭 정해진 공식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강박을 늘 받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자동차를 구입할때도 그래.
'이 급에선 뭐가 정답'
남들도 다 이 차량 사니까 나도 사야지.
나도 포르쉐 뱃지 한 번 가져봐야지.
카이엔은 중고가 방어도 잘 되고
'국민 옵션'은 필수. 남들도 다 넣는거.
1억 중반씩이나 되는 차를 사면서
고작 한다는 짓거리가 이거야.
다른 사람들 하는거 그대로 따라하기.
왜 그래야 할까?
반대로 이 글의 주인공인 마세라티는
사면 마치 지구의 종말이 올 것 마냥
큰일 날 것 처럼 회자되는데
정말 그런가? 나도 해당 차량을
경험하기 전에는 세간의 평에
어느정도 기댈 수 밖에 없지만
르반떼는 타는 사람들은 정말 만족한다는데
인터넷에선 형편없는 고물 취급을 받길래
실제론 어떤지 궁금했다.
나도 이 차량과 시간을 길게 보내보면
편견을 깨고 얠 좋아할 수 있을까.
르반떼와 함께 4000km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보았으니,
그 해답에 대해 이제 다뤄보려고.
이번 글은 사진이 원체 많아서
사진 사이의 글들이 짧을 예정.
사진이 46장이나 되다 보니
사이사이에 다 코멘트를 달기 위해
파트를 분배하다보니 이렇게 됐음.
이제 시작해볼까.
르반떼는 마세라티이고,
마세라티는 디자인 빼면 시체.
최근의 디자인은 세로형 헤드램프 탓에
재규어같은 느낌도 다소 드는데
르반떼는 나온지 좀 된 모델이라
가로로 쫙 뻗은 마스크가 예술이다.
마세라티인만큼 앞에 달린
삼지창이 핵심이긴 하다만,
전체적인 디자인의 하이라이트는
볼륨감 넘치는 차량 자체의 덩치.
실제로 봤을때 한 체급 낮은
D-SUV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매끄럽고 날렵하게 디자인됐지만
제원표를 살펴보면 이 차의 덩치는
전장이 5m를 넘고, 전폭도 2m에 육박.
이제 신형 5시리즈 / i5의 길이가
무려 5060mm씩이나 돼 밀려났지만
E-세그먼트 세단 중 가장 기다란 편이었던
제네시스 G80과 동일하게 5005mm란
긴 길이를 자랑하니 SUV로선 상당하다.
남들은 길고 큼직하다는 점을
부각하는 방향을 디자인하는데
오히려 르반떼는 실물이 더 컴팩트하다.
뒷모습도 난 굉장히 마음에 들고
오히려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하며 장착된
신형 테일램프가 대충 만든 느낌인데
많은 사람들은 나와 반대로 생각하더라.
신형은 가로 폭이 넓어보이게 만드는
오늘날의 유행에 약간 편승한 듯한
그런 모양새인데 내 입장으론
굳이 왜 그랬을까 싶다.
방금전에 말했지만 이 차의 디자인은
방향성 자체가 남들하고 다르거든.
이 차는 디젤 모델이지만
겉모습만 봐선 그걸 알 수가 없다.
디젤 모델인데도 트윈 듀얼 배기를
멋들어지게 뽑은 것도 대만족.
고성능 디젤차를 만든다면서
가짜 배기구를 다는 아우디와는
감히 겸상할 수 없는 존재감.
르반떼는 대놓고 '쿠페형'을 부르짖는
일부 멍청한 차량들과는 달리
통상적인 SUV의 형태를 띄고는 있지만
루프라인을 살짝 깎아놓아
멋과 실용성을 둘 다 잡았다.
SUV라면 이 정도에서 그쳐야지
무슨 쿠페를 만들겠답시고
트렁크 공간을 굳이 파먹을까.
최근 바빠서 해가 바뀌기 전에
신랄하게 욕할 예정이었던
GV80 쿠페는 또 실용성을 챙긴답시고
쿠페라는 타이틀을 따로 붙였음에도
뚱뚱하기 짝이 없는 비대한 차를
만들어놨는데, 제발 그만들 해라.
페라리 프로산게는 약간
논외로 쳐야 할만한 차종이니,
통상적으로 살만한 럭셔리 SUV 중
같은 이태리 출신 람보르기니 우루스랑
비교하면 난 이쪽이 비교불가하게 좋다.
내가 우루스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우루스는 너무 장신구 덩어리라고 해야할까?
온갖 과격한 장식과 흡입구와
'나 람보르기니야, 나 비싼차야'를
차가 온 몸을 비틀며 소리지르는 중.
난 좀 고전적인 비례감과
사소한 디테일이 아닌 전체적인 덩어리감
매끄럽고 우아한 면 처리를 선호해서
르반떼의 디자인이 우루스보다 훨 낫다.
원래 기본 디자인 틀이 별 볼일 없으면
자꾸 말도 안 되는 장식을
디자이너들이 겉에 계속 추가하는데
국산차 중에도 티볼리라고...
그런 아주 안 좋은 예가 있다.
물론 티볼리는 생겨먹은 것 자체가
여러 차종을 베껴와서 그렇겠지만
난 그런게 너무 싫어.
실내 디자인으로 넘어오면,
르반떼는 데뷔한 지 이미
시간이 좀 지난 차량이다보니
지금 시점에선 되게 낡아보인다.
인포테인먼트 화면의 크기도 작고
테슬라 모델 3를 필두로 해서
급진적으로 바뀐 실내 테마의 유행과
비교하면 시원함은 확실히 부족한데
르반떼의 핵심은 그게 아니지.
내장재의 품질이 사진으로만 봐선
그리 와닿지 않겠지만, 정말 좋다.
구닥다리같은 촌스러움과
고급 소재들이 주는 호사스러움이
동시에 한 데 자리하니
어찌 미워할 수 있으리.
특히나 이 차량은 옵션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실크가
시트와 도어트림에 폭넓게 사용돼
가죽이라면 죽고 못 사는 나도
만족스러운 품질과 고급감을 선사한다.
나도 예전엔 '어떻게 명색이 고급차에
가죽이 아니라 직물을 갖다발라놓느냐'
했었는데 막상 만져보니 기우였다.
최근에 온 실내에 가죽을 도배한
애스턴마틴 DBX 실내에 앉아봤는데
르반떼 실내의 고급감이 더 좋다.
가죽 질 자체가 약간 태닝한 듯한,
단단하고 거친 면이 있으면서도
쫙쫙 펴진 매끄러운 느낌이라
남성용 장지갑같은 소재라서
너무 푹신하려고 드는 영국차들 특유의
가죽 질감보다 난 더 낫더라고.
BMW XM의 실내를 본 적이 있다면
XM의 도어트림도 이런 느낌의 가죽인데
시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흡족.
XM 시승기는 날이 좀 따뜻해지면.
대표적인 라이벌인
포르쉐 카이엔의 실내와 비교하면
실내의 퀄리티는 르반떼가 압도하지.
카이엔도 클럽 레더 옵션을 고르면
비슷한 수준의 가죽을 발라준다만
클럽 레더는 너무 약해서
차량을 실제로 타고 다니면 약간 걱정됨.
르반떼의 가죽은 단단한 맛이 있어서
크게 걱정 안하고 타도
손상이 심하지 않음.
어쨌든 지금에 와서는 실내가
약간 낡은 티가 나기때문에
르반떼의 인테리어가 timeless라곤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시간이 더 지나도 르반떼 실내에 발린
가죽과 실크가 주는 고급감은
줄어들지 않을 걸로 확신한다.
근데 동급 차종 중에
그런 실내를 보여주는 차가 뭐가 있지?
레인지로버 스포츠도
세월에 맞설 수 있을 듯한
그런 실내까진 아닌데.
한 가지 깨는 점이라면
인포테인먼트 화면 주변의
플라스틱이 너무 적나라하게 저렴함.
이 부분까지 가죽으로 덮어줬으면
정말 만족스럽고 좋았을 것 같은데
만약 그랬다면 차값이 더 올라가야겠지.
그래서 그걸 만회하고자
화면 밑에 Levante라고
친절하게 레터링을 달아줬다.
이 차는 초기형이라 변속 레버가
BMW에서나 볼 법한 생김새인데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만
후에 달린 가죽 마감된 레버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훨씬 좋다.
가죽으로 마감된 게 나도 좋긴 한데
생긴게 너무 기다랗고 길쭉해서
이게 손에 착 감기니 나쁘지 않거든.
후기형 변속 레버는 페이스리프트랑
무관하게 중간부터 적용됨.
디자인에 대해 실컷 떠들었으니
이 차의 또 다른 특징이자 핵심인
디젤 엔진도 다뤄봐야지.
A630이란 코드네임의 이
2987cc V6 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 출력 275마력 @ 4000rpm,
최대 토크 61.2kg·m @ 2000 - 2600rpm.
르반떼의 전체 라인업 중에서
엔트리를 담당하는 모델답게
최고 출력도 가장 낮다.
이보다 위인 가솔린 르반떼는 350마력,
르반떼 S는 430마력이고
V6가 아닌 V8 라인업으로 가면
GTS나 트로페오가 더 강한 힘을 갖추고
돈다발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디젤의 특징은 출력보단 토크.
이 엔진은 아이들링부터 30.5kg·m을 냄.
시동이 걸려있는 상태부터
자연흡기 V6 가솔린 차량만큼의
높은 토크가 바로 나온다는 것이고
2000rpm이 되면 그 수치는 폭증.
61.2kg·m은 르반떼 S보다도 높아서
155마력의 출력 차이가 무색하게
초반의 펀치력은 굉장하다.
당연히 가솔린은 엔진의 회전범위가
디젤보다 훨씬 넓기때문에
고회전으로 가면 당연히 르반떼 S 승.
다만 디젤이라고 해서
르반떼의 큰 덩치와 무거운 무게를
끌고다니는 데 부족하진 않다는 것.
난 마세라티에 디젤이라니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데
일조만 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타고다녀보니 전혀 아니었다.
이 디젤 엔진은 VM Motori라는
이탈리아의 디젤 전문 회사에서
생산하는 물건인데,
마세라티를 소유한 스텔란티스에서
이 VM Motori란 회사도 소유 중.
스텔란티스 그룹에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지프도 포함인지라
이 엔진은 지프 그랜드 체로키에도 올라감.
다만 르반떼는 당연히 마세라티인지라
출력이 25마력 높게 설정되어있고
코드명도 A630 HP로 약간 상이함.
V6 디젤이라고 해봤자
회전질감이 특출나게 좋은
그런 물건은 나 지금껏 본 적 없음.
V6 디젤은 전부 거기서 거기야.
직렬형도 아니고 V형에 뭘 바라.
하지만 르반떼는 마세라티인지라
소리 하나만큼은 절대 포기 못하는데,
르반떼 디젤은 세상에
연료만 경유를 먹는다 뿐이지
G 63 AMG같은 둥둥거림을 낸다.
이는 스포츠 모드에서 열리는
가변 배기와 활성화되는 사운드 증폭기
이 두 가지가 만들어내는 합작품인데
나는 음색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만
부담스러운 이들도 분명 존재할 것.
르반떼의 V6 가솔린 라인업은
이보다는 시원하고 카랑카랑한 톤인데
디젤은 뭐랄까,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북소리 같은 박력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스포츠 모드를 끄면 조용해지니
이게 싫으면 평범하게 다니면 된다.
심지어 일부 고성능차들이
냉간 시동 시 온 동네사람들 다 깨우는
굉음을 내는 것과 달리
르반떼 디젤은 냉간 시동에도 조용함.
어쩌면 아파트로 도배된 한국에
최적화된 엔진이 아닌가 싶음.
심지어 대한민국은 외국과 달리
지방으로 가면 고급 휘발유 취급점이
현저하게 줄어들기때문에,
고급 휘발유 스트레스에서도 해방 가능.
르반떼 디젤 이거 완전
한국에 팔려고 만들었네.
G 63 AMG같은 소리라고 그랬는데,
G-클래스 디젤은 이런 소리 안 나잖아.
디젤의 편의성과 다기통의 박력
한 방에 다 잡고싶으면 여기로.
르반떼 디젤의 판매 시점이
현행 3세대 카이엔의 데뷔 초기와
구형 2세대 카이엔의 끝물에 걸쳐 있어
2세대를 끝으로 자취를 감춘
카이엔 디젤과도 비교해봄직하다.
파워트레인의 반응성과 가속감은
카이엔 디젤(92A 전기형)이 더 강함.
값비싼 공법이나 소재 없이도
최상의 결과물을 쥐어짜내는 데 전문인
포르쉐 아니랄까봐 디젤조차도
있는 끝까지 힘껏 쥐어짠 포르쉐 승.
심지어 카이엔 디젤은 르반떼보다
출력도 30마력 가량이나 낮다고.
아무래도 그 원인은 엔진보다도
변속기 때문이겠지.
자연스럽게 변속기 얘기로.
스포츠카들 위주로 따지면
포르쉐는 그 유명한 PDK고
타사는 일반 자동변속기라
동력 직결에서 차이가 나서 그렇다
이렇게 말하고 마무리하겠지만,
르반떼와 카이엔 둘 다 자동 8단.
ZF에서 납품받는 이 8HP70은
둘 다 훌륭하지만, 성능상으론
포르쉐가 명백히 더 좋음.
포르쉐가 더 날 서있고, 디젤인데도
마치 디젤이 아닌 것 처럼 반응하도록
변속기가 빠릿빠릿하게 작동한다.
르반떼가 그럼 모자라냐, 그건 아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지금 할 얘기가 르반떼의 핵심인데,
르반떼는 주행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힘을 빼고 여유롭게 군다.
충분히 딱딱 때려주지만,
포르쉐처럼 정말 최선을 다해
차가 용을 쓰고있거나 하진 않음.
오랜 레이싱 혈통의 마세라티 명성에
누가 될 정도로 문제가 되진 않지만
그 혈통을 믿고 '야 이정도는 내가 해~'
하며 편안하게 받아치는 느낌.
스포츠 모드를 놔서 내부 오일 압력을
높여 빡빡 때려도 어디선가 여유가 느껴져.
참으로 기묘하고 절묘한 세팅.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독 3사' 수준과는
역시나 궤를 달리할 정도의 성능은 보존중.
르반떼 디젤도 동일하게 마세라티.
섀시 또한 마찬가지.
르반떼에는 이름도 유명한
스카이 훅 서스펜션이 적용됐는데
이름 그대로 Sky-hook,
하늘에 매달려가는 느낌.
스카이 훅은 대명사로도 쓰이지만
연속적인 댐핑 가변제어를 통해
현가상질량의 상하 움직임을 최소화한단
이론의 이름이기도 하다.
비행기도 아니고, 땅에 붙어서 움직이는
자동차가 하늘에 매달려서 가다니?
근데 르반떼를 타고 다녀보면
정말 그런 느낌이 든다.
네 바퀴의 접지력을 부각시키고
노면과 내가 일체감있게 붙어있단
그런 신뢰를 운전자에게 주는 데 집중하는
독일차와 독일차 파생 럭셔리카들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주행질감.
이게 단순히 에어 스프링을 채택해서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 전혀 아니다.
기름막 위를 미끄러져간단
매끄러움의 메르세데스-벤츠,
혹은 그 중에서 '구름을 탄 듯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S-클래스는
정말로 탑승객과 도로, 혹은 운전을
편안함을 위해 완전 격리시키려하는데
이 차는 내가 생각해보니까
'타란툴라처럼 움직인다'는
표현이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됨.
대지를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
치타나 사자같은 느낌이 아닌,
그 얇은 다리로 쫙쫙 온 사방에
가볍게 붙어다니는 놀라운 느낌.
스카이 훅 이름값 하게 정말
하늘에 매달려서 가느다란 다리들이
슬렁슬렁 땅을 짚고다니는,
허나 접지력 및 노면을 붙드는 능력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신비한 감각.
그게 르반떼의 주요 느낌이다.
이게 신형 7시리즈(G70)가 주는
마법 양탄자를 탄 듯 차선 변경 시
수평으로 쓰윽 움직이는 모습과는 달라.
르반떼는 마세라티 DNA를 지녀서
노면 정보 차단 혹은 붕 뜬 느낌은 없거든.
노면을 거머쥐고 있단 점은
확실하게 운전자에게 전달해.
여기에 더해 변속기 편에서
언급한 힘 좀 뺀 느슨함까지.
거미들이 땅이며 나무며 거미줄 위며
막 노력을 해가면서 기어다니진 않지.
물론 걔들은 지들 딴에선
애써가며 돌아다니고 있겠지만
굵은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다니거나
맹렬하게 뛰어다니는 애들이랑은 다르잖아.
타란툴라 얘기한 이유가 또 있다.
앞서 언급한 육식 포유류들은 아무리 날쌔도
본연의 덩치나 체중은 못 숨기잖아.
르반떼는 동급에서 유일하게
차량의 실 사이즈보다 차가 더 작게 느껴짐.
사뿐하고 가볍게 슥슥 다닌단 감각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보통 차급이 준대형 SUV정도 되면
차량 사이즈가 꽤나 큼직하고
그런 점을 강조하거나 최소한
고스란히 부피감을 느끼게 놔두는
차들이 시장에 대부분이다.
내가 여지껏 타본 동급차종들,
메르세데스-벤츠 GLE, BMW X5,
레인지로버 스포츠, 포르쉐 카이엔
이 차종들 전부 한결같이
타보면 그 사이즈와 무게가 적나라하다.
르반떼는 아냐.
꼭 몰아붙일 때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시내와 고속도로 주행시에
차가 왜 이렇게 작게 느껴지지?
이런 생각이 뇌리를 금세 스친다.
글 서두에 밝혔지만 르반떼는
동급 차종들 중에 실제 등빨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만큼 크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는 순간
차의 부피감이 거의 반토막난다.
이 차를 타고다니는 시간동안
차량의 사이즈는 거의 뭐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GLC(X254)보다도
작게 느껴졌으니 말 다 했지.
신형 X3(G45)보다도 작게 느껴질 정도로
차의 움직임과 체감이 정갈하다.
실내의 넉넉함이 있으니
X3보다 어떨 땐 크고 여유롭지만
실내를 둘러싸고 있는 차체는
때론 더 작게 느껴진다는 것에 경악.
근데 이제 좀 거세게 몰아붙인다?
동급 차종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차가 운전자를 쫙 감싼다.
그만큼 차량 부피가 작게 느껴짐.
역시나 이번에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라이벌 카이엔과 비교하면,
여기선 카이엔이 참패함.
르반떼와 비교하면 카이엔은 그냥 SUV.
이건 SUV가 아니야.
구형 카이엔 디젤 뿐만 아니라
현행 카이엔과 비교해도 마찬가지.
(PDCC 없는 차량 기준)카이엔은
차체 지지를 위해 짧고 탄탄한 댐퍼가
현가장치 위에 자리한 크고 무거운
차량 받쳐내면서 승차감과 주행 성능을
다 잡기 위해 역시나 애쓰지만
솔직히 역부족이라고 느껴지는데
르반떼는 카이엔에서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유연함과 탄력, 차분함이
한 자리에 전부 존재한다.
현행(신형) 레인지로버 스포츠도
어쩌다보니 공교롭게도 D300,
그러니까 디젤 모델만 타보았는데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르반떼와 비교하면
승차감은 좀 더 둥글둥글, 둥실둥실하고
한 겹의 안락함이 얇게 더 있지만
스포티한 감각은 거의 없다시피함.
르반떼는 공격적인, 거친 와인딩과
일상에서의 편안함을 SUV라는 패키징 안에
전부 담았다는 게 경이로움.
단 돈 1억 3천만원에 이런 올라운더?
내가 봤을때 이건 미친 가성비.
파워트레인 얘기할때
레인지로버 스포츠랑 비교를 안 했구나.
레인지로버 스포츠 D300은
제원상 최고 출력은 300마력이라
르반떼보다도 25마력이 더 있지만,
오프로드 쪽에 방점을 찍었다보니
체감 출력은 르반떼보다 낮다.
전반적인 출력 전개도 부드럽고.
승차감까지 포함해서 르반떼랑 비교하면
르반떼는 라떼의 고소함과 부드러움,
커피 향을 전부 균형감있게 갖췄는데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그보다
한결 더 두툼하고 부드러운 크림커피.
공통점은 둘 다 동급 차종들 중에선
더 없이 일상에서 편안하다는 것.
르반떼는 이 차량인
디젤을 비롯해서 라인업이
꽤 다양하기 때문에 순정 타이어도
종류가 여러가지인데,
이 차가 신고있는 건
피렐리의 스콜피온 베르데 올 시즌.
한 급 높은 스콜피온 제로는
내가 좋아하는 타이어인데,
스콜피온 베르데를 낀 차 중에선
내가 만족할만한 성능을 보여준 애가
지금껏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타이어는 그저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이 차량은 신차가 아닌지라
스콜피온 베르데도 마세라티 OE가 아닌
RE 타이어라서 사실 순정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상태.
그런데 놀랍게도 뛰어난 섀시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타이어를
알아챌 수 없도록 완전히 가려버려서
타이어가 르반떼의 운동 성능을
발목 잡는단 인상이 전혀 없었다.
르반떼는 그저.. 섀시 설정값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뭘 신겨도
차가 여유롭게 받아낼법함.
SUV인 만큼 르반떼도
사륜 구동 시스템이 얹혀있는데,
이 Q4 사륜 구동계도 똑똑하다.
기본적으로 굉장히 후륜 구동틱하고,
코너에서 어느새 멀어져있도록
순간 이동을 유도할때만
전륜에 적절하게 힘을 보내는 느낌.
고속 크루징시에는 뒷 바퀴에만
동력을 100% 보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사륜 구동 차량이란
생각이 주행 중에 거의 안 든다만
마지막 한 끝자락의 위기엔
사륜 구동이 커버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 든든하다.
카이엔은 생각보다 후륜에 동력이
밀집되어있단 느낌이 적어서 오히려
가변 구동력 배분은 BMW의 xDrive와
유사하거나 조금 더 낫게 느껴짐.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당연히
이런 느낌과 정 반대에 위치해있고.
걘 레인지로버잖아.
사륜 구동계와 더불어서
기계식 LSD가 장착되어 있는데,
LSD가 달려있다는 걸 누가
사전에 알려주지 않는 이상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다.
대놓고 잡아당기는 티 팍팍 내는
차원이 다르게 좋음.
현대기아차는 장족의 발전을 이룬
아이오닉 5 N 와서도 LSD가 도와준 흔적을
완전히 감추는 데엔 실패하고 있는데,
역시 오랜 노하우 어디 안 감.
하지만 코너 돌아나가는 중
'SUV인데 이렇게 악셀을 빨리
그것도 풀 악셀을 열어도 된다고?'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타한다.
LSD가 있기에 가능한 일.
Q4 사륜 구동과 LSD의 합작으로
르반떼의 코너링은 그 덩치감을
어느 순간 잊게 만든다.
승차감 얘기 위에서 했는데
지금 또 할 거다.
왜냐면 할 말이 아직 남았거든.
르반떼의 주행 모드는
기본값, 에코 모드에 대응하는 I.C.E.,
오프로드 모드 및 스포츠 모드,
그리고 스포츠 현탁액(?) 모드로 총 5개.
스포츠 현탁액 모드는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데
스포츠 서스펜션 모드다.
그리고 에어 스프링이 채택됐기에
차량의 차고를 기본값보다
위로 2단계, 아래로 2단계 조절 가능.
근데 가장 낮은 단계는
초고속 주행시에만 자동 진입되고
수동으로 내릴 순 없다.
스포츠 모드는 댐퍼의 강도나
차고는 전혀 건들지 않으면서
파워트레인의 반응성 및
가변 배기 & 액티브 사운드 시스템만
활성화하는 모드이다.
스포츠 모드 놓고 순간 연비를 보면
연비가 곧바로 반토막나기 때문에
기름을 소리로 바꾸는
연금술 모드라고 봐도 무방함.
스포츠 현탁액 모드를 놔야
댐퍼가 살짝 단단해지지만,
그렇게 조인 댐퍼조차도
'단단' 혹은 '탄탄'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댐핑 스트로크가 길어서
충격이 들어와도 너그럽게 받는데
엄청 큰 요철이나 교량 이음매가 아니면
평소에 스포츠 현탁액 모드를 놓고
그냥 다녀도 될 정도로 무난하다.
하지만 이 얘기가
'기본값이나 스포츠 댐퍼나
별반 차이 없네'로 오해하면 안 됨.
분명한 차이가 있고, 산길을 타보면
스포츠 현탁액 모드가 한결 깔끔한데
그럼에도 평소의 승차감 훼손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럭셔리 SUV 본분에는 기본값이
더 어울리지만, 스포츠 댐퍼로 조여도
카이엔의 기본값보다 편안하다.
반면 카이엔의 PASM는
기본값 / 단단 / 더 단단
이렇게 3단계인데 제일 단단한건
SUV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편안함에
꽤나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부적절함.
근데 웃긴 건 그렇게 댐퍼 조여도
르반떼의 가뿐함을 따라잡지 못해.
번외로 나 탔던 디젤 카이엔은
에어 스프링은 고사하고
PASM도 없는 차량이어서
철 스프링에 고정형 댐퍼였는데
운동성도, 승차감도 르반떼에
전혀 비비지 못했고.
그걸 타면서 생각했던 게
'천하의 포르쉐도 카이엔급
덩치와 무게, 높이쯤 되니까
각종 옵션들을 갖다바르지 않으면
장사가 없다'였었는데
웬걸, 르반떼는 너무 손쉽게 처리함.
아, 그러고보니 또
GLE 53 AMG랑의 비교도
내가 위에서 까먹고 안 했네.
GLE 53 AMG는 현행 카이엔과
서스펜션의 느낌이나 종합 주행성에
거의 차이가 없지만, 약간 더 둔하고
댐퍼 내부가 진공관처럼
좀 둥둥 비었으면서 버티는 느낌.
차량 가격 및 유지보수 비용은
카이엔보다 약간 낮고 실내는
더 화사하고 고급스러움.
한 줄 요약하면
르반떼한테 전혀 상대가 안 됨.
시트 얘기도 좀 해야겠는데
이 좋은 승차감에 시트도 기여중.
가죽이 약간 단단하고 매끄러운 것에
비해 시트의 쿠션은 부드럽다.
스포츠성을 강조한 SUV들은
차량 하체 설정값에 맞춰서
멍청하게 단단한 시트를 달기도 하는데
르반떼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아 너무 좋아.
심지어 헤드레스트조차
적절히 푹신하고 부드러우면서
삼지창이 스티칭된 중심부의
머리 지지력은 굉장히 좋다.
동급 어느 차종보다 시트도 편함.
얼마 전에 시승기를 남겼던
비슷하게 안락한 시트 착좌감과
비슷하게 매끄럽고 지지력 좋은
가죽 질감을 보여줬었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뭘 좀 알아.
르반떼의 스카이 훅 서스펜션은
차체의 롤과 피칭을 딱 필요한 만큼만
허용해서 운전자가 가지고 놀
틈을 만들어놓은게 사랑스러운데
만약 차체 움직임이 너무 많다 느껴지면
수동으로 차고를 1단 내리면 해결됨.
난 평소에 타고다니기에
I.C.E.모드에 차고 1단 하향조정
이게 딱 맞더라고.
고급차는 또 오디오가 출중해야지.
르반떼는 오디오마저도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함께
동급 최강자로서 쌍벽을 이룬다.
난 처음에 하만 카돈 딱지를 발견하고
오디오에 대한 큰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랄까봐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간 내 블로그의 글들을 봐왔다면
'하만 카돈답게 별로다'란 평이
여러 시승기에서 줄을 이었던 걸
대충 알 텐데 그걸 완벽히 깨부숨.
하만 카돈 오디오가 들어간
차량 중 BMW iX보다
오디오가 좋은 건 얘가 최초.
공교롭게도 iX도 르반떼도 위에
Bowers & Wilkins 오디오가
추가로 구비되어 있는데,
iX는 롤스로이스 뺨치는 품질이었거든.
르반떼의 B&W는 도대체 얼마나 좋으려고.
난 국내에 수입되는 르반떼는
전량 Bowers & Wilkins인줄 알았더니
트로페오같은 상위트림만 그렇고
아랫급 모델들은 이처럼
하만 카돈 오디오가 들어가는데
하만 카돈 딱지를 보고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미안한데 카이엔의 BOSE는
이번에도 상대가 안 돼.
최상급과 중간급이 어떻게 서로 비비나.
하만 카돈 시스템에다가
최상급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게
나로서도 어색하지만, 놀라울 정도다.
르반떼란 차가 놀라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오디오 또한 빠지지 않음.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메리디안은
보다 섬세하고, 악기 소리에 집중하는데
르반떼의 하만 카돈은
캐주얼하고, 최신 가요에 어울림.
보통 하만 카돈 시스템은
철퍽 철퍽 무식하게, 또 답답하게
베이스를 때려대는게 싫었는데
이건 베이스의 부피감과
양감이 아주 적절하게 느껴지면서
보컬이 전혀 묻히지 않고 선명하다.
기본값은 살짝 눌려있지만
이퀄라이저로 맞춰주면 되니까.
보통의 차량용 하만 카돈들은
이퀄라이저가 수습해주지 못할 정도로
오디오의 품질이 떨어져왔다고.
X5의 하만 카돈이나
GLE의 부메스터도 미안하지만
같은 선에 설 수 없는
품질 차이가 존재함.
사실 안 미안해.
지금은 동생인 그레칼레가
출시되어서 SUV가 두 가지이지만,
르반떼의 등장 당시만 해도
삼지창을 앞에 달고있는 차량 중
이렇게 적재공간이 넓으며
모든 길을 두루 헤쳐나갈 수 있는
그런 차는 르반떼 하나 뿐이었다.
지금도 르반떼가 형님이라
그레칼레보다 한결 큼직하고.
트렁크가 가로 폭이
동급 차종들만큼 크진 않아서
골프백 적재가 쉽진 않지만,
마세라티에 이 정도 트렁크라니.
이만큼의 넉넉함에 감사해야지.
특히나 이런 유려한 몸매를 가지고
쿠페형 SUV들보단 최소한 트렁크와
뒷좌석 헤드룸에 여유가 있으니.
트렁크 용량은 뒷좌석 폴딩 없이
580L인데, 솔직히 충분하잖아.
르반떼를 타고다니며 든 또 다른 생각은,
르반떼는 분명 SUV이지만
형태만 그렇지 실제론 GT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GT카란
아주 미끈하고 섹시한 스타일의
낮은 쿠페로 보통 자리하고 있는데
르반떼 : 미끈 & 섹시는 오케이.
쿠페같은 형상도 오케이.
다만 낮게 차체가 자리잡진 않은
SUV의 형태를 가졌지.
근데 SUV라서 오히려 좋아.
차고가 높아서 각종 방지턱 등
요철을 신경쓸 필요가 없으며
시야가 탁 트여서 운전이 편하고
심지어 가벼운 오프로딩도 가능해.
Grand Tourer의 전제 조건이
장시간 운전의 편안함이라면,
르반떼는 그 어떤 차량보다도
이걸 만족하는 차량이 아닌가.
역동성과 편안함을 한 손에 다 쥐었고
SUV의 강점과 스타일까지.
이 차량은 디젤이라 넉넉한 토크 덕에
살짝씩만 악셀을 터치해도
차가 금세 속도를 붙여나가며
디젤이라 연료 품질에도 무신경해
경유만 주유해도 되고,
또 연비도 좋아서 주유소에
자주 방문할 필요도 없다.
르반떼의 연료탱크 용량은 80L.
내가 와인딩도 타고 때론 조금씩 밟아서
최종 평균 12.8km/l을 기록했으니
이대로만 해도 한 탱크로
1000km 이상 갈 수 있다만
심지어 더 잘 뽑을 여지가 있는 것.
나 평소에 운전하듯이 슬슬 다니면
13km/l 이상 나올 건데
이럼 주유 스트레스와는 완전 작별.
이 차가 GT라고 느껴지는
또 다른 부분은 정숙성.
이 르반떼 21인치 신고 있는데
놀라우리만큼 외부 소음이 억제돼있다.
마세라티인지라 기본적으로
강조해놓은 엔진음 및 배기음은
차량의 성격이라고 봐야지.
그 외의 풍절음이나 노면 소음은
카이엔 등과 비교해서 월등히 조용함.
풍절음을 이렇게 잡았단 게
놀라운 이유는 이 차가
프레임리스 도어이기 때문이다.
멋쟁이가 혼자서 매력 싹쓸이중.
마세라티가 르반떼에 붙인 슬로건은
The Maserati of SUVs.
SUV들 중의 마세라티.
솔직히 타보기 전이라면
나도 이거 비웃었을 듯 한데
타보고 나니 백방으로 이해됨.
카이엔은 포르쉐 'SUV'인데
르반떼는 '마세라티' SUV이다.
SUV가 부차적인 수식어.
마세라티의 성격을 잘 보존했으면서
SUV라는 형태로 매력을 더 확장한 거야.
이 차는 삼지창을 달고 있는 게 핵심.
하지만 그게 결코 비판이 아님.
고급감 얘기도 미안한데 또 할게.
르반떼는 분명 스포티한 성격을
1차적으로 강조한 럭셔리카인데
정작 실내는 웬만한 고급차
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은 소재들 뿐.
눈에 보이는 금속도 진짜.
가죽이랑 실크는 계속 얘기했지.
카본도 리얼 카본.
알루미늄을 통짜로 절삭한
저 큼직한 패들 시프터를 보면
그냥 기절해버릴 것 같음.
특이하게 천장은 스웨이드가 아닌데
필러부위는 전부 스웨이드.
더해서 아날로그 시계도.
포르쉐도 크로노 패키지를 팔면서
크로노그래프를 대시보드 위에
눈에 잘 띄게 달아주지만,
걔는 정말 크로노그래프인데
르반떼는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다.
삼지창이 들어가있는 시계라니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 그리고 운전대 뒷편에
음악 곡 넘김 버튼과
볼륨 조절 버튼이 자리하는데
이게 굉장히 편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채로도
그대로 바로 조작할 수 있으니.
이 차는 우핸들 차량이라
좌측에 곡 넘김, 우측에 볼륨 조절인데
좌핸들 차량도 동일한진 모르겠음.
이태리 차량이나 프랑스 차량이나
운전대 뒤에다가 음악 조절 버튼
많이들 달아놓은데,
역시 마피아의 나라 답다고 해야하나.
뒤에서 뭔가 하는걸 좋아함.
르반떼도 당연히 단점은 있다.
지금까진 마세라티라서
좋은 점 위주로 이야기했지만
마세라티라는 단어에 포함된
리스크도 분명히 존재하잖아.
어쩌다보니 타이어 점검이 필요해져서
정비소에 잠시 맡겼더니만
르반떼는 마세라티 전용 프로그램으로
에어 서스펜션 보호 모드에 놓지 않고
바퀴를 그냥 탈착하게 되면
에어 스프링이 파손된다고,
마세라티 정식 서비스센터에 맡기라고
그런 답변이 되돌아왔었다.
타이어 교체용 잭 모드가 존재하는
현행 X5(G05)같은 차량이나
그런 거 없이 아예 차량이 자동 감지해서
주행 중이 아니면 셀프 레벨링을 멈추는
GLE같은 차량은 양반이지.
랜드로버도 사정은 르반떼와 동일한데
마세라티나 랜드로버나...;;
그리고 흙길을 정말 저속으로
기어가다시피 살살 통과했음에도
TPMS 서비스받으란 메시지가 뜸.
심지어 그 메시지도 나중 가서였고
처음에는 타이어 펑크 경고가 떠서
뒷목잡고 쓰러질 뻔.
아무리 마세라티라지만
15km/h로 설설 기었는데
그새 타이어 펑크가 나?
알고보니 TPMS 에러.
이런 에러는 타 차종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오류이지만
정말로 타이어에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방금 언급한것처럼
타 동급 차종보다 까다롭다고.
원래 미녀는 얼굴값을 하니까
마세라티를 타려면 그 정돈 감내해야지.
하지만 '마세라티'란 꽤나
많이 알려진 리스크란 걸 각오해야.
그 외엔 대부분 사소한데,
나온지 좀 된 차량답게
후방 카메라 및 서라운드 뷰의
화질이 다소 떨어지는 편.
근데 난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인포테인먼트가 구식이라고도 까이던데
구식은 맞는데, 필요한 기능들을
메인 홈 화면에 딱딱 꺼내둘 수 있고
각종 조작들이 되게 편해서 좋았다.
페이스리프트된 르반떼는
인포테인먼트 테마나 계기판 생겨먹은게
벤틀리같아져서 난 정말 별로.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파란색의
쨍한 전기형의 이 테마가 좋다.
이탤릭체의 폰트들도 마찬가지고.
휠베이스가 3m가 넘는데
뒷좌석 레그룸이 그만큼
받쳐주지 않는 것도 단점.
근데 휠베이스만큼이 아닐 뿐이지
뒷좌석 공간감은 충분히 널찍하고
뒷좌석 시트도 큼직하니 편안한데
그냥 트집에 가깝다고 생각됨.
휠베이스가 길어서 유턴 시
혹은 좁은 주차장에서 불편하다라,
그 정도가 감당이 안 되면
사실 르반떼의 큰 차체 사이즈가
애초에 맞지 않는 운전실력.
휠베이스가 주는 단점을 느끼기 이전에
차 너무 커서 차 부숴먹을 판.
나 묵었던 호텔 주차장 진출입로가 좁아
차 넣고 뺄때마다 르반떼로는
전후방센서가 계속 삑삑대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는데, 잘만 탔잖아.
아. 맞다.
오토 라이트가 제대로 작동하니
분명 조도 센서는 정상인데
인포테인먼트 화면만 이상하게
밤에도 밝은 상태 그대로 유지되는
희한한 버그도 있었다.
계기판 내의 디스플레이도
정상적으로 맞춰서 어두워지는데
인포테인먼트 화면만 그랬음.
결국 그래서 밤마다 화면 밝기를
수동으로 내리고 아침엔 다시 올리고.
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크라이슬러의 Uconnect에다가
마세라티 스킨을 입힌 물건인데
이태리산 소프트웨어에 뭘 바라겠나.
심지어 원산지는 미국.
마세라티 타려면 감수해야지?
현대기아차가 이랬으면
요즘 현기 소프트웨어 QC 개판이라고
대번에 노발대발했을 일인데
마세라티라고 생각하니 그러려니.
이게 삼지창의 힘인가?
마세라티라서 생기는 문제가
마세라티라서 참아지는 신기루.
피아트 500C 아바스는
이태리차다운 인체공학적 에러가
군데군데 발견되었는데,
르반떼는 고가의 차량이라서 그런가
그런 터무니없는 문제는 없다.
아무리 마세라티일지라도
부자들 화나게 만들면 안되지.
이래서 이태리차나 영국차 사려면
어느정도 가격이 나가는 차를 사야 됨.
글 제목에 던진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마세라티를 산다는 건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정답과
굉장히 거리가 있는 선택이다.
나 역시도 이 급과 이 가격대에선
그래도 카이엔이 제일 낫지 않겠나
속으로는 '카이엔보다 투아렉이 더 좋아'
하고있던 참이었지만
다수의 선택이란 참 떨쳐내기 힘든 유혹.
마세라티가 또 워낙 판매 볼륨이
작은 회사다보니 경험해본 이도
많지 않아 사실확인을 해줄 사람조차
별로 없는 이 실정에
카이엔을 놔두고 르반떼를 구입한다?
어지간해선 내리기 힘든 결정이지.
웬지 샀다가 고장에 시달려서
미쳐버릴 것 같고, 중고가 또한 이를
십분 반영해서 급격하게 떨어지고.
카이엔은 중고가 방어도 훌륭한데.
르반떼는 사회 통념상(?) 분명한 오답.
그런데 그 오답만 쫓는 사람들.
이 차를 정말 제대로 경험해보고
진가를 아는 사람들은
남들이 왈가왈부해도 이걸 사겠지.
심지어 마세라티를 디젤로
출고하는 것도 오답같잖아.
근데 타보니까 만족스러움.
자동차라는건 부동산 다음으로
가장 큰 돈을 들여 구입하는 자산인데
남의 눈치를 왜 봐가면서 구입하나.
1억 얼마씩이나 주고 사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시선과
유행에 휘둘려서 사면 쓰나?
르반떼와 4000km 넘는
시간과 거리동안 함께하면서
정말 뼛속까지, 피부로 느꼈다.
'르반떼는 타는 사람들은 정말 만족하는 차'
이게 맞는 문장이라는 거.
그런 르반떼는 정말 최고의 SUV.
SUV지만 SUV답지 않단 게
세워놓고 보기만 해도,
운전할때도 상시 느껴진다.
르반떼와 카이엔을 둘 다
시간을 두고 타 본 결과
르반떼를 놔두고 카이엔을 사는게
정말이지 바보다. 말도 안 됨.
르반떼 디젤은 국내에 출시하던 당시
1억 3천만원을 전후하는 가격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어마무시한 초 가성비 차량.
마세라티와 가성비가 도대체
어떻게 한 문장에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지
나도 놀랍지만 타보니 정말 그러하다.
최근에 차값이 많이 올랐다지만
요즘엔 GLE 450과 X5 xDrive40i가
1억 2천씩이나 하고 있다고.
말이 돼?
여담으로,
이태리차다운 빠르고 정확한 스티어링과
포르쉐와 유사하게 발 힘을 더 줘
차량을 세워야하는 브레이크도 좋다.
마세라티는 올해 111주년을 맞았는데
이 사람들이 111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이
만들어내는 작품에서 느껴짐.
독일차들의 쓸데없이 무거운 운전대와
확연히 다른, 또 다른 여유있는 모습.
이탈리안 카사노바가 따로 없다.
그리고 사이드미러가 큼직해서
거울에 담기는게 많아 너무 좋아.
르반떼를 타고 완전 사랑에 빠져서
르반떼의 매력을 몰라주는
많은 이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생각을 해보니 르반떼의 마지막
가장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었지.
강남 도처에 깔린 카이엔과 달리
희소성까지 지키고 있다는 거.
카이엔은 혼자 타고다녀도
애 학원에다 내려다주고 오는
셔틀 런중인 애아빠나 애엄마 느낌인데
르반떼는 정말 독보적인 이미지에
본인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그런 모습에 훨씬 더 가깝잖아.
카이엔은 원체 내 블로그에서
까이는 차이긴 한데,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르반떼는 앞으로도
르반떼의 이런 개성과 스타일을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개쩌는 차.
진정 안목이 있는 이들만 알아보는 차.
사장님이 대박 나길 기원하는
그런 맛집이지만 속으로는
대박나지 않길 바라게되는 그런 차.
개나소나 알고 탈 필요 없어.
오답만을 추구하는 남자들에게.
남들과 다르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 추천. 꼭 권함.
르반떼를 타고다닌 이후로
이제 그 어떤 차도 사고싶지 않아서
일단 내가 큰일났음..
진짜 나 이 차 사야되나봐.
'한 대로 올 클리어'
이게 목표라면 르반떼는
수석을 뛰어넘은 글로벌 원탑.
스포츠카? SUV 중 독보적.
럭셔리카? 당연하지.
패밀리카? 합격.